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 앱과 구독 화면에 숨은 네 가지 장치
| 2025년 2월 14일부터 개정 전자상거래법이 시행되면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정한 다크패턴 여섯 가지 유형이 규제 대상이 됐습니다. 숨은 갱신, 순차 공개 가격, 특정 옵션 사전 선택, 잘못된 계층 구조, 취소나 탈퇴 방해, 반복 간섭이에요. 이름은 어렵지만 대부분 한 번쯤 겪어본 화면입니다. |
이 목록을 보다가 디자인 회의에서 자주 듣던 말이 떠올랐어요. 요금제 세 개 중 가운데에 추천 배지를 달면 그게 제일 잘 팔린다는 말입니다. 틀린 말이 아니에요. 사람은 생각보다 계산하지 않습니다. 기분으로 먼저 고르고, 이유는 나중에 붙이죠. 오늘은 화면 뒤에서 그 기분을 만드는 장치 네 가지를 디자이너 쪽에서 풀어볼게요. 알고 나면 내일 장바구니가 조금 다르게 보일 거예요.
가운데 요금제가 잘 팔리는 이유
구독 서비스 요금제 화면을 떠올려 보세요. 베이직 월 5,900원, 스탠다드 월 9,900원, 프리미엄 월 19,900원. 세 개가 나란히 있으면 많은 사람이 가운데를 고릅니다.

여기엔 두 가지 효과가 겹쳐 있어요. 하나는 앵커링 효과입니다. 처음 본 숫자가 닻처럼 기준이 돼서, 19,900원을 먼저 보면 9,900원이 싸게 느껴져요. 다른 하나는 미끼 효과(디코이 효과)예요. 프리미엄은 많이 팔려고 둔 칸이 아니라, 스탠다드를 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이게 하려고 둔 칸인 경우가 많습니다. 쇼핑 앱의 취소선 가격도 같은 원리예요. 39,000원에 줄을 긋고 옆에 19,900원을 쓰면, 우리는 19,900원이라는 가격보다 19,100원을 아꼈다는 기분을 먼저 삽니다.
잃는 게 얻는 것보다 더 아프다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는 사람이 같은 크기의 이득보다 손실을 두 배쯤 크게 느낀다는 걸 보여줬어요. 손실 회피라고 부릅니다. 3,000원을 받는 기쁨보다 3,000원을 잃는 아쉬움이 더 크다는 뜻이에요.

화면에서는 이렇게 보여요. 장바구니에 담아둔 쿠폰이 오늘 자정에 사라진다는 안내, 구독을 해지하려고 하면 지금까지 모은 혜택이 사라진다는 팝업. 3,000원 할인받기보다 3,000원 쿠폰 놓치지 마세요라는 문장이 손을 더 빨리 움직이게 만들죠. 그래서 해지 화면이 유독 길고 단계가 많은 서비스가 있습니다. 이번 법 개정에서 취소나 탈퇴 방해가 규제 유형에 들어간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미리 체크된 칸은 힘이 세다
사람은 기본값을 잘 바꾸지 않습니다. 2003년 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린 에릭 존슨과 대니얼 골드스타인의 연구가 자주 인용돼요. 장기기증 동의를 직접 체크해야 하는 독일은 동의율이 12% 안팎이었고, 기본값이 동의인 이웃 나라 오스트리아는 99%를 넘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달랐다기보다 처음 놓인 칸이 달랐던 거예요.

결제 화면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요. 선물 포장 2,000원, 상품 보험 1,500원 같은 옵션이 미리 체크된 채로 맨 아래에 놓여 있으면, 대부분 그대로 결제 버튼을 누릅니다. 이번 규제에서 특정 옵션 사전 선택이 따로 이름을 얻은 것도 이 때문이에요.
기분을 이용하는 화면과 돕는 화면 사이
같은 장치도 쓰는 방향에 따라 달라요. 자주 쓰는 배송지를 기본값으로 두는 건 사용자를 돕는 일이고, 남은 재고 3개라는 안내도 사실이라면 유용한 정보입니다. 차이는 하나예요. 나중에 사용자가 그 장치를 알아챘을 때 고마운지, 속은 기분이 드는지. 디자이너로 일할 때 저는 이 질문을 기준으로 삼았어요. 이 화면을 쓰는 사람에게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그대로 설명할 수 있는가. 설명하기 머쓱한 화면이라면 대개 기분을 이용하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읽는 분들이 내일부터 바로 해볼 수 있는 세 가지를 남길게요.
- 요금제 화면에서 가장 비싼 칸을 손가락으로 가리고 나머지 두 개만 비교해 보세요. 미끼 칸이 사라지면 가운데가 내게 맞는지 다시 보입니다.
- 결제 버튼을 누르기 전에 화면을 맨 아래까지 내려 미리 체크된 칸을 찾아보세요. 포장, 보험, 정기 구독 전환 같은 옵션이 기본으로 켜져 있는 경우가 있어요.
- 곧 끝난다는 타이머나 쿠폰이 보이면 하루만 장바구니에 두세요. 다음 날 같은 혜택이 다시 뜬다면, 그 타이머는 기분을 위한 장치였던 거예요.
사람은 기분으로 고릅니다. 그걸 아는 사람이 그 기분을 어디에 쓰느냐가 좋은 화면과 나쁜 화면을 가른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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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기분으로 고른다, 화면 뒤의 심리 효과’ (끝)
우디 (우디디자인랩)님의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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