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지도사 최재현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바뀌지 않는 심리는 무엇인가 ?

어느 정도 기업 규모가 성장하고 나면 기업이 외적으로 성장하는 것과 반비례하게 기업 내부적으로 곪아가는 부분들이 생겨나게 된다. 스타트업이나 창업기업도 마찬가지 상황을 겪고 있지만 매출액이 어느 선까지 보장이 되는 기업일수록 겉에서는 보이지 않는 기업 내부만의 속사정이 생겨난다.

업력이 긴 기업일수록 가장 먼저 곪아가는 부분이 바로 ‘사람’에 대한 부분인데 대표자가 사람에 대한 문제를 인지하는 경우도 있고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서 사람에 대한 문제는 수면 위로 끌어내어 ‘문제’로 삼지 않으면 이것이 문제인지 문제가 아닌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게 된다. 대표자의 인지 여부와 관계없이 문제로 삼아야만 문제가 되는 성격 때문에 장기적으로 방치할 경우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은 곧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까지 전염시킨다.

전염 중에서 가장 나쁜 전염은, 기업에게 있어, ‘정착’이나 ‘안도’와 같은 심리를 심어주는 것이다. 이대로 물 흐르듯이 가기만 하면 평생직장이 보장이 된다는 식의 정착이나 안도감을 갖게 되는 경우 근로자는 일정 이상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게 되는 것인데 이런 적당한 선에서의 노력이 결국 기업의 실적을 악화시키고 사람과 사람 간의 책임소재를 불분명하게 만든다.

중소기업에서 대기업 수준을 요구하지만
정작 본인은 대기업 마인드가 없다.

최근에 만난 중소기업의 팀장님은 사람에 대한 어려움을 단적으로 내게 표현했다. 회사의 관리자급 이상들이 가지고 있는 마인드가 너무 썩었다는 것이었다. 중소기업에 와서 일하면서 대기업 수준을 요구하지만 정작 본인은 대기업 마인드가 없다는 사실.

복리후생도 대기업 수준을 요구하고, 시스템도 대기업 수준을 요구하고, 급여나 처우도 대기업 수준을 요구하면서 대기업과 같이 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과를 관리하고 시스템에 따라 일을 하자는 것인데 그에 맞게 따라주는 관리자가 없다고 내게 어려움을 토로한 것이었다.

원하는 대로 시스템도 갖추어 주고 급여나 처우도 개선해주었지만 정작 ‘사람’이 대기업으로 바뀌지는 않더라는 말이다. 회사가 시스템 개편과 조직 개편을 2년간 수행하면서 물갈이를 숱하게 진행하고 나서야 조금씩 시스템에 따라오는 사람들이 늘어나더라는 것.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왜 바뀌지 않는 것인가?

회사에 먼저 들어와서 오랜 시간 근속을 한 것을 자랑처럼 여기는 관리자들, 윗선들. 그리고 그 시간을 정당한 근무의 대가로 받기를 바라는 마인드가 지배적이다 보니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마치 자신들이 회사의 문화를 만들고 근간을 만든 것으로 생각하지만 정작 회사가 외형적으로 성장이 정체되어 있다거나 오히려 마이너스 성장으로 가고 있다면 그런 생각은 지난 시간들이 모두 잘못된 것이었음을 반증한다.

기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유기체다. 성장을 위해 모두가 노력했다면 분명히 성과의 저변에는 사람의 노력이 묻어 있다. 개인이나 팀 단위의 노력이 있을 수도 있고, 대표자 개인의 노력이 있을 수도 있고 때로는 외부의 노력이나 환경변화, 정책 변화로 그런 것이 생겨날 수 있지만 적절한 운을 제외하고서는 대부분의 기업은 사람의 노력으로 기업의 성장을 이루어 간다.

성장의 정체나 마이너스 성장에는 사람의 실수가 그 안에 들어가 있다. 그 실수는 다양한 요인에 영향을 받지만 근로자들이 자신이 맡은 바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지 않고 태만한 근무습관을 가지고 있는 것도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중소기업일수록 이런 태만한 근무습관은 고착화되어 있다. 중소기업이기 때문에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된다, 대충해도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고 중소기업이기 때문에 또 문제가 생기면 쉽게 불을 진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짜증 나면 회사를 나가면 되며, 자신이 옮겨갈 회사는 얼마든지 많으니까. 그런 생각이 밑 저변에 가득히 자리 잡고 있다 보니 지금 회사에서 굳이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습관을 지배하게 된다. 회사가 안정적인 매출처를 가지고 있을수록 이런 현상이 쉽게 발생되기 마련이고, 회사가 성장을 위해 채찍질을 가할 때도 쉽사리 이런 생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채찍질을 하더라도 안정적인 매출은 확보되어 있으니까. 그리고 누군가는 열심히 할 것이라고 믿으니까.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으라는 성경의 구절이 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시스템에는 새로운 사람이 필요하다.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여 기업이 변화의 시점을 맞이하고 있다면 기존에 기업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선택을 해야만 한다. 변화하거나 아니면 도태되거나.

기업에서 무조건적으로 사람을 구조 조정하고 자르지 않고 함께 변화를 위해 달려가자고 손을 내민다면 그런 상황에서는 손을 잡아야만 하는데 변화에 대한 생각이 1%도 없는 사람들은 이런 손길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손을 잡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불만을 토로하고 새롭게 도입되는 시스템을 두려워한다.

기업에 부는 새로운 바람이 무조건 긍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결정했고, 도입 이후에 긍정적인 변화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한다면 그때야말로 함께 변화를 위해 달려가자는 손길을 잡아야 할 때인데, 이런 흐름에도 불구하고 변화하지 않는 사람들은 절대 손을 잡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어떻게든 시스템의 허점이나 단점을 보려고 한다.

정착, 안정, 유지에 대한 고착화된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그것이 결국에는 생각과 습관으로 이어져 변화의 흐름에 발을 담그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한다.

자신이 변화에 대한 생각이 없다가 조금씩 회사가 달라지고 있음을 보고서 변화를 결심한 사람들, 변화하기로 마음을 먹고 생각과 습관을 바꾸는 사람들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새로운 시스템이 도입될 때 적극적으로 이를 대응하고 나서는 사람들은 정말 좋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도태되기까지 끝까지 변화하지 않는 사람들은 답이 없다.

서두에 언급한 중소기업의 팀장은 2년 새 인력의 50%가 교체되었다고 말했다. 회사에서 권고사직한 일은 없다고 했다. 그저 모든 사람들이 변화에 수긍하지 못하고 자진 사직을 했으며 자진 사직을 하는 순간에도 회사에서는 함께 가자고 말을 했다.

이 회사가 심각한 변화를 시도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업무 절차를 조금 손보고, 문서를 조금 추가했을 뿐. 하는 일에 변화는 없었고 오히려 회사를 성장하기 위해 기존에 하던 일에서 조금 더 추가해서 더 열심히 일을 하자는 것이었다. 급여 수준? 대기업 수준이다. 복리후생? 대기업 수준이다. 지금까지 컨설팅을 하면서 이런 기업만큼 처우가 좋은 곳은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겨우 문서 몇 장, 절차 몇 가지 추가된 것이 근로자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지난 십수 년간 회사에서 내 멋대로 생활하면서 월급 쉽게 받아먹다가 새로운 대표가 와서 업무적으로 조금 개선을 시도한 것이 이들에게는 자신의 잘못과 실력 없음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이다 보니 결국 퇴사를 결정한 것이었다. 부끄럽게 회사생활을 하느니, 실력이 없어 일을 잘 해내지 못해서 계속 회사와 마찰을 빚느니 결국 퇴사를 선택한 것이다.

변화를 시도하기 전에 회사는 적자 상태였고, 이대로 가면 회사가 3년 안에 망할 수밖에 없었다. 역피라미드 구조의 기업은 연공서열로 진급을 시키다 보니 신입은 적고 관리자급 이상이 회사의 절반이 넘었다. 안정적인 매출처가 있다 보니 월급은 제때 받아갔지만 정작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서 인력과 자금을 투입했지만 정작 중요한 핵심기술은 외주를 주었다.

외주를 주는 기간 동안에 근로자들은 관리자 마인드로 일을 했다. (회사에 중간관리자 이상이 많으니 모두가 관리자 마인드) 누구 하나 핵심 기술을 배울 생각을 하지 않았고, 외주가 알아서 처리해주겠거니 생각했다. 외주 기간이 끝나고 새로운 대표가 선입되어 회사에 왔을 때 즈음, 핵심기술에 대한 노하우에 회사에 쌓였으니 새로운 사업을 시도하려고 대표가 의지를 표명했지만 정작 근로자 중에 누구도 핵심기술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없었다.

왜냐하면 외주를 주었기 때문이고, 외주를 기간 동안 그 누구도 기술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근로자들은 새로운 사업을 시도하는 대표자에 반기를 들었다. 쓸데없는 일을 만든다며 적대했다. 대표가 그래도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핵심기술을 배 울테 니 외주 기간을 더 늘리자고 의견을 내놓더랬다. 회사가 지난 수년간 근로자들이 배우라고 수십억을 투자한 핵심기술을 근로자 그 누구도 배운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또다시 수십억을 투자해서 외주를 연장하자는 미친 의견을 대표자가 받아들일 리 없었다.

외주 맡기고 자신들은 관리자 마인드로 회사에 나와서 대충 일하고 제때 급여를 받아가면서, 새로운 대표가 왔으니 배우는 척 외주 기간 늘리자고 하고, 정작 자신들의 못난 행동에 대한 반성은 없고. 오히려 변화를 시도하는 사람을 욕하여 적대하고. 이 얼마나 처참한 현실인가.

변하지 않는 사람들.
변화를 위해 손을 내밀 때 그 손을 뿌리치는 사람들.
변화가 되고 있으니 함께 가자고 하는 그 손마저 내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기업의 중역이 될수록 그 기업은 위험해진다.

[별별 창업 이야기] 시리즈

(8)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7) 같은 단어, 다른 이해
(6) R&D 지원사업, 왜 어려운 거지
(5) 사업계획서 작성의 기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