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브랜딩을 하지 않는 회사들의 이야기를 했는데, 이번엔 정반대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광고를 하는데 광고 속에 제품이 없어요. 아니 제품 이야기를 거면 들여서 광고를 ? 하는 회사들이 대부분일 겁니다. 

저도 광고 회사를 오래 다녔지만, 광고주와 신규 광고 건으로 미팅하면 제일 처음 하는 말이 ‘자 그래서 이번 광고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USP(Unique Selling Proposition)는 뭔가요?’ 하는 거였으니까요. 거의 모든 광고주는 광고에서 우리 제품이 어떻게 보이느냐를 가장 신경 썼습니다. (음.. ‘거의’는 취소하겠습니다) 

흔히 ‘제품 없는 제품 광고’라 불리는 현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대표적으로는 ‘침대 없는 침대 광고’를 했던 ‘시몬스’가 있습니다. 영상만 그런 게 아니죠. 청담에 있는 팝업 스토어인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에도 침대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미 이 광고에 대해선 지겹게 들으셨을 테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저는 정말 이런 브랜딩이 효과가 있을까?라는 측면에서 접근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중앙일보에 이와 관련한 기사가 실린 적이 있어요. 

 

침대는 자주 소비가 일어나는 품목이 아니다. 평생 동안 많아야 3~4개의 침대를 구입하는 소비자들에게 브랜드를 인지시키고 제품을 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몬스 침대가 침대와 관련 없는 브랜딩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재밌어서 관심을 갖게 되고, 한 번 괜찮다는 인식이 생기면 침대 구입 시기가 왔을 때 자연스레 이름을 떠올릴 수 있다.

– 재밌어야 팔린다… 시몬스의 침대 없는 마케팅 (중앙일보 기사)

 

재밌어야 팔린다..? 여기에 공감하시나요? 하지만, 시몬스의 경우는 위에 언급된 대로 평생 많아야 3~4개 정도를 구매하는, 평소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 브랜드이다 보니 ‘궁여지책’으로 이런 마케팅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또 이미 시몬스 =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라는 강력한 소비자 인식을 바탕으로 오직 시몬스를 트렌디하게 유지시키는 방법만 찾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일상으로 구매하는 브랜드, 사려고 생각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구매가 일어나는 제품들에도 이런 방식이 통할까요? 

 

 


 

 

제품 빠졌을까

 

이것이 특정 브랜드나 카테고리에만 통하는 것인지 일반적인 현상인지를 알기 위해 한 걸음 더 들어가 봐야겠습니다. 

핵심은 소비자가 지불하는 ‘비용’에서 ‘제품’이 차지하는 가치의 비중이 낮아졌기 때문입니다. 이게 무슨 얘기냐구요? 이제 소비자는 나의 만족을 위해 비용을 지불합니다. 이런 심리는 두 가지 현상으로 이어지죠.

 

  1. 어차피 ‘만족’을 위한 카테고리의 제품이 아니지만 꼭 필요하다면 가장 저렴한 것을 선택한다. 
  2. 나의 ‘만족’을 위해서는 ‘예쁜 쓰레기’도 구입할 수 있다. 

 

1과 관련해서는 PB나 인터넷 최저가 상품을 구매하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2와 관련해서는 굿즈나 다꾸 관련된 아이템을 사거나, 스타벅스 사은품을 받기 위해 정작 커피를 버리는 현상 같은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리셀을 위해 사는 분은 제외하고)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현상은 당연히 1번이 아니라 2번이겠죠. 소비자는 어디에서 만족을 얻는가 하는 개념은 꽤 중요하니, 이번에도 먹는 것으로 예를 들어 설명해 볼게요. 

예전엔 한 끼 먹는 것이 꽤 중요했습니다. 삼시세끼 잘 챙겨 먹는다는 건 내가 열심히 일하는 것에 대한 보상이죠. 돈과 시간을 들여 매끼 열심히 찾아 먹었습니다. 점심시간이면 칼 같이 오늘 점심은 뭐 먹지? 하면서 일어났고, 야근할 때 하더라도 일단 저녁부터 먹고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저녁 시간이 길어져서 정작 일을 못할 때도 많았죠) 

하지만 언젠가부터 아침을 거르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요즘엔 회사에서 점심 먹자고 해도 대충 때우겠다는 사람이 많죠. 그리곤 편의점 도시락을 사 먹어요. 

왜 그러냐구요? 직장 동료끼리 같이 식사 한번 안 하려는 삭막한 세태를 탓하는 분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먹는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보상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그 돈 아껴서 오마카세 한번 가고 싶어 합니다. 아니면 내가 원하는 다른 취미 활동에 투자할 수도 있구요. 

제품보다는 경험입니다. 소유보다 나의 만족이 중요하구요. 이제 제품은 전반적으로 흔해지고 평준화 됐거든요. 일본이란 나라가 경쟁력을 잃은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봅니다. 이제 지난번 제품보다 더 개선(카이젠이라고 했죠)된 제품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만약 적당한 제품으로 계속 시장에서 버틸 생각을 한다면 마음에 점 하나 찍고 건너뛴다는 ‘점심(點心)’ 신세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알고리즘이 기억을 대신한다

 

앞서 시몬스 관련된 기사를 인용했죠한번 괜찮다는 인식이 생기면 언젠가 구매하게 ..’ 같은 아날로그적인(또는 다소 낭만적인) 분석을 소개했습니다. 예전엔 광고라는 게 그런 역할이었어요. 수십 억을 들여 광고하는 이유는 마트나 백화점 한번 기억해줘! 하고 바라는 거죠.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그걸 얘기하기에 앞서 이케아에서 만든 영상을 한번 보시죠. 

 

 

 

 

이케아는 왜 연어를 팔까요? 게다가 잘 찾아보시면 이케아 요리 레시피북도 있습니다. 혹시 가구가 잘 안 팔려서 푸드 사업에 진출하기로 한 걸까요? 

시몬스든, 이케아든.. 이런 다소 엉뚱해 보이는 행보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좀 더 사이버틱한 관점에서 분석을 해볼게요. 

여러분이 어쩌다 시몬스의 광고를 보게 되고, 또 친구와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에 놀러 가서 굿즈를 샀다면.. 또 시몬스에서 만들었다는 ‘버거샵’에 가서 버거를 먹어 봤다면 아마도 열에 아홉은 내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릴 겁니다. (그러지 않을 거면 갈 이유가 없죠)

시몬스는 제품 없는 제품 광고나 팝업 스토어에 ‘아메리칸 빈티지’라는 코드를 숨겨 놓았습니다. 이케아의 연어나 레시피북 등에는 ‘홈’ ‘DIY’ 등이 녹아 있죠. 이 브랜드들은 우리 브랜드를 좋아할 성향의 사람들을 모으고 서로 영향을 받게 만듭니다. 

 

 

시몬스의 ‘아메리칸 빈티지'(좌)와 이케아의 ‘DIY'(우)가 좀 더 대중적인 소비자 취향에 녹아 있다.

 

 

즉, 한번 괜찮다는 인식이 생기면…’이 아니라, 시몬스가 또 이케이가 주도하는 무한 알고리즘에 함께하길 바라는 겁니다. 소비자가 그저 잘 기억했다가 언젠가 사길 바라는 건 너무 큰 도박이죠. 

지속적으로 이 알고리즘 안에 녹아든 이들은 자연스럽게 ‘아메리칸 빈티지 스타일’의 침대를 찾게 되고, 레시피북으로 요리를 만드는 것처럼 ‘쉽게 조립할 수 있는 가구’를 사게 되죠. 이들을 붙들어 두기 위해 시몬스는 다양한 (아메리칸 빈티지) 굿즈를 출시하고, 콜라보를 계속할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반박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단순히 알고리즘에 의한 취향으로 사기엔 침대나 가구는 너무 비싼 제품 아닌가? 결정도 혼자 내릴 수 없지 않을까? 

물론 예전엔 내가 사는 제품이지만 남의 눈치를 봐야 할 때가 많았죠. 하다 못해 술자리에서 맥주나 소주 한 병을 시킬 때도 뭘 시킬지 물어봐야 했습니다. 대중적인 인지도를 쌓는 브랜드가 살아남았던 이유죠. 

하지만 이제 혼술을 합니다. 혼자서 곰표 맥주를 먹든, 진라거나 원소주를 먹든 오로지 나의 만족을 위한 소비를 하죠. 내 취향에 대한 존중은 ‘인친’들에게 받으면 되구요. 

이제 이 소비자들이 사는 세상, 이들이 보고 있는 알고리즘에서 벗어난다면 기회는 없습니다. 제가 봤을 땐 이것이 제품이 없는 제품 광고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마케팅해야 하는 환경은 엄청나게 달라졌습니다. 소비자도 달라졌고, 미디어도 달라졌고, 경쟁사들도 달라졌습니다. 나이키의 경쟁사는 닌텐도라더니, 요새는 넷플릭스라고 합니다. 그럼 우리 경쟁사는요? 

이케아가 연어를 팔고, 시몬스가 버거를 팔고, 사람들은 곰표나 진라거 맥주를 마시고 있습니다. 브랜드가 해체되고 커뮤니케이션이 달라졌습니다. 우리 제품이 얼마나 좋은지를 이야기해서는 소비자는 기억은커녕 보지도 않습니다. 

그럴수록 브랜딩은 중요해지죠. 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할지 막막합니다. 요즘 브랜딩은 어떻게 해야할까요? 다음 글에선 이 지점에서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최프로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