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분 구조의 중요성

 

 

제가 처음으로 대표를 맡았던 스타트업은 대표가 과반의 지분을 갖는, 그런 일반적인 구조는 아니었습니다.

시작부터 특허 기술 하나를 가지고 설립된 IT 테크 기업이었기 때문에, 해당 특허 개발에 기여한 주요 R&D 인력들이 모두 주주 명부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개중에는 기관 연구직을 겸임하고 일하는 멤버도 절반 정도 있었는데, 창업자이자 가장 지분이 많은 최대 주주 역시 그랬습니다.

최대 주주는 본인이 연구자 출신이었기 때문에 스스로 경영에 대한 경험이나 지식이 부족하다고 판단했고, 또한 생계 유지를 위해 본인의 본업을 떠나는 데 주저함이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렇기에 회사를 초기부터 전담으로 확실하게 운영해줄 사람을 찾고 있었고, 제가 대표로 합류하게 된 것이지요.

주변에서 최대 주주와 일부 멤버가 Full-time이 아닌 것에 대해 약간의 우려는 있었으나, 처음에는 사실 크게 개의치 않았고 실제로 큰 문제가 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이 만든 특허가 없었다면 설립되지 않았을 회사였고, 어쨌거나 그분들이 초기 팀 세팅에 있어 크게 기여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음이, 1-2년이 채 가지 않아 밝혀지게 됩니다.

 

구조적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더욱더 심해질

 

 

시작부터 잘못된 이 구조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문제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반드시 시장성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특허 기술은 생각보다 시장에서 반응이 없었고, 팀은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기존 특허 기술에 약간의 살을 붙이는 정도로 사업화가 가능했다면 아마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문제는 그 정도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B2B로 판매가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던 기술이 예상보다 기업·기관의 관심을 받지 못했고, 세상에 빛을 보게 하려면 직접 B2C 프로덕트를 만들어 End-user를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R&D 중심 기업에서 UI·UX가 중요한 온라인 서비스 혹은 영업 중심의 기업으로 아예 탈바꿈해야 하는 것이었죠.

저희가 원하는 Product-Market Fit을 찾기 위해서는 기업 방향성 자체를 바꾸는 큰 피봇팅을 해야 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특허 기술이 앞으로 거기에 정확히 얼마나 기여를 할 수 있는지도 미지수였습니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앞으로 해야 고생과 지분 구조가 맞지 않았던 이죠. 그리고 그것이 모든 갈등의 시발점이 됩니다.

 

생존의 갈림길에서 결국 발목을 잡히다

 

사업화가 원하던 방향과 속도로 진행되지 못하면서, 많은 것들이 힘들어졌습니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길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고, 시장 기회를 계속 탐색하는 동시에 저는 정말 미친 듯이 투자 라운드를 돌았습니다. 다시 돌이켜보면, 그때는 무슨 정신으로 그렇게 살았는지 모르겠을 정도입니다.

투자 유치에서도 비정상적인 지분 구조는 계속 문제가 됐습니다. 특히 국내 VC 분들은 ‘창업가 = 대표 = 최대 주주’가 아닌 상황을 극히 기피합니다. (그때는 참 원망스러웠지만, 저희 회사의 말로를 생각해보면 그분들의 그런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10팀을 만나면 6-7팀은 지분 구조만 보고 거절 의사를 밝혔을 정도였습니다.

지분 구조를 개선하지 않으면 답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지분 구조를 나중에 조정한다는 것은 사실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저희 팀은 R&D 인력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니, 본인들이 만든 특허 기술이 시장성이 적다는 것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에서 미래를 위해 지분까지 양보해야 한다고 하면 쉽게 납득할 수가 없는 것이죠. 저 역시 같은 사람으로서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해봐도 그러한 심정들이 충분히 이해는 갑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현재의 구조적인 문제를 잡고, 투자자를 설득하고, 빠르게 피봇팅을 성공시켜내야 하는 제 입장에서는 참으로 절망스러운 순간들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정말 한 줄기 빛과 같은 일이 발생합니다. 영업 차원에서 갔던 한 잠재 클라이언트 사가 저희 팀을 인수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죠.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도저히 단독으로는 살아남기 어렵다고 판단했던 저는 그 인수 제안이 가뭄 끝 단비와도 같았습니다. 극초기 스타트업이다 보니 인수 금액은 크지 않았지만 거의 Acquihire(인재 인수) 딜이나 다름없었음을 생각하면 괜찮은 조건이라고 생각했고, 인수자 역시 빠르게 성장 중인 업체라 서로 Win-Win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딜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최대 주주는 본인이 만든 특허와 팀이 그렇게 저렴한 가격으로 인수되는 것을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기업은 지분 구조가 곧 의사 결정의 힘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그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M&A와 같은 중요한 의사 결정은 전체 지분의 1/3만 반대를 해도 주주총회를 통과할 수 없습니다.) 인수자 역시 몹시 안타까워했지만 대표인 저로서도 방법이 없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설득한들, 제게는 그러한 상황을 바꿀 힘이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지분 구조라는 것은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그렇게 마지막 희망과도 같았던 그 딜은, 제대로 한 번 쥐어보지도 못한 채 제 손을 떠나버리게 됩니다.

 

끝으로 향하는

 

 

그렇다고 회사 문을 갑자기 닫을 수도 없으니, 저는 더욱더 절박하게 바짓가랑이를 잡는 심정으로 투자자를 찾고 설득하기를 끝없이 반복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러기를 몇 개월, 정말 다행히도 신이 저희를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는지 수많은 고생 끝에 투자자를 모으는 데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지분 구조의 문제도 있고 아직 Product-Market Fit도 깔끔하게 찾지 못한 불안정한 팀이었지만, 감사하게도 저희가 원하는 가치에 수십억의 투자금을 약속해주시는 투자자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금액과 세부적인 텀들에 대해 합의하고 계약서도 다 준비해 두었죠. 인감도장만 찍으면, 모든 것이 완료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계약서에 결국 도장을 찍을  없었습니다.

투자금을 받고 나서 저희가 앞으로 걸어갈 길을 생각하면, 도저히 지속 가능하지 않은 그 지분 구조를 반드시 한 번은 고치고 넘어가야 했습니다. M&A 딜이 하루아침에 날아갔던 그 날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게 해야만 했고, 지분 구조의 특성상 시간이 지나면 더욱 고치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되도록 외부 투자 유치를 받기 전에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했습니다. 특히 대표인 저를 믿고 몇십억의 투자를 결정하신 투자자분들의 입장을 생각했을 때,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그분들의 신뢰를 걸고 함부로 투자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수는 없었습니다.

아직 최종 투자 계약서를 앞에 두고, 저는 마지막 심정으로 지분 구조를 합리적으로 조정하자는 제안을 팀에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그 제안은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남은 구성원분들께 제 지분을 다 넘겨 드리고, 고생 가득했던 대표직을 내려놓게 됩니다.

 

초기 스타트업은, 본인이 가진 지분만큼 일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그 회사는 결국 투자를 받지 못했습니다.

구조적 리스크가 너무 크다고 판단한 투자자분들께서 투자 의사를 모두 철회하신 것이죠. 그렇게 팀은 해산되었고, 아무도 모르지만 나름 파란만장했던 한 스타트업의 이야기도 끝을 맺게 됩니다.

초기 스타트업의 지분 구조는 정말 중요합니다. 지분 구조는 의사 결정 권한이자 가장 큰 인센티브입니다. 그러한 권한과 인센티브를 가진 사람은 그만큼 큰 책임을 지고 확실한 기여를 해야만 합니다. 더 많은 지분을 가진 사람은 더 많은 기여를 해야 합니다. 이는 스타트업이 잡음 없이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되려면 반드시 성립해야 하는 공식입니다. 상장하거나 어느 정도 규모가 큰 기업이라면 이야기가 좀 달라지지만, 초기 스타트업에 최대 주주가 곧 대표여야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스타트업을 준비할 계획이 있으시거나 이미 준비하고 계신 분들은 꼭 명심하시면 좋겠습니다. 초기 팀 세팅이 정말 많은 것을 결정하는데, 팀워크가 잘 맞고 역량 있는 소수의 인재로 팀을 잘 꾸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분 구조와 그에 맞는 책임·역할 분배 역시 놓치면 안 되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이 합리적으로 잘 정리가 되어 있지 않다면, 팀원 간의 불화가 생기고 시간이 지나다 보면 결국 팀이 깨어지게 됩니다. 반대로 이러한 구조를 처음에 잘 잡아만 놓는다면, 상대적으로 서로가 훨씬 마음 편하게 고객과 시장에 집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맨 온 더 그릿과의 제휴로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