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 어김없이 졸음이 쏟아진다. 토론토에 도착해 자가 격리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시차 적응에 애를 먹고 있다. 지금 새벽 5시인 한국 시간에 맞춰 밤을 새운 듯한 피곤함이 몰려온다. 몇 해 전부터 찾아온 노안까지 더해져 컴퓨터 화면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시차 적응도 결국은 적응하는 것이라 그런지 한 살 더 먹을수록 시차 적응도 오래 걸리는 듯하다. 

직장 생활에도 시차 적응과 비슷한 개념이 존재한다. 바로 이직해서 전 직장과 새 직장 사이의 차이에 적응해야 하는 그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가 시차 적응하는 방법과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는 방법이 매우 흡사하다는 것이다. 

 

 


 

 

 

 

하나, 출국 전부터 차근차근 시차 적응하듯 이직 전부터 적응하기

 

시차가 많이 나는 도시로 출장을 떠나기 전 선배들 중 한 명이 출국 며칠 전부터 조금씩 시차에 맞춰 잠을 자면 좋다는 조언을 건넸다. 그렇다고 낮과 밤을 바꿀 순 없으니 하루에 한 시간씩 시차를 줄여 보라는 것이었다. 내가 선호하는 방법은 아니지만 준비성이 뛰어난 몇몇 선배들은 이 방법을 사용했다. 특히 주말을 끼고 출국하는 경우에는 주말을 이용해 시차를 좁혀 효과를 보기도 했다. 팬데믹과 상관없이 평소 재택근무를 했다면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방법이기도 하다. 

이와 비슷하게 이직할 곳이 정해졌을 때도 현재 직장을 퇴사하기 전부터 적응을 시작할 수 있다. 

 

“마크 매니저님, 저희 회사 들어와서 처음부터 다시 배우겠지만 입사 전 유튜브에서 구글이 제공하는 영상 보고 자격증 취득하면 좋겠어요. 영상 보고 따라 하면 어렵지 않게 합격할 수 있고, 무엇보다 저희 비즈니스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몇몇 회사에서는 입사 전에 공부할 거리를 제공한다. 이런 경우, 현 직장을 다니고 있기에 저녁 시간이나 주말을 이용해서 공부할 수 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새 직장에서 어떤 솔루션으로, 어떤 비즈니스 모델로, 어떻게 프로젝트를 수행하는지 조금이나마 간접 경험할 수 있어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나 역시 두 번째 이직할 때 회사에서 진행하는 외부 강의를 듣기를 권했고 연차 휴가를 써서 참석했다. 3일짜리 교육이었는데, 회사가 사용하는 솔루션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어서 입사 초반에 큰 도움이 되었다. 

 

 

 

 

 

, 비행기에서 시차 적응하듯 이직 휴식기에 적응하기

 

장거리 비행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비행기 안에서 일정 부분 시차 적응을 시도한다. 즉, 비행기 안에서 현지 시각으로 밤 시간에 잠을 자고, 낮 시간에는 깨어 있으려고 노력한다. 물론 완벽하진 않다. 기내식이 나오는 타이밍이 시차와 딱 맞지 않고, 앉아서 잠을 자는 것의 한계가 분명 있다. 그럼에도 이 방법을 쓰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은 현지에서 시차 적응하는 데 시간을 쓰는 것보다는 비행기 안에서 조금이라도 적응해두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직장 출근을 앞두고 휴식기를 갖는 것은 마치 비행기 안에서 시차 적응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전 직장과 새로운 직장 사이에 이직 휴식기를 갖는 것이 좋을까? 좋다면 어느 정도 기간이 적당할까? 사실 이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휴식기 없이 바로 새로운 직장에 가는 것이 실전 감각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고, 휴식기를 통해서 몸도 마음도 재충전하는 것을 추천하는 이들도 많다.

내 경우 두 가지를 모두 경험했다. 첫 번째 이직 때는 휴식기를 거의 갖지 못했고, 두 번째 이직 때는 회사의 배려로 3주가 넘는 휴식기를 가졌다. 두 가지 모두 경험해본 나로서는 확실히 휴식기를 갖는 것이 좋은 결정이었다. 물론 여기서 휴식기라 함은 이미 입사할 곳이 확정된 상태에서 맞이하는 기간이다. 3주 동안 내가 한 것은 딱 두 가지였다. 먼저는 머리를 비우는 것, 다른 하나는 몸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혹자는 휴식기를 가지면 달리던 말에서 내렸다 다시 말에 올라타 달려야 해서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3주를 쉬어보니 이전 직장에서 받았던 스트레스와 안 좋은 기억들을 모두 떨쳐 버릴 수 있었다. 두뇌가 완전 재부팅된 것처럼 새로워졌다고나 할까? 그래서 오히려 새로운 직장에 들어갔을 때 새로운 것들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처럼 새로운 경험을 위해서는 새로운 자신을 준비하는 기간이 필요하다.

여전히 주변을 보면 이직을 앞두고 휴식기를 길게 갖는 경우가 드물다. 아무래도 이직이 당장의 목표이다 보니 입사 시기를 조율하는 데 있어서 목소리를 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회사가 자신을 꼭 필요로 한다는 확신이 있다면 재충전(refresh)을 위한 휴식기를 1~2주라도 갖길 권한다. 현실적인 팁이라면 현재 회사에서 너무 힘들게 일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해보자. 

 

 

, 도착 직후 바쁜 스케줄로 시차 적응하듯 이직 직후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적응하기

 

출장 전에는 대개 정신없다. 얼마 동안 자리를 비우기 때문에 처리해야 할 일들이 가득하고, 동시에 출장 기간에 진행해야 하는 미팅 준비하는 일도 양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출장 전날 밤에 부랴부랴 짐을 싸고 급하게 공항버스에 오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이 놓여 영화 몇 편을 보고 잠들다 기내식을 먹고 나면 출장지에 도착하곤 했다. 공항에서 바로 호텔로 향해 짐을 풀고는 무작정 밖으로 나온다. 다음 날부터 살인적인 스케줄의 시작이라 자유로운 몇 안 되는 시간이 바로 첫날이기 때문이다. 커피를 좋아하는 나는 괜찮은 카페에 들르거나 저녁 시간대면 현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식당에서 간단히 저녁을 해결한다. 너무 늦지 않게 호텔로 들어와서는 잠이 잘 오든 그렇지 않든 무조건 잠을 청한다. 

실질적인 출장 첫째 날, 스케줄이 빡빡한 출장의 경우는 시차 적응이고 뭐고 없다. 스케줄에 맞춰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저녁에 현지 직원들과 시끌벅적한 시간을 보내고 호텔로 돌아오면 잠이 쏟아진다. 강제로 시차 적응을 하는 셈이다. 시차 적응을 핑계대기 어려운 일정 속에선 몸이 알아서 반응해 하루 이틀이면 바로 시차 적응이 끝난다. 외국계 회사 시절, 독일과 영국을 오가며 신규 사업 모델을 배워와야 했던 출장이 있었다. 이미 사업 모델을 적용해서 적용 중인 곳의 노하우를 얻어와야 했기 때문에 초집중 모드일 수밖에 없었고, 시차 적응을 떠올릴 겨를조차 없었다. 이처럼 가끔은 빡빡한 스케줄이 시차를 잡아먹기도 한다

국내 기업에서 외국계 기업으로 옮겼던 첫 번째 이직이 그러했다. 놀랍게도 외국계 기업에서 보낸 7년 기간 동안 가장 바빴던 시기가 바로 이직 직후였는데, 바로 3개월 프로젝트에 투입된 것이다. 그 프로젝트는 사업부의 A부터 Z까지 들여다보고 진단하고 컨설팅하는 프로젝트였다. 회사, 산업군, 용어, 사람, 모든 것이 새로웠던 내가 모든 것을 조사하고 진단하고 컨설팅해야 했으니 전국을 누비며 회사 안팎의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사무실에 출근하는 날에는 수집한 정보들을 가지고 컨설팅 자료를 만들어야 했으니 당연히 사무실에서 가장 늦게 퇴근하는 날이 많았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났을 때 나는 자연스럽게 새로운 직장에 적응해 있었다. ‘회사에 어떻게 적응하지?’라는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말이다. 

 

 

 

 

, 현지 시간과 한국 시간 모두에 맞춰 시차 적응하듯 천천히 회사 적응하기

 

이번에 토론토로 왔을 때는 시차 적응하는 데 일주일 넘게 걸렸다. 출장이 아닌 탓도 있지만 낮과 밤이 180도 바뀌다 보니 며칠 동안은 이곳 밤 시간과 한국의 밤 시간에 따로 잠을 자야 했다. 요 며칠 늦은 오후에 졸음을 이기기 위해 애를 쓴 결과 겨우 적응하고 있다. 이처럼 출발지와 도착지의 시차가 큰 경우에는 바로 시차 적응을 시도하면 몸에 탈이 나기 쉽다. 이럴 때는 마음을 급하게 먹지 말고 순리대로 천천히 전환하는 것이 좋다. 가능하다면 출장 일정도 너무 빠듯하게 짜기보다는 정신이 온전한 시간 대에 미팅을 잡는 것을 추천한다. 

그러고 보면 내 두 번째 이직이 그러했다. 매출이 수 조원인 회사에서 수십 억 원인 회사로, 직원이 4만 명인 곳에서 20명이 조금 넘는 회사로, 100년이 넘는 역사 속에 업계 1위를 수성하고 있는 회사에서 갓 3년 된 회사로, 어제와 오늘이 다르지 않은 항공모함 같은 회사에서 오전과 오후가 다른 돛단배 같은 회사로 이직을 했더니 하루아침에 적응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무엇보다 처음으로 임원이 되어 자신의 업무뿐만 아니라 회사의 성장과 안정까지 신경 써야 했기에 하루하루가 전쟁과 같았고, 적응한다는 생각 자체가 사치였다. 하루아침에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너끈히 해내는 것은 불가능했고 나 스스로 적응하기까지 버텨야 했다. 그리고 버티다 보니 적응하게 되었다. 6개월이 걸렸을까? 1년이 걸렸을까? 어느 정도 적응했다고 말할 수 있던 시기 조차 헷갈린다. 그만큼 완전히 성격이 다른 곳으로 이직하는 것은 모험이며, 그런 와중에 적응하게 되면 얻는 것이 많다.  

 

 


 

 

어떤 방법이든 시차 적응하려면 한 번은 고생해야 한다. 새로운 직장도 마찬가지로 적응하기 위해서는 본인이 고생해야 한다. 그것이 업무를 위한 것이든, 네트워킹을 위한 것이든, 고생한 만큼 적응하는 시기가 당겨진다. 비단 직장뿐이랴. 우리 삶의 중요한 변화의 순간에는 고생이 뒤따르며, 그 크기에 따라 적응의 시기가 앞당겨진다. 

 

 

Mark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