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를 그리다 팀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지난 글 “실리콘밸리의 좋은 점 5가지”에 이어 “실리콘밸리의 단점 5가지”를 이야기해본다. 지난 13년 동안 5만 명의 구글과 50명의 컬러 제노믹스(Color.com)를 통해 바라본 실리콘밸리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곳이었지만 안타까운 점도 눈에 많이 띄었다.

BGM: California Dreamin’ – 차가운 겨울 뉴욕에서 따뜻한 캘리포니아에 대한 그리움

 

서류상 백만장자 House Poor

스타트업들이 대박이 나고 직원들의 연봉이 치솟으면서 집값 또한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실리콘밸리 테크 기업 종사자들은 높은 급여를 받고도 생활환경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16만 달러(1억 7천만 원)의 연봉으로도 네 명 가족을 부양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느끼는 트위터 직원의 사례는 예외가 아닌 실리콘밸리의 실상이다. 또한, 실리콘밸리의 붐과 함께 중국, 인도의 돈 많은 부동산 투자자들과 미국 내 억만장자들이 실리콘밸리에 몰려들어 집값을 더 올리고 있다.

집값이 이렇게 오르다 보니 다른 곳으로 이사 가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생활비가 저렴한 Oregon 주의 Portland, Colorado의 Boulder, Texas의 Austin 등 다른 주의 도시로 이주하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다.  또한 테크 버블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 사람들은 더욱더 빨리 이 지역에서 밀려나게 되면서, 불만이 심심치 않게 표출되고 있다.

“백만 불의 오두막집: 실리콘밸리 주택 버블 (Million Dollar Shack: Trapped in Silicon Valley’s Housing Bubble)”를 보면 침착한 내레이션 뒤에 외국 부동산 투기꾼들에 대한 냉소와 적대감이 짙게 깔려 있다.

실리콘밸리에 인구가 몰리다 보니 장시간의 통근도 일상이 되었다. 실리콘밸리 집값을 감당치 못하거나 70~80년 전에 지어진 허물어진 집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샌프란시스코서 동쪽에 있는 이스트 베이(East Bay)에서 통근할 수 있다. 그렇지만 출근 시간에 시내로 들어오는 베이 브리지(Bay Bridge)는 언제나 꽉 막혀있다.

퇴근 시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이스트 베이로 넘어가는 마지막 Embarcadero BART (Bay Area Rapid Transit, 베이 지역 지하철) 역에서는 오랜 시간을 보낼 각오를 해야 한다. 출퇴근 시간 시내를 떠나는 이 마지막 역에서는 열차가 와도 만차라 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열악한 인프라: 통신, 대중교통, 학교

한국에서는 엘리베이터에서는 물론 지하철에서도 웬만하면 끊임없이 대화가 가능한 것이 당연시된다. 이에 비교해 실리콘밸리에서는 도시 한가운데에도 휴대폰이 안 터지는 지역이 즐비하다.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다. 아이러니하게 실리콘밸리 투자가들 – VC(venture capitalist)들이 몰려있는 Sand Hill Road에 특히 심하게 신호가 약하다. 시내 바트(지하철)에서는 (16th & Mission, Colma, Balboa Park 역 등) 거의 연결이 불가능하고, 팔로 알토의 스탠포드 캠퍼스도 예외가 아니다.

그럼 공공 교통시설은 어떠한가? 실리콘밸리의 척추와도 같은 101번 고속도로의 교통체증을 피하고자 공공 교통시설을 사용하려고 해도 뾰족한 대안이 없다. 팔로알토에서 샌프란시스코로 통근할 때에 타는 캘트래인(Caltrain)은 종종 기계 결함이나, 잦은 인적, 물리적 사고로 지연되고 한 달에 한두 번은 기차에서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한국에서 10년 동안 전철 타고 다니면서 전철이 고장 나거나 몇 시간씩 작동하지 않은 경험은 뉴스에서 본 경우 말고는 없었던 것 같다.

특별히 사고 난 날이 아니어도 거의 늘 이렇다.

공립학교들 또한 참담한 수준이다. 캘리포니아가 미국 주 중 가장 큰 공립 고등교육시스템을 갖고 있지만 지난 30년간 공립 고등교육 투자가 40% 감소해 왔고 캘리포니아주의 공립교육 환경이 계속 악화하였다.

1970년대 중반.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주민들은 매년 증가하는 재산세에 대해 엄청난 불만을 느끼고 있었다. 수입이 없는 은퇴 생활자 중에는 재산세를 낼 수 없어 집을 파는 경우도 많았다. 1970년대 중반, 조세 저항 운동의 결과, 재산세를 반 이하로 줄이는 악명 높은 “주민 발의안 13 (Proposition 13)”이 주 의회를 통과하였다.

이 이후로 공립학교들의 재정 지원이 감소하고, 국내 학교 랭킹에서 캘리포니아 학교들이 하위권을 차지하게 되었다. 터미네이터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지낼 때 무려 410억 달러에 달하는 주 정부의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예산의 약 40%를 차지하는 교육예산을 줄이기도 하였다.

수업일수 단축, 교사 감원 등 캘리포니아는 켄터키와 노스다코타 주와 함께 공립학교 수업일수가 가장 적은 주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현재도 교육예산이 태부족이다. 비싼 집값을 생각했을 때에, 뉴욕, 일리노이, 매사추세츠의 공공 교육예산에 비해 심각하게 뒤떨어진 캘리포니아 학생당 예산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

학생당 교육 예산. 테크 업체 직원들이 내는 엄청난 세금들은 어디로 간 걸까?

 

다르지만 같다: 다양성 속의 획일화

실리콘밸리의 모든 직업은 테크 직업이다.

소셜네트워크 모임에 가면 90% 이상이 테크 기업 종사자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다수가 엔지니어, 프로덕트 매니저, 디자이너, 창업자, 투자가 등 테크 관련 직종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래서 대화가 수월할 때도 있지만, 대화 내용이 TechCrunch, ReCode, Reddit, Hacker News에 나오는 테크 관련 주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외에 예술, 문화, 철학, 패션, 종교 등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논의하고 배울 기회가 거의 없다.

다양성을 포용하는 샌프란시스코의 개방성이 이노베이션에 큰 힘이 되고 있다고 흔히 말한다. 이렇게 실리콘밸리는 다양성을 운운하지만, 정치적 사고의 다양성이 극히 결핍되어 있다. 캘리포니아는 민주당 후보가 돈이 떨어지면 달려오는 곳이라고 할 정도로, 그야말로 “Deep Blue State: 뼛속 깊은 민주당 주”이다.

다수가 극히 한쪽(민주당)으로 치우쳐 있어서 공화당 지지자들은 제 생각을 자유롭게 표할 엄두를 못 낸다.  내가 아는 어떤 지인은 만약 자신의 집 앞에 공화당 지지하는 팻말을 내세우면 자신의 집이나 자신이 다른 이웃들로부터 달걀 세례나 외면을 받을 것이라며 걱정을 했다.

물론, 페이팔(PayPal) 공동 창업자이자 페이스북 이사회 멤버인 피터 티엘 (Peter Thiel)이 트럼프를 지지했을 때, 테크 커뮤니티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렇지만 실리콘밸리에서 그가 유일한 공개적인 지지자인 것은 큰 문제라고 본다. 정치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신념의 문제이다. 다양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다양한 시각으로 문제에 접근할 때 혁신의 동력이 된다는 것은 실리콘밸리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백인 남자 외 출입금지: 벤처 캐피털(VC:venture capital)의 “브로 컬처(bro culture)”

실리콘밸리의 브로 컬처 (“bro culture”)는 여러 번 논의된 바 있다. 그중에서 제일 백인 남자들만 모인 컨트리클럽 분위기의 브로 컬처는 벤처캐피털 사이에 더욱 심하다. 톱 VC펌 100개 중 여성 파트너는 7% 뿐이다. 그리고 Crunchbase에 등록된 2,300개의 VC 펌을 보아도, 여성 파트너는 8%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유치를 원하거나 벤처에서 일하려면 아는 사람을 통해 “warm intro”를 받아서 연락하라고 권장한다 (벤처기업의 Job posting 예). 그런데 그 VC 이너 서클에 아는 사람이 없다면? 유색인종이나 여성 창업자들은 대부분 인맥이 없어서 원서도 못 낸다. 이것이 그야말로 “old boys club/old boy network”의 악순환을 지속시키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old boy network는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아닌 그들만의 “유니폼”이 있다: 파타고니아(Patagonia) 조끼, 청바지, 운동화, 캐주얼한 느낌을 선사 하고 싶을 때는 카키 반바지와 flip flop.  심지어 실리콘밸리 HBO 쇼에서도 위 사진과 같이 그것을 패러디한다.

이런 단조로움/ 동일성을 깨고 기존의 네트워크 벽을 허물 수 있도록 더욱더 여성/마이너리티 창업자들과 투자자 초기 멤버들이 많이 생겨야 한다.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실리콘밸리의 버블 – 트럼프 당선 후 깨어난 잠자는 공주들?

실리콘밸리의 테크 종사자들은 어떻게 보면 호화스러운 라이프스타일을 누리고 있다.  회사에서 호화로운 초고급(gourmet) 음식을 하루 3끼 무료로 제공하고, 회사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하며, 때론 마사지나 머리 커트도 회사 내에서 해결한다. 드라이클리닝도 책상으로 배달되고, 와이파이가 겸비된 셔틀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며, 회사에서 맛있는 디저트와 바리스타가 만들어 준 커피를 즐기고, 애완견도 같이 출근할 수 있다.

오피스는 화려한 인테리어로 장식되어 있다. 회사 동료들이 룸메이트일 때도 있고, 회사 내 커플도 허다하다. 자신과 다른 삶의 문제들을 직면한 사람들과의 교류가 거의 없게 되기 쉽고,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과 회사 내 울타리에서 사회와 절연된 삶을 살게 된다.

2017 대선 때에 이러한 극과 극의 현실/삶이 드러났다. 중상층의 삶을 누리는 테크 종사자들은 미국에 중하류층의 사회경제적 위기, 도태됨, 불만이 쌓이는 것을 외면했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아무도 트럼프가 당선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실리콘밸리 버블의 삶에서는 보이지 않는 그늘진 곳에서 침묵해 왔거나 아무리 다급하게 외쳐 보아도 관심을 받지 못한 사람들. 그들이 마지막 희망으로 보였던 트럼프에게 자신의 표를 던져 주었다.

사실 실리콘밸리 밖을 볼 필요도 없다. 브루킹스(Brookings) 연구소에 의하면 샌프란시스코가 뉴욕, 워싱턴, 보스턴, 시카고 등을 제치고 미국에서 두 번째로 제일 부의 격차가 큰 도시로 발표되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1960년대에는 히피 문화가 버클리 주변에 만연했었고, 70년대에는 월남전에서 돌아온 군인들이 샌프란시스코시를 장악했었고, 80년대엔 캘리포니아 공립 정신병원을 폐쇄하는 바람에 정신질환자들이 도시 거리에 진을 쳤다.

90년과 2000대에는 집값이 치솟으면서 노숙자들이 더 늘어났다. 이 때문에 샌프란시스코가 다른 어떤 도시들보다 총 거주인구에 대한 노숙자 비율이 훨씬 높다. 에어비앤비(Airbnb) 본사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는 이렇게 노숙자 “캠프”가 있다.

이런 와중에 샌프란시스코 도시 곳곳에 스타트업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거지와 노숙자들이 많아 슬럼화되어 있던 시빅센터/시청 근처와 남쪽 소마(SOMA: South of Market-마켓스트리트 남쪽을 통칭한다) 지역에 트위터가 들어오는 조건으로 샌프란시스코시는 트위터에 큰 세금 혜택을 제공했다.

곧 트위터를 따라 스퀘어(Square), 우버(Uber)가 이사 오면서 더욱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근처에 고급 아파트 개발이 시작되고 노후화된 건물들을 리모델링하면서 징가(Zynga)와 에어비앤비가 들어섰고 핀터레스트(Pinterest)도 팔로알토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이사 갔다. 도시 생활을 선호하는 젊은 인재들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회사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것이 유리한 점이다. 하지만 이렇게 도시가 젠트리피케이션(고급화) 되면서 노숙자들은 그나마 있던 자리도 잃고 있다.

미래가 테크놀로지스트들이 이끄는 것이라면, 테크 종사자들이 그야말로 택시 부르는 앱, 집으로 요리 배달해주는 앱, 카메라 필터 앱을 넘어선 큰 사회 이슈들에 대해서도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정한 대화와 소통이 있어야 한다.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시점을 버리고 주요 이슈들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이해를 가져야 한다. 배제된 사람을 최소화하면서 최대한 많은 사람이 테크놀로지가 선사할 수 있는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의미 있는 진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글: Christine. 디지털 헬스케어 파트너십 담당. 모바일, 클라우드 서비스에 많은 경험. 조직의 다양성, 성장형 마인드셋, 여성 CEO 스타트업에 관심이 많음.
그림: Chili. 디자이너. 생각을 그림으로 요약하는데 관심이 많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