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에서 가장 ‘힙하고 예술적인’ 영화 브랜드를 꼽으라면 열에 아홉은 A24를 외칠 것입니다. 지난 10년간 독창적인 시선과 장인 정신에 가까운 작가주의 영화를 선보이며 시네필들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아온 A24가 최근 거센 역풍에 직면했습니다. 발단은 글로벌 테크 자이언트 구글의 AI 연구 조직, 구글 딥마인드(Google DeepMind)와 7,500만 달러(약 1,000억 원) 규모의 연구 파트너십을 체결했다는 공식 발표였습니다.
협업의 목적은 ‘AI 기반의 영화 제작 워크플로 탐색’입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팬들과 평단은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거대 자본과 테크 중심의 할리우드 생태계에서 ‘인간의 순수한 창의성’을 대변하던 언더독 요정이, 창작 생태계를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포식자인 AI와 동맹을 맺었기 때문입니다.
SNS는 순식간에 “A24가 영혼을 팔았다”,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배신감 섞인
분노로 뒤덮였습니다.

‘독창성’이라는 판타지와 ‘생존’이라는 현실의 충돌
A24가 이토록 거센 비난을 받는 이유는 그들이 지난 세월 동안 싹틔운 독보적인 브랜드 페르소나 탓이 큽니다. A24는 거대 스튜디오들이 안전한 프랜차이즈와 리부트에 매달릴 때,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유전>, <미드소마> 같은 기괴하면서도 아름다운 오리지널 IP를 발굴하며 성장했습니다. 대중은 A24를 단순한 제작사가 아닌 ‘할리우드 자본주의에 맞서는 예술의 구원자’로 신성시해왔습니다.
그러나 비즈니스의 현실은 달랐습니다. 최근 A24는 유튜버의 가상 공간 스릴러에서 착안한 영화 <백룸(Backrooms)>으로 역대급 박스오피스 성공을 거두었고, 메가 히트 게임 <엘든 링(Elden Ring)>의 실사 영화화라는 거대 프로젝트를 앞두고 있습니다. 스튜디오의 덩치가 커지고 다루는 IP의 규모가 블록버스터급으로 확장되면서, 기존의 아날로그식 제작 방식과 한정된 자본으로는 스케일업(Scale-up)에 한계가 명확해진 것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아이러니가 발생합니다. <백룸>으로 A24의 차세대 흥행을 이끈 천재 감독 케인 파슨스(Kane Parsons)는 평소 생성형 AI를 두고 “창작적 부패(creative rot)”라며 강하게 비판해온 인물입니다. 정작 스튜디오를 키워낸 핵심 창작자는 AI를 거부하는데, 회사는 AI 대기업과 손을 잡은 모양새가 된 것입니다.
결국 이번 동맹은 예술성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라기보다, 스토리보드 제작 자동화 및 프리 프로덕션 단계의 효율화를 시작으로 갈수록 천문학적으로 치솟는 제작 공정의 비용을 낮추고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철저한 비즈니스적 생존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오가는 해명과 풀리지 않는 질문들 (Q&A)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A24는 진화에 나섰습니다. 이들이 내놓은 해명과, 여전히 대중이 던지고 있는 날카로운 질문들을 통해 현재의 변화하는 상황을 짚어봅니다.
Q1. A24가 이제 AI로 각본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건가요?
A24: “아닙니다.” A24는 이번 계약이 실제 영화 제작(Production)을 위한 계약이 아닌, 순수한 연구 협력(Research Partnership) 단계임을 명확히 했습니다. AI에게 창작의 전권을 쥐여주는 것이 아니라, 제작 공정을 효율화할 기술적 도구를 연구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설명입니다.
Q2. 구글이 A24의 명작 영화들을 AI 학습 데이터로 사용하는 것 아닌가요?
Fact Check: 많은 팬이 우려하는 부분이지만, 이번 연구 파트너십 계약에는 구글에 A24의 오리지널 콘텐츠 라이브러리나 아카이브 데이터에 대한 접근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A24의 IP를 AI 학습용 제물로 바치는 계약은 아닙니다.
Q3. 왜 하필 거센 비판을 예상하면서도 지금 시점에 AI와 손을 잡았을까요?
A24: “방관자가 되기보다, 창작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서입니다.” A24는 성명을 통해 “테크 기업들이 만든 AI 도구를 일방적으로 건네받아 쓰기보다, 도구가 만들어지는 테이블에 직접 앉아 창작자들에게 유리하고 필요한 방향으로 도구의 설계를 유도하고 싶었다”고 취지를 밝혔습니다. 실리적으로 기술 주도권을 쥐겠다는 영리한 계산입니다.
Q4. 팬덤의 배신감이 극에 달했는데, A24의 비즈니스는 무너지지 않을까요?
단기적인 브랜드 이미지 타격은 불가피하지만, 비즈니스의 근간이 흔들리지는 않을 전망입니다. 최근 <백룸>의 대흥행과 <엘든 링> 같은 초 대형 라인업이 대기 중인 데다, 할리우드 감독과 배우들 역시 제작 환경이 안정적인 A24를 여전히 매력적인 파트너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결국 관객들은 기술적 논란이 있더라도 완성된 영화의 퀄리티가 압도적이라면 다시 지갑을 열 가능성이 높습니다.

영리한 돌파구인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인가
결국 이번 사태는 ‘비즈니스의 확장’과 ‘브랜드 정체성 유지’ 사이에서
모든 기업이 겪는 영원한 딜레마를 보여줍니다.
냉정하게 보면 A24의 선택은 플랫폼 권력이나 거대 자본에 종속되지 않고 차세대 기술을 선점하려는 영리한 비즈니스적 묘수입니다. AI라는 도구를 막연히 거부하기보다, 자사 IP의 힘을 무기로 개발 단계부터 개입해 ‘창작자 친화적인 툴’로 길들이겠다는 전략은 꽤 설득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마케팅 관점에서 A24는 가장 강력한 자산이었던 ‘팬들과의 정서적 유대감과 무조건적인 신뢰’라는 거대한 낭만을 잃었습니다. 대중은 이제 A24의 영화를 보며 인간의 순수한 영감만을 찬양하기보다, 그 뒤에 숨은 구글의 알고리즘을 먼저 떠올릴지도 모릅니다. 예술의 구원자에서 테크 기업의 영리한 파트너로 변모하기 시작한 A24의 모험은, 과연 영화계의 새로운 제작 표준이 될까요? 아니면 인디 감성의 종말을 고하는 신호탄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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