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R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이미지: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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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포터의 ‘Porter’s five forces analysis’까지 나가지 않아도 수요-공급이라는 경제학의 기본 원칙상 공급이 시장에 확대될수록 컨텐츠를 공급하는 조직보다 컨텐츠를 선별하여 유통하는 조직의 힘이 시장에서 강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도 소비재 분야에서 공급이 과포화 상태인 컨텐츠가 많습니다. 수요가 많고 비교적 안정적인 아이템 안에서도 차별화 전략으로 시장을 세분화하려고 하지만 그래도 기본 전제인 공급이 수요보다 많다는 환경은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유통자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해져 버렸습니다. 물론 컨텐츠를 만드는 사람이 유통까지 하는 일도 있지만, 기업이 컨텐츠 제작과 유통에 대한 이해를 동시에 가지기는 쉬운 일이 아니며 시장 세분화 전략에서 약점을 드러낼 확률이 크기에 왠만한 자본의 힘이 아니라면 쉽게 도전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작은 유통망 정도는 가능하죠.

유통자의 영향력이 컨텐츠 제작자보다 강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상품이든 정보든 점점 강해지고 있는 유통자들이 고객과 컨텐츠 제작자 사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온오프라인 제품에 대해서는 ‘편집샵’의 전성시대를 지나고 있습니다. 고객은 빠른 시간에 세분화된 시장의 깊이 있는 보증된 퀄리티를 접할 수 있고, 공급자는 새로운 채널을 개척할 수 있고 안정적인 사업 확장이 가능하기에 서로의 이해가 맞아 증가하고 있습니다. 사실 컨텐츠 제작과 유통을 한번에 하는 SPA식 전략과 비등하게 펼쳐질 시장의 한 축이기도 합니다.

제품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정보의 유통도 유통자의 영향력이 더 커지고 있습니다. SNS 스타들은 이전에는 파워 블로거로 지금은 인스타그램 스타 등으로 나름의 ‘편집샵’으로 뚜렷한 정체성을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최근 기업 마케팅의 핵심은 이들을 붙잡고 이들이 순수하게 정보를 흘려주는 모양으로 제품과 서비스가 알려지는 것입니다. 같은 SNS 컨텐츠라고 해도 누가 이것을 골라서 공유하느냐에 따라 정보의 도달 범위는 판이하게 달라집니다. (물론 제 글도 극단적인 영향을 받습니다;;;)

직접 유통까지 하는 컨텐츠 제작자가 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컨텐츠 제작자가 유통에 드는 비용이 제품과 서비스, 정보 등에 대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비싼 수수료부터(유통 채널 자체가 가격전략이라면 더욱 가중될) 고정적인 비용, 정보 공급의 전속화 등에 드는 비용은 제품과 서비스를 이루는 원가 구조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컨텐츠 제작하는 기업이 직접 유통에 뛰어드는 일이 전 산업 영역에 걸쳐 발생하고 있습니다. 연구-생산-유통-판매 등의 일련의 과정을 모두 해버리는 거죠. 컨텐츠 자체가 뚜렷한 차별성을 이루고 명확한 고객 가치 정의가 시장에서 포지셔닝 되었다면 이것은 좋은 전략입니다.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브랜딩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시키는 게 상대적으로 더 안정적일 수 있습니다.

컨텐츠 제작의 본질을 잃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본질을 잃는 경우도 있습니다. 컨텐츠를 제작하다가 유통을 함께 하면서 기존에 컨텐츠를 만들면서 남아있던 기업의 창의적이고 브랜딩을 먼저 생각하는 문화가 점차 단기 실적에 의해 희석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당장 ‘잘 팔리는 것’만 쫓아 박수쳐주면 브랜딩이 흔들리는 쪽으로 컨텐츠의 방향이 진행될 수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국내 의류 산업은 상당히 다양한 캐주얼 스펙트럼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 부분이 디자인 차별화가 직관적인 부분이라 다룹니다) 다양한 브랜드가 ‘그것’을 이야기 할 수 있을 정도의 대표적인 문양, 아이템, 이미지가 고객에게 있었습니다. 하지만 SPA와 저가 보세 의류의 등장으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자 방향을 브랜딩이 아닌 가격으로 잡았습니다. 디자인은 고유한 것보다 시장에서 잘 팔리는 것으로 만들고 가격을 낮추는 무한 경쟁에 돌입했습니다. 지금 백화점을 가보면 사실 여기나 거기나 브랜드 디자인이 그렇게 다르지 않은 브랜드가 많습니다. 이미 없어진 브랜드도 많습니다. 그 사이 글로벌의 뚜렷한 이미지 차이를 갖고 있는 해외 브랜드들이 몇 년전 국내 브랜드가 차지하고 있는 영역에서 요즘 아이템으로 대체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브랜드는 SPA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이지만 꾸준히 찾는 고객이 있는 게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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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성과가 브랜드 자신을 잃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 사이 브랜드만의 독특한 아우라를 잃어버린 기업은 저가에 할인까지 과감하게 하고, 쌓이는 재고를 팔기 위한 지표로 개인과 조직의 성과를 측정하니 안 좋은 수익구조가 자본 회전율에 의해 높은 수준의 이익 감소의 굴레를 돌고 있습니다. 내부 문화는 ‘지금 잘 팔리는 것’을 쫒고 있고, 아이러니하게 디자인 기반의 기업에서 디자인을 이야기하면 ‘무슨 이야기를 하는거냐’는 소리를 듣기 딱 좋게 되었습니다. 이런 컨텐츠가 만약 디자인처럼 미적 기준이 중요하거나 분명한 기술적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닌 마트에서 파는 생수나 티슈라면 코스트코에서 하는 PB 브랜드 같이 많이 팔기만하자고 해도 큰 문제는 안될지도 모릅니다. (PB도 한 두가지의 셀링 포인트는 있어야 하지만) 그러나 기본적으로 이 서비스와 컨텐츠를 쓰는 고객의 선택 기준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달라졌다고 왜곡하지 않는다면) 컨텐츠 기업 본연의 성격과 맞지 않는 지표와 방법은 항상 차선일 것입니다. ‘장기적인 성공은 신경쓸 시간이 없다’라고 말한다면 우리가 기술적 주식투자를 하는 트레이더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결국 브랜드 자체의 힘에서 재기할 수 있습니다

마블과 디즈니가 모두 2000년대 초반의 어려운 경영환경에서 돌아설 수 있었던 힘은 지극히 당연하게 그들이 그동안 만들어 놓은 캐릭터 자체에 있었습니다. 레고도 레고 자체를 다양한 시리즈를 만드는 등 신선하게 만들면서 다시 재기할 수 있었습니다. 편집샵이나 유통점도 자기만의 색깔이 있죠. 적어도 가격이라도요. 단순이 돈이 되는 것을 절체절명의 상황이라고 선택한다면 컨텐츠 기업의 앞날은 더 악화일로가 될 확률이 큽니다. 당장 라이센스 비중을 늘려서 아무 아이템이나 만들어져서 컨텐츠의 공급량을 늘려 가치를 잃는다든지 맞지 않는 디자인이 단순히 요즘 유행이라고 섞어서 만든다면 아무리 싼 것을 만드는 브랜드라도 파상적인 대량 생산의 기업의 규모의 경제를 이기기 어렵습니다.

물론 아주 낮은 구조의 판관비율을 만들어 놓고 다소 높은 원가를 지불하면서 버티거나 경쟁사가 찾지 못한 빈틈의 고객을 통해 생존할 수도 있습니다. 브랜드 장사면 브랜드답게 장사해야 합니다. 만약 유통을 함께 하는 것이라면 두 분야의 경영 철학은 분리되어야 하고 사업간의 시너지만 대등한 기업간의 거래처럼 찾는 것이 더 좋을 수 있습니다. 비지니스는 발산의 구조를 통해 서로를 성장시켜야지 수렴의 형태로 서로의 발목을 잡아서는 작은 구조 안에서 서로 갇힐 수 밖에 없습니다. 내부 갈등을 정리하느라 시간을 다 써버리죠. 브랜드가 브랜드로서의 철학을 잃지 않는 기업 문화가 유지될 수 있도록 경영진은 지금 사라져가는 좋은 문화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나’ 다움은 뭘까요

스타벅스는 커피 원두를 공급하다가 에스프레소 바를 만들고 베이커리부터 텀블러, 컵, 인스턴트 커피까지 영역을 넓히면서 고비를 하나씩 넘어갔습니다. 요즘은 모바일을 활용한 CRM에서도 소비재 분야에서 가장 앞서가는 기업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런 변화의 확산 가운데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스타벅스스러움’이죠. 굳이 고객의 이름을 매장에서 하나하나 불러주는 번거로움부터 커피의 일정한 맛과 베이커리의 수준, 편의성 있으면서도 특유의 분위기가 유지되는 인테리어 등 수십년간 변화 안에서 소폭 바뀐 것은 있지만 바뀌지 않은 이런 ‘핵심 경험’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 국내 커피 프랜차이즈는 흥망성쇠를 옆에서 경험했습니다. 그냥 사람들이 이거 사는 것 같으니까 이것도 갖추고, 매장도 빠르게 늘려야 하니까 여기저기 아무나 돈 있으면 만들고, 그러면서 처음에 좋았던 고객 경험의 퀄리티도 점점 희석될 수 밖에 없습니다.

컨텐츠가 좀 독특하다면 그것만으로 얼마 간은 더 버틸 겁니다. 그러나 거기도 곧 경쟁자가 생기겠죠. 컨텐츠를 만들고 고객에게 경험을 제공하는 브랜드는 돈이 된다고 자신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아니면 김밥천국처럼 매우 분명한 포지션을 갖추든지요. 음식이라는 특수 상황일 수 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