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하고 싶어, 잘되고 싶어 시작한 일이다. 그래서, 기왕이면 일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하며, 좌절 아닌 좌절을 겪게 된다. 그때부터 일까, 우리는 점차 일에 감정을 담으려고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야 한다는 생각에 뜻하지 않게 감정적 무리를 한다. 그냥 일인데 말이다. 그래서, 때로는 과도한 흥분으로 평정심을 잃는다. 그렇게 실력의 바닥을 보인다.

 

우리는 ‘일’과의 눈치 싸움보다
함께 일하는 동료를 더욱 의식하기도 한다


직장 생활 속 업무는 조직 안팎의 다양한 사람들과 연결된 경험을 하게 만든다. 그 연결은 온전히 비즈니스로 귀결시키기 위한 직무적 가치를 발산하기 위함이다. 쉽게 말하면, 비즈니스의 목적과 목표 실현을 위해 특정 직무가 책임지고 실현시켜야 하는 것이 있고, 이는 혼자 보다는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도움만 있지 않다. 예상치 못한 일 또는 사람 간의 갈등이 발생된다. 예를 들어, 더 효율적 과정을 위해, 또는 더 나은 상황을 위한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을 때, 자신의 선택을 따르게 하거나, 생각을 관철시키려는 누군가의 노력이 더해진다. 또는, 누군가가 일에 대한 우위를 점하려는 정치적인 목적의 훼방이 될 수도 있다. 그만큼 일과 사람을 떼어놓고 말하기 어렵다.

여기서 휘말리게 되면, 일보다는 사람이 더욱 크고 잘 보이게 된다. 저 사람 때문에, 저들이 제기한 (내 입장에서) 불필요한 조치들 때문에,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거나, 또는 꼭 해야 하는 일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이 생각이 과연 맞는지 틀린지에 대한 생각 없이 내리는 성급한 판단인지도 모르고 그냥 지나간다. 그리고, 그 끝에 감정만 남게 된다. 잘못될지 모른다는 우리의 일에 대한 것보다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동조하지 않은 그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 감정만이 남게 된다.

이렇게 한 두 번의 회합으로 최악의 경우 ‘정치적 분쟁’으로 치닫게 되기도 한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의미 없는 ‘수’ 싸움을 하고, 나와 다른 상대편을 짓밟는 것이 비로소 어떤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조직의 일이 잘되는 거나, 직무적 책임을 보다 효과,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게 된다. 그렇게 감정 낭비를 하며, 일 보다는 전혀 다른 승리를 좇게 된다. 그리고 결국 그게 의미 없음을 깨닫거나, 그러한 일처리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무능력하게 변한다.

때는 이미 늦었다. 일을 감정적으로 하는 법만을 익히게 되고, 나 보다 더 센 상대를 만나거나, 다른 조직에 가게 되면, 이전의 ‘큰 목소리를 내고, 상대방을 방해하는 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다. 그렇게 밖에 일을 하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다음의 희망적 선택 기회는 물 건너간다. 실력 상승의 기회를 스스로 박탈해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일에는 (나 또는 우리)만의
정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특정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쌓게 되면, 자신의 생각을 통해 나온 모든 것에 자신을 투영시켜 생각한다. 자신의 말과 글에 누구도 부인하거나 쉽게 거부할 수 없는 권위가 서려있다고 말이다. 거짓말 같지만, 실제로 조직 안에 그런 사람이 꽤 많다. 자신이 곧 법이라고 생각하고, 그 뜻대로 되어야만 생각하는 (높은 자리에 앉은)이다.

다행히 조직 바깥에 있을지 모를 경쟁사를 포함한 여러 부류에게 대응하기 위해 우리만의 논리를 펼치는 것이라면 문제 될 것이 없거나 적은 편이다. 하지만, 그 논리가 담긴 화살의 방향이 조직 내부의 특정 누군가 또는 세력, 모두를 설득(또는 죽이기) 하기 위해서만 존재하고 있을 때 문제는 커진다. 결국, 누군가의 편향된 아집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게 목소리 큰 이가 조직의 장이거나, 책임 있는 자리에 있다고 하면 문제는 더 크다. 대응할 수 있는 이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그 사람에게 조직 내 관심과 권한이 집중된다. 그렇게 누군가의 독재가 시작된다. 스스로 무거운 책임을 기꺼이 짊어지고 열심히 하여 모두가 바라는 결과를 만들려고 하는 목적은 존재하지만, 이를 실천하려는 방법에서는 구성원들로부터 공감대를 얻거나 환영받지 못한다.

이는 실제 일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⑴ 공식 및 비공식 자리에서 말하는 사람은 그 사람뿐이다. 누구도 그 사람이 말하는데 쉽사리 끼어들지 못한다. 끼어든다고 해도 맞장구를 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몇몇의 간신배만이 그 주위를 맴돌 뿐이다. 그것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하는 최소한의 방어이다. 좋아서 붙어 있는 것이 아니다.

⑵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참지 못한다. 그렇다고 대놓고 어떤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에 이에 대하여 명확한 책임을 규명하고, 이를 최대한 근절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좋게 표현하면 원칙주의자이고, 나쁘게 보면 앞뒤가 꽉꽉 막힌 사람이다.

⑶ 기존의 방식대로 진행하지 않는 것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혹여나 발생할 수 있는 실패 때문이다. 기존 방법과 관행이 더욱 중요하고, 이미 검증이 되었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그 안전함이 언제까지 갈 수 있을지는 중요하지 않다. 익숙한 것이 안전하다고만 생각한다. 안전함이 안정성을 준다고만 믿을 뿐이다.

⑷ 자신이 정한 목표대로 되지 않으면, 뭔가 잘못되거나,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일 관련 모든 것에 지배적 위치를 고수하려고 하는 것이다. 일의 목표부터 방법론까지, 자신의 의지대로 되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거기에 남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태도까지 갖추고 있으면 최악이다. 토사구팽을 남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⑸ 지금의 조직을 자신이 만들었다고 생각(말)한다. 더 많은 경험을 했고, 그로 인해 자신의 손때가 여기저기에 묻어있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혼자 하지 않았다. 모두가 노력했고, 함께 했으며, 그 결과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이다. 그런데도, 이에 대하여 인정하기보다는 그들보다 여러모로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조직)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그 만의 합리성에 빠져, 모두를 곤경에 빠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직에 메시아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스티브 잡스와 앨런 머스크 같은 이들이나 가능한 일이다. 우리 조직에는 없거나, 쉽게 아무나 메시아가 될 수 없다.

조직은 지속적 성장의 목적을 위해 (단계별) 목표를 세운다. 문제는 그 목표가 다음 목표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가 되어야 하는데, 자신이 옳았음을 증명하는 등의 개인적 목표 달성 및 방법론 검증을 위한 것으로 조직의 여러 요소를 활용한다면, 거기에 자신의 감정까지 소모하면서 말이다.

감정 또는 자신의 욕구와 욕망 실현을 앞세워 일하는 이, 조직에 그런 이들이 많다고 하면, 조직은 언제든 휘청일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자신만이 답을 말할 수 있다는 식의 ‘일에 대한 감정적 몰입’이 어느 정도는 필요하지만, 이성적 생각보다 또는 조직을 지탱하는 원리 원칙을 앞서거나 이를 뒤흔든다면 이는 계속 환영받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감정보다 생각을 담고,
그 생각은 ‘일의 원리’를 담아내야 한다


 

그래서, 대다수의 조직에서 ‘감정보다는 생각을 앞세워’ 충분히 토론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게 곧 모두를 성장시킬 수 있게 하고, 더불어 조직력의 상승을 기대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 조치이기 때문이다.

감정보다는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어떻게 하면 자신의 생각을 조직에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지, 그 방법이 말, 글, 이미지 등을 어떻게 조합하여 전달하는 것이 좋을지, 이를 어떤 류의 채널을 통해, 어떤 타이밍에 전달하면 좋을지에 대하여 개인과 조직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⑴ 일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대부분 일과 사람을 합쳐서 본다. 이를 분리해서 보고,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닌, 일과 일 사이의 관계를 고려하여 함께 지향 및 달성해야 하는 목적과 목표 무엇인지를 함께 일하는 리더 및 동료와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 모두가 합리적 선에서 합의할 수 있도록 말이다.
 
⑵ 목적과 목표에 의한 달성 방법과 과정 등에 대해서도 협의한다.
목적과 목표가 답이 아니다. 이를 달성할 수 있는 수만 가지의 답이 있고, 그 답은 그때그때 다르다. 매번 같은 방법이면 된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이는 본인만의 착각일 수 있다. 상황, 환경, 관계성의 변화 등에 의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돌다리도 두드리는 심정으로 임한다.
 
⑶ 사람과 상황에 몰입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자신의 욕구 및 욕망의 분출을 위해 일에 과몰입하면, 나도 모르게 거친 태도를 보일 수 있다. 사람이니 그럴 수 있다. 만약, 그랬을 경우에는 함께 그 상황에 있었던 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상황의 몰입보다는 일의 객관적 입장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⑷ 이성적 공감대를 일의 원리로 삼는다.
동료도 고객이다. 대신에 함께 같은 방향의 목적을 좇는 동반자적 성격이 짙다. 따라서, 비즈니스에 대한 이성적 공감대를 함께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함께 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중심에는 고객이 있다. 그들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함께 만드는 과정을 통해 고객을 향하는 우리만의 문제 해결의 원리를 발견하고, 적합한 원칙을 세울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다.  

완전히 감정을 배제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감정에 대한 힘을 제거가 아니라, ‘빼는 것’을 추천한다. 발생 가능한 갈등의 발생을 최소화하기 위함이고, 이성적 소통을 바탕으로 상호 간의 사람에 대한 신뢰 이전에 서로가 하는 일에 대한 신뢰부터 쌓기 위함이다. 이를 여러 번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람 간의 신뢰가 쌓일 수 있는 것이다.

원래부터 모르던 사람들끼리 모여서 함께 일하는데, 같이 일하게 되었다는 누군가를 다짜고짜 ‘믿을 수 있는가’ 말이다.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 믿음은 그들이 하는 일로부터이지, 그 사람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직스쿨 김영학님의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