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물건을 정리하며 그간 남겨온 노트들을 발견하곤 공동창업자인 현철이 나에게 물었다. “이 노트들 어떻게 할꺼야?”. 그리고 나는 짐짓 망설이다가 얘기했다. “버려, 현철아”. 중요한 내용은 이미 사내 위키에 남아 있을거라 생각하고 그렇게 답했다. 정말 하루 하루 꼼꼼하게 내가 고민한 것, 떠오르는 아이디어, 그리고 하루에 해야할 일을 정리해 놓은 기록이었지만 경험상 저걸 내가 다시 찾아보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제텔카스텐(Zettelkasten) 방법론을 접하면서 이게 큰 문제라는 것을 뒤 늦게 알게 되었다. 노트는 남기는 것도 중요하다. 그 자체가 생각을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정리한 생각이 다시 회고되지 못하는 것은 생산성의 관점에서 보이지 않는 문제였다. 당시의 맥락에서는 효용이 없던 스쳐 지나가는 아이디어라 할지라도 새로운 맥락에서는 큰 가치를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이전의 노트를 재활용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제텔카스텐 은 노트를 연결짓는 시간을 가지는 것만으로 이런 재활용의 문제을 해결하였다. 다만, 고민의 시간을 갖는 노력이 필요하고 효과를 보는 데까지 시간이 걸리는 점 때문에 대중화되지 못하였다.

롬리서치(Roam Research)는 노트가 재활용되기 어려운 문제를 큰 노력 없이도 쉽게 생각들을 연결하는 UX로 해결한 노트앱이다. 롬은 2017년도 런칭하여 현재 6만명 이상의 유료 사용자를 확보한 뒤 $200M 기업 가치를 인정 받으며 $9M 투자를 유치했다 (4.3% 지분을 주고 100억 투자 유치를…). 롬은 선형적으로 기록을 남기는 단순한 메모 기능을 넘어 자유롭게 문맥 사이를 배회(Roam)하며 다양한 생각을 기록하게 한다. 그 결과로 더 창조적인 생각, 더 정리된 생각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문서를 종이와 펜으로 선형적으로 기록하고 관리하던 세상에 제텔카스텐이 노트를 연결하는 방법으로 재활용 문제를 해결했다면, 롬리서치는 이 모든 과정을 물흐르듯 쉽게 할 수 있도록 해준다. 과거의 내가 남김 노트와 현재의 내가 자유롭게 문맥에 얽매이지 않고 쉽고 자유롭게 대화하며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내는 인터페이스를 제공한다.

롬리서치는 어떤 특별한 기능으로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을까?

 

가장 작은 단위의 생각을 관리

롬리서치는 노트를 단편적인 생각들로 나눈 뒤, 연관된 생각을 연결하게 해 준다. 이렇게 해서 어떤 글 쓰기를 하던 간에 가장 작은 단위의 생각들로 나누어 관리할 수 있게 해 준다. 이걸 제대로 이해 하려면 롬의 세 가지 기능을 먼저 알아야 한다.

먼저 롬리서치에서 쓰는 모든 글은 불릿 포인트(Bullet point) 단위로 작성을 하게 되어 있다. 처음 이런 인터페이스를 접한 사람들은 상당히 당황스럽다. 이 불릿 포인트 인터페이스는 사용자가 어떤 문서를 쓰던 간에 생각의 단위를 스스로 나눌 수 있게 유도한다. 생각을 쓰고, 그 생각의 하위 생각은 들여 쓰기(Indent)를 통해서 쓰게 된다. 불릿 포인트를 마우스로 클릭하면, 해당 불릿 포인트를 포함한 하위 내용들이 하나의 페이지처럼 나타난다. 우리가 A4 용지, 하나의 웹페이지라는 글 쓰는 양식은 중요하지 않고, 그 내부의 생각의 단위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백링크는 페이지로 연결되어 들어오는 링크이다. 각 페이지 하단에는 백링크로 들어오는 문단이 같이 나와있다.

사실 롬의 기능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백링크(Backlink)이다. 백링크는 하나의 페이지로 들어오는 모든 다른 페이지를 찾아서 링크가 걸려 있는 문단(불릿 포인트)들을 페이지 아래에 정리된 리스트로 볼 수 있는 기능이다. 백링크 기능 덕분에 링크를 거는 작업은 마치 그 페이지 하단에 지금 내가 적고 있는 단위 생각을 추가하는 것처럼 된다. 이와 더불어 롬리서치는 꺽쇠 부호를 2번 연달아 입력하면(“[[“) 따로 페이지 전환 없이 새 페이지를 만들고 그 페이지로가는 링크를 글에 삽입할 수 있다 (이미 같은 이름의 페이지가 있는 경우 링크만 만들어 준다). 이처럼 링크를 거는 것이 아주 쉽기 때문에 생각을 글로 쓰면서 연관된 글과 연결시켜 두는 것을 동시에 매끄럽게 해 갈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연결된 생각들은 백링크 기능으로 해당 페이지에서 마치 페이지의 일부인것처럼 함께 보고 회고할 수 있다.

페이지 하단에 백링크로 들어온 기록들을 보면, 우측 상단에 필터 아이콘이 있다. 이 필터를 통해서 백링크 기록들을 선별적으로 리스트를 볼 수 있다. 백링크 중에 한 문단에 “인간 관계” 그리고 “스타트업 아이디어” 두 개 링크가 있다고 하자. 이때 필터링 기능을 사용해서 “스타트업 아이디어” 링크가 있는 백링크는 제외하고 볼 수 있다.

롬리서치에서는 링크 외에도 태그(Tag)를 사용해 링크와 똑같이 페이지를 만들고 페이지에 연결할 수 있다. 백링크 리스트를 특정 기준에 맞게 필터링해서 보려고 할 때, 이런 태그 유무를 기준으로 삼을 수도 있다. 내가 쓰고 있는 글의 문장 내에 링크를 걸 키워드가 있다면 꺽쇠 부호를 통해 링크를 걸고, 적당한 키워드가 없다면 문장 말미에 “#” 부호를 통해 태그를 걸어 두어 이 기록이 어떤 키워드와 관련이 있는지 명시적으로 관계를 정의해 두게 된다.

롬리서치는 이렇게 불릿 포인트 인터페이스를 제공해서 사용자가 자기 생각을 가장 작은 단위로 쓰도록 유도한 뒤, 해당 생각과 관련된 키워드를 링크와 태그로 연결하게 하여, 페이지와 연관된 다양한 생각들을 페이지 하단에서 쉽게 정렬해서 볼 수 있게 해 준다. 즉, 사용자는 글을 쓰면서 관련 키워드에 링크를 걸거나 태그를 붙이는 연결하는 작업을 하고 나면, 그 결과로 가장 작은 생각 단위로 정리된 엑셀 시트를 가지게 되는 것과 유사하다. 이러한 이유로 창업가인 Conor White-Sullivan은 롬이 노트 작성에 있어서 엑셀과 같다라고 이야기 했다.

 

노트를 회고하기 그리고 재활용 하기

노트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은 노트를 작성하고 나서 (시간이 흐른 뒤) 회고를 해서 현재의 생각을 발전시키는데 재활용하는 것이다. 롬리서치는 UX 상에 이런 회고하고 재활용할 수 있는 기능을 녹여 넣어서 노트를 하는 행동이 현재와 그리고 미래에서 최대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런 UX 상의 기능 중 하나는 연결되지 않은 레퍼런스(Unlinked References)이다. 백링크로 들어오는 기록들은 연결된 레퍼런스(Linked References)라고 표기 되고, 그 아래에는 명시적으로 연결되지 않았지만 페이지 제목이 언급되는 다른 노트 속의 문단을 모두 찾아서 보여 준다. 이는 내가 이전에는 중요한 키워드로 생각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 그 키워드를 제목으로 페이지를 만들면, 이전이라면 연결했을 법한 생각들을 찾아 주는 것이다. 또한, 내가 깜빡하고 연결하지 않았던 내용을 쉽게 다시 발견할 수 있게 해준다. 특히 다른 노트앱에서 만든 노트들을 롬리서치로 가져오는 경우 (Importing), 이전 노트에 없던 연관 관계를 점진적으로 계속 만들 수 있게 해 준다.

 

오른쪽 어두운 곳에 보이는 노트들이 사이드바에 띄운 노트들이다.

롬리서치의 사이드바 기능 또한 노트를 회고하고 재활용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왜 이런 기능이 다른 노트앱에서는 없었지 싶을 정도이다. 사실 소프트웨어 개발자라면 코딩을 할 때 에디터 내에서 여러 창을 띄워두고 작업하는 것이 익숙할 것이다. 사이드바는 내가 메인뷰에서 보고 있는 노트의 오른쪽에 참고할 노트를 여럿 띄워두고 작업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기능이다. 메인뷰에서 키워드 링크를 걸고 바로 연결한 노트를 띄워서 보면서 회고를 하고 재활용을 할 수 있다. 물론 기존의 노트앱으로도 검색 기능을 사용해서 같은 일을 할 수 있으나, 검색 → 이전 노트 확인 → 글 쓰는 노트로 돌아와 작업을 할 때 여러 창을 오가는 번거로움이 있다. 롬은 이런 과정을 꺽쇠 부호를 입력하는 간단한 방식으로 해결하여 훨씬 쉽게 작업을 할 수 있게 한다. 꺽쇠 부호 입력 후 키워드를 치면 해당 노트에 대한 링크가 만들어 지고, 이 만들어진 링크를 SHIFT+클릭하면 그 페이지가 오른쪽 사이드바에 뜬다. 창의 포커스 조차도 메인뷰에 그대로 머문다 (Building a Second Brain in Roam…And Why You Might Want To). 쉬워지는 만큼 이전의 노트를 회고하고 재활용하는 활동이 더 많아 진다.

롬리서치에는 내가 작성한 노트를 다른 페이지에 일부를 가져다 놓고 서로 동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임베드(Embed) 기능이 있다. 이때 임베드 한다는 것은 단순히 글을 한 페이지에서 다른 페이지로 복붙하는 것이 아닌, 원본이 수정 되었을 때 이를 가져다 쓴 다른 페이지의 글도 자동으로 수정되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동적인 연결을 활용하면, 여러 노트에 있는 같은 내용 중 시간이 흐를수록 일부만 수정되어 일관성이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동적인 연결 과정은 다시 한번 연결하려는 노트에 담긴 생각을 검토하게 한다.

 

왼쪽 하단과 같이 노트에 {{[[query]]: … 명령문을 입력하고 나면, 오른쪽 노트처럼 쿼리 결과가 노트의 일부분으로 표기된다.

롬리서치에서는 AND, OR, NOT 과 같은 논리 연산자와 링크 혹은 태그 이름을 조합하여 특정 조건에 맞는 노트 내용을 모아서 페이지에 삽입할 수 있다. 이는 쿼리(Query)라고 불린다 (Query syntax and logic: how to ask Roam questions with queries). 쿼리 명령어가 삽입된 노트들은 해당 위치에 쿼리 결과를 자동 삽입하기 때문에, 추후에 작성하게 되는 노트도 포함하여 항상 최신의 결과를 볼 수 있다.

결국 롬리서치는 사용자가 노트를 쓸 때, 혹시나 연결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알려주고, 사이드바 기능을 사용해서 노트들을 탐색하며 새로운 노트를 작성하게 하고, 임베드와 쿼리 기능을 통해서 기존에 작성했던 내용을 다시 작성하기 보다 동적으로 연결하는 작업을 하게 유도한다. 이런 활동을 통해서 사용자는 이전에 작성했던 노트들을 그들간의 관계를 계속 생각하며 회고하게 되고, 재활용하게 된다. 노트가 작성할 때 생각 정리하는 수단 이상으로 계속해서 사용자의 생각을 발전시키고 개선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게 된다.

 

전 주기의 글 쓰기를 쉽게

노트앱은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된다.

(1) 업무 관리: 내가 오늘 할 일을 정리해서 리스트로 만드는데 노트가 사용되기도 한다. (2) 단순 기록: 기억하기 어려운 것들을 적어두고 참조하는데도 사용이 되며, 여러 일을 하는 와중에 잠깐 잠깐 떠오르는 생각을 자세히 노트에 정리하기 전에 짧게 기록해두는 용도로 쓰이기도 한다. (3) 리서치: 웹사이트들을 방문하며 내가 수집하고자 하는 정보를 복붙해서 정보를 정리하는데도 사용되며,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생각을 쏟아내며 글로 써보는 용도로도 사용된다. 그리고 (4) 일기: 하루 혹은 일주일을 보낸 뒤 나를 돌아보기 위해 일기나 회고의 글을 쓰는 용도로도 쓰일 수 있다. 이런 다양한 용도로 노트앱은 쓰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각 용도에 맞게 여러개의 노트앱을 사용하기도 한다 (How to choose the right note-taking app).

이런 다양한 목적 때문에 대부분의 메모앱을 실행하면 앱은 이름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빈 노트를 띄우며 사용자 입력을 기다린다. 이와 다르게 롬리서치는 그 첫 화면이 일간 노트(Daily Note)라고 하는 특수한 노트 화면이다. 일간 노트는 날짜를 제목으로 가지는 노트로써, 모든 롬의 노트에서 날짜를 언급할 때 링크를 걸어둘 수 있는 날짜를 키워드로 하는 페이지이다.

일간 노트는 단순히 날짜가 키워드인 페이지 이상의 역할을 한다. 여기서 나의 업무에 대해 기획하고, 실제 업무를 처리하면서 필요한 노트를 꺽쇠 부호로 새로 만들고, 하루/주간/월간 회고를 하는 노트 중심의 워크플로의 시작 페이지 역할을 한다.

 

롬리서치는 대부분의 노트 목적을 이룰 수 있고, 나만의 워크플로를 만들어 쓸 수 있다.

일간 노트에 할일을 리스트하여 (1)번 업무 관리 용도로 Roam을 사용할 수 있다. CMD+Enter 단축키를 통해서 불릿 포인트를 체크박스로 바꿀 수 있다. 개별 프로젝트 페이지에 To-Do 리스트를 만들어 놓고, 일간 노트에 임베드 해와서 오늘 할 일을 정리해 둘 수 있다.

기억하기 어려운 것들을 바로 노트해 남기고 싶은 (2) 단순 기록 용도의 경우, 일간 노트의 하나의 불릿 포인트로 작성한 뒤, 태그를 붙여 두어 나중에 모아서 볼 수 있다. 읽고 싶은 책을 발견하면 책 제목과 저자를 쓴 뒤에 #읽을꺼리 라고 태그를 붙여두는 셈이다. 짧게 정리해 두고 나중에 다시 생각해볼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면 #[[새로운 아이디어]] 이런 식의 태그를 붙여 두고 나중에 모아서 볼 수 있다.

미팅이 있거나 전화 통화가 있었다면, 이 내용을 간단히 참석자, 주제 등의 링크를 걸어 기록해 두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개인용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이 된다. 예를 들어, 일간 노트에 [[김태현]]과 함께 [[FinTech]] 사업 아이디어에 대해서 간략히 논의하고 [[Lemonade]] 회사에 대해 알아 볼 예정 — 이런식으로 기록해 두고 나면, “김태현” 페이지에서 그간 논의했던 내용을 모두 모아서 볼 수 있다.

To-Do 리스트에 블로그 글의 초안을 잡는 업무를 잡아두고 초안 페이지를 링크를 만들면, 해당 링크로 이동해서 초안을 잡는 일을 시작할 수 있다. (3) 리서치 용도로 Roam을 쓸 수 있는 것이다. Lemonade 회사에 대해 리서치 해 보기 위해서 마찬가지로 To-Do에 Lemonade 페이지가 링크된 업무를 기록한 뒤, 해당 페이지로 이동해서 리서치를 진행해 갈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페이지들은 이후에 쉽게 다시 리스트해서 볼 수 있도록 추가로 링크나 태그를 걸어 둘 수 있다.

(4) 일기 용도로 하루가 끝나고 나서 하루에 진행했던 업무와 그 업무를 하고난 뒤의 소회, 얻었던 교훈을 To-Do 리스트 아래에서 써 둘 수 있다. 이런 회고 성격의 글 뒤에 #회고 태그를 붙여 두면, 지난 일주일, 지난 한달동안 내가 나를 돌아본 내용을 회고 페이지로 가서 백링크로 모아 볼 수 있게 된다.

즉 일간 노트를 채워가며 링크/태그를 걸고, 새로운 페이지를 만들고, 이 페이지에서 작업을 하는 노트를 활용하는 대부분의 업무를 롬리서치 내에서 처리할 수 있게 되고, 그간에 남겼던 일간 노트의 글들은 관련 키워드에 따라 정리되어 나중에 다시 회고하고 재활용될 수 있게 된다. 하루에 남기는 메모하나 남기지 않고 전부 정리해 둘 수 있고 다시 활용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모든 활동을 할 때 사고하는 것처럼, 롬은 모든 활동의 베이스가 되는 툴로 사용될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롬의 특별한 기능은 파일 캐비넷 혹은 트리 구조로 펼쳐지는 문서함이 없다는 것이다. Notion이나 Wiki에서 왼쪽에 보이는 계층 구조의 문서함이 없기 때문에 사용자는 계층 구조를 고민하고 구조 아래에 노트를 만들어야 하는 부담이 없어진다. 계층 구조를 가지는 노트앱은 Top-Down으로 생각을 정리해야 하는 반면, Roam은 Bottom-Up으로 아무 생각이나 쉽게 쓰기 시작할 수 있게 해 주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게 해 준다 (This Note-Taking App is a Game Changer – Roam Research). 이는 사용자가 노트를 하는데 있어서 글 쓰기와 연관 짓기 두 가지의 본연의 기능에 충실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그것이 사람의 뇌 속에서 일어나는 사고의 과정과도 더 유사하다.

 

중독되는 노트앱

  • The more I do this, the more I want to find connections between everything in my life. I link articles to people, people to places, places to ideas, it keeps growing, and it keeps spitting out new relationships I hadn’t thought of or had forgotten about. – Nat Eliason, Roam: Why I Love It and How I Use It

정리하고자 하는 데이터가 있고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 테이블 구조가 정해졌고 이제 막 비어있는 엑셀 파일을 열었다고 생각해 보자. 말하고자하는 바가 명확히 머리속에 정리되어 있고, 슬라이드에 사용할 이미지도 다 준비되어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짜야하는 코드가 머릿속에 분명히 그려지고 필요한 로직은 이미 의사 코드(Pseudo code)로 짜 놓은 상태로 코드 에디터를 열었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해야 하는 일은 매우 단순하고 직관적이라 우리는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고 업무를 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 즐겁기까지 하다. 엑셀의 폰트 양식과 셀 양식도 이리 저리 바꿔보며 이쁘게 만드는 것, 슬라이드의 이미지 위치, 글의 위치를 수정하며 발표할 말을 떠올리는 것, 코드를 짜며 변수명을 정하고 주석을 달아가며 더 간결한 코드를 생각해 보는 것 — 이 모든 과정은 즐거움을 동반하고 몰입할 수 있게 한다. 막연하지 않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예상되며 약간 어려운 정도의 일은 사람을 몰입하게 하고 동기를 계속 부여해 준다.

롬리서치를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생각을 하기 위해 롬의 페이지를 웹브라우저에 먼저 띄우게 된다. 생각을 글로 써 가며 그 생각을 다른 생각과 연관 짓는 작업은 물흐르듯 흐른다. 이는 글 쓰는 UI가 그 어떠한 UI보다 유연하면서도 쉽기 때문이기도 하다 (노코드 UI: 사람들은 왜 노션으로 웹페이지를 만들까?). 그리고 그렇게 글을 쓰다 보면 내 생각들 얻게된 정보들 그리고 글로 기술한 내 경험들이 엑셀시트에 잘 정리된 표처럼 자동으로 정리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키워드 링크를 붙이는 방식, 사용할 태그의 종류, 페이지를 어떤 주제 단위로 관리할 것인지 더 나은 개선 사항이 보이고, 자신만의 워크플로를 만들어서 롬의 노트 구조에 적용을 해 나간다. 하루에 수 시간을 롬에서 글 쓰는 일을 하게 되며 이는 사용자가 사고하는 프로세스에 녹아져 들어가게 된다. 롬이 사용자가 생각을 하는 OS(Operating System 운영체제)이 되는 것이다 (Building the Global Knowledge Graph: Dreaming the Dream for Roam Research). Minecraft에서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재미에 게이머가 푹 빠져 있듯이, 롬의 사용자는 자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연관 짓는 재미에 중독되게 된다.

 

하지만 대중화는 가깝지 않다

제텔카스텐은 노트를 생각 단위로 쓰고 연결하여 깊은 사고에 뿌리를 둔 글을 잘 쓸 수 있도록 돕는다. 롬리서치는 깊은 사고를 바탕으로한 글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는 모든 사고 활동과 기록 활동에 제텔카스텐의 방법론을 적용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개발해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롬이 대중화 되기에는 아직 허들이 많다.

먼저 롬리서치는 배워서 써야 하는 툴이라는 점이다. 창업가는 5시간 정도를 툴을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는데 할애해야 롬을 제대로 쓸 수 있다고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그리고 롬은 이러한 학습 리소스들을 체계적으로 제공하고 있지 않다.

계층 구조가 사라진 문서함이 롬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지만, 이는 대중화에 있어서 걸림돌이 될 것 같다. 이미 대중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파일 캐비넷 구조의 문서함이 없다는 것은 롬리서치를 처음 접했을 때 가장 당황스러운 점이다. 그래프뷰가 이러한 계층 구조 문서함을 대신하지만, 빠르게 내가 원하는 문서를 찾고, 내가 까먹고 있었지만 내가 작성한 문서를 발견하는데 있어서 계층 구조의 문서함이 주는 이점도 분명히 있다. 또한 내가 가진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때에는 계층 구조의 문서함이 훨씬 정보 전달력이 좋다. 결국 이 둘 간의 장점을 모두 취할 수 있는 다른 접근 방법이 필요해 보인다.

그 외에도 노션(Notion)과 같이 이쁜 View를 따로 제공하지 않는다든지, 모바일 앱의 지원이 없다든지 하는 등의 문제들도 있으나 이것들은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레 해결될 부분이라 생각한다.

 

진실을 향하는 귀납적 추론

롬리서치의 백서(Roam White Paper)에서 창업가 설리반은 롬의 장기적인 지향점을 밝히고 있다. 그것은 집단의 사람들이 함께 지식을 모아 의사 결정을 하는 베이즈의 귀납척 추론 (Bayesian Reasoning)을 위한 툴이 되는 것이다. 베이즈 추론은, 비록 항상 진실을 알 수는 없더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지식을 함께 공유하고 이를 토대로 사유하면 우리는 진실에 더 가깝게 다가설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툴이 되기 위해서는 물론 그래프 형태로 저장된 나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공유할 것인지, 노트 외에 내 생각이 담겨 있는 인스타그램 포스트, 웹게시물, .DOC/.PDF와 같은 문서들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 아직은 해결해야 하는 과제들이 많다.

이런 과제들을 아주 일부만 해결되어, 단체의 지식 활동과 그 결과물이 효과적으로 함께 공유되고 사용될 수만 있다면 이것 만으로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툴이 되는 것 같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보, 지식, 경험이 잘 전해지지 않아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계속 반복해 왔던가. 그런 의미에서 롬리서치가 보여주는 노트앱의 방향성은 우리가 어떻게 기록을 하고 이를 공유해야 하는지에 관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주고 있다.

 

해당 콘텐츠는 김태현(tkim.co)님과 모비인사이드의 파트너쉽으로 제공되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