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좌는 있는데 왕은 없어요?


‘AI 왕좌’는 사실 스쳐가는 자리다. 누군가 앉았다 싶으면 얼마 가지 못해 다음 도전자가 자리를 차지하는 게 AI 시대의 일상이다. 그만큼 AI 모델 경쟁은 생각보다 훨씬 더 치열하다.

얼마 전 Open AI가 GPT-6 Astra를 내놓으며 판을 흔들었다. 컴퓨터 공학 문제, 코딩, 수학+과학 문제 해결 능력이 눈에 띄게 좋아지면서 한동안 다른 모델로 옮겨갔던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 챗GPT로 쏠렸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아스트라는 단순히 “질문에 굉장히 똑똑한 답을 잘 내뱉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웹 브라우저와 컴퓨터를 직접 다루고 코드를 작성하거나 수정도 해가면서 복잡한 업무를 처음부터 끝까지 수행하는 능력이 크게 강화됐다. 수학에서는 최상위권 성능을 보여줬고 과학과 SW 엔지니어링 그리고 사이버보안에서도 상당한 진전을 이뤄냈다는 평이 있다. 장황한 문서나 방대한 코드도 한꺼번에 다룰 수 있도록 100만 토큰이 넘는 콘텍스트까지 지원한다. 이제 생성 AI의 경쟁력이 ‘얼마나 어려운 문제를 푸느냐’에서 ‘얼마나 복잡한 일을 실제로 끝까지 해내느냐’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모델인 셈이다. 아스트라가 흔들었던 AI 경쟁구도 속에 한참 조용한 듯 싶었던 메타(Meta)에서 ‘뮤즈(Muse)’라는 카드 하나를 꺼내 들었다.


메타는 뮤즈라는 AI 에이전트를 단순한 챗봇이 아니라 ‘개인화된 AI 에이전트(Personal AI Agent)’이자 ‘자율형 개인 에이전트(autonomous personal agent)’로 정의하고 있다. 자,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고 해보자.

 

“10월 연휴에 가족과 일본 여행을 가고 싶어”

 

기존 생성 AI도 이 정도 질문에는 제법 훌륭한 답을 내놓는다. 일정을 짜주고 조건에 맞는 항공권과 호텔을 찾아주는 일도 이제 그다지 새롭지 않다. 뮤즈가 한발 더 나아가는 지점은 ‘그다음’이다. 사용자가 연결을 허용한 이메일과 캘린더, SNS는 물론 과거 대화에서 드러난 취향과 습관까지 파악해 계획에 반영한다. 웹 브라우저를 이용해 예약 절차를 진행하는데 실제 결제라던가 개인정보 입력, 이메일 발송처럼 사용자의 판단이 필요한 순간에는 승인을 요청한다. 더 흥미로운 것은 여기서 대화가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가 저장한 숙소 가격이 지금보다 내려가면 알려줘. 항공권도 더 싼 가격이 나오면 다시 알려줘”

 

이렇게 요청하면 사용자가 앱을 닫은 뒤에도 뮤즈는 해당 조건을 계속 추적한다. 가격이 내려가거나 조건에 맞는 항공편이 나타나면 다시 사용자를 불러 다음 행동을 제안한다. 사용자가 매번 AI를 찾아가 질문하는 기존의 방식이 아니라 AI가 저장된 임무를 지속하고 있다가 필요한 순간에 다시 사용자를 찾아오는 셈이다. 중장기 목표라면 계획을 세우고 진행 상황을 추적하면서 다음 단계까지 사용자에게 제안한다고 한다.

인스타그램에 저장해 둔(Saved) 레시피를 훑어 장보기 목록을 만들고 예전에 스치듯 말했던 식단 취향을 기억해 다음 메뉴에 반영하기도 한다. 반복되는 해외 출장 예약이나 매번 검색해야 했던 정보들 그리고 스케줄 관리 같은 귀찮은 일도 점차 AI에게 맡길 수 있게 된다. 뮤즈는 출시 이후 약 13일 만에 250만 건 이상의 다운로드를 기록했다는 것도 이런 기대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생성 AI가 지금까지 나의 ‘생각’을 도와주는 도구였다면 이제 나를 대신해 ‘행동’을 이어가는 방향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의 AI 에이전트, 전혀 문제는 없을까? 인공지능이 나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특히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메일과 캘린더, 기존의 대화 히스토리까지 기억했다가 향후 결과값에 반영한다는 이야기는 내 개인정보를 모두 집어삼키고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사실 히스토리가 없으면 넥스트 스텝도 어려워진다. 개인화가 정교해질수록 인공지능 에이전트에 넘겨주는 권한의 범위 자체가 어느 한계를 넘어서게 된다.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반드시 사용자의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으나 민감한 개인정보를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결국 더 똑똑한 개인비서를 얻기 위해 우리는 더 많이 ‘나’라는 존재를 내어줘야 한다. 의무는 아니라지만 불가피한 선택이 더 많을 수도. 편리함과 개인정보 사이에서 어디까지 문을 열어줄 것인지는 결국 사용자의 몫으로 남는다. 토니 스타크의 자비스 같은 존재라면 모를까. 나도 모르는 사이 나도 몰랐을 정보들을 캐내서 인공지능이 가져간다면 그 또한 소름 돋지 않을까.


지금까지 나온 생성 AI들을 보면 죄다 스마트하고 편리한데 하루가 멀다 하고 ‘better’가 등장하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미국의 어떤 빅테크에서 어떤 에이전트를 내놓았다고 하면 다시 중국에서 가성비 좋은 모델이 나오기도 하고 또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업그레이드된 AI 모델이 등장하는 모양새가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장면을 벌써 몇 차례나 목격했다. 챗GPT가 등장한 후 생성 AI의 새 바람이 일었고 구글의 제미나이가 등장하면서 멀티모달이 주목을 받았다. 클로드의 글쓰기나 코딩 능력을 선호하는 사람도 엄청 늘어났던 것도 사실. 이후 등장한 중국의 딥시크는 굉장히 상징적이었다. 막대한 컴퓨팅 자원을 쏟아붓는 미국의 개발 경쟁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성능과 비용 효율을 내세워 AI 경쟁 시장을 깜짝 놀라게 했다. 문샷 AI의 키미(Kimi)나 즈푸 AI(Zhipu)의 GLM 등 중국 빅테크도 아주 열일하고 있는 중이다.


‘미국의 모델보다 스마트한가’라는 의구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비슷한 미션을 수행하는 데 있어 훨씬 더 저렴하게 가능한가의 문제.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매월 지불하는 구독료의 차이는 사실상 크지 않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에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빅테크의 입장에서 보면 전혀 다른 차원이란 말이다. 미국 빅테크에게는 중국의 가성비 AI가 어쩌면 압박이 될 수 있겠다. 중국의 AI 모델을 보면 낮은 가격 경쟁 자체가 수익성에 좋지 않고 데이터 보안이나 규제 우려가 늘 따라붙는 건 중국의 약점으로 꼽힐 수 있다. 이처럼 AI 왕좌는 어딘가에 존재할지 몰라도 개념은 계속해서 달라지는 것 같다. 단순히 벤치마크 점수 하나만으로 우열을 가리기 어려워졌다. 우리는 여전히 그 특성에 맞게 인공지능을 쓰는 것 같은데 여기에 뮤즈라는 에이전트가 하나 늘어난 꼴이랄까. AI 경쟁의 축을 불과 손에 꼽을 만큼이었는데 이제는 여러 개로 늘어난 것 같다. 말 그대로 왕좌는 있는데 왕은 없다는 것.


국내 시장은 어떨까. 국가 차원에서는 우리가 주도하는 독자 모델을 확보하겠다는 프로젝트의 취지로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었다. GPU와 데이터, 인재를 집중 지원하면서 ‘소버린 AI’의 기반을 만들어보겠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중이다. ‘한국판 챗GPT’를 만들어보자라는 느낌의 목표는 이미 어느 정도 지나간 셈인 것 같다. 미국과 중국 기업들이 천문학적인 자본과 GPU를 쏟아붓는 상황에서 한국 기업이 모델의 크기나 글로벌 벤치마크 숫자만으로 정면승부 하기에는 다소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한국어를 가장 정확하게 이해하는 AI, 국내 법과 제도를 제대로 아는 AI, 한국의 금융+의료+공공서비스에 실제로 들어가 일을 할 수 있는 AI라면 어떨까. 한국에서 생산되는 뉴스와 출판물, 행정문서, 산업 데이터처럼 해외 빅테크가 쉽게 확보하기 어려운 고품질 데이터 역시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스마트한 AI를 만드는 경쟁이라면 미국과 중국의 자본력에 밀릴 순 있다. 그게 또 중요한 문제도 아니다. 사실 왕좌에 앉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한국에서만 가능한 데이터와 서비스 경험을 AI와 얼마나 잘 결합했느냐의 문제. 말하자면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이 실제 업무에 활용하는 데 있어 한국어 콘텐츠를 제대로 이해하면서 국내 유저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는 AI라면 경쟁의 판이 조금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가장 스마트한 것보다 가장 쓸모 있는 AI로.

 

 

AI 왕좌의 게임 generating by chat GPT

 

 


해당 콘텐츠는 Pen잡은 루이스님과 모비인사이드의 파트너쉽으로 제공되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