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게 망할 때까지 버텨보자

 

 

지난해 창업진흥원 기자단의 일원으로 방문한 컴업 2021에서 뵈었던 분에게서 연락이 왔다.

“대표님, 저번에 비블리라는 서비스에 대해 쓰신 글을 봤어요. 저희 씨드앤도 지난 몇 년간 매일 생존과의 전쟁이었는데 최근 첫 투자를 유치하고 이제 조금 가능성이 보입니다. 씨드앤의 창업기가 창업 초기 데스밸리를 경험하고 있을 창업가들에게 작게나마 위안이 되었으면 합니다. 한번 뵐 수 있을까요?”

“비블리요?”

비블리를 운영하는 라이앤캐처스는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하고도 수년간 상당히 고생하였고 현재도 분투하고 있는 스타트업이었다. 심지어 그 기업의 대표님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스타트업을 창업하면서 가장 힘든 순간이 언제인 줄 아세요? 같은 비전을 향해 나아가던 동료들이 하나 둘 스타트업을 떠날 때예요. 단단하다고 생각했던 이 조직이 무너지거나 와해되면서 균열이 느껴지는 순간 엄청난 불안감과 고독감이 엄습해와요.”

그런데 지금 그 스타트업을 언급하면서 자신들도 너무 힘들게 여기까지 왔다는 얘기를 들으니 관심을 안 가질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의 얘기를 듣기 위해 씨드앤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로비에 들어서자 후디와 조거팬츠를 입은 남자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몇 주 전 만났던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창업가보다 더 헬스케어 분야의 전문가 같았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씨드앤의 최현웅입니다. 저희 이사님 통해서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자리를 잡고 그의 얘기를 듣는데 잠시 후 사람은 겉모습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되었다.

 

 


 

건축공학으로 진로를 정하다

 

대한민국의 한 해 전체 대학 자퇴자 수는 7만 명 수준이다. 심지어 많은 수험생들이 꿈꾸는 SKY 대학의 자퇴율 역시 3%에 달한다고 한다. 상위권 대학의 경우 자퇴 이유는 진학한 대학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다른 학과로 진학을 희망하기 때문이다. 사실 아무리 사전조사를 하거나 계획을 세운다고 한들 직접 경험하면 예상했던 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씨드앤의 최현웅 대표 역시 수험생 시절 진로로 인해 고민이 컸다. 그런데 어느새 자기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대한 진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오자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그때 고민하는 그를 보고 그의 아버지가 인생선배로서 조언을 했다.

“형이 건축학과이니 넌 건축공학 쪽으로 해보면 어때? 형이 설계하고 네가 건축물 올리면 되잖아.”

보통, 건축학과는 설계를 건축공학과는 시공을 담당한다. 영화 건축학개론의 남자 주인공(엄태웅)이 건축설계사무소를 다니는 건축학과 출신이다. 

 

 

출처= 영화 ‘건축학개론’

 

 

아버지가 제안한 건축공학은 건축의 계획·구조·역학·공법 등을 연구해 안전하고 기능적인 공간을 탄생시키고 잘 유지하기 위한 학문으로 건축학을 기술화하는 공학적인 전문지식을 배운다. 당시는 몰랐지만 돌이켜보면 아버지 세대에는 건축이 워낙 호황이어서 형제가 모두 건축 관련한 일을 하길 바라셨던 거다. 최현웅 대표 역시 상상을 현실화하는 건축공학과에 매력을 느꼈고 건축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규모의 예술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렇게 건축공학으로 진로를 결정하고 학업에 매진하던 중 현장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당시 방문한 현장에서 건축공학 출신 경력직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이제 막 건축에 대한 원대한 꿈으로 가득했던 최현웅 대표는 건축업 관련 질문을 했다.

“선배님, 건축업에 종사하시면서 언제가 가장 행복하세요?”

“건축업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이 이에 대한 답은 비슷할 거로 생각해요.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의 시간을 쏟은 건축물이 완공되는 순간만큼 뿌듯하고 행복한 건 없어요.”

“그러면 언제가 가장 힘드세요?”

“아무래도 건설현장이 우리의 주거지와 가까운 곳에 위치하는 경우는 드물어요. 프로젝트에 따라서 현장이 집에서 몇 시간 이상 떨어지기도 하죠. 그리고 해외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되면 해외에서 장기간 머물기도 해요. 그럴 때 가족들과 물리적으로 떨어져서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이 힘들지만 건축업에 종사하는 많은 분들이 건설현장이 곧 제2의 집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Kawser Hamid 님의 사진, 출처 : Pexels

 

 

그와의 짧은 대화는 최현웅 대표에게 건설업에 대해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심어주었다. 건축물이 완공되었을 때의 짜릿함도 궁금했지만, 장거리 건설현장은 생각하지 못한 변수여서 과연 그가 쉽게 적응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가 진로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자 그의 친구들은 담당 교수님들을 찾아 진로상담을 받아보는 것을 제안하였다. 그중 한 교수님은 의외로 쉽게 해답을 주었다.

“건축학을 전공하였다고 졸업 후 꼭 건설현장에서 근무하는 것만은 아냐. 건물 에너지를 연구하는 기업이 있는데 여기 지원해보는 건 어때?”

예상하지 못한 취업의 기회를 잡은 그는 주저하지 않고 바로 지원했다. 면접을 통해 입사한 회사에서 그가 맡게 된 업무는 건물 에너지에 관해 연구하며 논문을 쓰는 것이었다. 전공이기도 하고 평소 관심 있던 분야여서 흥미로웠다. 그런데 실컷 문제만 제기하고 정작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환경이 아쉬웠다. 건물 에너지 효율화 방안에 너무 심취한 탓일까 평소에는 인지하지 못했던 장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에어컨이 가동 중인 카페와 사무실에서 담요를 덮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이건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왜 에너지 평가가 낮게 나오는지 알겠어.’

그는 에너지 효율화의 가장 큰 걸림돌을 찾았지만 근무하던 회사의 특성 상 연구 위주로 원인 분석에 치중하였기에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것에 대해서는 적극적이지 않았다. 결국, 그는 이 문제를 자신이 직접 해결해보기로 결심하고 어렵게 입사한 회사를 퇴사한다.

 

 


 

창업 그리고 영입을 하다

 

회사에서 논문을 작성할 때는 펜 한 자루면 무엇이든 가능했는데 실제 솔루션을 제작하려고 하니 막막했다. 그의 전문 분야는 건물을 짓는 것이지 기계 장치를 만드는 것은 아니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심정으로 하드웨어는 독학으로 배우고 펌웨어 및 앱 개발은 학원에 다니며 익히기 시작했다. 

 

 

사진=픽사베이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첫 시제품을 만들었다. 본격적으로 일을 벌여볼 생각으로 IT기술을 포함한 기술 창업 위주의 청년창업자를 선발하는 청년창업사관학교에 지원하였다. 경쟁률이 높았지만, 시제품까지 제작한 그는 높은 점수로 합격하였다.

청년창업사관학교 입관을 앞두고 최현웅 대표는 빨리 가기 위해서는 혼자가 편하지만, 더 멀리 가기 위해서는 믿을 수 있는 파트너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신이 진로로 고민할 때 기꺼이 시간을 내어주며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해준 친구를 찾아갔다.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그는 지방에서 대기업에 근무하며 나름 안정적인 직장인이 되어 있었다. 

최현웅 대표는 고심 끝에 합류를 제안하였는데 친구는 흔쾌히 험난한 여정에 동행하겠다고 답을 주었다. 마침 그 역시 안정적인 직장인의 삶에서 벗어나 스타트업에서 새로운 도전을 감행하고 스타트업이 직면한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하고 싶었다. 주위에서 친한 친구와 창업하는 것은 사업이 잘못되면 관계도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만류하였지만 오랜 기간 옆에서 봐온 최현웅 대표에 대한 신뢰가 깊었기에 개의치 않았다.

 

 

서울시 IoT 실증사업 당시 홍원진 이사 / 사진=씨드엔

 

 

그렇게 최현웅 대표와 홍원진 이사는 빛도 들지 않는 단칸방에서 서로 의지하며 거친 풍랑을 이겨냈다. 사실 그들이 이렇게 긴 시간 인내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그들조차도 사업이 궤도에 오르기까지 8년이라는 시간이 걸릴 거라고 예상하지 못한 게 컸다.

 

 


 

시제품 금형 제작에 아파트 값을 쏟다

 

마침내 건물 내 적정 온도 유지를 위한 시제품 ‘리프’를 내놓았지만 아무도 선뜻 자신의 매장에 설치를 해보고 싶다는 고객이 없었다. 당시 에너지 절약 관련한 서비스들이 나왔었지만 정작 실효성을 증명하지 못했기에 최현웅 대표가 선보인 제품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최현웅 대표는 매출은 없었지만, 제품 개선을 늦출 순 없었다. 그렇게 8년 동안 제품을 4번 리뉴얼하면서 금형 역시 4번 제작하였다. 금형은 똑같은 형태의 결과물을 반복적으로 생산하기 위한 틀 중 금속으로 만들어지는 형틀을 의미한다. 금속으로 만드는 이유는 내구성 때문인데, 대량 생산을 위해서는 필수다. 주변에 가장 비슷한 예시로는 붕어빵 기계가 있다. 금형을 하나 제작할 때 적게는 1억 5천만 원에서 2억 원의 비용이 발생하는데 4번을 했으니 수도권에 아파트 한 채 값이 제품 생산도 아닌 제품 개선에 쓰였다.

 

 

사진=픽사베이

 

 

금형을 제작할 목돈을 만들기 위해 최현웅 대표와 홍원진 이사는 다른 회사에서 근무하는 것은 물론 저녁 알바부터 다른 기업의 용역까지 수주하였다. 그렇게 최현웅 대표와 홍원진 이사는 고민하는 시간마저 사치처럼 느껴질 정도로 무엇에 홀린 것처럼 제품 개발에만 매달렸다. 덕분에 제품의 안정성과 완성도가 빠르게 개선되었다. 하루는 최현웅 대표가 홍원진 이사에게 물었다.

“원진아, 너 잘 다니던 직장 나와서 연고지도 없는 서울까지 올라와 빛도 들지 않는 단칸방에서 남자 둘이 사는데 괜찮아?”

“삶은 고돼도 나는 지금이 대기업 다닐 때보다 재밌고 행복하다. 초기 스타트업에 다니는 누가 편하고 풍족하게 살겠어?”

“그래? 그럼 우리 후회가 남지 않게 완벽하게 망할 때까지 버텨보자.

둘의 눈물겨운 브로맨스에도 불구하고 예상하지 못한 또 다른 난관이 나타났다.

 

 

4번의 리뉴얼을 거친 리프 제품 / 사진 = 씨드엔

 

 


 

연이은 거절에도 계속 묻다

 

최현웅 대표는 제품 개발만 하면 끝일 줄 알았는데 현장 검증이란 과정이 끝판왕처럼 굳게 버티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검증을 할 현장을 확보하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이론상으로는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것이 가능한데 실제로 현실에서 검증하고 사업화한 사례가 없었고 많은 기업들이 대부분 연구 단계에서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철수하였다. 최현웅 대표는 사업을 시작한 이래 항상 벼랑 끝에 서 있어서 더는 물러설 곳이 없었다. 직접 부딪히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영업 중인 매장에 무턱대고 찾아가 사정을 했다.

“사장님, 이 제품을 설치하고 저희가 냉난방 제어할 수 있도록 해주시면 쾌적한 매장 내 온도 유지는 물론 냉난방비도 절약할 수 있어요.”

“씨드앤이라고? 듣지도 본 적도 없는 너희에게 뭘 믿고 맡겨. 이거 설치 잘못했다가 매상 떨어지면 너희들이 책임질 수 있어?”

 

 

Monstera 님의 사진, 출처 : Pexels

 

방문하는 매장마다 싸늘한 냉대에 최현웅 대표는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 검증을 할 수 있는 현장을 구하는 것은 대기업조차도 쉽지 않은 부분이었다. 심지어 어렵게 구하더라도 4계절에 걸쳐 1년 동안 가설을 세운 후 그 후 1년간 검증을 해야 하는데 중간에 오류가 나거나 결과가 잘못 집계되면 다시 처음부터 해야 했다. 이런 경우, 1년이란 기간이 늘어나는데 그러다 보면 5년, 6년은 훌쩍 지나간다. 

더욱 곤란한 것은 그렇게 시간을 투여해도 결과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정해진 기간 내 성과로 업무 능력을 증명해야 하는 직장인으로서는 시작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실제로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담당자들이 조언을 구하겠다고 최현웅 대표를 찾았다가 미지의 변수로 가득한 해당 사업을 확인하고 기겁하기 일쑤였다. 반면, 이 사업에 철저하게 집중한 최현웅 대표에게 그 정도 위험은 대수롭지 않았다.

 

 


 

진심은 통한다

 

최현웅 대표가 제품을 개선하는 개발에 몰두한 사이 홍원진 이사는 블로그를 운영하며 제품을 홍보하고 보유한 기술에 대해 활발하게 포스팅을 하였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적정온도 설정이 가져올 수 있는 에너지 효율 최적화 및 긍정적인 환경보전 효과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유독 한 이용자가 꾸준하게 ‘좋아요’를 눌렀다. 

 

 

Cristian Dina 님의 사진, 출처 : Pexels

 

 

홍원진 이사와 최현웅 대표는 각자 상대방의 가족이나 지인이 측은한 마음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서 쪽지가 왔다.

“기회가 되면 한번 뵙고 싶은데 가능하실까요? 저는 기업에서 IoT인프라를 총괄하고 있어요.”

사실 그 이용자는 대기업 리테일 지점 IoT 인프라를 담당하고 있었다. 우연히 홍원진 이사가 운영하는 방문자 빼고 다 있는 씨드앤 블로그를 방문한 후 유심히 지켜보았다. 처음에는 기술만 믿고 업계를 전혀 모르는 뜨내기들이라고 생각하고 제풀에 지쳐 그만둘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일 년이 지나고 이년이 지나도 계속 자리를 지키는 것을 보고 무척 놀랐다.

 

‘얘네들 아직도 있네. 어쩌면 기술력보다 생존력이 더 강한 애들일지도 몰라. 적어도 이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확실히 진심이야.’

 

이후 그는 투썸플레이스로 자리를 옮기면서 기존의 투썸플레이스 직영점 냉난방 효율화를 맡고 있던 대기업이 지지부진하다가 스스로 포기하자 과감하게 최현웅 대표와 홍원진 이사에게 제안하였다.

 

“제가 오랫동안 지켜보았으니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얘기할게요. 투썸플레이스 전국 매장 1000 개 중 직영점이 약 100개 정도 되는데 대표님이 가진 솔루션으로 매장 적정 온도 유지하고 냉난방비도 절감했으면 해요. 씨드앤이 할 수 있어요?”

 

최현웅 대표와 홍원진 이사는 말없이 서로를 지켜보았다. 

‘말이 좋아 대표와 이사지. 둘밖에 없는데 전국 100여 개 지점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지만 둘은 알고 있었다. 이미 주사위가 던져지기도 전에 답은 정해져 있다는 것을. 어렵게 얻은 현장검증의 기회여서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럼요. 100 지점이면 충분히 있죠.”

 

 


 

하루를 카페에서 시작하고 카페에서 마감하다

 

최현웅 대표와 홍원진 이사는 투썸플레이스 전국 직영점 100개 지점을 각자의 동선에 맞게 배정 후 매장이 문을 여는 새벽 6시에 맞춰 방문하였다. 매장 한 곳에 평균적으로 10개 정도의 센서를 설치하고 테스트하는 과정은 약 90분 정도 소요되었지만 매장 간 이동 시간을 고려하니 하루에 최대 4개 지점을 설치할 수 있었다. 자정이 되어 사무실로 복귀하고 밀린 업무를 하고 퇴근을 하면 새벽 2시가 되었다.

 

 

매장 내 리프 설치 후. 사진=씨드앤

 

 

2시간 정도 새우잠을 청하고 곧바로 새로운 매장으로 출발했다. 그렇게 수면 부족한 상태로 전국 투썸플레이스 방문 설치에 매달린 지 50일이 지나자 제주도 지점을 마지막으로 전국 투썸플레이스 직영점 냉난방 효율화 솔루션 설치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한 달 후 냉난방비 고지를 투썸플레이스 본사에서 받을 생각을 하니 제품의 성적서를 받는 것처럼 설레면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지난 6년간 매달려온 사업에 대한 성적표인데 변화가 없으면 어떡하지?’ 

 

최현웅 대표는 그토록 간절했던 현장 검증의 기회를 얻었지만, 한편으로는 결과에 대한 압박감이 그의 숨을 조여왔다. 그리고 냉난방비 고지 결과를 받았다.

 

‘지난달 대비 냉난방비 20% 절감’

 

믿을 수 없는 결과였다. 최현웅 대표와 홍원진 이사는 결과지를 보고 환호성을 지르고 껴안았다. 두 공동창업자에게는 대한민국이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을 확정 지은 당시보다 더한 감동이었다. 지난 몇 년간 사위에 대한 걱정이 컸던 장모는 평소에 가지 않는 투썸플레이스 매장을 친구분들과 방문하며 주문은 제쳐두고 사위 자랑을 하기 바빴다.

“어때? 여기 쾌적하지? 아니, 이렇게 큰 대기업에서 사위가 운영하는 회사에 와서 도와달라고 했대. 난 뭔지 모르는데 덕분에 이곳 운영비도 엄청 줄이고 손님들도 엄청 늘었다지 아마.”

 

 

사진=투썸플레이스

 

 

최현웅 대표와 홍원진 이사가 여느 때와 같이 투썸플레이스 매장을 순회하며 직원들과 방문객들의 매장 내 온도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있을 때였다. 투썸플레이스 담당자로부터 미팅 요청이 왔다. 급하게 투썸플레이스 본사 사무실에 들어서자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고 역시나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투썸플레이스 100개 직영점 설치 완료하고 효과도 검증되었으니 이제 전국 가맹점 시작해야죠. 언제 시작할 수 있어요?”

 

최현웅 대표는 100개 지점도 한 달 반에 걸려서 겨우 마무리했는데 전국의 가맹점 수를 고려했을 때 지금처럼 둘이 매달린다면 설치에만 최소 1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다.

“저희에게 조금만 재정비할 시간을 주시면 안 될까요? 해당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려면 준비가 필요할 것 같아요.”

어렵게 양해를 구하고 최현웅 대표는 사무실로 복귀 후 홍원진 이사와 의뢰받은 대형 프로젝트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논의했다. 결국, 채용을 통해 안정적인 규모의 조직으로 키우는 방법 외엔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벤처캐피털의 연락을 받다

 

회사를 더 키우기 위해서는 투자유치가 불가피했다. 하지만 지난날 많은 심사역으로부터 받았던 피드백들은 투자에 대한 기대를 낮추었다. 

“환경보호, 에너지 절감?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기업들이 과연 냉난방비 절감하는 데 관심이 있을까요?”

“이 솔루션 설치하고 검증한 데이터 있어요? 무슨 근거로 냉난방비를 절약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게 심사역들로부터 집중포화를 받고 있는데 국내VC의 한 심사역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안녕하세요. 카카오벤처스의 신정호 심사역입니다. 하시는 사업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한번 뵙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최현웅 대표는 또다시 독설만 듣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애초에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도 없다는 생각으로 카카오벤처스와의 미팅에 나섰다. 그런데 신정호 심사역은 기존에 만났던 심사역 혹은 투자자들과는 사뭇 달랐다. 

 

 

출처=카카오벤처스

 

 

이전의 심사역들은 최현웅 대표의 설명에 반박하고 검증한 결과를 내놓으라고 독촉하기 바빴는데 카카오벤처스의 신정호 심사역은 달랐다. 아무런 편견 없이 최현웅 대표의 얘기를 묵묵히 들어주었다. 그렇게 시작된 논의는 4개월 동안 진행되었다.

 

“저희는 씨드앤의 모든 것을 다 공개할 수 있어요. 지난 발자취와 현 상황에 대해 여과 없이 모두 말씀드릴 테니 그래도 투자의향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최현웅 대표의 말에 신정호 심사역은 답하였다.

 

“저 역시 씨드앤과 보유하신 솔루션에 대한 확신이 있어요. 다음 미팅이 결정적인데 카카오벤처스 부대표님이 참석하실 거예요.”

 

투자유치 심사과정의 끝은 보이지 않았지만, 최현웅 대표는 오히려 카카오벤처스가 서두르지 않고 꼼꼼하게 묻고 사업과 시장을 깊게 이해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최현웅 대표와 홍원진 이사는 벤처캐피탈을 상대로 씨드앤의 비전을 설명하거나 투자유치를 위한 심도 있는 미팅을 진행해 볼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단순한 사업계획서가 아닌 블로그부터 기사를 포함한 자신들의 지난 8년 간의 모든 발자취를 담은 사사(社史)에 가까운 방대한 자료를 만들었다. 8년간 자신들의 얘기를 단 한번도 경청해주는 투자자가 없었기에 이번 기회에 속시원하게 모두 다 얘기해보기로 하였다. 

단순히 씨드앤이 보유한 기술력만 늘어놓는 것이 아닌 잠재적인 이슈까지 모두 숨김없이 털어놓았고 2시간 30 동안 자료 발표와 질의응답을 포함한 미팅이 진행되었다.

 

 

Anna Shvets 님의 사진, 출처 : Pexels

 

 

“대표님, 그런데 투자를 아직 결정하지 않은 저희에게 이렇게 전부 다 말씀해주셔도 돼요? 보통 스타트업들은 장점은 부각시키고 이슈나 단점은 가급적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데 씨드앤은 모든 것을 전부 보여주셔서 사실 놀랐어요.”

“투자를 받는 저희의 입장보다 투자를 하는 카카오벤처스의 입장이 되어 고민을 해봤어요. 씨드앤이라는 회사의 어떤 면모를 보고 투자를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봤는데 결국엔 진정성이라는 게 저희의 결론이에요. 그래서 있는 그대로 모두 말씀드리는 것이 카카오벤처스를 위해서도 저희를 위해서도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긴 미팅이 끝나고 사무실 밖에서 최현웅 대표를 배웅한 뒤 부대표는 이번 미팅을 준비한 신정호 심사역에게 말했다.

저렇게 진정성을 갖고 사업에 미친 친구들은 오랜만에 보는 같아. 저기는 무엇을 하더라도 파트너들 뒤통수 일은 없을 거야.”

 

 

Andrea Piacquadio 님의 사진, 출처 : Pexels

 

 

그리고 카카오벤처스는 최종적으로 투자를 진행하기로 하였다. 그 소식을 들은 최현웅 대표와 홍원진 이사는 고대하던 첫 투자를 유치했지만 막상 실현되자 감정적 동요는 예상 외로 없었다. 그저 그 동안의 힘겨웠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긴 침묵을 깨고 최현웅 대표가 입을 열었다.

“원진아, 그래도 지난 8년간의 노력을 알아봐 주고 인정해주는 사람이 있어.”

“그래, 그리고 그 고생이 헛되지 않았어. 현웅아, 그동안 고생했어. 이제 투자도 받았으니 완벽하게 망하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버텨보자.”

 

 

홍원진 이사(좌)와 최현웅 대표(우)

 

 


 

그들은 아직 배가 고프다

 

최현웅 대표는 2013년 에너지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중소형 건물의 에너지 효율화를 위한 고민으로 시작해 제품 개발과 연구 그리고 출시 후 본격적인 서비스까지 약 8년이라는 시간을 오직 냉난방 에너지에만 집중하였다. 덕분에 ABB, 투썸플레이스, SKT 등 국내외 대기업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자사의 제품을 더욱 개선하고 싶은 욕심이 가득하다. 현재는 각 지역의 외부 온도, 습도, 최대 온도, 최저 온도, 전일 온도, 익일 온도 등 다양한 요인을 고려하여 각 매장에 적정 온도를 최적화하여 온도를 설정하지만, 그는 자신이 아직 발견하지 못한 요소들이 더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매장 내 리프 설피 및 설명. 사진=씨드앤

 

 

아직도 주말이면 최현웅 대표와 홍원진 이사는 교외의 투썸플레이스를 방문해  시간은 앉아서 직접 매장의 온도를 체험한다. 매장 내 손님들에게 매장 온도가 적정한지 묻다가 점주들에게 제발 이제 충분하다는 핀잔도 듣지만, 그들은 건물 에너지 효율화를 위한 여정을 멈출 수 없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불과 몇 개월 전만 하더라도 최현웅 대표와 홍원진 이사뿐이었는데, 이제는 제법 식구가 늘어서 8명이 되었다는 것이다.

스타트업이 어떻게 성장하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심지어 스타트업을 시작한 창업가들조차 확신할 수 없다. 그래서 성장 과정에서 여러 종류의 사업 아이템과 무수한 피봇을 거치기도 한다. 페이팔은 처음에 보안 소프트웨어였는데 6번의 피봇을 거친 지금은 온라인 결제 솔루션이 되었다. 인스타그램 역시 처음에는 체크인이 주요 기능이었지만 지금은 트위터를 능가하는 소셜미디어가 되었다. 스타트업의 제품 출시는 그저 시작에 불과하다. 그 후로도 계속 개선해야 하고 예상하지 못한 변수를 맞닥뜨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묵묵하고 성실하게 견뎌낸다면 그 끝에는 더 밀도 높은 조직과 제품을 얻게 된다. 빠르게 실행하고, 단점을 파악하고, 부지런히 수정하고, 다시 실행하면 결국 답을 찾을 있다. 최현웅 대표와 홍원진 이사가 지난 8년간 그랬듯이.

 

 

해당 콘텐츠는 Jimmy Cho님과 모비인사이드의 파트너쉽으로 제공되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