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를 그리다 팀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그림 해설: 실리콘 밸리 회사들이 세계를 제패한 이유는 클라우드, AI, 빅데이터, 블록체인 등의 첨단 기술이 아니라 사용자의 경험 (User Experience, UX)이다. 기술은 단지 거들뿐.


제품을 개발할 때 우리가 가지는 첫 질문은 ‘사용자들이 제품을 접했을 때 어떤 감정을 느꼈으면 하는가?’이다. 그러고 나서 그 의도에 맞게 제품 설계와 개발에 착수한다.

– 애플 WWDC (Worldwide Developers Conference) 2013년 기조연설 인트로 중

4차 산업 혁명?

실리콘밸리의 직장에서 엔지니어 친구들에게 4차 산업혁명에 대해 물어보았다.

“Have you heard of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4차 산업 혁명에 대해 들어본 적 있어?)

“What? You mean, there were four industrial revolutions? As far as I know, there was only one industrial revolution.”
(응? 산업혁명이 4번이나 있었다고? 내가 알기로는 산업 혁명은 한 번 밖에 없었는데?)

기술의 대한민국 vs. UX의 실리콘밸리

우리나라는 단연 기술 선진국이다. 반도체, 가전제품, TV 등의 기술력에서는 실리콘밸리가 도저히 따라올 수가 없다. 반면 기술 중심의 대한민국에서 볼 때 우리가 가지지 못하고 실리콘밸리가 가지고 있는 기술은 AI, 블록체인, 공유 경제, 소셜 네트워크 등이다. 우리는 그러한 기술들을 묶어 4차 산업혁명의 기술들이라고 부른다. AI로 인해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이 핵심이라고 했었던 4차 산업 혁명의 정의도 우리나라에서는 블록체인, 공유 경제 등 미래 기술의 종합으로 바뀐 것 같다.

그런데 실리콘밸리 회사의 시작 과정을 살펴보면 뛰어난 기술이 보이지는 않는다. 구글은 그나마 박사과정 학생들이 고안한 뛰어난 검색 기술을 가지고 있어서 성공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페이스북은 누구나 만들 수 있는 PHP 웹 기술을 기반으로 만든 장난 같은 웹사이트에 불과했다. 트위터는 많은 프로그래밍 교육 과정에서 연습 예제로 쓸 만큼 만들기 쉬운 앱이다. 에어비앤비, 우버에 들어가는 기술도 별거 없다. 인공 지능을 쓰는 것도 아니고, 블록체인을 쓰는 것도 아니다. 그냥 웬만한 엔지니어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앱 만들기로 시작하였다.

기술은 별거 없고 아이디어 하나로 세계를 제패했을까? 사실 그것도 아니다. 비슷한 아이디어를 가진 회사들은 전 세계에 수도 없이 많았다.

실리콘밸리 회사들이 세계를 제패한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사용자의 경험(User Experience, UX)이다.

실리콘밸리 회사들은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새롭고 신기하고 편리한 경험들을 제공한다. 아이폰을 시작으로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테슬라, 에어비앤비, 우버 등. 이 모든 회사들이 지금까지는 불가능했던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이러한 경험은 새로운 기술들이 있어서 가능했지만 실리콘밸리 회사들에게 기술은 도구일 뿐 추구의 대상이 아니다.

실리콘밸리 회사들은 오직 자신의 프로덕트를 발전시키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어떤 신기술이 나오든 그것이 회사의 프로덕트에 도움이 되면 활용하고 아니면 무시한다. 그래서 실리콘밸리의 대기업들 중 일부의 기업만 인공지능을 연구/발전시키고 있으며, 프로덕트와 직접적인 관련성을 찾기 힘든 블록체인에는 더더욱 관심이 없다.

기술이 사업이 되는 제조업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가장 뜨고 있고 관심을 받고 있는 기술은 단연 블록체인이다. 블록체인의 활용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중앙 서버가 없이 신뢰할 수 있는 방식으로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다. 전 세계 금융 시스템을 바꿀 수도 있으며 인공 지능이 서로 대화하는 방식이 될 수도 있다.

빅데이터도 마찬가지이다. 빅데이터 처리는 세상을 바꾸었다. 많은 기업들이 더 많은 인사이트를 얻게 되었으며, 인류는 이제껏 처리할 수 없었던 어마어마한 데이터를 이용하여 인공 지능을 학습시키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회사도 빅데이터 기술을 독점하여 큰 돈을 벌지는 못하였다. 바로 빅데이터 처리가 오픈소스 기반이기 때문이다. 빅데이터는 조용히 전 세계의 모든 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여주었지만 빅데이터 기술을 추구하는 것은 의미가 없게 되었다. 그 대신 그 빅데이터를 가지고 무엇을 할지가 중요해졌다.

블록체인은 태생부터 오픈소스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독점할 수도 없고 블록체인을 잘 한다고 돈을 잘 벌 일도 없을 것이다. 다만 블록체인을 이용하여 무엇을 하느냐가 새로운 세상을 여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회사들은 블록체인에 별로 관심이 없다. 블록체인이 회사에 돈을 벌게 해 주거나 프로덕트의 UX를 개선해 주는 기술이 아닌, 기업이 가진 중앙 집중적 기득권을 해체하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아마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이 블록체인을 활용한다면, 그것은 생존과 부의 창출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의 독점이 되는 구조를 막고 사용자들과 이익을 공유하여 사회에 공헌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인공지능도 마찬가지로 오픈소스로 발전하고 있다. 기술 자체가 기업의 생존과 나라의 먹거리가 되는 시대가 끝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의 혁신은 기술이 아니라 프로덕트이다 

삼성 갤럭시와 애플의 아이폰의 경쟁은 자세히 보면 정말 재미있는 점이 많다. 갤럭시는 세계 1위 기술 기업 삼성의 기술을 집약한 휴대전화이다. 아이폰은 세계 최고의 기술을 집약한 제품이 아니다. 카메라 화소 수도, CPU 속도도, 심지어 OS와 인공지능 품질도 갤럭시에 비해 떨어진다. 아이폰은 태생부터 UX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스티브 잡스가 만든 것은 기술의 집약체가 아니라 그 당시에도 이미 있었던 휴대전화와 iPod과 인터넷 브라우저를 합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기계였다.

그래서 애플의 아이폰은 사용자 경험을 더 좋게 만드는 기술이 아니면 휴대전화에 넣을 생각도 안 한다. 갤럭시가 동공 스크롤을 비롯한 수십 가지 잘 쓰이지 않는 기술을 구현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 비해 아이폰은 쓸만하지 않은 기술은 과감히 버린다. 처음부터 애플의 혁신은 UX의 혁신이지 기술의 혁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가 만들어 가는 것은 이제껏 인류가 경험해 보지 못한, 선물과 같은 새롭고 신기하고 삶은 편하게 하는 경험이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에게 있어 기술은 값싼 도구일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기술 보안에 신경을 쓰지도 않고 최신 기술 흐름에 별로 관심을 갖지도 않는다. 다만 그들의 제품이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까, 어떤 기술을 활용하면 더 부드럽고 빠르게 사용자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제조업에서는 기술이 가장 중요하다. 무한 경쟁의 레드오션에서 유사한 제품과 차별화할 수 있는 것은 기술의 힘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새로운 기술에 집중한다. “4차 산업 혁명”이라는 개념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도 그 때문이다. 매일매일 이야기하는 새로운 기술들을 통칭할 개념이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유용하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가 가진 것은 세계 최고의 기술이 아니다. 사람들의 삶을 즐겁고 편하게 하는 신기한 프로덕트들이다. 기술은 오픈소스로 모두가 쓸 수 있는 도구 상자에 함께 넣어둔다. 그리고 각각의 회사가 저마다의 미션을 가지고 인류의 생활을 재밌고 편하게 할 선물과도 같은 프로덕트들을 만들고 있다.

글: Will.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기업 문화와 조직에 관심이 많음.
그림: Chili. 디자이너. 생각을 그림으로 요약하는데 관심이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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