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R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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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앤드숄더’에서 나온 사과샴푸나 해초샴푸를 써 보신 적 있으십니까?

처음 들어볼 수 있겠지만, 실제 시판된 제품입니다. 그것도 기존 제품 라인업을 혁신하는 대안으로 출시된 제품입니다. ‘세계 최고의 마케팅 회사’라는 명성을 갖고 있는 P&G에서 진행한 상품이라기에는 너무 작은 변화로 보입니다. P&G는 세계 최초로 불소 치약, 합성세제를 만들며 ‘혁신’을 대표하는 회사였죠. 하지만, 그들의 새로운 대안이 제품 라인업에 새로운 취향을 추가하거나 용량을 조정해서 기존 라인업에 다양한 사이즈 구성을 하는 수준이 됐습니다. 물론 P&G에는 아직 건재한 브랜드가 많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년간 듀라셀 등 전체 브랜드 약 170개 중 110개가 넘는 브랜드를 처분했거나 처분할 계획을 갖고 있을 정도로 상황은 여의치 않습니다.

세계 최고의 시장으로 떠오르는 중국에서도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고 그것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신흥국 시장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10년 안에 CEO는 3명 이상 교체됐고, 같은 기간 시장 점유율이나 매출액 등은 경쟁사에 비해 낮은 상태를 보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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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사업에서 이 심볼은 하나의 상징이었습니다.

P&G 관련 책과 다큐멘터리를 통해 접한 명성에 비하면 최근의 부진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고객 조사를 통해 고객의 수요를 찾아서 모든 것을 다 하는 회사가 고객에게 맞는 혁신적 제품을 더 이상 내놓지 못한 점은 분명 내부에 어떤 문제가 발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가설을 갖게 합니다.

실제 대기업의 부진은 단순히 하나의 상품군이 고객을 맞추지 못한 데 그치지 않고 전체적인 톱니바퀴가 그렇게 짜여져 있어서 그런 상품들만 계속 쏟아져 나오는 수순을 밟는 경우가 많습니다.

P&G가 새로운 상품들을 테스트 하면서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고 연구개발 조직을 새롭게 정비하는 것은 분명 고무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거대 조직의 사슬을 뚫고 실제 혁신으로 영속하는 단계까지 이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이후 기간의 성과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P&G가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된 데에는 신흥국 시장에 대한 오판과 새로운 제품에 대한 제안 결여, 내부 비용 통제로 인한 인재유출이 원인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이는 소비재 시장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경험한 기업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들입니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게 된 저변에는 현장의 의견이 쉽게 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본사 중심의 의사결정이 원인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성공은 조직 외부에 대한 탐색과 고민을 무디게 만들고 필연적으로 역량에 대한 투자로 이어지지 못하게 합니다. 신흥국 시장에 대한 오판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후 실적이 결과적으로 부진해지면 이 때, 쉽게 이익을 낼 수 있는 방법으로 강한 비용 압박이나 연구개발비 통제를 받게 되죠. 하지만 이것은 실적에 대한 단기적 상승과 함께 인재 유출이라는 반대급부도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역량이 없는 기업은 작은 변화만 반복하고 그칠 뿐입니다. P&G가 최근 새로운 기술이 들어간 세제 등의 라인업을 내놓기 전까지 오랜 기간 동안 사과 샴푸와 해초 샴푸를 포함해서 작은 변화에 그친 상품을 내 놓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할지 모르니까 무엇에 투자하려는 사람도 내부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고객 조사를 열심히 하는 것은 어떤 미덕일까요?

기존 라인업을 넘어서는 개념의 제품을 생산하는데 크게 도움이 안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소비자들도 고객조사에서 기존 제품을 중심으로 연상하여 대답할 뿐 그들이 갖고 싶어하지만, 이 회사가 제공하지 않는 제품에 대해 딱히 노력해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기껏해야 시장에서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포지션에 있는 브랜드의 최신 제품 정도를 소개하는 수준으로 이것도 몇 가지는 차용 가능하지만, 차별화된 제품을 생산하기에는 큰 도움은 되지 않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마케팅 사관 학교라고 말하며 따라하는 P&G이지만, 방향을 잘못 설정하고 고객 조사만 해서는 이런 큰 흐름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고객을 단기간에 프로젝트 형식으로 당장 제품화 될 수 있는 몇 가지 속성만 조사해서는 혁신이라 말할 수 있는 제품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고객 조사는 스티브 잡스의 말 처럼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스스로도 모르는 상태에서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너무 표면적이고 행동적이며 설문이나 구술에 의존하는 조사를 위한 조사는 큰 변화를 약속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굳이 한다면 P&G가 놓친 중국 시장에서 전체적인 고객의 속성에 대해 파악할 수는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제품 라인업에 대한 고객 평이나, 신제품의 방향을 직접적으로 고객에게서 찾는 것과는 다른 성질의 접근입니다. 오히려 인류학적 연구에 가까운 방법으로 접근해야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 인류학적 소비자의 속성은 기업의 역량과 만나서 기존까지는 없던 새로운 컨텐츠로 소비자에게 제공될 수 있을 것입니다.

페브리즈 차량용 방향제는 P&G 가능성 중 하나라고 평가받습니다.
페브리즈 차량용 방향제는 P&G 가능성 중 하나라고 평가받습니다.

페프리즈의 차량용 방향제 등 새로운 기술이 적용된 신제품 라인의 개발은 이런 관점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고객의 필요 속성을 새롭게 파악해서 만든 것이고 초반 반응이 나쁘지 않다고 하니까요. 페브리즈를 사과향, 자두향  , 수박향 이런 식으로 접근 하는 것이나, 페브리즈 용량을 종류별로 다양하게 만든 것보다는 분명히 낫습니다. 페브리즈의 방향 기술이라는 원천 기술이 고객의 수요가 되면 다른 인류학적 속성인 차량용 공간과 만나 기존 방향제가 제공해주지 못하는 수요를 채워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단기적인 속성을 파악해내는 수준이라면 단순히 마케팅 프레임인 4P 등에 놓고 가격을 싸게 하거나 향을 더 상쾌하게 바꾸는 등 기존 가정용 페브리즈 제품으로 남았을 겁니다. 분절된 상태로 전략이 존재하니까요. 분절된 크기의 혁신으로 사고를 강요하는 것입니다.

결국 도구보다는 목적입니다. 행위를 할수록 행위에 얽메이게 되고 행위를 잘하는 다른 행위를 복사하기에 급급하지만, 그럴 때라도 목적을 잊지 알아야 합니다. 행위를 열심히 하고 있을 때 행위를 조금 줄이고 생각을 해봅시다. 행위의 속도를 줄인다고 매몰차게 몰아붙이기 보다는 이런 사람도 존재함을 인정하고 실적이 신통치 않을 때는 목적을 분명히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고객 조사의 신화라고 불리는 한 회사의 명암을 보면서 아직도 이 회사의 과거 책 몇 권을 들고 ‘우리도 이렇게 해 보자’면서 뜻은 모른 채 행위만 말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최종적으로 ‘생각 하는 것’이 없는 채로 작은 행위와 도구에 매달릴수록 제품의 혁신 정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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