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번역’하면 무엇을 먼저 떠올릴까?

아마도 상당수의 사람은 외국어를 한국어로 혹은 그 반대로 한국어를 외국어로 바꾸는 행위를 떠올릴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것이 번역의 전부는 아니다. 언어학자 로만 야콥슨에 따르면 33.3% 정도에 해당하는 정답이다.

 

 

여러분들께서도 이미 잘 알고 있는 로만 야콥슨의 번역에 관한 세 가지 유형을 따라 설명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왜 하필 야콥슨이냐라고 반문하실 분들을 위해 그의 번역 분류론을 요약해보겠습니다.

1) 언어 내 번역(rewording): 언어 기호를 같은 언어로 해석
2) 언어 간 번역(translation): 언어 기호를 다른 언어로 해석
3) 기호 간 번역(transmutation): 언어 기호를 언어가 아닌 다른 기호로 해석

– 이어령의 <거시기 머시기>(김영사, 2022) 중 –

 

 

로만 야콥슨의 번역 분류론에 따르면 우리가 번역하면 떠올리는 것은 오직 ‘언어 간 번역’으로 ‘언어 내 번역’과 ‘기호 간 번역’을 배제하는 것이다. 마케터는 이 중에서 대부분이 떠올리지 않는 ‘언어 내 번역’과 ‘기호 간 번역’에 능한 번역가가 되어야 한다.

마케터가 고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어찌 보면 단순하다. 고객이 원하는 것이 분명하다면 “여러분이 원하는 것 중에서 이것이 최고예요”, 고객이 원하는 것이 불분명하다면 “이것이 당신에게는 가장 가치 있는 것입니다”등과 같은 고객의 니즈와 관련된 메시지다. 이러한 메시지를 어떻게 번역하느냐에 따라 마케터의 역량이 갈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번역은 ‘이해도’와 ‘인지도’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의미한다. 고객의 이해도를 극대화하기 위해 너무나도 익숙하고 뻔한 언어(혹은 기호)로 번역을 하면 쉽게 잊히기 마련이고, 반대로 인지도의 극대화를 위해 새롭고 차별화된 언어(혹은 기호)로만 번역을 하면 고객이 기억은 하되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케터가 번역을 할 때는 ‘이해도’와 ‘인지도’의 균형점을 잘 잡아야 한다. 때로는 ‘언어 내 번역’으로 때로는 ‘기호 간 번역’으로.

먼저 ‘언어 내 번역’을 생각해보자. 무신사의 경우 ‘다무신사랑해’라는 중의적인 메시지로 번역을 했다. ‘모든 고객이 무신사를 사랑한다’는 의미는 물론이고 ‘모두가 무신사와 함께한다’는 추가적 의미까지 담은 메시지로 자사의 ‘인기’를 강조함과 동시에 아직 무신사를 ‘사랑’ 혹은 ‘함께’ 하지 않는 이들의 동참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사진 출처: 유튜브 ‘musinsa tv’

 

 

고전적인 예로는 애플의 ‘Think Different’를 생각해볼 수 있다. 언뜻 보면 Different(차별화)를 아주 평이하게 ‘언어 내 번역’한 문장처럼 보이지만 잘 뜯어보면 그렇지 않다. 문법적으로 정확하고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쓰는 ‘Think Differently’가 아닌 문법적으로 다소 어색해 보이는 ‘Think Different’라고 쓰면서 ‘다름’이라는 메시지를 부각했다. 소비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되 익숙하지는 않은 묘한 지점을 찾아낸 성공적인 ‘언어 내 번역 사례’이다.

 

 

사진 출처: Apple

 

 

다음으로 ‘기호 간 번역’이다. 이것은 ‘언어 내 번역’보다는 난해할 수 있는 방식이다. 언어를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 아닌 언어가 아닌 무언가로 번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국내에서 가장 잘하는 기업이 기업가치 1조 원을 달성한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다.

안경의 주목적은 당연히 나쁜 시력을 보완하는 것이겠지만, 젠틀몬스터가 이러한 주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안경을 만들어서 성공한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안경의 패션성, 즉 ‘예쁘다(혹은 멋지다)’라는 메시지를 시대에 맞게 잘 번역했기에 성공한 것이다. 이것을 과거에 가장 잘 한 안경 브랜드로 룩옵티컬이 있다. 바로 “안경은 얼굴이다”라는 ‘언어 내 번역’을 통해서 말이다.

 

 

록옵티컬의 TV 광고

 

 

그러나 시대는 변했고 룩옵티컬의 성공을 이끈 ‘언어 내 번역’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그래서 젠틀몬스터가 선택한 방식은 ‘기호 간 번역’이었다. 매장을 단순 판매의 공간이 아닌 체험의 공간 더 나아가 예술의 공간으로 진화시킨 ‘퀀텀프로젝트’를 통해서 말이다.

 

 

젠틀몬스터 홍대 매장의 ‘퀀텀프로젝트’. 사진 출처: 아시아경제

 

 

그 저력을 15일~25일마다 홍대 플래그십 스토어의 패션 인스톨레이션을 교체한 퀀텀프로젝트에서 발견할 수 있어요. ‘패션 인스톨레이션’은 패션과 설치미술(installation art)이 접목된 개념이에요. ‘예술과 의상의 접점으로서 공간과 오브제, 메시지가 통합된 작업’(마진주, 2019)을 가리키죠.

퀀텀(quantum)의 사전적 개념은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에너지의 최소량의 단위’의 의미인 ‘양자’입니다. 공간이 속도감을 갖고 빠르고도 창의적으로 변화하는 걸 보여주겠다는 실험 정신에서 시작됐죠. 경영효율을 생각하면 해서는 안 되는 프로젝트인데, 젠틀몬스터는 브랜딩을 위해 강행했다고 해요.

디자인 스튜디오 패브리커, 최도진 아트 디렉터가 차례로 프로젝트를 이끌면서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 전문가 및 기업과 협업했어요. ‘이야기가 느껴지는 매장’이라는 컨셉을 잃지 않으면서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퍼포먼스를 활용해 다양한 감각 경험을 제공하고, 방문객과 상호작용이 이뤄질 수 있게 만들었죠. 결과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총 36가지의 컨셉을 보여준 퀀텀프로젝트는 입소문을 타며 젠틀몬스터의 팬덤을 만들어냈습니다.

– 한재동, “전지현도 썼다…年매출 3220억 ‘괴짜’ 한국인의 선글라스 [비크닉]”, 중앙일보, 20220618 중 –

 

 

다시 말해 젠틀몬스터는 ‘예쁘다’ ‘멋지다’라는 메시지를 예술적인 공간으로 번역을 한 것이고, 그에 따라 그곳에 진열된 젠틀몬스터의 안경과 선글라스도 단순 상품(product)에서 예술품(Objet d’art)으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젠틀몬스터는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2017년에 코스매틱 브랜드 탬버린즈를 론칭하고 자신들의 특기인 ‘기호 간 번역’을 그대로 새 브랜드에 이식했다.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첫 향수 캠페인을 기념해 진행한 ‘금호 알베르 퍼퓸 팝업’이다. 본인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제니의 이미지’와 ‘거인 인스톨레이션’으로 강렬하게 번역했다.

 

 

사진 출처: 인스타그램 @tamburinsofficial

 

사진 출처: 인스타그램 @tamburinsofficial

 

 

지금까지 알아본 바와 같이 좋은 마케터는 좋은 번역가이어야 한다. 위에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글로벌 브랜드의 한국지사에서 일하는 마케터라면 영어로 된 메시지를 가장 효과적인 한국어로 번역(현지화)하는 ‘언어 간 번역’에도 능통해야 할 것이다.

번역의 방식이 무엇이 되었건 간에 고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번역해내는 일, 그것이 마케터가 해야 할 일일 것이다.

 

 

캡선생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