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IT들을 인터뷰했습니다 – 11화

 


저는 11년째 디지털 화면을 디자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상한 버릇이 생겼어요. 매끈한 요즘 화면들을 보다가 문득, 사라진 것들을 떠올리는 겁니다. 도토리는 잘 지내나. 그 많던 팝업창들은 다 어디로 갔나. 액티브 X… 아니, 걔는 안부가 궁금하진 않고요.

역사책을 쓸 실력은 안 되고, 그렇다고 궁금한 걸 참는 성격도 아니라서, 그냥 직접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한 시대를 지배하다 물러난 것들을 한 명씩 앉혀놓고 인터뷰하는 겁니다. 전성기 시절, 억울했던 오해, 물러나던 날의 기분까지. 물론 이 인터뷰는 픽션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사연은 전부 실화예요.


 

 

이번 인터뷰이는 도착부터 사건이었다. 약속 날 아침 스튜디오로 네모난 물건이 하나 배송됐는데, 젊은 스태프가 그걸 한참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저장 아이콘 굿즈네요? 귀엽다.” 실물로 만든 기념품인 줄 안 것이다. 그 순간 네모난 물건이 입을 열었다.

 

“굿즈 아닙니다. 제가 원본이에요.”

 

스태프는 사과했지만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태어나서 그를 처음 봤으니 당연했다. 매일 수십 번씩 그의 얼굴아이콘을 누르면서도, 실물은 오늘 처음 본 것이다. 그는 익숙하다는 듯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위쪽의 금속 셔터를 철컥, 철컥, 두 번 당겼다 놓으면서.

 

 

플로피 디스크 실물. 출처: 위키백과

 

 


저장하시겠습니까?


나: 정말 신기하네요. 매일 보는 얼굴인데 실물은 정말 오랜만에 봅니다.

플로피: 다들 그러세요. 제가 아마 실물보다 초상화가 유명한 유일한 기계일 겁니다. 여러분이 문서 쓰다가 습관처럼 누르는 그 네모난 그림, 그게 접니다. 컴퓨터 화면 왼쪽 위에서 40년째 같은 자리 근무 중이에요.

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플로피: 1971년에 저희 가문이 시작됐어요. 큰 형님은 8인치, LP판만 했죠. 둘째가 5.25인치, 그리고 제가 막내 3.5인치입니다. 제 용량은 1.44메가바이트. 요즘 사진 한 장도 저한테는 안 들어갑니다. 근데 그 시절엔 이 몸에 졸업 논문이 통째로 들어갔어요. 한 사람의 4년이 제 안에 있었던 겁니다.

나: 전성기 얘기를 들어볼까요.

플로피: 제일 잘 나가던 1998년엔 한 해에 전 세계에서 20억 장이 팔렸습니다. 인터넷이 느리거나 없던 시절, 데이터는 선을 타는 게 아니라 저를 타고 사람 손에 들려 걸어갔어요. 프로그램 하나 설치하려면 저를 열세 장씩 갈아 끼우기도 했고요. 아, 그 시절의 국민 비극도 하나 있죠. 큰 파일을 여러 장에 나눠 담았다가 마지막 한 장에서 에러가 나는 것. 그 순간의 표정들, 제가 다 봤습니다. 늘 죄송했어요.

 

 

출처 : 디지털투데이

 


나: 은퇴 과정도 여쭤야죠.

플로피: 몸이 시대를 못 따라갔어요. 세상은 기가바이트로 가는데 저는 1.44에 멈춰 있었으니까. CD가 오고, USB가 오고, 결국 2011년 3월에 마지막 공장이 문을 닫았습니다. 그날이 제 몸의 장례식이었어요. 근데 재밌는 건 그다음입니다. 몸은 죽었는데, 얼굴이 취직을 한 거예요. 전 세계 모든 프로그램의 저장 버튼으로.

나: 은퇴 후 근무지도 화려하시던데요.

플로피: 아, 마지막 직장이 좀 요란했죠.

 

 

먼저 미국 공군 핵미사일 부대에서 2019년까지 일했어요.

이 시스템은 1970년대에 만들어져 수십 년간 무사고로 돌아갔어요. 그런데 여기서 역설이 생깁니다. 플로피는 인터넷에 연결되지 않는 물리 매체라, 해킹하려면 미사일 기지에 직접 침입해서 디스크를 꽂아야 해요. 원격 해킹이 불가능한 거죠. 당시 관계자들이 “구식이라 오히려 안전하다”라고 설명한 게 이 대목입니다. 게다가 핵무기 통제 시스템은 한 줄만 바꿔도 전면 재검증이 필요하니, 교체 비용과 위험이 유지 비용보다 컸던 거고요.

 


일본 관공서에서는 2024년까지 서류를 날랐습니다.

이쪽은 기술이 아니라 법 문제였어요. 검증 자료에 나오듯 일본 법안과 시행 법령 157건 이상에서 물리적 저장 매체 사용을 지정해 놨죠. 플로피디스크 제출, 보존을 명시한 조항이 1,034건이나 됐습니다. 즉 공무원이 플로피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법 조문에 “플로피디스크로 제출할 것”이라고 박혀 있어서 못 바꾼 거예요. 그래서 디지털청이 이걸 폐지하는 데 몇 년이 걸렸고, 2024년에야 거의 정리가 된 셈이죠.

 

한쪽에선 인류 최강 무기를 지키고, 한쪽에선 주민등록 서류를 나르고. 은퇴자가 이렇게 극단적인 투잡을 뛰기도 쉽지 않을 겁니다.

 


 

나: 흥미롭군요. 이어서 불편한 질문 하나 드릴게요. 요즘 세대는 저장 버튼이 왜 그 모양인지 몰라요. 뜻도 모르는 그림이 버튼으로 남아 있는 거, 문제 아닌가요?

 

저장 버튼 = 플로피 디스크

 


플로피: 소문대로 훅 들어오시네요. 근데 이번엔 반박하겠습니다. 몰라도 통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몰라도 통하니까 글자인 거예요. 처음엔 제 그림이 저라는 물건을 가리켰죠. 근데 30년을 쓰다 보니 그림 자체가 ‘저장’이라는 뜻이 됐습니다. 여러분, 한자 쓸 때 그 글자가 원래 무슨 그림이었는지 알고 쓰세요? 모르죠. 근데 뜻은 읽잖아요. 저는 지금 그 단계에 있는 겁니다.

나: 지난 화 삐삐 씨가 좋은 압축은 받는 쪽이 풀 수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요…

플로피: 그 선배님 인터뷰 잘 봤습니다. 맞는 말씀인데, 저는 거기서 한 발 더 간 경우예요. 하도 오래, 하도 많이 쓰여서 풀 필요조차 없어진 압축. 사람들이 486은 해독하지만 저는 해독하지 않아요. 그냥 읽죠. 압축이 굳으면 글자가 됩니다. 아, 9화 동그라미 형님이랑도 가끔 연락하는데요. 그 형님은 사라지니까 사람들이 가상 버튼으로 되살렸고, 저는 사라졌는데 아무도 눈치를 못 채요. 어느 쪽이 더 성공한 은퇴인지는 아직 결론이 안 났습니다.

나: 마지막으로, 후배 아이콘들에게 한마디 하신다면요.

플로피: 돋보기, 톱니바퀴, 봉투, 수화기. 다들 잘 지내시죠. 여러분 원본들도 하나둘 사라지고 있을 겁니다. 요즘 누가 돋보기로 뭘 찾고, 톱니바퀴를 만지고, 저 모양 수화기로 전화를 하나요. 근데 두려워하지 마세요. 원본이 잊혀야 기호가 완성됩니다. 사물은 죽고 뜻만 남는 것. 그게 그림이 글자가 되는 길이에요. 제가 걸어봤는데, 나쁘지 않은 길입니다.

 

플로피 디스크의 얼굴은 오늘도 전 세계에서 출근 중이다.





은퇴 카드


활동 연대
1971(가문 기준) ~ 2011.3(마지막 공장 폐쇄) – 단, 얼굴은 현역

사용 기술
1.44MB, 철컥이는 금속 셔터, 그리고 사람의 두 발

은퇴 사유
용량 (본인: “몸만 은퇴했고 얼굴은 무기한 연장 근무 중”)

남긴 유산
‘저장’이라는 글자

 


 

인터뷰를 마치고


퇴근길에 폰을 보다가 세어봤습니다. 통화 버튼의 수화기, 메일의 봉투, 설정의 톱니바퀴, 검색의 돋보기. 오늘 하루 제가 누른 그림들인데, 이 중 실물을 최근에 만져본 건 하나도 없더군요. 우리는 매일, 사라진 물건들의 초상화로 대화하고 있는 셈입니다.

여기엔 이 일의 오래된 기법이 하나 숨어 있어요. 새로운 기능에 옛 물건의 얼굴을 입히는 것. 스큐어모피즘이라는 어려운 이름이 붙어 있지만 원리는 단순합니다. 낯선 것도 아는 얼굴을 하고 있으면 배울 필요가 없거든요.

처음 이메일이 나왔을 때 봉투 그림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그게 편지라는 걸 한참 배워야 했을 겁니다. 홈 버튼 편에서 말한 그 원리와 같아요. 좋은 화면은 사용자를 공부시키지 않습니다.

 

 

스큐어모피즘. 출처 : thatkeith.com




그런데 플로피의 사연은 그다음 단계를 보여줍니다. 원본이 죽으면 그림은 어떻게 되는가. 상식적으로는 함께 사라져야 하는데, 반대의 일이 일어났어요. 그림이 원본에서 독립해 버린 겁니다. 지난 화에서 좋은 압축은 받는 쪽이 풀 수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아이콘은 그 끝을 보여줘요.

아주 오래, 아주 많이 쓰인 압축은 풀 필요 자체가 없어집니다. 그때부터 그건 압축이 아니라 상징이 됩니다. 사물 하나를 몇 픽셀로 눌러 담았던 그림이, 사물이 죽은 뒤에도 뜻으로 살아남는 것. 한자가 걸어온 길을 화면 위의 그림들이 다시 걷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실무에서 아이콘을 다루는 무게는 그리기의 무게가 아닙니다. 어느 회사든 저장 아이콘을 요즘 감각으로 바꾸자는 제안은 결국 무산돼요. 수십억 명이 수십 년에 걸쳐 합의한 상징을 한 회사가 개정할 수는 없거든요. 아이콘 작업은 디자이너의 그림 실력 이전에 상징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이 원로가 남긴 마지막 교훈은 이거예요.

 

인터페이스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는
예쁜 그림이 아니라 상징이다.

 


뜻을 설명하지 않아도, 원본이 사라져도 읽히는 것. 오늘 우리가 보는 디자인 중 무엇이 30년 뒤의 상징이 될지는 지난 화의 결론 그대로, 우리가 아니라 쓰는 사람들이 정할 겁니다.

 


 

더 파고들 사람을 위한 링크


저장 아이콘으로만 남은 플로피 디스크 (한국경제)

판매량 20억 장에서 일본 관공서 은퇴까지 (아시아경제)

플로피 디스크의 역사 (위키백과)

 


우디 (우디디자인랩)님의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