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에 하나가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수많은 업무들을 모두 쳐내기엔 부족한 시간을 어떻게 배분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창업의 과정에 수반되는 여러 자원들 중에서도 시간과 관련해서는 그 중요성에 대해서 여러 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개인의 삶의 챙기는 가운데 리더로서의 삶을 이어가야 하고, 동료들의 삶을 챙기는 가운데, 법인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해야 하는 창업가들은 기본적으로 다중 업자들, 즉 멀티태스커다. 다양한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우선순위에 따른 시간의 배분과 활용이 가장 중요하다.

내가 창업자인데, 만약 시간이 충분하다고 느낀다면, 뭔가 잘 못 돌아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시간이 너무 없다고 느낀다면, 잠시 멈춰 설 필요가 있다. 앞으로 시간이 충분하다고 느낄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고, 시간이 너무 없다는 것은 늘 많은 일에 파묻혀 한 치 앞만 보고 가고 있다는 신호일 가능성이 높다.

 

불공평한 시간과의 싸움

 

시간에 대한 잘못된 신화 중에 하나가 시간이야말로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최고의 자원이라는 것이다. 정말 그런가? 시간이 최고의 자원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지만, 절대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시간의 상대성은 물리학에서도 증명되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중력이 클수록 시간은 느리게 간다. 물리학 법칙의 지배를 받는 우리의 현실 세계에서 시간은 상대적이다. 절대 시간이야 1분 1초가 모두에게 동일하지만,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상대적인 시간은 다르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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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활용에 대한 고민은 시간이 불공평하게 주어진다는 인식에서 시작해야 한다. 물리학에서는 중력의 크기가 시간을 느리게 만들지만, 삶과 일에서는 자본의 크기가 시간을 지배한다. 자본이 풍부하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아니 더 많은 시간을 누릴 수 있다. 물건을 구입하는 데에, 오늘 무엇을 먹을 것인지에 대해, 출퇴근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회사 근처로 집을 옮길지 말지를 고민하는 데에 자본은 큰 영향을 끼친다. 당장 오늘 출퇴근할 때 택시를 탈 것인지,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인지를 고민했던 순간을 생각해보라. 자본이 풍족하면, 시간은 느리게 간다. (창업자들이 기를 쓰고 투자를 받으려 하는 이유도 더 많은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삶과 창업에 있어서 중력은 자본의 크기다. 자본이 많을수록 시간은 느리게 흘러간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과 그렇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의 시간은 애초에 다르게 흘러왔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면, 그 속에서 창업자들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더 많은 일을 해낸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더 많은 고객, 더 많은 임팩트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간에 대한 감수성

 

30분이면 마무리할 수 있을 줄 알았던 일을 2~3시간 이상 들여서야 마무리한 경험을 갖고 있지 않은가? 이런 일이 자주 반복된다면, 시간에 대한 감수성을 다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내가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고, 얼마나 효율적인지, 시간을 더 확보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해보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가 하는 일은 정확한 현실인식,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시간, 나에게 주어진 시간, 내가 삶을 이어가기 위해 기본적으로 투입할 수밖에 없는 시간에 대한 인식을 기반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가 매일 입을 옷을 고르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매번 같은 옷을 입고 다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엄청난 자본가가 된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나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역시 옷장에 같은 옷들이 즐비하다. 선택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은 일상에서 선택지를 하나라도 더 줄이면, 스트레스도 그만큼 줄고, 시간은 그만큼 확보가 가능하다. 시간의 감수성은 시간의 가치를 다시 돌아보고, 자신의 삶에서 필요 없는 군더더기를 잘라내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양보다 중요한 기준

 

시간의 활용에 대해서는 상황에 따라 너무나 많은 요소들이 작용하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이야기하기 어렵다. 그때그때, 회사의 상황, 자원 현황, 이슈에 따라 다르게 기준점을 설정할 수밖에 없다. 우선순위는 바뀐다. 하지만 삶, 일, 창업에 있어서의 중요한 몇몇 작업들은 바뀌지 않는다.

창업자들이 개인으로서, 리더로서 해야 하는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일들은 고정되어 있다. 잠, 독서, 휴식, 운동, 가족, 연애, 가족과 같은 창업자의 개인적인 것들부터 구성원들과의 개별 티타임, 함께하는 식사, 조직 스마트워크와 문화/시스템과 같은 것들을 돌아보는 리더로서의 일들이 대표적이다.

최대한 많은 시간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한 기준을 잡는 일도 수반되어야 한다. 변하는 상황에서도 적용되는 원칙을 잡는 것. 결국 시간과의 싸움은 기준과의 싸움이다.

 

시간을 14개로 쪼개 쓰기

 

창업자들에게 조언하는 시간 관리의 유일한 방법은 다소 근대적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시간을 쪼개서 쓰는 것이다.

시간을 어떻게 쪼갤 것인가? 내가 창업자들에게 권장하는 것은 일주일의 매일을 오전/오후로 2등분하여 14개의 슬롯으로 쪼개는 방법이다. 그리고 이 14개의 슬롯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자신만의 기준을 잡아나가는 것이 시간 활용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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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14개의 슬롯으로 쪼개도록 권장하는 것은 시간을 뭉치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집중하는 시간의 뭉치가 필요하다. 분절되는 시간 속에서 번득이는 인사이트가 생겨나기도 하지만, 일을 만들어나간다는 것은 결국 깊이고, 완결성이다. 아이디어는 분절된 시간 속에서 튀어나오는 것이지만 그것을 현실로 만드어내는 것은 집중력이 발휘되는 시간의 뭉치다. (저녁 시간은 계산하지 않고 그냥 남겨둔다. 일종의 버퍼인데, 밀린 업무나, 갑작스러운 업무로 인한 야근, 약속, 네트워킹, 행사, 술자리, 미팅 등 예측이 불가능한 일들이 거의 일상적으로 있기 때문이다.)

 

14개 슬롯 활용하기

 

시간을 잘 쓴다는 것에서 ‘잘’이라는 말은 우선순위라는 것이기도 하고,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선순위라고 부르든 중요한 것이라고 부르든, 어떤 상황에서도 시간을 잘 쓰기 위해서는 중요하고 필수적인 일들에 시간을 배정해두는 것이다. 최소한 슬롯별로 업무를 배정하면, 가장 중요한 한 두개는 놓치지 않는 것이 이 방법의 장점이다.

다음은 시간 슬롯을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해 권장하는 기준이다.

 

2개의 슬롯은 개인적인 충전과 회복을 위해 사용한다.

아이디어도, 생각도, 체력도 꺼내 쓰기만 하면 어느새 밑천이 바닥나기 마련이다. 운동과 같은 체력의 회복, 독서나 아티클 일기 등 생각과 아이디어의 충전을 위해 시간을 써야 한다. 창업자의 시간은 주 7일 내내 멈추지 않기에 오래가기 위해서는 삶을 돌볼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삶을 돌볼 줄 아는 리더가 동료들의 삶 역시 돌볼 수 있다.

 

1~2개의 슬롯은 친구, 연인 및 가족을 위해 사용한다.

개인적 행복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리더십이나 조직의 행복이 제대로 실현되기 어렵다. 따라서 친구, 연인, 가족과의 시간은 기본 값으로 세팅한다. 개인적 사정, 연애, 결혼, 출산유무에 따라 얼마나 슬롯을 할당할 것인지는 바뀔 수 있지만 필수적으로 포함되어야 한다.

 

1개의 슬롯은 동료들을 위해 사용한다.

의외로 대표들이 간과하는 것이 구성원들과 1:1로 면담을 하는 일이다. 여럿이 나눌 수 있는 이야기도 있지만, 단 둘이서만 나눌 수 있는 이야기도 있는 법. 동료의 개인사, 고민, 성장, 업무, 다른 동료들과의 관계 등 개인적 삶과 조직에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함께 나누는 시간은 필수적이다. 특히, 밀레니얼 세대들은 개인의 성장에 관심이 많다. 한 명 한 명 동료의 성장을 대표자가 고민하고 피드백을 해주는 것은 중요하다. 심지어 조직의 규모가 커지면 동료 한 명 한 명과의 시간을 보내는 일은 불가능해진다. 물론 때에 따라서는 1:1이 아니라 전체 동료들과의 시간에 할애하기도 한다.

 

1개의 슬롯은 조직 시스템/문화/일하는 방법 등을 위해 사용한다.

의외로 많이 간과하는 것이 조직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이다.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우리는 조직을 이루었다. 공동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얼마나 효율적이고 또 효과적인지, 더 나은 방법은 없는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사용하고 있는 업무/커뮤니케이션 툴부터 회의 방식, 공유/보고 방식까지 혼자서 혹은 동료들과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1개의 슬롯은 데이터를 확인하거나 방향을 고민하는 데에 사용한다.

창업은 달려가는 일이다. 하지만, 멈추어서 돌아보는 사유의 힘을 갖지 못한다면, 성찰하는 힘을 갖지 못한다면… 폭주기관차다. 브레이크를 잡는 일, 어느 길을 택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일은 달려가면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멈추는 시간을 꾸준히 확보해야 한다.  

 

이 기준을 따르면, 이미 7개의 슬롯은 개인과 조직을 돌보는 데에 사용된다. 그렇다. 시간을 14개로 쪼개서 사용하는 것의 핵심은 창업자 자신의 삶을 돌보고, 동료들의 삶, 서로의 조직적 삶을 돌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기준을 잡는 것이다.

남은 것은 7개의 슬롯이다. 남은 슬롯을 사용하는 데에 있어서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고객/서비스 개발, 영업과 마케팅에 최대한 많은 슬롯을 배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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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다 보면, 당장 눈에 보이는 일들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게 된다. 갑작스러운 고객의 CS나 고객사의 미팅 요청은 우선순위를 흔들어 놓는다. 수십 통의 전화와 메일은 나를 초조하게 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오전 오후, 시간의 슬롯에 할당된 가장 중요한 일을 해내는 집중력이 필요하다.

창업자가 마주한 엄청나게 많은 일들을 해내기 위해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왕도는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업자는 시간을 통제해야 한다. 시간에 끌려가지 말고, 시간을 부여잡고, 의도대로 끌어다 써야 한다. 창업자가 시간을 잘 쓰고 있는지는 자본이 얼마나 모이고 있는지로 가늠할 수 있다. 신기한 것은 시간은 잘 쓸수록 늘어난다는 점이다. 자본이 늘어나면, 자본을 중심으로 한 중력이 강해지게 되고, 시간은 느려진다.

 

 

한상엽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