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전문 리서치 스타트업 ‘피넥터’ 팀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최근 블록체인/분산원장의 관심이 급부상하면서, 세계적으로 가장 큰 규모의 컨소시엄인 R3의 행보 역시 언론과 커뮤니티의 관심의 대상이다. 지난 2016년 말에는 R3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분산원장 플랫폼 코다(Corda)가 오픈소스 되기도 했다.

필자는 R3에서 한국을 담당하는 Alliance manager이며, R3가 무슨 일을 하는지, 코다는 어떤 기술인지 등에 대해 설명해볼까 한다.

R3의 시작

R3는 월스트리트의 베테랑들인 David Rutter, Jesse Edwards, Todd McDonald가 모여 창립한 분산원장 기반의 핀테크 스타트업이다. CEO인 David Rutter는 R3를 창립하기 전 ICAP이라는 전산 금융중개 및 리스크 관리 플랫폼을 제공하는 회사의 대표이사였다.

R3의 시작은 리서치와 벤처투자였다. David Rutter는 비트코인이라는 흥미로운 기술을 발견한 후, 비트코인이 아닌 그 기반이 되는 기술인 블록체인이 금융 시장을 파괴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고, 이를 현실화시키기 위해 작은 팀을 구성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독자적으로 블록체인 스타트업에 투자를 해오던 대형 금융사 9곳의 지원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첫 단계의 컨소시엄이 구성됐다.

역사적으로 금융시장에서 경쟁사들끼리 협력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만 블록체인/분산원장 기술은 본질적으로 거래상대방이 있어야만 구현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러한 형태의 협력적 컨소시엄 구성이 가능했다.

초기 9개의 은행들은 다음과 같다: JP Morgan Chase, Credit Suisse, Commonwealth Bank of Australia, UBS, Barclays, BBVA, State Street, Royal Bank of Scotland, Goldman Sachs.

당시 R3의 초기 목표는 간단했다.

– 블록체인을 금융시장에 어떻게 적용할지 이상적 추측이 아닌 실무적인 측면에서 알아보는 것
– 금융시장 적용을 위한 기존의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리뷰와 선택
– 블록체인 기반 스타트업에 투자

R3는 블록체인의 금융시장 적용 또는 투자를 위해 기존의 비트코인, 이더리움과 같은 블록체인 플랫폼 및 다양한 스타트업의 기술들을 검토하기 시작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기술들이 규제산업인 금융에 적용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데이터 프라이버시 (Data privacy)
기존의 블록체인 구조는 네트워크 참여자가 모든 거래내역을 보관하고 열람하는 구조다. 즉 A와 B 간의 거래를 C가 검증해야 한다. 고객 또는 자산의 기밀성을 보호해야 하는 금융산업에서 이와 같은 공개적인 데이터 검증 구조는 적용될 수 없다.

2. 확장성 (Scalability)
모든 네트워크 참여자가 거래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고 검증을 하게 되면 참여자가 많아질수록 거래 처리의 속도가 느려진다. 업계에서 주로 “초당 거래수” (TPS : Transaction per second)라고도 얘기하는데, 빠른 속도가 생명인 금융거래에서 이러한 확장성의 한계는 큰 문제다.

3. 법률적 책임 (Legal liability)
스마트 계약의 경우 기존의 블록체인은 법률적 책임의 소재가 불분명하다. 컴퓨터 코드에 의한 비가역적인 (Irriversable) 실행은 가능하지만 실제로 그것이 법률적 강제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스마트계약 : 블록체인/분산원장 위에서 거래당사자간 제3의 중간기관 없이 합의를 이루어 계약의 조건이 자동으로 실행되는 법적 강제성을 가지는 디지털 계약)

4. 개연적 결제 완결성 (Probablistic settlement finality)
기존의 블록체인, 특히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과 같은 퍼블릭 블록체인의 경우, 결제의 완결성을 법률 또 기술적으로 100% 보장하지 않는다. 항상 네트워크의 포크(fork) 또는 블록재조정(block reorg) 등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은행거래의 경우 결제의 완결성은 중앙은행이 법적으로 보장하기 때문에 법률적인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다.
(*포크 : 거래내역에 대해 네트워크가 합의를 도출하지 못해서 네트워크가 분리되는 현상)
(*블록재조정 : 이미 한번 확정된 거래내역이 사라지거나 다른 기록으로 대체되는 현상)

짧은 기간 동안의 리서치를 통해 R3의 창업자들은 가장 본질적인 문제를 찾아냈다. 바로 기존의 블록체인 기술들이 금융기관들의 거래를 효율적으로 보완하고자 고안된것이 아니라 금융기관을 아예 제거하고 P2P로 거래를 하자라는 리버테리안적인 동기로 인해 발명된 것이었다. 기존 블록체인 코드를 변경하는 수준으로는 금융산업에 적용할 수 없었다. 따라서 R3는 “어쩔 수 없이” 처음부터 아키텍처를 쌓아 올리기로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IBM에서 블록체인과 혁신팀을 담당하던 Richard Gendal Brown과 비트코인의 초기 개발자 중 한 명인 Mike Hearn을 영입한다.

그동안 처음 9개의 은행으로 구성된 R3 컨소시엄은 단 몇 개월 만에 33개의 금융기관이 추가로 참여하면서 총 42개의 대형 컨소시엄으로 자리 잡았고 R3는 이 그룹을 DLG (Distributed Ledger Group)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DLG 그룹은 R3와 함께 분산원장 아키텍처를 연구하고 개발하는 그룹을 뜻한다. 이로서 금융 역사상 최초로 42개의 대형 금융사가 이들을 하나로 묶을 금융의 인터넷에 대한 조건들을 “협력적으로” 제시하기 시작한다. 즉 추측과 가정에 의한 개발이 아닌 고객의 요구조건이 반영된, 금융산업에 적합한 분산원장 플랫폼 개발이 시작된 것이다. 이 분산원장 플랫폼은 코다(Corda)라는 이름으로 11월 30일 오픈소스 됐다.

2015년 말 42개의 DLT 멤버들과 R3는 “분산원장의 가장 큰 힘은 네트워크 효과에서 온다”는데 합의를 도출하고 컨소시엄의 멤버십을 확장하기로 결정한다. 현재 국내 금융지주 5곳 (하나, 신한, IBK, 우리, KB)를 포함해 70여 개 이상의 금융사들이 참여하고 있다. R3 컨소시엄엔 은행 이외 카드사, 거래소, 보험사, 증권사, 투자사, 물류회사 등을 비롯한 중앙은행/규제/감독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R3가 하는 일

R3가 하는 일은 크게 세 가지다.

1. 분산원장인 코다(Corda) 및 코다 플랫폼 개발
2. 컨소시엄 멤버 간의 프로젝트
3. 금융 서비스 개발

코다(Corda)

코다는 금융산업에 최적화된 분산원장 기술이다. 여기서 분산원장과 블록체인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교집합으로 보자면 분산원장은 블록체인의 상위 개념이다. 분산원장은 원장이지만, 원장은 분산원장이 아닌 것처럼, 블록체인은 분산원장이지만, 분산원장은 블록체인이 아니다. 역시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는 블록체인 기반이지만, 블록체인이라고 해서 가상화폐가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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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3의 코다는 블록체인이 아니다. 아직 산업 내에서 블록체인의 개념 정리가 완전히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블록체인은 데이터를 네트워크 참여자들이 모두 공유한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이러한 성격은 금융거래의 기밀성과 확장성에 적합하지 않다.

코다가 일반 블록체인들과 다른 점은 다음과 같다.

– 코다는 네트워크 참여자들 간에 통합적으로 공유되는 데이터가 없다. 실제 거래에 참여한 거래상대방 간 또는 그 거래를 감독해야 하는 감독기구나 규제기관만 그 데이터를 열람할 수 있다.
– 코다는 자유롭게 누구에게 데이터를 전달할 것인지 중앙 관리자 없이 조절할 수 있다.
– 코다는 거래에 대한 합의를 네트워크 차원에서 도출하지 않으며, 거래상대방끼리 “개별 거래 단위”로 합의를 도출한다.
– 코다 네트워크에는 규제 또는 감독기구에게 디폴트로 관찰 노드(Observer node)를 제공한다.
– 코다 네트워크에서 이루어진 거래는 거래에 상관없는 네트워크 참여자가 증명하지 않고, 거래상대방끼리 인증한다.
– 코다는 같은 네트워크 안에서 다양한 합의 메커니즘 (Consensus mechanisms)을 제공한다.
– 코다는 인간 언어(human-language)와 법률언어(Legal-language), 스마트계약 코드를 연결하는 명시적 링크를 기록한다.
– 코다는 기존 레거시 산업에서 표준으로 쓰이는 툴을 이용해 개발되었다. 프로그래밍 언어도 Java계열의 Kotlin을 이용했고 Java로도 개발이 가능하다. Virtual Machine은 JVM이다.
– 코다는 가상화폐가 없다.

코다 플랫폼

코다 플랫폼은 금융사들이 사용할 수 있는 공동 소프트웨어 플랫폼이라 볼 수 있다. 여기서 공동 소프트웨어란, 같은 분산원장 네트워크 안에서 공동으로 처리되는 기능들을 뜻한다. 즉, 현재 각 금융사가 분리된 상태로 운영하는 금융업무에 가장 기본적인 기능들인 자산(현금 및 증권 등 다양한 자산)의 발행과 기록, 고객 인증정보, 타임스탬핑, 규제 리포팅, 오라클(레퍼런스 데이터) 등의 하위 레벨 기능들이 네트워크 참여자들 간 공동으로 처리되는 소프트웨어다. 새로운 형태의 코어뱅킹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단순히 데이터를 상호적으로 처리하는 것을 넘어서서 특정 금융 부분의 운영 자체를 네트워크단에서 동시에 처리하는 것이다. 이로서 각사가 독자적으로 보관하고 처리해오던 금융정보가 산업단에서 공동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더욱 데이터 퀄리티가 훨씬 정확해진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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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비유를 들자면 코다는 금융산업의 안드로이드, 코다 플랫폼은 앱스토어라고 볼 수 있다. 코다 플랫폼 위에서 다양한 금융 애플리케이션들이 개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인도 어느 누구나 iOS 또는 안드로이드 기반의 모바일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 것처럼, R3가 코다를 오픈소스 하면서 어느 누구나 금융사들이 사용할 수 있는 금융 어플들을 개발할 수 있다. R3는 코다 기반의 금융 애플리케이션들을 코댑(CorDapp)라고 부른다. 장외파생상품 거래부터 무역금융, 송금, 인증까지 다양한 앱들이 개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컨소시엄 멤버 간 프로젝트

R3 컨소시엄 내에서 금융사들은 서로 다양한 협력 프로젝트(Collaborative projects)를 진행한다. 프로젝트는 개인적으로 세상이 정말 빠르게 변화한다고 느끼는 부분 중 하나다. 분산원장 이전엔 서로 피 튀기며 경쟁하던 경쟁사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서비스를 개발한 경우는 금융 역사상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컨소시엄 내에 이러한 협력적 분위기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분산원장이 기술의 특성상 독자적으로는 사용할 수 없었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수많은 규제로 인해 은행들이 부담해야 했던 규제 관련 및 운영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늘고 있었기 때문이다.

R3는 프로젝트 제네시스(Genesis)라는 코드명으로 42개의 금융사들이 블록체인 위에서 기업어음을 보내는 첫 번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42개의 금융사들이 각자 클라우드 서버(마이크로소프트 애저르)를 통해 노드를 부여받고 같은 네트워크 안에서 자산을 주고받은 것이다. 그 이후 60개가 넘는 다양한 프로젝트에 은행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진행돼 왔고 빠른 시간 동안 굉장한 발전을 이루었다.

대표적인 대형 프로젝트는 다음과 같다.

– 캐나다 중앙은행과 CPA(Canadian Payment Association), 5개의 R3 가입 시중은행이 진행한 은행 간 청산/결제를 위한 디지털화폐 발행 관련 프로젝트
– 바클레이즈(Barclays)와 R3가 코다를 이용해 개발하고 다수의 금융사와 테스트한 장외파생상품 거래를 위한 스마트 계약 템플릿 프로젝트
– 싱가포르 통화청(MAS)과 R3, 그리고 다수의 금융사가 진행하고 있는 분산원장 기반 싱가포르 법정화폐 프로젝트
– 11개의 대형 은행과 R3가 진행한 무역금융거래 프로젝트

프로젝트는 5단계 (5Ps)가 있다. 참여하는 금융사의 지원 리소스와 수준에 따라 다양하게 진행된다.

– 개념증명(PoC) : 아주 단순한 방식으로 특정 거래에 대한 개념을 증명하는 테스트
– 프로토타입(Prototype) : “가상”으로 특정 자산을 구성해 금융사들끼리 거래하는 테스트
– 파일럿(Pilot) : “실제” 데이터를 이용해 금융사들끼리 거래하는 테스트
– 퍼미션(Permission) : 규제/감독기관의 허가 하에 실제 데이터를 거래하는 테스트
– 프로덕트(Product) : 실제 상용화되는 서비스

금융서비스

R3의 코다 플랫폼 위에서 다양한 기술기반 스타트업들이 금융 앱들을 개발할 수 있지만, R3 역시 독자적으로 서비스를 개발한다.

R3를 떠나는 은행들?

최근 골드만삭스와 산탄데르가 R3 컨소시엄을 떠난다며 R3에 대한 추측성 기사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골드만삭스가 R3를 떠나는 이유는 바로 투자유치 때문이다.

R3는 2016년부터 2017년 초까지 첫 번째 $150m 정도의 Series A 투자유치를 준비 중이다. 중요한 것은 컨소시엄은 특성상 특정 대형 금융사가 과도한 지분을 가지거나, 이사회를 컨트롤 해선 안된다. 모든 참여자가 비슷한 위치에서 민주적으로 운영되어야 가장 이상적인 컨소시엄이라고 볼 수 있다. 소수의 대형 금융사들이 전 세계의 70개 이상의 금융사들의 분산원장 미래 방향성을 임의로 설정하게 되면 그 컨소시엄은 와해될 것이기 때문이다.

R3가 투자유치를 6개월 정도 준비하면서 특정 대형 금융사들과 컨소시엄 지분/이사회 구조 관련하여 많은 마찰을 빚었었다. 대부분의 금융사들은 민주적인 컨소시엄 운영에 동의했지만 모든 금융사가 100% 동의하지 않았고, 그중 한 기관이 골드만삭스다.

현재 DLG 멤버 (초기 42개 금융사) 중 90% 이상이 Series A 투자를 결정했고, DLG 멤버의 투자유치가 끝나면 나머지 LRC멤버에게도 투자기회가 돌아가며, 이미 많은 금융사들이 투자 결정을 내린 상태다.

쓰다 보니 글이 글어졌다…이 글로 R3에 대해 조금 더 명확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블록체인에 대하여] 시리즈

(10) IBM은 왜 블록체인을 연구할까?
(9) 은행은 돈을 어떻게 옮기는가
(8) 어떻게 블록체인은 금융시장을 혁신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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