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의 문제가 문제로 안 느껴진다?

 

초기 스타트업 창업가라면 제품 아이디어보다는 고객의 문제를 먼저 찾으라는 얘기를 많이 듣게 된다. 머리에 불이 붙은 고객을 찾으라고 한다. 이 조언을 들은 창업가는 자신의 사업 아이디어를 분석해서 고객의 문제를 글로 써 보게 된다. 인류의 난제(예: 피부 노화, 소개팅 매칭)이 아닌 경우라면, 써 내려간 문제는 아래 두 가지 경우로 나뉜다.

 

  1. 문제로 보인다.
    • 예) 슬랙이 업무 집중도를 떨어 뜨린다, 소비를 줄이기 어렵다
  2. 문제처럼 보이지 않는다.
    • 예) 카톡 타이핑이 귀찮다, 지적인 사람들과 깊은 대화를 나눌 기회가 부족하다

 

그럼, 자신의 사업 아이디어가 내포하고 있는 고객 문제가 문제로 보인다면 사업을 진행하고, 문제로 보이지 않는다면 그 사업 아이디어는 접어야 할까?

그렇지 않다.

문제로 보이는 예를 살펴보자. 실제 슬랙이 업무 집중도를 떨어뜨리는 것은 맞으나 실제 이 사업을 진행했던 파운더의 얘기에 따르면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좋은 사업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소비를 줄이기 쉽다고 얘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소비를 관리하는 쪽으로 성공한 스타트업은 찾아 보기 어렵다.

 

스냅챗이 섹스팅 앱으로 성장했다고들 많이 생각한다. 하지만 사진이 사라지는 기능 덕분에 쉽게 사진을 찍고 공유할 수 있게 해 주었고 이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되었다 (TechCrunch 기사 참고)

반면에 문제로 보이지 않는 경우의 예를 살펴보자. 카톡 타이핑이 귀찮다는 문제를 해결해서 스냅챕은 유니콘이 되었다. 서로 뭐 하는지 물어보는 10대에게 글 쓰는 것보다 사진 보내는 게 더 편하다. 그 사진이 기록으로만 남지 않는다면 말이다. 트레바리는 지적인 사람들과 한 주제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눌 기회가 부족하다 — 라는 문제가 한번 모이는데 5만 원을 낼 정도로 절실한 것이었다는 걸 증명했다.

물론 문제로 보이는 문제를 잘 해결해서 큰 사업을 일구어낸 창업자도 있고, 문제처럼 보이지 않아서 일찍 사업을 피벗하여 다른 사업 아이디어로 성공한 경우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창업가는 더 혼란스러워진다.

 

 

스타트업에서 쓰이는 “문제”라는 단어의 해석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스타트업 아이디어가 내포하는 “고객의 문제”가 뜻하는 것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문제라는 단어의 뜻과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때는 불편함을 직접적으로 느낄 때이다. 이미 불편함에 익숙해 지거나, 아니면 당연시하고 있는 부분은 문제로 인식하기 어렵다. 반면 스타트업 아이디어에서는 내가 제공하려는 해결책(솔루션, 즉 제품 혹은 서비스)가 현재 고객이 이용하는 대안 대비해서 현저히 뛰어난 경우에만 고객이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이 된다. 즉, 아무리 문제같이 보이는 것도 내가 얼마나 남보다 뛰어난 제품 혹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지에 따라 고객의 문제가 될 수도 있고,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위에 예를 든 슬랙이 집중도를 낮추는 문제의 경우, 일정 시간 동안 슬랙을 꺼 버리는 슬랙 자체의 기능으로도 약간 번거롭지만 충분히 문제가 해결된다. 더 좋은 솔루션을 제시하기가 어렵다. 소비를 줄이기 어렵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바일 앱 가계부를 제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보통 우리는 여러 상품을 온라인에서 한꺼번에 결제하고, 각각의 물건들의 소비 주기는 각기 다르기 때문에 현재 소비 현황을 앱이 정리해 주기 어렵다. 즉 모바일 가계부 앱이 한 달 소비를 대략적인 한 달 예산에 맞추는 현재의 방법보다 더 좋은 방법을 제공해 주기 어렵다.

 

한 고객이 Segment 창업가들이 프로덕트 헌트에 초기 제품을 보자마자 자기가 가진 문제를 깨달았다고 보낸 이메일 (출처: How do you know when you have achieved a product market fit?)
문제가 아닌 것으로 보이는 것이 솔루션을 보고 경험하는 순간 문제로 느껴질 수 있다. 예전의 브라운관 TV로 방송을 봐보면, 시력이 나빠지는 느낌이 들 것이다. HDTV가 나오기 전까지는 그런 걸 느껴본 시청자는 없음에도 말이다. 버스 하차할 때 태깅을 하지 않아도 되는 교통카드 모바일 앱을 만들 수 있다고 치자 (사운들리 운영할 때 정말 만들고 싶었는데 … 서울교통공사를 설득하기 어려웠다). 그 앱을 쓰는 순간 내리기 전에 카드 태깅을 해야 하는 건 엄청나게 불편한 일이 되고 말 것이다.

 

 

고객의 현재 대안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고객의 문제를 찾는다는 것은 문제만 발견하는 것을 얘기하지 않고, 고객의 대안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 대안 대비 현저히 뛰어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함께 있어야 한다. 결국 이는 “사업 아이디어”를 얻는 것이 된다. 즉, 고객의 문제를 찾으라는 것은 해결책은 생각 말고 일단 고객의 문제를 찾아라 — 가 아니라, 고객의 현재 대안 대비해서 월등히 나은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고객의 문제를 찾으라는 것이다.

자신이 불편함을 느껴 이를 해결하기 위해 솔루션을 만드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주위에 다른 사람들도 그 솔루션이 필요하다고 해서 사업을 시작하게 될 수 있다. 이 경우는 그러한 대안에 대한 조사가 확실히 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 외의 경우, 즉 창업가가 사업 아이디어를 찾고 있는 상황에서 우연찮게 흥미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되는 경우는 고객의 대안에 대한 조사가 철저히 필요하다.

이런 조사는 고객 인터뷰를 통해서 할 수 있다. 인터뷰를 통해 시장에 어떤 대안들이 있고 왜 고객들이 각각의 대안을 선택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고객의 대안을 이해하면 사업의 핵심 고객을 의미 없는 인구통계학적으로 정의하는 것이 아닌, 고객의 행동, 즉 대안을 사용하고 있는 고객으로 매우 명확하게 정의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런 정의는 고객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힌트를 준다.

대안을 알기 위해 고객 인터뷰를 하는 것은 그 이상으로 사업 아이디어를 가다듬을 기회를 제공해 준다. 인터뷰를 하다 보면 놀라운 방식으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고객을 (거의 100%의 확률로) 만나게 된다. 이는 더 나은 솔루션에 대한 인사이트를 준다. 고객이 대안을 사용하는 전후의 맥락을 이해하면, 솔루션에 작은 기능을 추가하여 쉽게 진입할 수 있는 시장 기회를 발견할 수도 있고, 원래의 아이디어보다 더 좋은 사업 아이디어를 발견할 수도 있다.

 

500 스타트업 코리아에서 EIR로 있으면서 파프리카 케어 앱의 고객 개발을 도왔었다. 처방전에 나와 있는 약 하나 하나를 네이버 검색으로 검색해 보는 사람들이 이 앱의 핵심 고객이었다.
 

예를 들어 파프리카케어라는 처방전 촬영 앱이 있는데, 고객 인터뷰 결과 고객의 현재 대안은 처방전의 약을 하나하나 네이버에 검색하는 것이었다. 파프리카케어 앱은 처방전을 찍기만 하면 약 이름과 관련 정보를 찾아 주었으니, 하나하나 검색하던 고객의 대안 대비 현저히 편해지는 것이었다. 즉 핵심 고객은 처방전을 받고 네이버에서 약 검색을 하는 사람들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인터뷰를 통해 이 사실을 확인한 다음에는 고객을 모객하는 채널도 분명해졌다. 약 이름들을 키워드로 하는 검색 광고가 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또한, 환자는 처방전을 약국에 가져갈 때 보통 약사의 추천에 의해서 처방전에 나온 약과 관련된 영양제 등을 함께 구매하는 경우가 많았다. 파프리카케어 앱은 그런 약사가 하는 매약 (추가로 약을 파는 것)을 앱 내에서 대신해 주는 수익 모델을 발견하기도 했다.

 

 

고객의 문제, 대안을 알기 전까지는 확신하지 말기

 

우리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고 또 잘 할 수 있는 일이면 그 일이 하고 싶어진다. 창업가는 그런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사업 아이디어를 발견하면 온몸에 아드레날린이 솟구쳐 오른다. 그리고 그 사업 아이디어에 대해 검증되지 않은 확신을 가지기 쉽다.

고객의 문제를 정확히 아는 것은 그런 확신을 검증하는 가장 첫 번째 단계 중 하나이다. 그리고 그런 고객의 문제는 고객이 이용하는 현재의 대안에 대해 명확히 이해하기 전까지는 “사업이 될 고객의 문제”를 발견하기 전인 것이다. 그때는 고객 인터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전에 주변 사람들에게 사업 아이디어를 흥분에 차서 설명하거나, 법인을 세우거나, 팀 빌딩을 하거나, MVP를 먼저 만들거나 하는 행동들은 사업을 검증하는 시간이 더 늘어나게 만들지 않을까?

 

 

 

해당 콘텐츠는 김태현(tkim.co)님과 모비인사이드의 파트너쉽으로 제공되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