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한 규정과 일못(일 못하는)의 상관관계

어느 조직에나 규정과 규칙이 있습니다.

특히 오래된 기업이나 공공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곳일수록 책으로 만들어야 할만큼 수많은 규정과 규칙이 존재하죠. (대기업 중에는 입사하면 회사의 업무 처리 규정을 모아놓은 글자 그대로 ‘책’을 주는 곳도 많습니다. 그걸 보면 헉 하는 소리만 나오죠)

그나마 민간기업체는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에 놓이거나 외부에서 새로운 대표자가 선임되면 규정이나 규칙을 대대적으로 수정하면서 변화를 추구하지만 각종 법률과 시행령, 그리고 외부의 감시에 놓여 있는 공공기관들은 웬만해서는 바뀌지 않습니다.

조직의 목표나 비전은 새로운 대표자나 조직장이 오면서 주기적으로 바뀌지만 일을 처리하는 방식을 의미하는 규칙과 규정은 수십년이 지나도 안바뀌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규정과 규칙이 많을수록 그 조직은 안정적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예전 규정을 고수하면서도 오랜 시간 망하지 않았다는 뜻이니까요.

문제는 이 수많은 규정과 규칙이 일못을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라는 점입니다. 정말 규정과 규칙이 많으면 일을 못하게될까요? 이제부터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이해하기 편하게 엄격한 규칙과 규정이 명확하게 존재하는 공공기관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딱히 공무원에 반감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공직에 계신분들 중에서 역량이 좀 의문스러운 사람들이 종종 있더군요. 능력이나 인성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적인 이슈로 말이죠. 이런 문제제기가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이야기만인것도 아닙니다. 구글에서 가령 ‘lazy, ineffective public worker’ 같은 검색어를 쳐보시면 왜 자기나라 공무원은 일을 못하는가에 대한 전세계 공통의 불만 제기를 볼 수 있습니다)

공무원이나 공공기관원들은 아주 치열한 경쟁을 뚫고 시험을 통과한 분들입니다. 기본적으로 머리도 좋고, 집중력과 지구력, 그리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인내심 등에서 증명된 사람들이라는 거죠.

이런 능력자들을 한 곳에 모아 놓았으니 일을 아주 잘해야 할텐데요, 불행히도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엘리트들만 모였는데 대체 왜 이렇게 되는 걸까요?

 

똑똑한 사람들끼리 모이면 서로가 서로의 발목을 잡는 걸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이 튀는 걸 못봐줘서 어떻게든 일을 못하게 만들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규정과 규칙을 우선하다보니 그저 일을 답답하게 하는 것일까요?

이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은 대략 세가지인데, 모두 동일한 전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자기 머리를 써서 역량을 쌓는 훈련이 장기간 필요한데, 규정과 규칙을 우선하다보면 이 능력과 의지가 퇴화해서 일을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일을 잘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랜 기간의 교육이 필요하고, 청소년기와 성인기를 거쳐 사회화 과정이 필요하죠.

그리고 조직에 들어가게 되면 그곳에서 통용되는 일의 방식을 또 배워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일의 목표, 세부 업무, 업무간의 우선순위 등을 우리 스스로 적극적이고 자율적으로 정하고 실천하는 훈련을 계속하게 됩니다. 이 축적이 제대로 이뤄져야 일을 잘하게 됩니다.

 

입사하는 순간 머리가 좋다고 일을 잘하는게 아니라, 입사 이후의 과정에서 자발적인 시행착오를 통해 역량이 축적되어야 좋은 머리가 ‘좋은 업무 성과’로 연결될 수 있다는거죠.

똑같은 카페 알바생이라고 해도

  • 시키는 일만 하고, 남는 시간엔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 커피 품질과 고객 만족을 위해 어떤 일을 할 것인가를 스스로 고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전자는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발전이 없지만 후자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월등히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걸요.

일 잘한다는 말은 자율적 고민과 노력을 통한 ‘역량의 축적’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규정과 규칙이 엄격한 곳은 자기의 자발적인 아이디어나 우선순위가 아닌 규정과 규칙을 우선시해야 합니다.

이 규정과 규칙에는 일의 목표, 세부 업무, 우선순위, 수행방식, 결과 정리 등이 모두 정해져 있습니다. 공무원 스스로 적극적이고 자율적으로 일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이 경우 아차 잘못되면 옷 벗을 각오를 해야하죠.

 

때문에 규정과 규칙이 모두 정해져 있는 조직의 조직원은

1. ‘자기의 두뇌를 써서 일의 목표, 항목, 우선순위 결정’하는 역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고, 이게 누적되면 일을 못하게 됩니다.

2. 일을 적극적으로 해서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긍정적인 동기부여 요인으로 작용하기 보다 예측불가성 때문에 외부요인의 영향을 받는 일이 생겨납니다. 이것은 엄격한 규정과 규칙을 만든 근본적인 이유, 즉 ‘예측가능성’을 해치기 때문에 부정적 동기부여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3. 조직 역시 적극적 대처를 통한 긍정적 결과에 대한 것보다 ‘만에 하나 잘못되었을 때의 부정적 결과’에 더 예민해지게 되고, 부정적 결과를 가져온 사람을 조직에서 몰아내게 됩니다.

 

이에 대한 학습효과가 누적되면 조직원들은 더 이상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일하기보다 그저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는 소극적 행위자가 되고 조직에는 소극적 행위자들만 남게 됩니다. 조직 전체가 일을 못하게 되는 겁니다.

 

글을 마치며 

요약하자면, 치열한 경쟁과 시험을 통과한 공공기관원들이 일을 못하게 되는 것은 공무원 개개인의 문제라기 보다는 규정과 규칙을 더 우선시하는 경직된 관료제의 폐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민간기업에서도 권위주의적인 상사 밑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업무 성과가 더 낮다는 연구가 많이 나와 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어떤 순위로 할 것인가를 내가 결정할 수 없다면 일을 못하게 되는 건 피할 수 없다는 것이죠. 그게 규정/규칙이든 권위주의적인 상사의 목소리든 말이죠.

개인의 창의력이나 발전보다도 규정과 규칙을 따라야만 하는 관료제하의 공무원들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겠습니다만, 민간 기업을 다니는 분들이시라면 혹여 내가 머리를 쓰기보다는 그저 기계적으로일하고, 규정과 규칙의 뒤에 숨어서 내 능력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계시지 않는지 생각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위에서 소극적 행위자만 남는다고 했는데요, 기회주의적인 사람들은 이런 조직의 규칙과 규정을 활용해 자기는 일을 안하고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식의 전략을 취하기도 합니다. 일을 못하게 되기보다 못하는 걸 선택하는 셈이죠. 규칙에 억눌린 사람이건 규칙을 악용하는 사람이건 결론은 그 조직은 대부분 일을 못하는 사람만 남게 됩니다.

**대기업에서 매일 ‘혁신’을 말하지만 말처럼 뭔가 바뀌는 것은 없고 맨날 그 모양인건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규정/규칙의 뒤에서 영혼없이 일하는 직원이 많은 것도 분명 한 이유죠.

슬기로운 직장생활과 모비인사이드의 파트너십으로 제공되는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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