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 ft. 이날치

 

 

 

8천만 바이럴 영상 made by 한국관광공사


최근 한 셀럽 무첨가 영상이 유튜브에서 큰 화제가 되고 있다. 3개의 영상이 시리즈로 제작되었는데 3개 영상 조회수가 합하면 무려 8천만 조회수가 넘는다.

 

 

8천만 조회수가 크게 감이 오지 않는다면 올해 또 다른 화제였던 가수 비의 ‘깡’ 뮤직비디오를 보자. 하루 1깡, 3깡이라는 표현이 생겨날 정도로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냈는데도 2천만 조회수가 조금 안된다는 것을 고려하면 얼마나 많은 관심을 받았는지 대략 감이 온다. 해당 콘텐츠는 이름하여 ‘Feel the rhythm of KOREA’. 직역하면 ‘한국의 흥을 느껴라’ 정도 되는 듯하다. 원래는 ‘Come dance with Korea’로 ‘한국과 같이 춤추자’였는데 코로나19로 인해 해외 관광객들이 국내를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줄자 랜선으로라도 한국의 흥을 만끽하라고 캠페인명을 변경했다. 이쯤 되니 이런 콘텐츠를 기획/제작한 기업이 궁금해졌다. 당연히 젊은 센스로 전방위 무장한 스타트업이나 대기업의 외주를 받은 광고기획사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관광진흥을 위한 공공기업 ‘한국관광공사’의 주도 하에 제작되었다.

 

 

 

 

센스하면 제일기획보다 한국관광공사?


국내에서 크리에이티브로 가장 영향력 있는 광고기획사를 뽑으라고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제일기획을 떠올릴 것이다. 제일기획은 1973년 삼성그룹의 하우스 에이전시로 출발하여 1998년 증권거래소에 상장하였고 2008년 영문명을 ‘Cheil Worldwide Inc.’로 바꾸며 세계를 무대로 사업을 전개중이다. 그리고 광고계의 아카데미 어워드와 같은 위상을 가진 칸 라이언즈에서 매년 연금 타가 듯 수상을 한다.

 

 

 

역시 트렌드를 선도하는 제일기획답게 피자알볼로 광고에 이날치와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를 섭외하였다. YouTube 업로드 시점만 보면 한국관광공사보다 한 달 정도 앞서 업로드하였다. 그런데 왜 알볼로 광고는 한국관광공사의 ‘Feel the rhythm of Korea’만큼 주목을 받지 못한 걸까? 많은 사람들이 우선 알볼로 광고는 내수 시장을 대상으로 만들었고 ‘Feel the rhythm of Korea’는 해외시장을 타깃으로 하기에 규모에서 그 차이가 발생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사실 그건 결과론적인 해석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예로, 요식업을 시작하는 두 친구가 한 명은 서울에서 식당을 열고 한 명은 지방 소도시에서 열었다면 무조건 서울에서 식당을 하는 친구가 유리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인구밀도는 더 높을지 몰라도 그만큼 임대비를 포함한 고정비용도 높고 경쟁도 심하기 때문이다. 내가 두 광고를 보면서 느낀 점은 알볼로 광고는 조금 더 피자에 중점을 두었다면 ‘Feel the rhythm of Korea’는 의도적이겠지만 철저히 주객전도된 느낌이다. ‘서울’과 ‘부산’ 같은 관광명소가 철저히 배경이 되고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와 이날치의 보컬이 핵심이 된 짧은 뮤직비디오처럼 연출했다. 결국 광고 같지 않은 광고로 하나의 완성도 높은 콘텐츠로 승화시켰다. 광고 아닌 콘텐츠에 대중이 반응하는 것은 당연지사 아닌가?

 

 

넓은 길이 아닌 좁은 길을 걷다.


이날치의 음악성도 독보적이고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개성 있는 안무도 전례가 없을 정도로 독창적이지만 나는 그 누구보다 이 캠페인을 기획한 담당자가 궁금했다. 넓고 안전한 길(안전빵)이 있는데 왜 굳이 좁은 길을 택했을까? 웬만한 확신이 없으면 내리기 어려운 결정을 내린 배경이 궁금했다.

 

도대체 어떻게 동료 임직원들을 설득한 걸까?

 

한 매체 인터뷰에서 밝혔지만 공사 내 동료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고 한다. 우선 기존에 제작되었던 캠페인과의 결이 무척 다르다. 그동안 전통인 것 마냥 케케묵은 공식을 그대로 답습하길 거부한 이번 기획안은 내부에서도 검토 단계에서 우려를 표했을 정도로 다소 파격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뚝심 있게 밀어붙일 수 있었던 이유는 그럴 듯 한 광고보다 몇 번이고 다시 보고 싶은 콘텐츠를 제작하겠다는 기획자의 의지가 확고했다. 그렇게 계속된 설득 끝에 제작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한국관광공사의 추후 홍보전략을 재고해야 할 정도로 파급력이 컸다. (설마 글로벌 바이럴을 경험했는데 다시 이전 공익광고 포맷으로 돌아가진 않겠지?)

 

 

 

몰입을 저해하는 요소는 모두 배제

 

‘Feel the rhythm of Korea’를 보면서 놀랐던 부분이 있다. 바로 자막이다. 분명 명소에 대한 소개를 브로셔 마냥 길게 자막으로 화면을 가득 채우고 싶은 욕구가 가득했을 텐데 잘 참았다. 화면 여백이 남으니 뭔가 정보성 글을 하나라도 더 넣어야 되는 거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을 텐데 거의 박지성 선수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 태클로 상대팀의 역습을 차단하듯 매끈하게 잘 끊어냈다. 친절이 곧 배려라고 생각하며 제공한 정보가 되려 TMI로 작용해 몰입을 해칠 수 있다. 흥미롭고 궁금증을 유발하는 영상이라면 이용자들은 알아서 검색을 한다. 많은 이용자들에게 그 정도 소일거리는 수고스럽지 않고 시간 또한 충분히 투자할 용의가 있다.

 

 

 

‘Feel the rhythm of Korea’의 또 다른 특징은 한류스타의 부재(不在)이다. 슬로모션으로 국내 명소를 거닐던 한류스타가 상업적인 미소와 함께 “한국에서 만나요”라고 말하며 롱샷이 되는 게 일반적인 스토리라인이었다. 그런데 그런 기존의 공식을 깨버렸다. 반대로 생각해보자. 한국에서 지한파 할리우드로 통하는 휴 잭맨이 호주의 명소를 배경으로 “지금 당장 호주에서 만나요”라고 하는 광고가 제작되어 송출되었다고 하자. 그렇게 특정 셀럽 중심의 광고에 후한 점수를 줄 수 있는 사람들은 해당 셀럽에 대한 호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 외엔 극도로 적을 것이다. 최대한 많은 잠재적 방문객들에게 전달되고 각인되어야 할 광고 의 도달율이 매우 제한적이라면 과연 좋은 광고라고 할 수 있을까?

 

 

 

이날치, 국악을 재해석하다


사실 이번 광고 영상의 초대박 흥행의 대주주는 이날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악은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라고 자부하지만 정작 대중은 잘 알지도 즐기지도 못했다. 올해 JTBC에서 방영한 ‘팬텀싱어 시즌3’에서 고영열이 소리꾼 최초로 최종 12인에 뽑히며 최종경합까지 치르며 많은 관심을 받았던 것이 그나마 큰 수확이었다.

 

 

 

다만, 크로스오버를 지향하는 프로그램 특성상 본인의 주 분야보다는 다른 장르의 음악에 꾸준히 도전하며 소리꾼으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주기에는 다소 기회가 적었다. 그런데 이날치가 국악이 얼마나 중독성 있고 신이 나는 음악인지 이번에 제대로 보여주었다.

 

 

이런 게 바로 장르의 재해석이지 않을까?

 

누군가는 이날치가 전통이 깊은 우리나라의 문화를 욕보였다고 평한다. 하지만 거꾸로 묻고 싶다. 대중성이란 일반 대중이 친숙하게 느끼고 즐기며 좋아할 수 있는 성질을 말한다. 한 나라의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고 즐기지도 못하는 대중성이 결여된 문화가 해당 국가를 대표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세월이 지나면 대중의 취향도 바뀌기 나름이다. 우리의 옛 조상들이 한복을 주로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후손들에게 한복을 강요할 수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개량한복은 기존 한복의 진입장벽을 낮춰 많은 현대인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날치의 저력은 국악을 개량한복처럼 현대인들의 취향에 맞추면서도 그 마성의 매력을 절대 잃지 않는 데 있다고 본다. 앞으로도 ‘Feel the rhythm of Korea’의 캠페인이 종료되어도 이날치가 대중으로부터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을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이다.

 

 

 

그들의 춤사위는 결코 모호하지 않다


‘Feel the rhythm of Korea’의 영상 속 대한민국의 명소들을 그저 잠시 스쳐가는 배경으로 만들어버린 무용단이 있다. 바로 영상 속 절정의 흥을 선보인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다. 앰비규어스의 의미는 ‘모호한’이지만 그들의 춤사위는 결코 모호하지 않다. 우스꽝스러운 복장과 과장된 몸짓이 오히려 완급 조절하듯 그들의 춤에는 여유가 넘친다.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합을 맞추다가도 다시 자연스럽게 각자의 춤을 추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어깨가 들썩이게 한다. 이전에는 비보이들이 자주 출연하여 경이로운 브레이크 댄스 동작들을 구사하며 시선을 끌었다. 사실 범접할 수 없는 묘기에 가까운 동작들은 흥을 부르기보다는 그저 감탄을 자아낼 뿐이었다. 하지만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는 일반인들도 따라 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동작이 크고 신나는 춤사위를 보여준다. 거기에 그들의 의상은 화룡점정을 찍는다. 이순신 장군을 연상시키는 투구와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즐겨 쓰던 정자관을 쓰고 거기에 선글라스까지 착용한 이들의 의상은 퓨전 그 자체다.

 

 

 

8천만이 보았는데 B급 감성이라고?

언론에서는 ‘Feel the rhythm of Korea’를 B급 감성이라고 하는데 사실 쉽게 수긍이 되지 않는다. 전 세계에서 8천만 이상 조회수가 나온 광고 영상이 B급이라면 A급은 도대체 어떤 영상을 말하는 걸까? 단순히 기존의 포맷과 다르다는 이유로 조금 더 유머러스하다는 이유로 B급 감성으로 치부되는 것은 아쉽다. 광고에서 여러 번 나왔던 아래의 작품을 다들 기억할 것이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1907년작 ‘키스’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복제품이 만들어졌다고 할 만큼 대중을 사로잡았다. 클림트의 작품들은 그의 성격과 일생을 대변하듯 하나같이 도전적이고 실험적이었다. 국악과 같은 전통문화도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관중을 맞을 준비를 해야한다. 마지막으로 클림트가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빈 미술가 협회를 떠나 자유로운 예술을 지향하며 내걸었던 슬로건으로 글을 마치겠다.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

 

 

 

 

해당 콘텐츠는 Jimmy Cho님과 모비인사이드의 파트너쉽으로 제공되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