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테크 스타트업 바풀의 디자이너 Jason Yoo가 블로그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9년간 3개의 스타트업에서 디자이너로 일했다. 공교롭게도 3개 스타트업 모두 스타트업이었거나 스타트업스런 조직이었다. 중간중간 외주 업무도 많이 했었는데 일의 규모보다 성취감이 초라했고, 왠지 그런 일 뿐인 것 같은 선입견에 웹에이전시는 관심이 없었다. 대기업에서 제의를 받았을 때도 지금까지 편하게 하고 싶은 대로 일하다가 큰 시스템에 들어가려니 왠지 겁이 나서 고사했다. 그러다 보니 계속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다.

스타트업에서 디자인은 척박하다. 스타트업은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드는데, 그래서 첫 제품을 개발하고 온전히 출시하는 것부터 굉장히 어렵다. 출시 이후에는 얼마 안 되는 고객의 반응을 살피고 의견을 수렴하기 바쁘다. 이런 상황에서 디자인은 우선순위가 아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제품이 최소한의 안정 단계에 들어선 다음 디자인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로, 일단 산적된 작은 일부터 처리해 줄 수 있고 인건비 리스크가 적은, 주니어 디자이너를 채용한다.(물론 업계에 리드 디자이너가 희귀한 이유도 있다.) 그리고 그 주니어 디자이너가 출근하면서 최초 이야기한 ‘척박함’이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주니어 디자이너는 디자인 경력을 따지기 이전에 스타트업 생활자체가 생경하다. CEO와 CTO의 조언도 분명히 한계가 있다.

그래서일까. 나와 일면식도 없는 디자이너들이 이메일이나 면대면으로 나에게 도움을 구한다. 가끔은 CEO가 자신의 디자이너를 데리고 올 때도 있다. 그렇게 만난 디자이너들은 대부분 업무 프로세스에 대해 질문한다.

‘제이슨은 포토샵 쓰세요, 스케치 쓰세요?

디자이너 개인의 업무 프로세스부터 시작해 ‘기획자, 개발자랑 어떻게 일해야 되요?’라며 협업 프로세스에 대한 질문까지. 지금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충실히 답변했다. 그런데 더 많은 디자이너를 만날수록 내 답변에 현실성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타트업은 정말 가지각색이라 스타트업마다 진행하는 비즈니스도 다르고, 구성원도 다르고, 모든 것이 다른데 디자인을 어떻게 하라는 것 자체가 넌센스였다.

디자이너로 일하기 이전에 ‘스타트업 직원’으로 일하기

이제는 디자이너를 만나면 먼저 스타트업에 관해 이야기한다. 나와 네가 일하고 있는 스타트업은 각자 어떤 목표를 가졌는지, 개발자의 성향은 어떤지, 일하는 분위기는 어떤지, 대표가 강조하는 것은 무엇인지, 이런 환경에서 나와 너는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언뜻 보면 디자인과 관계없는 이야기다. 그런데 많은 디자이너가 UI와 UX 대한 관심은 커도, 스타트업의 비전과 비즈니스에 대한 관심은 적었다. 아니, 스타트업에서 그런 것들을 디자이너에게 강조하는 경우도 드물었다. 스타트업에서 하는 디자인은, 스타트업의 비전과 비즈니스의 가치를 유저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디자인은 그 수단이다. 그런데 디자이너도, 함께 일하는 다른 직원들도 그 수단에만 관심이 많다. 하지만 디자이너가 스타트업의 큰 그림과 단기적인 목표 등을 모르고 디자인을 하면 그냥 혼자 다른 일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업무 프로세스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규모가 작다. 그래서 시스템보다는 구성원의 개인기와 일하는 스타일이 훨씬 중요하고, 그런 요소들이 업무에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 대기업에서 행하고 있는 어떤 디자인 프로세스는 우리 스타트업과 맞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내가 아무리 좋은 프로세스라고 생각해도 스타트업의 구성원들과 맞지 않는다면, 그건 안 맞는 게 아니라 틀린 프로세스다. 내가 스케치를 쓰고, 개발자와 핫하고 트렌디한 어떤 툴로 일하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다. 나에게 잘 맞는다면 포토샵이 최적일 수 있고, 개발자가 선호한다면 파워포인트로 스펙을 해도 된다.

처음 스타트업에 취업해서 잠 안자고 디자인 프로세스와 UI 업무에 매진하니 나중에는 그럴싸한 게 나오기 시작했다. 스타트업의 직원들도 칭찬해주고, 온라인에서 따봉 및 하트도 많이 받았다. 때로는 나의 기대를 과도하게 웃도는 반응까지 느꼈다. 그런데 시장에 출시하고 결과를 보니 ‘진짜’는 아니었다. 진짜를 만들기 위해서는 스타트업의 비전과 비즈니스, 그리고 다른 구성원의 업무에 관심을 갖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런 이해 다음에 겨우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2017 디자인 트렌드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스타트업의 2017년 로드맵이다. UI와 UX의 개념 이해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스타트업 비전에 대한 이해이며, 해외의 어떤 유명 디자이너보다 내 디자인에 더 깊은 영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스타트업의 CEO다. 즉, 내가 스타트업에서 디자인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스타트업이다. 디자이너 이전에 ‘스타트업 직원’으로서 일하지 못하면 좋은 디자인이 나올 수 없다.

나는 ㅇㅇㅇ스타트업의 직원인가?
아니면 그냥 디자인이 하고 싶은 디자이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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