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을 건드려버린 것일까? 회의실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창업자와 컨설턴트&투자자 쪽 간의 의견 대립은 팽팽했다.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가격을 정해야 하는 자리였다. 창업자는 20만 원 후반대, 컨설턴트와 투자자 사이드는 15만 원대가 적당하다고 주장한다. 

 


 

창업자에게 신제품은 하나의 자식이다. 이 하나를 세상에 내놓기 위해 투입한 시간과 노력, 열정과 간절함이 얼마나 클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연구 개발 비용도 수억 원은 들었다고 한다. 이렇게 만들 제품의 가격이 생각보다 낮게 책정되니 마음이 아플 수도 있다.  자식이 가져온 낮은 점수의 성적표를 보는 부모의 마음이랄까? 가격은 일종의 제품 가치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컨설턴트와 투자자들의 관점은 아주 다르다. 제품에 대한 애착이 창업자보다 적다. 오히려 그래서 더 객관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 역시 완벽한 건 아니다. 일반화할 순 없겠지만, 이들은 판매량과 시장 점유율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마켓 셰어를 높이려면 가격이 낮아야 유리하다시장 점유율, 판매량 등은 아주 직관적이고 정량적인 성과이다. 그럴싸한 결과는 일단 나온 것이다.

 

빼고 모두가 가격을 낮추려 한다

 

비즈니스에서 가격을 높이자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그래서 창업자는 아주 외롭다. 심지어 유통 쪽 관계자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곳은 판매량이 많아야 돈을 버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유통업자는 심지어 제품을 0원에 팔아도 택배비 차액으로 돈을 벌 수 있다. 3자 물류 업체들도 마찬가지이다. 

e커머스 플랫폼의 정책 또한 판매량 지향적이다. 네이버 쇼핑이나 쿠팡 등 어떤 플랫폼이든 공통점이 하나 있다. 판매량이 많아야 상위 노출이 된다는 것이다. 이 상위 노출을 위해서 제 살 깎아 먹기도 감수하고 가격을 낮춰 1위 자리에 목숨 거는 사람이 많다. 이런 커머스 업체의 정책 역시 가격 인하를 부추긴다

 

 

그래서 이 창업자는 외로운 싸움에서 도움을 받고자 나를 찾아왔다. 바로 프라이스 엔지니어링 프로젝트를 착수했고, 아주 흥미로운 데이터가 나왔다. 계약상 자세히 밝힐 순 없지만 의료기기 제품이었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이는 1위 업체도 있었다. 그 업체가 14만 원에 제품을 팔고 있었다. 그래서 대표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15만 원대를 주장한 것이다. 

 

프라이스 엔지니어링

 

프라이스 엔지니어링(PE)은 이렇게 남의 눈치를 보면서, 혹은 감에 의존해서 가격을 정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데이터를 근거로 가격을 정하는 공학적인 접근법이다. 데이터는 꽤 자주 우리의 직관과 다른 결과를 보여주는데 이래서 PE의 진면모가 드러난다. 이번 사례 역시 그중 하나이다. 데이터를 함께 살펴보자.

 

 

먼저 우리 팀에서 경쟁자들의 판매가를 분석한 뒤 테스트해볼 가격대를 정했다. 테스트 결과 25.9 원과 26.9 구매 전환율이 가장 높게 나왔다. 고가의 상품이란 점과, 온라인 광고를 통해 유입된 잠재 고객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구매 전환율 자체는 그리 나쁘지 않다. 이에 반해 더 저렴한 10만 원 후반대에서 구매 전환율이 1%도 안 된 점은 아주 놀랍다. 

높은 가격의 제품은 신뢰도를 준다. 가격은 제품의 품질을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해당 제품은 의료기기라는 특성상, 저가 제품을 꺼리게 된다. 돈 아끼려다 내 몸을 망치긴 싫으니 말이다. 그래서 오히려 높은 가격대를 선호하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말이라 생각할 수 있다. 문제는 높은 가격이란 정확히 얼마일지 파악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데이터이다. 그래프를 보면, 20만 원대로 올라가니 구매전환이 더 잘 일어났다. 20만 원은 넘어야 좀 믿을만한 제품이라고 생각이 드나 보다. 그러다가 21.9만 원을 기점으로 다시 하락하기 시작하더니 25.9만 원에서 확 올라간다. 그리고 28.9만 원에선 다시 0으로 떨어졌다. 

 

문제는 어디까지 올려야 되는지 파악하는

 

이제 우린 얼마나 높아야 하냐에 대한 답을 얻었다. 25.9만 원 ~ 26.9만 원까진 올려도 된다. 그리고 혹시 할인 행사를 할 거면 20.9만 원이 적당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누구나 가격을 낮추고 판매량을 높이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뭔가 제품이 팔리고 있는 상황이, 창고에 쌓인 재고를 보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그 이유에 대한 연구를 아직 보진 못했지만 나의 개인적인 의견은 그렇다. 

 

 

아무쪼록 가격 결정에 대한 관점을 바꿔야 함은 분명하다. 가격이 높아야 더 잘 팔리는 제품이 있다. 당신의 제품이 그렇진 않은지 객관적으로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 경쟁자 눈치를 보며 가격을 정한다. 하지만 우리가 장기적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는 가격 선도자 포지이다. 가격 선도자가 되면, 다른 경쟁자들이 내 눈치를 보고 가격을 정하게 된다. 내가 가격을 올리면 남들도 따라오고, 내가 내리면 남들도 내린다.

높은 가격이 유리한 제품군과 시장 상황에 대해서는 앞으로 가격학개론 시리즈에서 자세하게 다뤄볼 예정이니, 관심이 있다면 구독하기를 눌러 소식을 놓치지 않길..!!

 

 

이대표는 재택근무중님의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