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의 HR 커피챗 시리즈

※ 내가 쓰는 글들은 개인적인 경험과 고민을 바탕으로 한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특정 누군가를 비판하는 것도, 정답을 말하는 것도 아니니 가볍게 읽어주면 좋겠다. (자문/컨설팅 문의)

 


 

 

낡은 유행인데 왜 못 버릴까


조직문화라는 단어의 유행은 이미 끝났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회사들은 이 단어를 여전히 못 버리고 있다. 채용 공고에도, 타운홀 미팅에도, 심지어 투자자 앞 발표 자료에도 조직문화라는 말은 꼬박꼬박 등장한다. 유행이 지난 옷을 왜 아직도 옷장에서 못 꺼내고 있는 걸까 싶다가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옷이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입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재밌는 건 이 단어를 대하는 태도가 회사마다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스타트업이든 대기업이든, 조직문화 얘기가 나오면 결국 도착하는 지점은 비슷하다. 직원만족도 조사 결과를 캡처해서 슬랙에 공유하거나, 워크숍 사진 몇 장으로 우리 문화가 이렇다는 걸 증명하려 한다. 분기마다 만족도 점수가 몇 점 올랐다는 소식이 전사 공지로 뜨고, 그 점수 하나로 올해 조직문화팀이 일을 잘했다는 평가까지 이어지는 걸 보고 있으면 묘한 기분이 든다. 정작 그 회사가 어떤 사람을 뽑고, 어떤 행동에 보상을 주고, 어떤 사람을 내보내는지에 대한 얘기는 그 공지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조직문화라는 말이 조용히 바뀌었다


가치에서 색깔로

예전의 조직문화는 좀 거창했다. 우리는 이런 가치를 지향한다,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일한다 같은, 어딘가 선언문에 가까운 문장들로 채워져 있었다. 액자에 걸어둘 법한 핵심가치 다섯 개, 그 아래 붙는 행동 강령 같은 것들이 조직문화의 실체였던 시절이다. 요즘의 조직문화는 결이 다르다. 가치보다는 색깔에 가깝고, 지향보다는 정체성에 가까운 느낌이다. 그 회사만의 톤앤매너, 그 회사에서만 통하는 일하는 방식, 심지어 그 회사 사람들 특유의 말투나 회의 분위기 같은 것들까지 포함하는 좀 더 넓고 느슨한 개념이 됐다.

 

인재밀도라는 이름의 마법의 단어

문제는 이 색깔이라는 개념이 최근 인재밀도라는 단어와 거의 세트로 묶여서 소비되고 있다는 점이다. 원래 이 말은 넷플릭스 컬처덱에서 나온 개념으로, 평범한 동료 여러 명보다 뛰어난 동료 한 명이 훨씬 낫다는, 꽤 구체적이고 날카로운 주장이었다. 평범한 사람 다섯 명을 관리하는 데 드는 코스트보다 뛰어난 한 명에게 지불하는 비용이 낫다는, 채용과 보상과 조직 설계를 동시에 건드리는 파격적인 제안이었던 셈이다. 실제로 넷플릭스는 이 논리를 밀어붙이기 위해 후한 퇴직금 제도와 무제한 휴가 같은 파격적인 제도들을 같이 만들었다. 밀도를 유지하기 위한 구체적인 장치들이 세트로 딸려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개념이 이 회사 저 회사로 옮겨 다니면서 어느 순간 그냥 잘하는 사람 많이 뽑았다는 뜻으로 납작해져 버렸다. 정작 그 밀도를 유지하기 위해 저성과자를 어떻게 정리하고, 그 자리를 어떻게 다시 채우고, 그 과정에서 남은 사람들에게 어떤 보상을 줄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계는 따라오지 않은 채로 말이다. 좋은 사람만 남기겠다는 선언은 쉽지만, 그 선언을 현실에서 지탱하는 장치를 만드는 일은 훨씬 어렵고 훨씬 덜 근사해 보인다. 그러다 보니 원래 있던 날카로움은 사라지고 남들도 다 쓰는 근사한 단어 하나만 남은 셈이다.


이 흘러가는 모양새를 보고 있으면 예전에 조직문화가 마법의 단어였던 시절이 겹쳐 보인다. 어떤 개념이 마법의 단어가 되는 순간 다들 그걸 하나의 패러다임처럼 받아들인다. 정작 그 단어를 어떻게 실제로 달성하는지, 기준은 뭔지는 아무도 정하지 않은 채로 말이다. 채용 공고에 인재밀도를 강조한다는 문구를 넣어놓고 정작 그 밀도를 어떻게 측정하고 어떻게 유지할지에 대한 답은 없는 회사가 훨씬 많다.

 

그래도 이해는 되는 사정

여기서 HR을 너무 몰아붙이고 싶지는 않다. 이 흐름을 만든 게 딱히 누구의 잘못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경영진 앞에서 예산을 따내고, 채용 브랜딩에 쓸 문장을 뽑아내고, 이사회 보고서 한 줄에 우리 조직은 이렇다를 담아내려면 복잡한 현실을 한 단어로 압축해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실무를 하다 보면 열 줄짜리 설명보다 한 단어짜리 슬로건이 훨씬 잘 먹힌다는 걸 자주 느낀다. 문제는 그 압축된 단어를 압축된 채로 오래 방치해둔다는 데 있다. 처음 한두 해는 그 단어가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아무도 그 안을 다시 채우지 않으면 결국 빈 껍데기만 남은 슬로건이 되어버린다.

 

 


 

 

말은 바뀌었는데 판단 기준은 그대로다


워딩을 못 바꾸는 이유

회사만의 색깔과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까지는 다들 알게 됐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그럴듯하게, 아름답게 써놨던 조직문화 관련 워딩들을 싹 다 갈아엎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 회사는 사실 성과에 굉장히 냉정하고 상하관계가 뚜렷하다는 걸 인정하는 것보다,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문화를 지향한다는 문장을 그대로 유지하는 쪽이 훨씬 편하다. 뒤쪽이 듣기에도 좋고 채용 공고에 넣기에도 무난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벌어지는 일이 이거다. 정의는 바뀌었는데 그걸 판단하는 잣대는 그대로 예전 걸 쓰고 있는 것. 여전히 조직문화가 좋다 나쁘다를 가르는 기준은 직원만족도 조사다. 심지어 이름만 대면 알만한 글로벌 회사들조차 만족도 순위나 점수를 들고 나와서 우리 조직문화 잘 관리되고 있다고 말한다.

 

 

 

워딩은 몇 년에 한 번씩 새로 다듬으면서, 그 워딩이 실제로 조직에 뿌리내렸는지를 재는 도구는 십 년 전과 똑같은 설문지라는 게 아이러니하다.

 

 


이 만족도 조사라는 도구 자체가 생각보다 쉽게 흔들린다. 팀장이 매일 결과를 챙긴다는 소문이 돌면 점수는 자연스럽게 후해진다. 성과급이 막 지급된 직후에 돌린 조사와 구조조정 발표 직후에 돌린 조사는 같은 회사를 두고도 전혀 다른 숫자를 내놓는다. 우리 회사를 지인에게 추천하겠냐는 문항 하나만 바꿔도 전체 평균이 크게 흔들리는 경우를 여러 번 봤다. 응답률 자체도 함정이다. 참여율이 낮으면 결과를 신뢰하기 어렵다며 독려 메일을 몇 번씩 돌리는데, 그렇게 억지로 끌어올린 참여율이 오히려 눈치성 응답을 더 늘리는 경우도 있다.

 

만족도가 가리고 있는 진짜 질문

직원만족도 조사가 아예 의미가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그 조사가 재고 있는 것이 정말 조직문화가 맞는지는 짚어봐야 한다. 스페이스X나 엔비디아, 앤트로픽 같은 곳들을 떠올려보면 이 질문이 더 선명해진다. 이 회사들을 두고 조직문화가 좋다고 말해야 할까, 나쁘다고 말해야 할까. 이건 사실 회사의 색깔이 어떤가의 문제라기보다, 그 색깔에 맞는 사람을 뽑았느냐 아니냐의 문제에 더 가깝다.


워라밸은 형편없고 매일 야근에 몸이 상할 정도로 일하지만, 그만큼 보상이 크고 회사가 무섭게 성장하는 곳을 떠올려보자. 옆에서 보면 다들 갈아 넣는 것 같은데 정작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만족도는 꽤 높게 나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같은 강도로 일해도 그 강도에 동의하고 들어온 사람과, 다르게 알고 들어왔다가 뒤늦게 알게 된 사람은 같은 설문에 완전히 다른 점수를 매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결론은 하나다. 만족도라는 숫자는 어떤 관점에서는 조직문화의 성적표가 아니라 채용이 제대로 됐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뒤늦은 확인 절차를 원인처럼 취급하고, 정작 원인이었던 채용 단계는 조직문화와 별개의 영역인 것처럼 따로 떼어서 관리한다. 채용팀 따로, 조직문화팀 따로 존재하는 회사가 많은 것도 이런 착시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결국 기본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


만족도 대신 볼 수 있는 신호들

만족도라는 숫자를 걷어내고 나면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이 따라온다. 그럼 뭘 봐야 하느냐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핵심 인재들이 왜 남고 왜 떠나는지가 훨씬 정직한 신호라고 생각한다. 성과가 좋은 사람이 회사의 방향과 안 맞아서 떠나는 것과, 더 좋은 조건 때문에 떠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신호다. 좋은 이유로 나가는 사람과 나쁜 이유로 나가는 사람의 비율, 지금 이 조건 그대로 다시 입사하겠냐는 질문에 대한 답, 저성과자가 스스로 물러나는 비율까지. 색깔이 뚜렷한 조직일수록 그 색깔에 맞지 않는 사람이 버티기보다 먼저 자리를 정리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 하나 더 붙이자면, 핵심 인재를 붙잡기 위해 회사가 실제로 무엇을 내주는지도 눈여겨볼 만하다. 연봉을 더 준다는 말보다, 그 사람에게 어떤 프로젝트를 맡기고 어떤 권한을 열어주는지가 훨씬 정직한 신호에 가깝다. 이런 것들이 만족도 점수 하나보다 훨씬 많은 것을 말해준다. 숫자 하나로 요약되지는 않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믿을 만하다.


이런 신호 대신 성과나 성장 얘기는 쏙 빠진 채로 만족도 점수와 사내 이벤트만 이야기하고 있다면, 조직문화도 회사의 성장과 붙어 있어야 한다는 대전제를 놓친 것이다. 간식바가 얼마나 풍성한지, 워크숍이 얼마나 재밌었는지로 조직문화를 설명하고 있다면 이미 슬그머니 복지 프로그램의 자리로 내려앉은 것에 가깝다. 복지가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문제는 복지와 조직문화를 같은 서랍에 넣어버리는 순간, 조직문화팀이 회사의 성장 전략 테이블에 함께 앉을 이유도 자연히 사라진다는 데 있다. 경영진 입장에서도 조직문화팀을 복지 담당 부서 정도로 여기게 되고, 그렇게 되면 정작 채용 기준이나 평가 체계처럼 조직문화에 훨씬 큰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는 그 팀의 목소리가 끼어들 자리가 없어진다. 회의에 초대는 받지만 의견을 내는 자리가 아니라 결과를 통보받는 자리에 앉게 되는 셈이다.

 

결국 기본기의 합이다

본질적으로 좋은 조직문화를 만드는 방법은 사실 새로울 게 없다. 채용을 잘하고, 평가를 잘하고, 보상을 잘하고, 상과 벌을 명확하게 하면 된다. 이 지극히 기본적인 HR 기능들이 잘 맞물려 돌아가는 상태, 그 자체가 곧 조직문화이기 때문이다. 다만 조건이 하나 있는데, 이 모든 기능이 같은 체계와 색깔 아래에서 일관되게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채용할 때는 도전과 스피드를 강조하며 사람을 뽑아놓고, 정작 평가할 때는 리스크 없이 안정적으로 일한 사람에게 좋은 점수를 주는 회사를 떠올려보면 이 어긋남이 뭘 만드는지 바로 감이 온다.


겉으로 내건 색깔과 실제로 보상받는 행동이 다르면, 구성원들은 금세 그 간극을 눈치채고 회사가 하는 말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된다. 채용 면접에서 들었던 얘기와 입사 후 승진하는 사람들의 실제 행동 패턴이 다르다는 걸 깨닫는 순간, 아무리 근사한 문화 슬로건도 그저 벽에 붙은 포스터로 전락한다. 조직문화는 이런 작은 어긋남들이 쌓여서 무너진다.


이 기본기와 분리된 채로 굴러가는 조직문화는 결국 예전 연수원 중심의 HRD 기능이 걸었던 길을 그대로 따라가게 된다. 한때 HRD 부서는 교육 시간과 참석률, 만족도 설문으로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증명했다. 그 결과 교육이 실제 현업 성과로 이어지는지는 아무도 확인하지 않은 채, 그저 올해도 몇 시간을 이수시켰다는 숫자만 쌓여갔다. 조직문화도 지금 같은 방식으로 가면 똑같은 길을 걷게 된다. 실제 성과와는 무관하게 만족도 점수 하나만을 성과 지표로 삼다가, 서서히 그리고 확실하게 도태되는 길 말이다.

 

 


 

 

설문지 대신 물어야 할 질문


조직문화라는 단어가 여전히 매력적인 이유는 아마 그 모호함에 있을 것이다. 뭐라고 정의해도 크게 틀리지 않고, 숫자 하나로도 그럴듯하게 요약이 되니까. 하지만 그 모호함에 기대는 순간, 우리는 계속 채용의 결과를 조직문화의 성적으로 착각하고, 복지의 만족도를 조직문화의 성숙도로 착각하게 된다.


돌이켜보면 조직문화라는 개념 자체가 문제였던 적은 없다. 문제는 그 개념을 붙잡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걸 증명하는 방식은 한 번도 제대로 업데이트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색깔은 회사마다 다르다고 말하면서 그 색깔을 확인하는 도구는 다들 똑같은 만족도 설문지를 쓰고 있는 셈이니, 애초에 앞뒤가 안 맞는 얘기였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 설문지 하나로 조직문화팀의 한 해 성과가 매겨진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우리는 스스로 만든 함정에 매년 다시 걸어 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이 함정에서 빠져나오려면 결국 조직문화를 채용, 평가, 보상과 같은 선상에 놓고 다시 설계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조직문화팀의 한 해 성과를 만족도 점수 몇 점 상승이 아니라, 핵심 인재의 잔류율이나 채용 단계에서 걸러진 부적합 인력의 비율 같은 지표로 바꿔서 보는 것부터가 시작일 수 있다. 이런 지표들은 당장 근사한 슬라이드 한 장으로 요약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만큼 흔들리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어쩌면 지금 필요한 건 새로운 조직문화 프레임워크가 아니라, 채용과 평가와 보상이라는 오래된 기본기로 다시 돌아가는 용기일지도 모른다. 화려한 슬로건 하나 없이도, 그 기본기만 촘촘하면 조직문화는 저절로 따라오는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확인하고 싶다면, 설문지보다는 사람이 남고 떠나는 이유를 들여다보는 편이 훨씬 정직할 것이다.

 

 


해당 콘텐츠는 이드님의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