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가 아닌 기여

 

 

 

 

소위 말하는 ‘자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30대 후반인데 팀장인 것과 아닌 것, 30대 중반인데 일을 같이 하는 파트원이 있는 것과 없는 것 같은 것 말이죠. 나중에는 작은 곳이라도 C레벨인가 아니면 좀 더 큰 곳에서 C레벨이 아닌가를 두고서 커리어에 대한 걱정을 하기도 합니다. 블라인드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이미 자신만의 답을 갖고 있지만 여전히 이들 사이에서 질문을 한 번씩을 더 해봅니다.

‘자리’는 중요합니다. 직위든 직무든 누구 앞에서 조직을 리딩한 경력이 있는지는 실제 커리어 가치에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더 그런 고민들을 하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자리’는 ‘공헌’의 결과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란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회사는 유기체입니다. 살아있습니다. 매달 조직 개편을 하는 회사도 있죠. 어제의 동료가 내일엔 보스가 되기도 하고 신입이 팀장이 갑자기 되어 있기도 합니다.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회사일수록 이런 부분은 조금 더 심하고 고인물 파티인 회사에서는 이런 부분이 상대적으로 덜 하기는 하지만 건강한 조직은 늘 역량을 중심으로 사람을 수시로 평가합니다.

그래서 높은 ‘자리’로 이직을 하는 것도 좋지만 내 역량이 조직 내에서 대체 불가하고 계속 성장할 수 있는가가 성공적인 이직의 첫째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서 높은 자리에 앉았지만 성과를 당장 보여주기 어렵고 새로운 공헌을 조직에서 할 수 없다면 그 자리는 곧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거나 없어지기 때문이죠. 회사의 이직 포지션 직무 기술서를 보고 내가 가진 것으로 무엇을 기여할 수 있는가가 선택의 핵심이 되어야 합니다.

이직은 가기 위해 하는 게 아니라 가서 잘 되기 위해 하는 것이니까요. 가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는 이직은 지금으로부터 떠나고 싶은 그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 내기 어렵습니다. 가서 더 잘 되어 다음이 있어야 좋은 이직이란 건 이성적으로는 알지만 실전에서는 쉽게 잊히기도 합니다.

 

“왜 거기로 갔어요?”

 

누군가가 이직한 부서와 직위를 보고 이렇게 묻는다면 정확히 할 말이 있어야 합니다.

 

“팀장을 해 보고 싶어서요.”

“C레벨 경험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물론 이런 대답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그 자리를 통해 실제로는 기여할 계획이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냥 자리만 보았고 거기서 뭘 할지 이미 예열되어 있지 않다면 금방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일에 나의 흐름대로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에 곧 처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회사는 필요 니즈에 따라 조직과 직무를 바꾸기에 자리에만 의미 부여하는 것은 중장기적으로 커리어에 의미가 없습니다. 어디 있어도 공헌할 수 있는 위치 선정을 하면 티가 날 수밖에 없기에 내가 가서 티가 날 곳에 내가 있는 게 가장 좋은 이직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물론 포기와 희생이 필요한 이직도 있습니다. 기존에는 리더의 역할을 맡았지만 팔로워가 되어야 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산업군에 랜딩한 시간이 필요한 경우죠. 잘 알지 못하는데 리더로 가서 당장 내 실력을 기대 수준보다 절하당하는 것보다는 좋은 처우로 팔로워가 되는 게 적응할 시간을 벌면서 기대치보다 높은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기여할 수 있는 포지션에 만족할만한 처우면 충분합니다. 기회는 또 오게 되어 있으니까요.

이직은 즐겁고 재미있는 커리어의 여행입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역시 다음 여행도 내가 가고 싶은 여행지에서 재미있는 기억으로 남기를 바라겠습니다.

 

 

PETER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