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프터모멘트 크레이티브 랩 박창선 CEO가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번 더 소개합니다.

총체적 난국

 

다짜고짜 ‘브랜딩을 하자!’라고 굳은 의지의 피버모드에 돌입하기 전에 찬찬히 살펴보도록 합시다. 우리 회사의 현 상태가 어떠한지.

크몽에서 디자이너에게 맡긴 10만 원짜리 로고
돈 아끼려고 사내디자이너에게 맡긴 PPT 제안서
필요할 때마다 마구 만든 엑셀, PPT, 한글, 워드 양식
공짜로 다운받아 쓰고 있는 폰트들
회사 사진은 그냥 핸드폰으로 찍었는데 심지어 흔들린 것들
여기저기서 좋아 보이는 것들 짜집기한 페이스북 컨텐츠
1달째 아무 것도 올리고 않고 있는 네이버 블로그
팔로워가 100도 안 되는 인스타그램 계정
브랜딩에 관심없는 직원들
7월은 바쁘니까, 8월 되면 하자고 미뤄온 재정비
관리자 계정만 받아서 간신히 배너만 만들고 있는 홈페이지

사실 이것들은 지어낸 것들이 아닙니다. 제가 지금까지 프로젝트를 맡았던 회사들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종합한 내용입니다. 이 중 한두 개 정도는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었고, 심한 곳은 이 모두에 해당하는 곳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유사 이래 이런 총체적 난국이 없는 것 같은데 어찌어찌 회사는 돌아가고 있는 걸 보니, 이 회사는 대외리스크에 AT 필드라도 시전하고 있는 것인가……하는 경이로움마저 들 때도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망했습니다….RIP)

여기서 한 걸음만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1. 일단 직원들은 로고의 의미나 색의 의미를 모르고 있고, 어떨 때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 가이드북도 없습니다. 로고도 애초 수정 3번 정도 해서 그냥 만든 것이었습니다. 의미는 대표만 알고 있습니다.

2. PPT로 만든 제안서는 여기저기 제안할 때마다 계속 만들고 업데이트하느라고 종류가 너무 많아졌습니다. 제안서 파일만 20개는 넘게 있는 것 같은데, 왜 계속 만들고 있는지는 사실 아무도 모릅니다.

3. 양식은 그때그때 만들어 쓰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양식을 한번 정리하자고 깔끔하게 바꿔놨지만, 전사적으로 공지가 안 돼서 그냥 흐지부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4. 포토그래퍼를 불러서 찍은 사진은 없습니다. 행사 사진이나, 컨텐츠, 제품 등 그냥 게티이미지에서 다운받거나 핸드폰으로 찍은 어두운 사진을 돌려쓰고 있습니다.

5. 마케터에게 컨설팅을 받거나 전문마케터를 고용하는 건 너무 비싸서, 그냥 SNS 담당자라고 26살짜리 신입사원을 뽑았습니다. 제품에 대해서 막 알리는 걸 올리라고 했더니 이 컨셉 저 컨셉으로 다양하게 올리긴 합니다만, 항상 좋아요도 제자리고 도달률도 엉망입니다. 페이지를 쭉 훑어보니 컨셉이나 색깔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6. 네이버 블로그는 초창기에 누군가가 개설해놨는데 그 사람은 퇴사했고 누군가가 인수인계를 받은 듯하지만 누군진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페이스북에 올린 내용을 그냥 링크 걸거나 가끔 대외기사 뜰 때만 올리고 있습니다.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포스팅을 하고 일방문자는 100 미만입니다.

7. 인스타도 누군가가 대략 만들었는데 지금은 아무도 기억을 못 합니다. 사진이 한 20개 정도 있는데 거기서 멈춰있습니다.

8. 운영진이 회의에서 ‘우리 회사도 브랜딩을 해야 하지 않겠냐!’ 라고 아젠다를 던져봅니다. 직원들은 침묵합니다. 사실 그들은 브랜딩에 대해 정확하게 모릅니다. 그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당연한 겁니다. 정작 ‘브랜딩을 하자!’ 라고 얘기하는 본인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는 잘 모릅니다.

9. 대략 회사는 항상 바쁜 시즌이 있으니 이때는 바빠서, 이때는 다른 공모해야 해서, 저때는 제안서 작업, 요때는 뭔 프로젝트 한다고 작년부터 하자 하자 했던 게 1년은 지난듯합니다. 다음 주에 하자, 다음 달에 하자…라고 미뤄져 온 수많은 말들에 직원들은 이미 체념한 지 오랩니다.

10. 홈페이지는 일방문자나 트래킹관리가 안 됩니다. 누가 어떻게 무슨 경로로 들어오고 어떤 것들을 자주 보는 지 아무도 모릅니다. 관리자 계정이 있긴 하지만 종종 배너를 바꾸거나 게시글 올릴 때만 씁니다. 사진도 올리고 있지만, 늘 똑같은 컨텐츠의 연속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홈페이지 업무는 ‘귀찮은 것’이 됩니다.

여기까지는 사실 크게 놀랄 것도 없는 ‘일반적’인 수준의 브랜딩 문제들입니다만, 여기에 몇 가지의 요소가 더 첨가되면서 HELL 모드에 진입하게 됩니다.

 

양념장1. 자신이 브랜딩이 뭔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운영진.

당연히 능력 있는 금뇌 대표님들이 많습니다. 상당히 인사이트 넘치는 전략과 멋진 마케팅으로 꾸준히 잘 성장하고 계신 분들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반면, 아직 이런 분야를 잘 몰라서 끊임없이 공부하면서 프로토타입을 만들어가며 시행착오를 겪고 계신 분들도 여기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분들입니다. 벌써 3409번째 얘기하고 있지만, 브랜딩은 내가 뭔가를 거국적으로 보여주겠다!!!!! 라고 선언하는 따위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특징은 대부분 이렇습니다.

1. 어디 책이나 페북에서 본 듯한 글을 제 생각인 양 진지하게 얘기한다. (그것들은 대부분 뻔하고 당연한 소리입니다.)

2. 어디서 본 듯한 사례들만 가지고 와서 여기는 이렇게 했는데, 왜 우린 못하냐는 소리를 오전 회의 중에 시전합니다. (이 사례물약으로 전 직원의 사기가 -4 감소했습니다. 효과는 퇴근 시까지 지속됩니다.)

3. 그들은 사내 관리보단 대외 활동하며 명함 돌리고 PT하고 네트워킹하고 인터뷰하고 영업을 뛰며 돈 끌어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중요합니다. 영업과 투자유치는 사업의 생명선과 같습니다. 그것을 비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일의 경중을 따져서 내가 하는 일이 더 대단해!! 라고 다른 업무를 ‘그런 것 가지고 뭐’ 라는 식의 마인드를 표출하거나 정작 본인의 태도가 밖에서 직함&명함놀이 하는데 심취해 있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이런 분들은 굉장히 자의식이 강한 편인데 심지어 똑똑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본인의 일은 굉장히 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굴러가지 않죠. 벌리기 좋아하고 마무리가 안 되는 이런 타입은 무언가 외부에서 들은 정보와 지식들을 안으로 끌어와서 끊임없이 ‘이거해보자! 저거해보자!’ 라고 하는데, 사실 그 중에서 제대로 된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직원들은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직원들은 침묵하고 브랜딩은 커녕 솔직히 그 회사의 존속조차도 장담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는 경우가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양념장2. 투자를 받기위해 사업을 하는?…뭔가 주객전도.

보통 초기 스타트업이나 세컨 스텝에 들어간 경우에 이 케이스를 많이 봤는데, 이 회사는 투자유치에 모든 것을 쏟아 붓습니다. 투자자가 원하는 컨셉과 대세와 시장성에 포커싱을 둡니다. 내 색깔이나 우리의 신념은 온데간데없습니다. 왜냐면 흔히 IR 전에는 이곳저곳에서 컨설팅을 받잖습니까? IR제안서도(저도 이걸 만드는 일을 하지만) 디자이너에게 맡기고, 다른 사람에게 검토받고 뭔가 대대적인 ‘신규사업’같은 느낌으로 투자준비를 합니다. 이건 좀 이상한 겁니다.

비즈니스를 위해 돈이 필요한 거지, 왜 돈을 유치하기 위해 비즈니스를 만들고 있는 걸까요? 전 꿈같은 얘길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열정과 노력을 다해서 최선을 다하면 돈이 들어올 것이라는 개소리는 하지 않겠습니다. 투자는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없어서 망할 회사거나 또는 그것을 위해서 중심마저 흔들리는 비즈니스라면 애당초 시작하지 않으시길 과감히 추천해 드립니다.

 

양념장3. 의욕도 색깔도 없는 직원들

전 대표진만 까는 행위는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엔 워낙 리더쉽이다 꼰대다, 뭐다 해서 리더에 대한 단죄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취업에 대해서도 고용주의 횡포 어쩌고 하면서 고용주는 죄다 꼰대인 것 처럼 이야기하는데.. 현장에서 본 느낌은 조금 다릅니다. 물론 완벽한 리더는 없습니다. 누구든 실수를 하고 만회를 위해 노력도 합니다. 진짜 꼰대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대표님의 문제가 그토록 비난하고 성토할 만큼 엄청난 것들은 아닙니다. 객관적으로 문제를 본다면 직원들의 태도도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약 2년 정도 대학교 4학년 졸업생들 대상으로 입사 직전 어드바이징 및 취업 관련된 이력서/포트폴리오 등을 매니징, 강의를 해왔습니다. 물론 너무 순수하고 예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안쓰러울 정도로 고민하고 공부하고 성장통을 겪는 청춘들을 많이 봤습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정말 회사 측에 알려서 입사시키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을 정도로 게으르고, 이기적이고, 허세만 쩔어 있는데다가, 마인드도 썩어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상한 회사만 있는게 아닙니다. 이상한 직원들도 분명 있습니다. 물론 5명이 모이면 그중 한명은 쓰레기라는 명언처럼, 없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전체인원대비 이상한 직원의 비율(전개비)을 최소화시킬 필요는 있습니다. 브랜딩은 기본적으로 전사적인 색깔에 대한 문제입니다. 적어도 인원이 적은 스타트업은 이것이 더욱 그렇죠.

비쥬얼 브랜딩은 그냥 로고나 만들고 색깔이나 정해보자….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엄밀히 말해서, 브랜딩이란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관념’적인 단어입니다. 마음에 존재하고 무의식상에서 움직이는 사고의 흐름과 사회적 평판과 비즈니스와의 관계를 규정하는 것이죠. 이처럼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결과를 위해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하는데, 적어도 회사의 입장에선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그 컨셉과 성격을 가시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그 작업이 ‘비쥬얼 브랜딩’ 입니다. 그러니 우선 비즈니스의 성격과 회사자체의 컨셉이 존재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단어의 오용을 방지하기 위해 ‘컨셉’이라는 것을 제대로 규정하겠습니다. 여기서 제가 말하는 문화는 뭐 사내 행사하고 같이 영화보고, 복지데이하고 가족같은 문화 뭐 이런 걸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우린 중고차 구매 동행 서비스를 한다! 라고 찍었으면 ‘현장주의!’ 우린 현장에서 의사결정을 한다!…라던가, 가구 브랜드를 런칭했다면 ‘우린 미니멀 덕후들의 모임이다!’ 라는 식의 기본 아젠다를 가져가자는 이야기죠.

그리고 이 아젠다는 채용과 비즈니스 전반에 걸쳐서 작용하는 거대한 중심축으로 움직이는 개념이 됩니다. 이러한 아젠다가 등장해야… 그걸 가시화시켜서 로고도 만들고, 색도 정하고, 키 비쥬얼도 나오는 것이죠. 비쥬얼의 시작은 디자인 의뢰가 아닌 철저한 자기 검열입니다. 일단 그 날은 맨 정신에 집에 들어가지 못할 각오를 하고 까 볼 만큼 다 까봤으면 합니다.

 

브랜딩은 속을 채우는 과정이지, 겉을 치장하는 것을 뜻하진 않으니까요.

 

[눈으로 보이는 생각 : Branding] 시리즈

(1) 브랜딩은 틀린 말이다?!
(2) 하던 걸 계속 하라고 하는데…

 

 

 

 

[fbcomments url=”http://www.mobiinside.com/kr/2017/10/12/branding-reviewal/” width=”100%” count=”off” num=”5″ countmsg=”wonderful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