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1.
직장인 뒷담화(?) 앱 블라인드.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 당시 땅콩회항 사건’의 본산으로 알려지며 후끈한 인기를 자랑할 때 블라인드에 가입신청을 했어요.(취재를 위해!) 종종 기자 라운지에 들어가곤 합니다. 글이 자주 올라오는 것은 아니지만 블라인드 기자 라운지에도 험난한 기자직종에 대한 한탄이 종종 올라옵니다. 기레기로 불리는 현 시국에 대한 자조와 잊을만하면 불거지는 폭력사태. 이런 생각을 합니다.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구나’

장면2.
최근 스타트업 대표를 인터뷰했습니다. C2C 전자상거래 플랫폼인 헬로마켓의 이후국 대표입니다. 다양한 사업적 실험이 인상깊었지만, 특히 제 눈을 사로잡은 것은 복지제도였습니다. 휴가가 무제한입니다. 처음에는 ‘에이, 어떻게 휴가를 무제한으로 가냐…무슨 제로레이팅이냐?’라고 넘겼지만, 실제 현장에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직원들이 진짜 무제한 휴가를 가서 아프리카 오지여행을 한 반년간 하고 오더군요. 어떻게 회사가 굴러가지? 이후국 대표한테 물으니 의외의 답이 돌아옵니다. “무제한 휴가는 복지제도가 아니다. 그냥 다들 성인이고 자신의 일에 책임질 수 있지 않나. 기업은 최대의 생산성을 보장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며, 무제한 휴가는 복지가 아닌 자신의 일에 대한 책임이 전제된 일상의 업무 중 하나다”

1배달의민족 주 35시간 업무 실험

배달의민족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최근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월간 전사발표에서 오는 3월부터 주 35시간 근무제, 우아한 육아휴직, 장기근속자 특별 휴가를 추가로 도입한다고 밝혔어요. 무슨 보도자료가 온 것이 아니라 자체적인 발표로 보입니다.

이미 월요일 오후 출근과 1시간 반의 점심시간을 보장하는 주 4.5일 근무제를 실시하는 상황에서 우아한형제들은 ‘더 쉬어라’고 말하는 분위기입니다.

회사가 어떻게 굴러가지?

저희 팀 기자가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류진 우아한 형제들 홍보실장은 “기존 주 4.5일제 시행중이던 2016년에도 전년 대비 2배에 가까운 매출 성장과 사상 첫 흑자전환에 성공하는 등 잘 성장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나아가 “이번에 한 단계 더 파격적인 복지 확대 이후에도 구성원들이 일과 삶 균형을 추구하는 한편 업무 효율성과 생산성은 더 높여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업이 되고자 하는 것이 대표는 물론 임직원들이 두루 가지고 있는 마음가짐”이라고 강조했다고 하네요.

무릎을 쳤습니다. 그러니까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은” 상황에서 복지에 대해 “자신의 일에 대한 책임이 전제된 일상의 업무”라는 접근을 한 것이군요.

맞아요. 어차피 기업은 직원의 생산성을 뽑아내야 합니다. 사회 초년병 시절 제가 속해있던 팀의 팀장은 눈부신 명언을 남긴 바 있습니다. “난 너를 조리돌려 최대한의 생산력을 뽑아내는 것이 업무지”

추운 겨울, 당시 하루 평균 3시간 자며 다크서클을 질질 흘리면서 취재원 집 앞에서 상사병 걸린 몽룡이처럼 발을 동동 구르는 절 위로한답시고 찾아와 남긴 멘트치고는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퇴근을….

물론 따지고 보면 맞는 말입니다. 다만 대부분의 기업은 직원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인지 야근과 야근, 그리고 야근으로 이를 증명받으려 합니다. (블라인드에 올라온 한탄입니다.) 그런데 헬로마켓과 우아한 형제들은 생각이 다르네요. 이들도 “조리돌림”을 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채찍이 아닌 당근으로. “일을 해라! 집에 가지 말고 일을 해서 회사에 도움이 되라!”와 “일을 해라! 집에 가서 쉬면서 가족과 시간도 보내고 삶의 즐거움을 찾으면서 밝은 마음으로 일을 해서 회사에 도움이 되라!”의 차이죠.

여기에 몇가지 상상을 더하자면 복리후생에 따른 인력의 이탈을 막고, 기업의 브랜딩도 노렸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추측도 가능합니다.

11쓸데없는 추억

우아한 형제들의 실험소식이 알려지자 일각에서는 이런 말도 합니다. “보여주기 아니냐?”는 말. 여기에는 불신이 깔려있습니다. “진짜 직원들이 퇴근하나?”부터 “효과가 있겠나”라는 질문이죠.

충분히 던질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답은 홍보팀에 물어도 얻을 수 없어요. 우아한형제들의 직원으로 가장해 미친척 언더커버 취재를 시도하거나, 직원 몇몇을 은밀히 수배해 대놓고 물어보지 않으면 진실을 알 수 없죠.

여기서 제 이야기를 하려고합니다. 지난해 저는 배달의민족 기사를 통해 서로 껄끄러운 인연으로 우아한형제들과 만났어요. 제보를 받았고, 수수료 및 직원 복지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당장 “화려한 김봉진 대표의 이면에는 어두운(?) 갑질의 이면이 있다”라는 확신이 섰습니다. 그런데 웃긴 것은, 막상 기사를 쓰고 난 후 제가 엄청난 욕을 먹었다는 겁니다. 사실 모두의 찬사를 받는 배달의민족을 비난하는 것에 지레 겁을 먹었는지 기사가 약간 산으로 가기도 했고…덕분에 뭔가 주제가 좀 이상해지긴 했지요.

물론 기사가 나간 후 김봉진 대표가 동요하는 직원들을 다독이기 위해 전체 메일을 썼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제 기사에 약간의 확신을 가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뭐 그랬습니다…

여튼 그렇게 기사가 나가고 전 욕을 먹었으며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 취재를 실시한 후기 비슷한 글을 적었습니다. 화려함의 이면에 대한 제 불확실한 추정의 찌꺼기였습니다. 화려한 대표와 멋진 스타트업의 이면에 보이는 뭔가 걸리는 것들.

재미있는 것은 여기에 나옵니다. 기사가 나간 후에는 별다른 접점이 없었는데, 브런치 글이 소개된 후 배달의민족 사람들과 만나게 되었죠. (기사가 아니라, 브런치로) 여튼 그 인연으로 만났는데, 그 쪽 관계자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화려함의 이면과 관련된 의혹, 그 오해를 풀고 싶다”

기사로 지적했던 수수료 및 갑질 이슈보다, 브런치에 적은 화려함에 대한 이면에 더 아파하다니 상당히 억울해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실제 사옥에 가기도 하고 배달의민족을 더 자세히 알게되었다는 정도.11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이제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겠습니다. 주 35시간? 화려하죠. 그리고 부럽죠. 문제는 이게 진짜냐는 것. 그러니까 진심으로 뭔가 문화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냐?’

전 그렇다고 담담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배달의민족이 좋아서? 친해서? 좋아한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태에서 그저 그렇고, 무엇보다 친하지도 않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가?

아이러니하지만 배달의민족이 보여주는 강렬한 성공에 대한 의지 때문입니다.

제가 구사옥에 방문했을 때 만났던 웃긴 멘트들 그리고 어울리지 않는 사무실의 숙연함을 이야기할게요. 사옥 곳곳에는 재미있는 글귀들이 많이 붙어있는데 직원들은 마치 독서실에 있는 것처럼 일하더라고요. 저와 함께했던 홍보팀은 “우리는 자유롭게 일하고 막 야외벤치에서 놀아요”라고 말하는데. 진짜 노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홍보팀은 웃기고 활기찬 사무실 분위기를 말하는데, 현장에서 제가 본 느낌은 “엄청 열심히 일한다”였습니다.

물론 누가 시켜서, 그럴 수 있겠죠. 아니면 외부인이 방문했으니까 그럴수도 있죠. 그런데 저는 당시 홍보팀 안내에 따라 움직였지만 동선 자체를 마구잡이로 했습니다. 다소 시끌벅적한 디자인실(?)에서도 정신나간 사람처럼 일하는 직원들. 진짜 느낌이 이상했습니다.

네, 저는 이걸 ‘성공에 대한 의지가 충만하다’로 생각합니다. 저는 김봉진 대표가 보살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는 누구보다 성공하고 싶어하며, 문화를 바꾸고 싶어하는 야망에 불타는 사람입니다. 만약 그 야망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이 야근으로 조리돌림하는 것이다? 감히 상상하건데 김봉진 대표는 회사를 야근의 용광로로 만들었을 것 같습니다.

결국 생각이 다른겁니다. 성공에 대한 의지가 강하고, 그 방법을 고민하면서 ‘확실한 사내복지’가 ‘야근’보다 강력하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낸 것이라 생각해요.

뭐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이니까 100% 믿어달라고 말은 못하겠습니다.

다만 여기서 삼성 생각이 나더라고요. 스타트업 삼성. 삼성은 유연한 근무환경을 위한 다양한 실험을 이미 했고요. 다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배달의민족에 이러한 삼성의 역사를 말하며 “너희도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생각이, 다르니까.

결국 믿음의 문제이고요. 지금까지 살아온 행적의 차이입니다. 물론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까는 모릅니다. 배달의 민족이 망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다른 것을 떠나서….’이왕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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