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를 그리다 팀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번 더 소개합니다.

실리콘밸리의 테크 컴퍼니들의 이직율은 다른 직종에 비해 높은 편이다. 조금 시간이 지난 자료이지만, 2013년에 PayScale이 내놓은 보고서에 의하면 Fortune 500 회사들을 median tenure (직원이 회사에 머무른 기간의 중앙값) 순으로 정렬한 결과, 테크 회사들은 하위권에 자리잡았다. Google, Amazon, Apple, Qualcomm의 median tenure는 1년에서 2년 정도로, 회사에 오래 남아있는 직원이 많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내가 지나온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회사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회사를 옮기는 이들의 상당 수가 새로운 기회를 찾아 자발적으로 떠나는 경우이지만, 회사의 결정에 의해 ‘잘리는’ 경우도 많다. 사람들이 회사를 떠나는 이유는 무엇이고, 또 회사는 어떤 이유로 해고를 결정하는 것일까?

새로운 도전을 위해 떠나는 사람들

내가 작은 스타트업에 입사했을 때, 70명이었던 회사가 300명으로 급성장하던 시점이었다. 모든 직원이 성장의 혜택을 누리고 있었다. 일주일에 네번 회사에서 점심을 제공하고, 버튼 하나로 카페라떼를 만들 수 있는 에스프레소 머신이 갖추어진 휴식 공간은 다양한 유기농 스낵과 음료로 채워져 있었다. 일년에 한번 축제처럼 hackathon을 하며 밤을 새워 창의력을 자랑했고, 연말에는 지구 곳곳의 오피스에서 온 직원들이 다 같이 모여 파티를 즐겼다. 당시 회사는 업계에서 이례적으로 낮은 5% 미만의 이직률(attrition rate)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 때 해마다 승진을 하며 잘 나가던 big data 팀장이 회사를 그만 두겠다고 해서 직장 동료들이 조금 놀랐다. 6억원 상당의 사이닝 보너스를 받고 페이스북으로 스카웃되어 가는 케이스였다. 이런 경우 회사는 두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남는 대신 연봉을 매치해 주는 카운터 오퍼를 하는 것과 그 사람의 무운을 빌어주며 보내는 것. 회사는 후자를 택했다.

회사를 자발적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모두 이렇게 ‘거절하기 힘든 오퍼’를 받고 스카웃 되는 것은 아니다. 반면, 회사 업무가 과도하거나 경쟁에 떠밀려 다른 직장을 찾는 경우도 그리 많지는 않다. 자발적으로 이직을 하는 엔지니어들과의 사직 인터뷰(exit interview)에서 다음과 같은 이유들 반복해서 들을 수 있었다.

Growth: 현재 위치가 편안하지만 성장이 정체된 느낌이다.
Impact: 내가 회사의 발전에 주는 도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Technology: 새로 유행하는 기술을 쓰는 기회가 주어지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
Aspiration: 열정이 가는 새로운 분야를 찾아 떠나고 싶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 회사에 머물러 성장하면서 평판을 쌓아 생기는 보상보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만들어지는 전문성으로부터 생기는 보상이 더 크다고 믿는다.

 

실적이 좋지 않아 해고되는 사람들

자기의 길을 찾아 다른 회사로 떠나는 이들이 있었지만, 실제 업무 능력이 좋지 않아 해고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한 사람에게 오퍼를 제시하기 전, 인터뷰 과정을 통해 꼼꼼하게 체크를 하는데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 뒤돌아보면 그 사람들을 고용했을 때, 인터뷰 과정에서 한 두 가지 간과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내 팀에 있던 어떤 엔지니어는 주어진 일에 진척을 보이지 않는 일이 많았다. 본인과 매니저인 나, 인사팀이 함께 만나 성과개선계획(PIP: performance improvement plan)을 세웠다. 이 때 이 직원에게 원했던 것은 더욱 능동적인 커뮤니케이션이었다. 누구든 주어진 업무를 혼자 해결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문제 해결을 위해 다른 팀원들로부터 적극적으로 정보를 얻고 무엇보다 매니저인 나에게 도움을 받았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도움을 받으면서 다음에 같은 업무를 더 잘 할 수 있도록 배워나가는 팀원을 싫어할 사람은 없다. 3개월 동안 개선된 점이 없어 하는 수 없이 해고했다. 당시엔 마음 아픈 일이라 생각했지만, 회사는 더 잘 맞는 사람을 찾아 같이 일을 할 수 있어 좋았고, 그 사람은 오래지 않아 자신의 능력을 더 잘 발휘할 수 있는 다른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것을 링크드인(LinkedIn)을 통해 보게 되어 마음이 좋았다.

모든 사람이 성장을 위해 새로운 기회를 찾아 떠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다이나믹하게 개인과 기업이 성장통을 겪는 실리콘 밸리 기업 문화 속에서도, 안정을 추구하는 것 역시 개인에게 주어진 선택으로 존중된다. 60대의 엔지니어가 30대의 매니저가 이끄는 팀원으로 일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어느 직급이든 전문가의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나이나 경험의 시간적 길이는 장점이나 단점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높은 이직률에 대응하는 실리콘밸리의 기업

실리콘밸리의 테크 컴퍼니들이 보여주는 높은 이직률이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기업의 입장에서 사람을 잃는 일은 결국 비용의 문제가 된다. 전문화되고 표준화된 역할과 기업의 업무 프로세스는 높은 이직률에도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적응한 결과이다. 이직률을 낮추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회사에서 꼭 필요한 역할을 해낼 수 있고, 이미 갖추어진 조직 문화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사람을 뽑는 것이다. 한 사람을 뽑기 위해 들어가는 노력과 비용을 생각해보면 헤드헌터들이 수임료로 ‘채용 시 입사자 연봉의 20%’를 회사로부터 받는 것이 결코 비싸보이지 않는다.

매니저들은 어렵게 뽑은 직원들이 회사에 대한 소속감을 진심으로 느끼고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1:1 미팅을 통해 커리어 개발에 대한 멘토링을 제공하고, 팀에게 도움이 된다면 유연하게 승진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직을 통한 커리어의 개발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살고 있는 전문가들. 그들을 붙잡기 위해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은 직원들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을 아끼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기업문화와 다른 점을 확대해서 보자면 다음과 같이 비교할 수 있다.

우리나라 기업 문화

– 애사심과 성실성이 강조된다
– 한 회사에서 누적된 경험치가 다른 곳에서 인정받기 어렵다.
– 자주 회사를 옮기는 사람은 조직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 한 직급에서 머물러 오랫동안 승진하지 못하면 퇴사하는 것이 좋다.
– 그 회사만의 업무 프로세스를 경험을 통해 배운다

실리콘밸리 기업 문화

– 전문성과 창의성이 강조된다.
– 여러 직장에서 누적된 경험의 가치가 더 크다고 인정된다.
– 한 회사에 너무 오래 다니는 사람은 업무 능력이 정체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같은 직급으로 오랫동안 일하는 것도 선택의 문제다.
– 업무 프로세스가 표준화되어 있어 이직하더라도 큰 불편이 없다.

 

이직을 통해 성장하는 실리콘밸리의 생태계

유전자에 생긴 변이가 다양한 개체의 경쟁을 통해 살아남으면서 그 종의 전체적 경쟁력을 높여가며 때로는 새로운 종을 탄생시키는 과정, 이것을 우리는 진화라고 표현한다. 실리콘밸리에서 기업의 진화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꾸준히 시험을 거치면서 경쟁력 있는 아이디어가 채택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나는 스타트업에 일하면서도 구글, 야후,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온 사람들로부터 그 기업들에서 실험되고 선택된 아이디어들을 꾸준히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더 크지만 오래된 기업에 일하면서, 그때 배운 아이디어들을 시험하고 적용하며 나의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다. 어쩌면 이직이 쉽고 빠르게 이루어지는 실리콘밸리의 독특한 문화가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글: Aiden. 엔지니어링 매니저. 데이터 수집을 통한 프로세스 개선에 관심이 많음.
그림: Chil. 디자이너. 생각을 그림으로 요약하는데 관심이 많음.

 

[실리콘밸리를 그리다] 시리즈

(1) 실리콘밸리를 그리다
(2) 생존하는 회사 vs. 미션을 이루어 가는 회사
(3) 스타트업 CEO의 가치
(4) 실리콘밸리의 직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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