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블록버스터가 아님에도 크게 흥행한 영화가 있다. 로버트 드 니로, 앤 헤서웨이 주연의 ‘인턴’. 70세의 벤 휘태커가 30대인 줄스가 만든 스타트업 ‘어바웃더핏’에 인턴으로 입사한 뒤 벌어지는 스토리다.

지난 11월 11일 서울 강남구 디캠프에서 만난 임석영 와이퍼 최고전략책임자(CSO, 사진)는 올해로 46세다. 벤 휘태커에 비하면 24살이나 어리지만, 스타트업에서 찾기 힘든 고 연령대임은 분명하다. 임석영 CSO는 1995년 가구회사 한샘의 홍보팀에서 첫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임석영 CSO가 한샘에서 배운것은 홍보/마케팅부서에서 고객과 다양한 매체를 통해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기획하고 실행 하는 것이었다. 1997년, 인터넷이 본격 국내에 보급되면서 새로운 고객 커뮤니케이션 채널인 홈페이지에 관심을 갖다가 1999년 아예 인터넷 업계로 이직했다.

그는 포스코ICT에서 e-Biz 기획업무를 맡은 뒤 인터넷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에는 이용자 인터페이스(UI)가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2002년 전문 UX/UI 컨설팅 업체인 팀인터페이스로 이직을 한 뒤, 국내 IT 대기업의 굵직한 UX/UI 프로젝트를 경험했다. 자연스럽게 UX/UI 전문가로 변신한 그는 “인터넷과 UX 라는 것이 나에게 주는 가치가 상당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와 UX의 인연은 엔씨소프트를 만나 꽃을 피웠다.

플레이엔씨의 플래시게임존을 맡아 운영하면서, 게임과 게임을 연결하는 플래시 게임기반 커뮤니티 제작 총괄을 맡았다. 김택진 대표 역시 대형 MMORPG뿐만 아니라 게임과 게임을 이어주는 크로스 커뮤니티와 미니게임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SNS 개념을 탑재한 크로스 커뮤니티 게임 프로젝트를 맡게 된 것이다.

플레이엔씨 2007년 당시 로고
플레이엔씨 2007년 당시 로고

“제가 엔씨소프트에서 한 일은 지금의 선데이토즈의 애니팡 같은 캐주얼 게임을 웹 게임 형태로 제공하면서, 만약 리니지를 플레이 하는 유저가 자연스럽게 웹 기반의 월드로 넘어가 다른 게임을 하도록 유도를 하는 컨셉이었죠. 게임과 게임을 SNS와 같은 형태로 연결하는 가상 공간을 만든 셈입니다.”

임 CSO는 이때부터 SNS의 가치를 배우게 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거대 게임을 만드는 조직에서 여러 가지 이슈로 이러한 형태의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의 한계에 부딪히게 되면서 결국, 그는 회사를 나와 SNS 플랫폼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시대를 잘못 타고난 대작 ‘마이후’가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SNS에 대해 계속 고민했습니다. 당시엔 아이폰이 미국을 휩쓸고 있었고, 트위터와 마이스페이스와 같은 서비스가 열풍이었죠. 페이스북도 조금씩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든 서비스의 친구들을 나를 중심으로 묶어 바둑판 화면에 친밀도별로 거리감과 색깔의 차이를 주는 그림을 떠올렸습니다. 그게 2009년 8월 퇴근 길에 머리속에서 떠올린 그림이었죠.”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임 CSO는 자신이 직접 사업을 할 생각까진 없었다. 인터넷 산업에서 UX전문가로써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와이프가 먼저 움직였다. 임 CSO의 아이디어를 들은 와이프가 5000만 원을 투자할 테니 사업을 해보라고 선뜻 허락했다.

마이후
마이후

결심까진 오래 걸렸지만, 이후에는 빠른 속도로 서비스의 모양이 갖춰졌다. 서비스의 프로토타입이 나오니 투자도 몰렸다. 순식간에 10억 원 이상이 모였다. 임 CSO는 욕심이 더 생겼다. 아직 한국엔 스마트폰이 대중화 되지 않은 상황이었고 페이스북 조차도 시작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환경이 갖추어진 실리콘밸리에서 먼저 도전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 결심이 훗날 독이 될 줄은 당시엔 그 누구도 몰랐다.

실리콘밸리 코트라 사무실에 입주한 뒤 미국의 여러 벤처투자자를 만났는데, 돌아오는 첫 질문이 그를 당황케 했다. “서비스는 괜찮은데…당신 미국에서 살아봤나요? 미국에서 대학은 나왔나요? 그동안 뭐 하고 살았습니까?”라는 날카로운 질문이 들어올 뿐, 투자로 이어지지 못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미국의 투자자들은 토종 한국인 출신인 그를 신뢰하지 않았다. 초기 유저를 모으는 것조차 불가능할 것이라고 단정했다. 시간이 흐르고 투자 받은 10억 원도 바닥이 보였다. 결국 6개월만에 철수를 했다.

“당시 싸이더스를 운영하는 IHQ의 정훈탁 대표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LA에서 보자고 하더군요. 그가 대뜸 말하기를 ‘오디션 프로그램을 기획중인데, 오디션 참여 가수와 팬들을 마이후의 로직으로 묶으면 좋을 것 같다’고 제안을 했죠. 그렇게 마이후는 JTBC의 개국방송으로 데뷔를 합니다. 지금의 JTBC가 아닌 게 문제였죠. 시청률 0.3%, 가입자 5만 명이라는 초라한 결과만을 얻고 결국 실패로 끝났습니다.”

돈은 떨어져가고, 회사는 살려야 하니 자연히 외주개발(SI)를 통해 버티고 있던 중 사물인터넷이라는 새로운 트랜드에 다시 도전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때마침 리니어블 문석민 대표로부터 비콘과 GPS기술을 이용한 미아방지 스마트 팔찌 ‘리니어블’에 대한 아이디어를 듣고 합류했다.

“제가 막내 아들을 대형마트에서 몇 번 잃어버린 경험이 있었습니다. 사물인터넷이 아직 초기 이지만 간단한 기술로 대중이 쉽게 이해하고 접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니즈를 공략해 서비스로 잘 구성 하면 초기 시장에서 먹힐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리니어블 팔찌에 대한 반응 역시 뜨거웠다. 시제품조차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인디고고에서 4만 달러, 와디즈에서 2만 달러의 투자액을 모았다. 2014년 11월엔 본엔젤스 장병규 대표로부터 투자도 받았다.

BLE(저전력블루투스)와 GPS로 미아를 방지하는 리니어블 팔찌
BLE(저전력블루투스)와 GPS로 미아를 방지하는 리니어블 팔찌

부모와 아이를 연결하는 리니어블을 거쳐 이제 임 CSO는 또 다른 연결에 도전을 하게 된다. 바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기회는 우연처럼 찾아왔다. 5년 전 마이후를 운영하던 임석영 CSO는 당시 LG유플러스에서 와글이라는 SNS를 운영하던 문현구 팀장(현 팀와이퍼 대표)와 끈끈한 인연을 이어 오면서 서로 ‘한 사람이 대박이 나면 서로 끌어주자’라고 농담처럼 했던 이야기가 실제 인연으로 이어진것이다.

문현구 대표는 와이퍼라는 배달 손세차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세차 서비스를 모바일로 연결하는 형태다. 손세차장으로 차량을 직접 픽업&딜리버리해 신뢰를 구축한다면 자동차 애프터마켓관점의 새로운 O2O(Online to Offline) 플랫폼이 될 수 있다는 것.

임 CSO는 다시 마음이 움직였고, 올해 4월부터 사무실도 없는 상태에서 리모트 근무 형태로 협업을 시작했다. 6월에 디캠프 4층에서 본격적인 기획을 했고, 월말에 열린 D.Day 피칭을 성공적으로 한 뒤 7월에 디캠프로부터 5000만 원의 투자를 받고 정식 입주도 했다.

처음부터 거창하게 다양한 기능이 담긴 앱을 만들지는 않았다. 철저히 린스타트업(Lean Startup) 방법론에 따라 웹사이트를 만들고 영업을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 서비스보다 중요한 것은 오프라인 플랫폼이었다. 문현구 대표가 가장 강조한 지점도 여기에 있었다.

와이퍼 메인화면
와이퍼 메인화면

“와이퍼에서 가장 중요한 서비스는 오프라인 정비센터, 세차장의 연결입니다. 그래서 오프라인 플랫폼이 중요했죠. 하지만 저와 문현구 대표는 IT쟁이입니다. 현장 경험이 없었습니다. 배달손세차 정비소 세 곳을 운영하고 있는 이승윤 사장을 만난 것이 행운이었죠. 이 사장이 와이퍼의 최고운영책임자(COO)로 합류하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 COO는 이미 어느 정도 안정적인 사업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본 업무인 탁송(딜리버리) 업무를 아직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겸손함을 보고, 손을 잡게 됐죠.”

정성을 다했더니 시장에서 반응이 왔다. 와이퍼는 일일 20~25건의 주문이 들어온다. 더 재미있는 것은 강남 지역에 협소한 주차장을 대체할 수 있는 서비스로 와이퍼가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강남의 모 미용실은 와이퍼와 제휴를 해 방문 고객에게 1~2시간 단위의 짧은 주차와 세차 서비스를 패키지로 제공을 했더니 만족도가 높아졌다는 피드백도 돌아왔다.

“현재 와이퍼에서 탁송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은 총 4명이고 100% 정직원입니다. 확실한 서비스를 위해서 직접 고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재 12명의 카매니저를 추가로 채용 하고 있으며 월급여 300만원까지 육성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습니다.”

서울 서초, 강남의 와이퍼 제휴 세차장 위치

웹사이트 트래픽은 매주 20~50% 급성장하고 있으며, 이번주 목요일에는 안드로이드 앱도 정식으로 출시될 예정이다. 또한, 3억 원 규모의 얼리스테이지 투자도 마무리되고 있는 상황이다. 와이퍼는 현재 서울 강남, 서초 13곳의 정비소, 세차장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2016년에는 송파, 분당, 판교, 안양까지 진출할 계획이다.

와이퍼는 단순히 세차만을 위한 서비스가 아니다. 세차는 콘텐츠 중 하나일 뿐. 자동차를 탁송하는 오프라인의 직원들을 기반으로 거대한 물류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와이퍼의 비전이다. 여기에는 임석영 CSO의 지난 20년에 걸친 연륜이 담겨 있다.

그는 홍보 업무를 통해 이용자에게 콘텐츠를 전달하는 법을 배웠다. 인터넷 시대가 시작된 뒤에는 네모난 컴퓨터 화면에서 이용자를 끌어당기는 UI를 구현했다. 이것이 사이버세계를 오가다가 사람과 사람을 SNS적으로 연결했다. 온라인에 머물던 서비스는 오프라인으로 튀어나왔다. 아이의 스마트 팔찌와 엄마의 스마트폰으로 연결을 하더니, 이제는 차를 가진 모든 사람을 연결하는 플랫폼을 구상하기에 이르렀다.

모든 산전풍파를 다 겪은 뒤에 와이퍼라는 작품이 나왔다. 임석영 CSO는 단순히 돈을 벌기보다는 더 많은 동료, 후배들에게 자신이 겪었던 시행착오를 알려주며, 그들이 좀 더 좋은 서비스를 만들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했다. 46세의 벤 휘태커를 고용하고 있는 와이퍼가 부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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