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의 싸이코- 자뻑형 분노유발자

 

최근에 너무 상사에 대한 이야기만 한 것 같아서 이번 글에는 동료에 대해 써볼까 합니다.

사실 상사 욕하는게 제일 재밌습니다만, 회사에서 상사만이 사람 열받게 하는건 아니죠. 그리고 현실적으로는 윗사람보다 동료와 부대끼는 시간이 훨씬 길다보니 갈등이 생길 가능성도 높습니다.

이번 글의 키워드는 선물입니다.

싸이코에 대한 이야기인데 왠 선물? 이번 글에서 다룰 유형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선물을 잘합니다. 착한 사람인 것 같죠? 문제는 그 선물이 선물이 아니고 낚시바늘이라는게 문제의 시작입니다.

낚시를 정말 잘하는 자뻑형 분노유발자들, 이제부터 알아보겠습니다.

 

1. 진짜 괜찮은 사람인 듯!

이런 동료를 처음 만나면 드는 생각은 ‘좋은 사람이구나’ 라는 겁니다.

이런 저런 잡다한 정보에도 밝고, 회사내에서 돌아가는 것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내게 어떤 것이 필요하다는 것도 마치 제 마음속을 들여다 본 것처럼 파악해서 제게 그것들을 가져다 줍니다. 어떤 댓가도 없이 말이죠. 너무도 친절하고 웃는 얼굴로 곰살맞게 내게 잘 맞춰줍니다.

그리고 가족의 생일처럼 보통 업무적 관계라면 전혀 챙기지 않을 법한 작은 일들까지 잘 기억했다가 적절한 선물을 주곤 합니다.

고마운 마음이 절로 듭니다. 그리고 바로 이 순간, 여러분은 낚시에 제대로 낚인 겁니다.

 

별빛이 내린다~

 

 

2. 갑자기 나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잘해주다가 어느 날부터 이런 저런 부탁이나 요청을 하기 시작합니다.

처음엔 별거 아닌 것들인데, 점점 복잡하고 어려운 것들도 부탁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점점 부탁이 아니라 요구로 바뀌기 시작하죠. 하지만 처음에 원체 관계가 좋았고, 선물을 포함한 이런 저런 고마운 일들이 깔려 있기 때문에 거절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들의 요구를 잘 들어주고 또 뒷담화에 어느정도 맞장구를 쳐주는 동안은 그들은 나를 공격하지 않습니다. 이 단계에서는 나 또한 이 사람들을 ‘착하지만 조금 귀찮게 하는 동료’정도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이들이 태도를 완전히 바꿔서 나를 공격하기 시작하는 때가 옵니다. 내가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거나 그들의 ‘경쟁자’로 인식되었을 때죠.

불과 며칠 전까지도 커피도 마시고, 필라테스도 같이 다니던 사람이 갑자기 신경을 미묘하게 긁는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듣는 순간에는 이게 뭔지 파악이 잘 안되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나를 무시하거나 내 일에 대해 시비는 거는 것이었음을 깨닫게 하는 교묘한 말투죠.

그리고 그 정도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심해집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직접적 공격이 아니라 말이나 행동을 곱씹어봐야 나를 공격한 것임을 알 수 있는 종류라서 제대로 대처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3. 이중메시지를 통해 분노를 끊임없이 유발한다

말이나 행동이 겉으로 비춰지는 것과 실제의 속뜻 사이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을 이중메시지라고 합니다. 이들 자뻑형 분노유발자들이 공격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패턴이 이중메시지입니다.

가령 여러분이 이들과 동일한 팀장 밑에서 다음 프로젝트 리더 자리를 놓고 경쟁한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경쟁이 시작된 후 거의 교류가 없던 그가 갑자기 전화를 해와서 이런 소리를 합니다.

 

“요즘 잘 지내시죠? (적당한 인삿말 후) 어휴 저는 어제 팀장님이 갑자기 퇴근하시다 말고 한잔 하자고 하셔서 새벽까지 술먹느라 힘들었어요. 팀장님이 요즘 좀 힘드셨던 모양인데, 자꾸 2차, 3차 가자고 하셔서 혼났습니다.”

 

이게 어떻게 해석되시나요? 어제 늦게까지 술 마셔서 힘들다? 아니면 팀장이 요즘 힘든게 많으니 알고 있으라는 뜻?

자뻑형 분노유발자들이 뜬금없이 이런 얘기를 하는 의도는 이겁니다.

“팀장이 힘들 때 찾는 사람은 나야. 내가 너보다 팀장이랑 친하고, 팀장이 인정하는 사람도 나야.”

이들의 이중메시지 패턴이 이해되시나요?

이런 이야기를 할 때도 많습니다.

(교류도 없다가 탕비실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대리님, 잘 지내시죠? 어휴 대리님은 데이터 분석에는 능력이 있으시니 좋으시겠어요. 저는 팀장님 때문에 맨날 전략수립 파워포인트 만드느라 정신 못차리고 있는데…”

 

이 뜻은 이제 짐작이 가시죠? 네, 여러분의 데이터 분석 능력을 칭찬하는 말이 아니라

“너는 할 줄 아는게 데이터 분석밖에 없지? 난 팀장님하고도 친하고, 지금 니가 하는 데이터 분석보다 훨씬 중요한 전략수립을 하고 있다구!” 라는 뜻입니다.

이들의 말에는 세 가지 정도의 속뜻이 있습니다.

탐색, 자기자랑, 그리고 우월감.

이들은 자기 말을 거역한 반역자나 경쟁자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꼼꼼하게 체크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맥락이나 친밀도에 안맞는 탐색 질문을 많이 합니다. (자기 부서의 업무도 아닌데 ‘저번에 임원분들 참석하신 워크샵 가셨어요?’ 같은 식으로 남의 부서 관련해서 질문을 하는 식)

그리고 이어지는 말들에는 자기자랑이 깔려 있습니다.

물론 그 자랑은 그냥 순수한 자랑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무시가 같이 섞여 있죠. 때문에 이들의 말을 속뜻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해도 말을 섞고 나면 뭔가 찜찜하고 기분이 나빠집니다. 교묘하게 포장하기 때문에 대화의 순간에는 느끼기 어려운데, 뒤돌아가면서 말의 뜻이 해석되기 시작하면 짜증이 확 밀려옵니다.

 

4. 공과 사의 경계가 없다

이들은 언제나 최소 한 두명의 추종자들을 을 데리고 다닙니다.

가장 흔하게 이들의 추종자가 되는 사람들은 좁은 분야에 지식과 집중력이 강한데 사회생활이나 인간관계에서는 조금 폐쇄적인 사람들이죠. 앞서 이야기드린 것처럼 이들은 자기에게 경쟁이 되거나 자기 요구를 거역하는 사람에게는 칼을 갈지만, 자기 말을 잘 듣는 사람에게는 곰살맞을 정도로 잘하거든요. 그래서 경쟁자가 될 확률이 낮고, 부탁을 하면 곧잘 들어주는 성격의 사람들을 데리고 다니는거죠. (좁은 분야에 전문성이 있지만 인간관계에서의 처신이 미숙하거나 열려있지 않은 사람을 스테레오 타입으로 말씀드리자면 ‘공대생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순진한 신입사원이나 신규입사자들도 이들이 처음에 눈독들이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자뻑형 분노유발자들이 신입사원들에게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런 식입니다.

“나만 잘 따라오면 승승장구 할 수 있어. 내가 또 팀장님하고 친하니까 스타일 잘 알거든.”

이들의 주특기인 이중메시지를 해독하면 이런 뜻입니다. “내가 팀장과 친하니 너희들의 인사고과를 주는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니 내 말 거역하지 말고 잘 들어라.”

원래 성숙한 직장 선배라면 이렇게 이야기해야겠죠.

“우리 회사에서 인정받는 분들은 업무 스타일은 ~하시고, 대인관계에서는 ~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도 도 많이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아직 미숙해서 어렵네요. 임원분들과 팀장님들이 모두 친절하시니 관련해서 자주 여쭤보고 조언 들으시면 도움이 되실 것 같아요.”

 

자뻑형 분노유발자들은 이런 식으로 자기와 업무, 공과 사를 잘 구분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가진 아주 알량한 권력 (위의 예시에서는 직장선배라는 위치)을 가지고 자기 능력밖의 일인데도 자기가 힘을 쓰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죠.

 

5. 정작 책임져야 할 상황에서는 무조건 피해버린다.

말은 거창하게 하지만 정작 실제로 일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왔을 때 이들은 절대 책임지지 않습니다. 힘든 일이 주어지면 자기 주변의 추종자들(이런 사람을‘능력있는 사람’이라고 따르고 추앙하는 무리들도 꽤 있습니다. 겉보기엔 멋있고 나름 괜찮은 스펙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많거든요.)에게 교묘하게 일을 뿌립니다. 그리고 자기는 쏙 빠져나가죠. 가령 이런 식입니다.

 

겉으로 하는 말 :

(많은 양의 자료를 처리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을 때) “회사에서 인사규정 개선 관련해서 TFT 를 만든다는데 내가 주요 멤버인가봐, 그것 때문에 내가 다음주까지 꼼짝할 수가 없네. 그래서 말인데, 이번 데이터 처리건은 너가 맡아주면 좋겠어. 마침 너가 잘하는게 데이터 분석이잖아. 고마워~”

 

이중메시지 해석 :

“내가 잘나서TFT에서 부르는데, 실제 TFT 건은 별로 할 일 없는데 일하기 싫어서 대는 핑계고, 자료 처리 업무는 일이 너무 많아서 내가 하기 싫거든. 너 같은 애들이 그런 험한 업무를 해야지, 나같은 능력자는 좀 더 큰 일을 해야하지 않겠어?”

 

이들은 책임을 무조건 방기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다른 사람에게 넘길 뿐이죠. 그리고 절대로 자기 핑계를 대지 않습니다. 그냥 “정말 하고 싶은데 ‘객관적 상황상’ 내가 할 수가 없네.”라는 식으로 넘깁니다.

사정을 뻔히 아는 사람이 볼 땐 말도 안되는 소리이지만, 이런 사정을 모르는 신입, 신규입사자, 인간관계가 폐쇄적인 사람, 순진한 사람 등 낚시에 걸려든 물고기들은 그냥 말려들어가서 덤터기를 쓰는거죠.

 

내가 정말 하고 싶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읍네(from 천호식품 산수유 CF)

 

 

주변에 이런 동료가 있을 때 어떻게 해야할까요?

1. 당신의 자존감에 계속 생채기를 낼 겁니다. 스스로를 깎아내리지 마세요.

이런 자뻑형 분노유발자들과 지내다보면 의기소침해지거나 우리 스스로를 낮춰보는 일이 자꾸 생겨납니다. 무엇보다 이들의 자기우월감 전달을 위한 이중메시지의 반복 때문인데요. (“나는 너보다 윗사람과 친하고, 너보다 인정받고 있고, 너보다 중요한 일을 한다.”는 속뜻을 가진 자기자랑)

그냥 무시할 수 있으면 좋은데, 이 부류는 본능적으로 사람이 불편해하거나 약점으로 가지고 있는 부분을 교묘하게 잘 찾아내서 그 부분에서 자기가 우월하다는 메시지를 계속 던집니다. 처음엔 불편하고, 분노도 치밀다가 계속 반복해서 듣다보면 ‘내가 실제로 좀 부족한가?’ 라는 의구심이 들게 됩니다.

자기객관화는 그 자체로 좋은 습관이지만, 남이 자꾸 여러분을 깍아 내린다고 해서 스스로 위축되지 않아야 합니다. 이게 가장 중요한 대응 원칙입니다. 특히 자뻑과 관종성향이 강하고, 권력에게 잘하고, 이익이 있을 때에만 친절한 멍청이들이 하는 말에 여러분이 위축된다면 그 멍청이의 낚시질에 여러분도 놀아나고 있는 겁니다. 신뢰성도 책임감도 없는 사람이 던지는 무책임한 말을 듣지 마세요. 자기에 대한 비판적 고찰은 신뢰성과 성숙미가 충분한 상사가 주는 피드백에 기반한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2. 저 인간이 자뻑형 분노유발자라는 걸 인지하는게 중요합니다.

내 앞에서 나를 자꾸 위축되게 하고, 의심의 눈초리로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저 인간이 사실은 나보다 문제가 훨씬 더 많은 인간이고, 그 인간의 공격 패턴이 저렇게 교묘하게 이중메시지로 남의 분노를 유발시키는 것이구나라는 걸 깨닫는게 중요합니다.

깨달으면 그의 패턴이 보이고, 그의 실제 속뜻이 파악됩니다. 그리고 일단 파악되기 시작하면 그의 말이 더 이상 내게 큰 상처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이들은 절대 상대에게 직접적인 공격의 말과 행동을 하지 못합니다. 그럴만한 용기도 역량도 없습니다. 휘둘리게 되면 힘들고, 짜증나고,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막상 그 실체를 인지하게 되면 ‘내용도 없고 자존심도 없고 책임감도 없는’ 사람인게 잘 보입니다. 한참 모자란 인간이 떠들어대는 소리에 귀기울일 필요도, 감정이 동요될 이유는 없는거죠.

 

3. 맞상대하지 마시고 그냥 무시하세요.

교묘하게 기분나쁘게 할 것이고, 무시하더라도 주기적으로 나타나서 내 감정을 한번 확 때리고 지나갈 건데요, 그냥 그러려니 하십시요. 실력이 없는 사람들이라서 상대의 감정 동요를 이끌어내는 식으로 경쟁하는 사람들인데 상대가 동요하지 않으면 더 이상 어떻게 하지 못합니다.

맞상대질을 해주면 객관적 상황을 희한하게 이용해서 나를 희생양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여러분이 정말 냉정하고 정확한 사람이라면 이들의 이런 책략을 정면으로 부딪혀 박살내버릴 수 있지만, 그러시지 않다면 정말 상황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상대해봐야 얻을 것도 없으니 싸우지도 마시고, 피하지도 마시고, 그냥 무시하세요. 여러분의 성숙한 대응이 정말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간혹 마음 약한 분들 중에는 이들이 초기에 보이는 호의를 거절했다고 스스로에 대해 ‘내가 너무 매몰찼나?’ 같은 식으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던데요, 이들의 호의는 그저 낚시질이기 때문에 낚시바늘 물지 않았다고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다 목적이 있는 호의기 때문에 거절해도 여러분이 잘못한 것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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