열두 갈래 대로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곳. 차선도 신호등도 없이 수백 대의 차가 뒤엉킨 채 돌아가는 곳.

파리 개선문 광장은 ‘유럽에서 가장 악명 높은 로터리’로 통합니다. 관광객은 연중 끊이지 않고, 도로가 비는 순간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2023년 여름 어느 하루, 이 광장이 텅 비었습니다.

자동차가 사라진 자리에는 낡은 외투를 걸친 젊은이들이 섰습니다. 목적지는 개선문. 1940년, 나치에 점령된 파리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행진이 83년 만에 같은 자리에서 다시 재현된 것입니다.

오는 11월 국내 개봉하는 프랑스 전쟁 영화 <드골>의 촬영 현장이었습니다. 세트를 지으면 될 것을, 왜 굳이 진짜 개선문이어야 했을까요?

제작자의 답은 한 마디였습니다.

“에투알 광장을 헝가리에서 보여줄 순 없잖아요!”

파리는 파리에서, 사막은 사막에서. 그리고 도저히 갈 수 없는 런던은 아예 새로 지었습니다. <드골> 제작진이 150일 동안 움직인 촬영 현장을 따라가 봤습니다.

 

 

파리가 가장 조용한 날, 8월 15일을 노렸다

개선문 광장을 통째로 비우기 위해 제작진이 찾아낸 날은 단 하루였습니다. 바로 8월 15일입니다.

이날은 프랑스의 공휴일인 성모승천일입니다. 한여름 바캉스 한복판이라 파리 시민 상당수가 도시를 비우고, 차량도 인파도 1년 중 가장 적은 날이죠. 제작진은 이 하루를 잡아 광장을 전면 통제했습니다.

날짜를 미룰 수도 없었습니다. 이듬해인 2024년 여름, 파리에서 올림픽이 열릴 예정이었기 때문입니다. 도시 전체가 올림픽 준비에 들어가면 이런 촬영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죠.

“촬영 일정을 미룰 수 없었습니다. 다음 해 여름에 올림픽이 열렸으니까요.” — 제작자 액셀 부카이

그렇다면 이날 개선문 아래에서는 어떤 장면을 찍었을까요? 1940년 11월 11일, 파리 학생들의 개선문 행진입니다.

독일군이 파리를 점령한 지 다섯 달째. 제1차 세계대전 종전기념일에 수천 명의 학생들이 개선문으로 향했습니다. 점령군의 금지를 무릅쓰고 벌인, 파리 최초의 공개적인 저항 시위 중 하나였죠. 작품소개서는 이 장면을 1편의 클라이맥스로 소개합니다.

공교롭게도 국내 개봉일도 11월 11일입니다. 스크린 속 행진이 벌어진 바로 그 날짜에 한국 관객을 만나는 셈이죠.

 

 

‘깨끗한’ 개선문을 일부러 더럽히다

진짜 개선문 앞에서 찍었다고 끝이 아니었습니다. 2023년의 개선문은 1940년의 개선문보다 너무 깨끗했기 때문입니다.

시각효과를 맡은 BUF는 휴대용 레이저 스캐너(라이다)로 광장 전체를 스캔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사진 속 개선문처럼 때가 타고 거무스름한 모습으로 디지털 후반작업에서 더럽혔죠.

주변 건물도 다시 입혔습니다. 파리 곳곳에 남아 있는 1930~40년대 건물을 따로 촬영해 광장 주변의 외관을 재구성했고, 색감을 맞추기 위해 일부러 잔뜩 흐린 날을 기다려 촬영했습니다.

실제 장소의 무게감에 시대의 때를 덧입힌 것. <드골>이 개선문 장면을 만든 방식입니다.

 

 

파리의 표지판을 떼고, 벤치를 치웠다

통제된 것은 개선문만이 아니었습니다. 2023년 7월 말부터 약 두 달간, 파리 시내 골목골목이 1940년대로 되돌아갔습니다.

첫 촬영지는 파리 동역이었습니다. 이어 8월 1일에는 팡테옹 광장, 8월 11일에는 당페르로슈로 광장으로 카메라가 옮겨갔고, 9월에는 마레 지구에서 촬영이 이어졌습니다.

팡테옹에서는 저항의 전단지가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지는 장면을 찍었습니다. 제작자는 이런 장면은 스튜디오에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다고 말합니다. 거대한 돌기둥과 돔이 만드는 압도감은 진짜 건물 앞에서만 담길 수 있다는 것이죠.

가장 손이 많이 간 곳은 파리 남쪽의 당페르로슈로 광장과 포르루아얄, 생자크 거리 일대입니다. 1944년 파리 해방 장면의 무대가 된 이곳에서, 제작진은 도로 표지판을 가리고 벤치와 거리 시설물을 걷어냈습니다. 현대의 흔적을 하나하나 지운 뒤에야 바리케이드와 전차가 들어섰죠.

“파리의 거리가 그대로 촬영장이 됐고, 세트가 아닌 도시 그 자체가 1944년을 연기했다”

실제 파리 시민들이 매일 걷는 거리가 해방의 현장으로 변신한 것입니다. 다음에 파리를 찾는다면 당페르로슈로 광장에서 영화 속 장면을 떠올려 봐도 좋겠습니다.

 

 

평평한 사막과 바위산, 두 개의 전장

파리 촬영을 마친 제작진은 2023년 10월, 지중해를 건너 모로코로 향합니다. 북아프리카 전선을 재현하기 위해서였죠. 11월까지 이어진 사막 촬영에서는 성격이 전혀 다른 두 개의 전투가 탄생했습니다.

하나는 1편의 비르하킴 전투입니다.

1942년, 리비아 사막 한가운데서 자유 프랑스군이 독일의 명장 롬멜의 기갑부대를 16일간 버텨낸 전투입니다. 숨을 곳 하나 없는 평원에서 벌어진 방어전이었기에, 촬영지 역시 끝없이 평평한 사막을 골랐습니다.

문제는 그 평평함이었습니다. 지형에 굴곡이 없다 보니 디지털로 더한 전차와 폭발을 자연스럽게 섞기가 오히려 더 까다로웠죠. 그래서 제작진은 가능한 한 현장에서 실제 폭발을 찍어 그대로 살렸습니다.

다른 하나는 2편의 크사르 길란 전투입니다.

르클레르 장군이 이끄는 부대가 사막을 가로질러 진격하는 이 전투는 무대부터 다릅니다. 바위산과 협곡이 이어지는 험준한 지형에서, 더 넓은 화면과 더 많은 폭발, 그리고 50여 대의 전차가 등장합니다.

버티는 1편의 평원, 몰아치는 2편의 협곡. 같은 모로코 사막이지만, 1편과 2편의 전장은 풍경도 긴장감도 다르게 설계됐습니다. 두 편을 이어 본다면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을 겁니다.

 

 

하루 100만 유로짜리 런던, 파리 외곽에 다시 짓다

드골의 이야기에서 런던은 빼놓을 수 없는 무대입니다. 망명한 드골이 저항을 지휘하고, 처칠과 맞서고, 라디오 마이크를 잡은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작진은 런던에 가지 않았습니다.

“런던에서 하루 촬영하는 데 100만 유로가 듭니다.” — 제작자 액셀 부카이

여기에 현대 런던의 흔적을 지우는 시각효과 비용은 별도입니다. 그래서 제작진은 방향을 바꿉니다. 런던으로 가는 대신, 런던을 파리로 가져오기로 한 것이죠.

2024년 2~3월, 파리 외곽 브리쉬르마른 스튜디오에 1940년대 런던이 들어섰습니다.

  • 칼튼 가든스 — 드골이 자유 프랑스를 이끌었던 사무실
  • 다우닝가 — 처칠의 집무실
  • 전쟁상황실 — 전략적 결정이 내려진 방
  • 처칠의 전용열차 —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결정된 공간

디테일에도 공을 들였습니다. BBC 건물의 출입문은 미술팀이 실물로 지었고, 나머지 건물은 VFX로 완성했습니다. 시각효과팀의 한 명은 주말 동안 런던에 가서 참고용 사진을 찍어 왔다고 합니다. 당시 런던 특유의 어둡고 우중충한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였죠.

얼마나 부지런히 옮겨 다녔는지는 다른 장소에서도 드러납니다. 영국군의 막사와 숙소는 노르망디 에코스빌의 옛 비행선 격납고에, 아프리카 카메룬의 강은 파리 북쪽 우아즈 지방에 만들었습니다.

반전은 마지막 장면입니다. 영화의 피날레는 모로코의 테라스가 배경인데요. 정작 이 장면은 모로코가 아닌 브리쉬르마른 스튜디오의 블루스크린 앞에서, 2024년 7월 마지막 촬영으로 완성됐습니다.

 

 

진짜는 진짜에서, 없는 것은 새로 짓는다

개선문은 비웠고, 파리의 표지판은 떼었고, 사막에서는 진짜 폭발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런던은 파리 외곽에 통째로 새로 지었습니다.
파리 동역에서 처음 카메라가 돌아간 2023년 7월부터 브리쉬르마른의 블루스크린 앞에서 마지막 컷을 찍은 2024년 7월까지. 꼬박 1년, 150일에 걸친 여정이었습니다.

실제 장소가 줄 수 있는 것은 실제 장소에서, 갈 수 없는 곳은 만들어서, <드골>이 스크린에 담은 1940년대는 그렇게 완성됐습니다. 참고로 개선문 광장이 왜 ‘샤를 드골 광장’이 됐는지 궁금하다면 해당 아티클을 함께 읽어보세요.

특히 개선문 장면은 극장에서 눈여겨볼 만합니다. 83년 전 학생들이 걸었던 길을, 실제 그 광장에서 다시 걸어 만든 장면이니까요.

<드골: 저항의 시작>은 11월 11일, <드골2: 자유의 시대>는 11월 25일 차례로 개봉합니다.

 

 

자료 및 이미지 제공: ㈜모비데이즈 배급사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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