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공부 리추얼 리뉴얼을 준비하며

 

 

 

 

아주 오랫동안 공부를 오해했다. 나다움을 찾는 성장 플랫폼 [밑미]에서 1년 가까이 공부 리추얼을 이끌며 이제야 공부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입시와 취업까지 합쳐 10년 넘게 열심히 공부한 것 치고는 너무 늦었지만 반가운 발견이었다.

 

 


 

 

공부하며 깨달은 공부의 본질

 

리추얼 프로그램을 기획하던 시점에 내가 생각한 공부는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더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해, 더 좋은 기회를 얻기 위해 해야만 하는 과제나 장애물 넘기 같은 것. 더 좋은 곳, 더 좋은 기회는 대개 사회가 정한 것이었다.

 

 

 

 

공부 리추얼을 시작하고 메이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공부의 이유가 내 안에서 시작해서 밖으로 뻗어나갈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회가 정한 외부 조건이라고 해도 결국 그것을 갖추고 싶은 마음은 내 안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공부에 대해 갖고 있는 억울한 심정은 대개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한다’는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필요하지 않다면 아무리 누가 시켜도 할 이유가 없다. 나에게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공부에 대한 억울함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공부 리추얼에는 정말 다양한 성향의 메이트가 다양한 공부를 한다. 전공도 직무도 상관없이 그저 베토벤이 좋아서 800 페이지의 베토벤 평전을 읽는 메이트, 전통주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는 메이트, 아이패드 드로잉을 하는 메이트 등등 공부에 대한 경계와 편견을 와장창 넘어뜨리는 장면을 볼 때마다 내 안의 세계도 넓어지는 기분이었다.

매일 읽고 쓰는 공부가 습관이 된 나보다 더 공부에 진심인 베테랑 메이트들도 많았다. 더군다나 나를 발견하고 회복하자고 줄기차게 외치는 밑미에는 ‘나다움’을 표현하는 데 능수능란한 메이트가 많다. 지금 나에게 왜 공부가 필요한지,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지, 나는 어떻게 공부할 때 성취감을 느끼는 사람인지 이미 알고 있는 ‘나다움 전문가’들이었다.

매일 30분씩 공부하고 기록을 남겨야 하는 공부 리추얼은 생각보다 꾸준히 참여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처음 서로 인사를 나누는 선언 미팅에서는 최대한 모든 메이트를 안심시키려고 노력한다. “매일 기록 남기지 못해도 괜찮아요. 공부를 통해 서로 응원을 주고받다 보면 공부에 재미를 붙일 수 있을 거예요!”

뒤이어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에 나의 걱정이 무색할 만큼 눈을 반짝이며 공부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하는 메이트가 매달 꼭 한두 명씩 나왔다. “저는 원래 공부를 좋아해요. 새로운 것을 배우는 거 진짜 재밌잖아요! 성장하는 감각에 중독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공부 리추얼을 하면서 제가 얼마나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인지 알게 되었어요.”

메이커인 나보다 더 오래 리추얼을 즐기고 지속해온 메이트를 보면서 공부와 나다움을 연결시키는 연습을 했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찾아 나의 마음과 상황에 맞게 꾸준히 하는 것을 어른이 되어 시작해야 할 진짜 공부라고 생각했다. 하루 10분도 좋고, 꼭 일상에 필요한 것이 아니어도 좋고, 공부 주제를 계속 바꾸어도 좋다고 말했다. 그 무엇이든 나에게 맞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이다.

그러나 공부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는 자신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몇 달 더 리추얼을 지속하면서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은 만큼 하는 것이 정말 나를 키우는 것이 맞나?

나를 돌본다는 것은 아이를 돌보는 것과 같다. 아이에게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하렴. 과자 먹고 싶으면 많이 먹고 유튜브 보고 싶으면 밤늦게까지 봐도 괜찮아.”라고 말하는 것이 성숙한 돌봄이 아닌 것을 떠올려 보면 나를 돌본다는 것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는 것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나다운 공부’는 나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내가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찾아 나에게 그것을 알려주고 슬슬 타일러 거기까지 가게 만드는 것이었다.

공부 리추얼 초반에 공부의 본질을 [해야만 하는 것]에서 [나에게 필요한 것]으로 다시 [내가 하고 싶은 것]으로 업데이트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또다시 업데이트가 필요했다.

 

 

 

 

삶이 긴 만큼 공부의 호흡도 길어야 한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은 만큼 하는 ‘나다움’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나다움을 지키기 위해서는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만 하는 것, 필요한 것을 해야 할 때도 있다는 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어릴 때는 그렇게 듣기 싫었던 어른들의 잔소리 같은 말을 내 입으로, 진심으로 하게 되다니.

이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난 후에도 해소되지 않는 막막함 때문이었다. 20대에 버킷리스트였던 활동을 서른 중반이 되어 모두 클리어했다. 대단한 목표는 아니었지만 사회 초년생 시절의 나에게는 멀고 대단해 보이는 것들이었다.

  • 내 이름으로 책 출간하기
  • 대학생과 주니어 대상 커리어 강연하기
  • 미디어에 칼럼 기고하기

꿈꾸던 일들을 해냈는데도 내 삶은 생각보다 큰 변화가 없었다. 출간 작가가 되어 강연을 하고 칼럼을 기고하면 회사쯤은 다니지 않아도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오히려 꾸준히 글을 쓰려면 회사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안정적인 생활비뿐만 아니라 글감을 발견하기 위해서라도 회사를 포기할 수 없었다. 오히려 더 막막했다. 지금의 내공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다 꺼낸 것 같은데 이제 무슨 이야기를 하지? 어디로 어떻게 더 성장해야 하지?

그제야 알았다. 내 성장의 방향과 목적이 없었던 거다. 지금보다 더 나아진 삶을 원한다는 것을 분명한데 그 삶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 알지 못하니 어디로 달리지도 못하고 멈추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 서 있는 거다.

공부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에 좋은 공부는 많다. 외국어 공부, 미술 공부, 글쓰기 공부, 음악 공부 좋고 하고 싶은 공부를 계속하는 것도 좋지만 결국 ‘지속 성장’해야 계속할 수 있다. 지속 성장하려면 이전과 다른 단계에 진입해야 한다. 글쓰기가 좋아 작가가 되기로 했다면 글 실력을 계속 키워야 한다. 매번 제자리걸음인 작가의 글은 읽히지 않는다. 이전과 다른 생각, 다른 표현, 다른 세계를 보여줄 수 있어야 계속 쓸 수 있다.

결국 하고 싶은 것을 꾸준히 오래 하려면 “그냥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성장해야 하는 것”이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얼마나 힘이 빠졌는지 모른다. “나다운 공부”가 정말 나다워지려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아니라 나답게 성장해야 한다는 것은 외면하고 싶은 깨달음이었다. 매번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만큼 부담스러운 게 없으니까 말이다.

마주하기 힘들다고 피할 수는 없다. “나다운 공부”에 대해 새로운 설계도를 그려보기로 했다. 나를 지키면서 나를 키우는 법, 나를 이해하면서 방향을 잡아가는 법에 대해서 말이다.

 

 


 

 

나답게 살기 위해 나다움에 맞서다

 

“나답게 살아라.”

“좋아하는 것을 해라.”

“한 번뿐인 인생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자.”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지 말아라”

 

이 익숙한 구호에 맞서보기로 했다. 정확히 말하면 이 익숙한 구호만을 외치지는 않기로 했다. 나를 알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나의 목소리에 충실한 공부를 넘어서야 한다. 나의 욕구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나의 욕구를 나의 언어로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내 공부의 목적과 방향을 구체화해야 한다. 나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키워내려면 말이다.

 

 

 

 

  • Learn Me 나를 배우는 것
  • Learn More 깊이 파고드는 것

 

두 가지 공부를 끊임없이 반복해야 한다. 줌 인 줌 아웃, 줌 인 줌 아웃, 줌 아웃 줌 인, 줌 아웃 줌 인.

 

  • [Learn Me] 나를 배우는 것은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 [Learn More] 깊이 파고드는 것은 방향을 정하고 집중하는 것이다.

 

 

 

 

아바타 2를 보면서 이 단어가 다시 떠올랐다.

 

FLOW

세상의 흐름에 나를 맞추는 것

 

물의 흐름에, 자연의 흐름에, 관계의 흐름에 나를 맞추며 사는 것이 판도라의 제1원칙이라고 느꼈다. 바다를 터전으로 삼고 살아온 멧케이나 부족은 수영에 최적화된 넓은 팔을 가지고 있다. 자연의 흐름에 맞추어 살기 위해 몸을 진화시킨 것이다. 제이크 가족은 숲을 떠나 바다 마을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배운다. 새로운 동물과 호흡을 맞추고 바다와 물의 흐름 속으로 들어간다.

한동안 깊이 새겨온 문장이 있었다.

 

“모두들 세상에 맞춰 살아가지만, 언젠가 세상을 자신에게 맞춰야 한다.”

 

회사에 소속된 사회인으로, 사회와 가족이라는 시스템 안에 놓인 개인으로서 이보다 가슴 뛰는 문장이 있을까. “언젠가 세상을 나에게 맞출 것이다.” 이 문장을 내 삶의 제1원칙으로 삼아왔는데 요즘 그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세상에 나를 맞추고 싶지 않아 나에게 맞는 세상만 인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점점 커졌다.

 

  • 세상을 나에게 맞추는 것
  • 세상의 흐름에 나를 맞추는 것

 

무엇이 맞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안 나온다면 두 가지 모두 공존해야 하는 것 아닐까? 언젠가 세상을 나에게 맞춰야 한다는 말은 나를 잃지 말라는 것이지 세상을 내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는 게 아니다. ‘나다움’과 ‘흐름 속에서 유영하기’ 사이에서 여전히 길을 헤맸다.

나를 알리고 표현하고 드러내라고 말하는 시대다. 그렇지 않으면 부족하고 뒤처진 사람처럼 느껴진다. 정말 그래야 할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를 큰 소리를 외치는 것은 처음으로 자아를 표현하기 시작한 사춘기 청소년의 서툰 표현과 무엇이 다를까?

<정리하는 뇌> 대니얼 레비틴은 “전문가는 무엇에 주의를 기울이고 무엇을 무시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 문장을 내 식대로 해석해 보면 “세상에 맞추면서도 나다움을 잃지 않는 것”이 고수의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

 

 


 

 

공부를 타고 좋은 삶으로 넘어가는 법

 

세상에 나를 맞추어 성장하면서도 나다움을 잃지 않는 공부란 무엇일까? 우리가 해야 하는 공부가 무엇인지 메이트의 공부 기록에서 답을 찾았다.

 

 

1. 앞으로 나아가는 공부

 

불편하고 힘든데도 ‘나와 다르고 낯선 어색함’으로 스스로를 자꾸만 데려가는 경험을 해야 한다. 쉬운 공부, 익숙한 공부가 아닌 어렵고 낯선 공부도 해봐야 한다. 그 경험이 결국에는 나를 더 좋은 곳으로 데려다줄 테니까.

 

 

 

 

2. 나를 인정하고 응원하는 공부

 

나를 잃지 않는다는 것은 내 속도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세상이 요구하는 속도보다 천천히 갈 수밖에 없다. 천천히 성장하는 과정을 조급함과 자책이 아닌 ‘귀중한 한가로운 시간’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하다. 우리는 평범함의 위대함을 자주 잊는다. ‘뛰어남’이 아니라 ‘평범함’을 인정해야 한다. 평범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순간 반짝이는 것보다 훨씬 대단한 능력이다.

 

 

 

 


 

 

우리가 공부에서 발견해야 하는 것

 

공부 위에 올라 성장하려면 공부에 내가 남아야 한다.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고 쌓으며 공부하기 위해 3주 간의 공부 리추얼에 주차별 목표를 세워보기로 했다.

 

 

 

 

배움은 써먹는 것

 

배우고 실천하지 않으면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커져 답답해진다. 배웠으면 작은 것이라도 일상에 적용해야 한다.

 

 

기록은 편집이다

 

공부와 기록은 별개가 아닌 하나의 과정이다. 기록은 ‘편집’이다. 아티클 한 개를 읽고 3 문장으로 정리하는 기록은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명확하게 표현한 결과물이다. 기록을 쌓는 것은 나만의 고유한 관점을 축적하는 것이다.

 

 

내 공부의 Theme

 

가장 중요한 주차. 내 공부는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지 찾는다. 2주 동안 쌓은 공부 기록을 보면서 내 키워드를 발굴한다. 그러려면 키워드를 쉽게 찾고 쌓을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하다. 공부 리추얼에서는 다양한 디지털 마인드맵 툴을 사용할 계획이다.

2주 차에 미니 워크숍을 열어 공부 여정을 회고하고 마인드맵으로 키워드 찾는 법에 대해 나눌 예정이다.

 

 


 

 

공부를 잊을 때 비로소 공부가 된다

 

가장 좋은 공부는 공부하지 않는 것이다. 공부인 줄도 모르게 몰입할 때 비로소 공부가 된다. 원리는 간단하다. 부담과 압박이 적어야 지속할 수 있는데 “이건 공! 부!”라고 생각하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둘 중 어느 쪽이 더 지속할 수 있을까?

 

과제로 쓰는 리포트 vs 쓰고 싶어서 쓰는 에세이

 

물론 쓰고 싶어서 쓰는 에세이일 것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해묵은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무턱대로 즐겨보라는 것만큼 무책임한 것이 없으니까. 즐기는 방법도 공부해야 한다.

 

공부를 내 삶에 자연스럽게 초대하려면 필요한 3가지

  • 좋은 교재 또는 선생님
  • 습관 / 환경 세팅
  • 회고 / 기록 / 공유

 

 

 

 

공부 리추얼이 이 3가지를 배우고 실천하고 습관으로 만드는 과정이 되었으면 좋겠다. 함께 공부하는 우리 모두가, 공부를 타고 훨훨 날아가고 싶은 곳 어디든 갈 수 있다는 희망을 삶으로 만들어 증명해냈으면 좋겠다.

 

 

단단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