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의 HR 커피챗 시리즈

※ 내가 쓰는 글들은 개인적인 경험과 고민을 바탕으로 한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특정 누군가를 비판하는 것도, 정답을 말하는 것도 아니니 가볍게 읽어주면 좋겠다. (자문/컨설팅 문의)

 


 

 

어쩌다 보니 올해는 취준생이나 주니어분들과 커피챗을 유독 많이 했다. 이야기는 늘 여기저기로 튀었다. 커리어 얘기를 하다가 주식 얘기로 넘어가고, 연애 상담으로 끝난 날도 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이상하게 매번 빠지지 않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경력을 대체 어떻게 써야 하냐는 거다. 몇 번 듣고 나니 나중엔 이 질문이 언제쯤 나올지 타이밍까지 감이 올 정도였다.


이력서에 쓰든 링크드인 프로필에 쓰든, 결국 내가 어떤 일을 했고 어떤 경험을 했는지 정리하는 일이다. 쉬워 보이는데 막상 해보면 손이 안 간다. 고민을 들어보면 대부분 비슷하다. 남들처럼 멋지거나 그럴듯한 경험을 못 해서 쓸 게 없고, 그러니 뭘 어떻게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남의 이력서는 다 반짝여 보이는데 내 건 빈칸만 눈에 들어온다는 거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같은 얘기를 했다. 셀링할 만한 경험은 누구한테나 있다. 없는 게 아니라 아직 못 찾은 거다. 중요한 건 그걸 찾아내서 제값을 매기고, 사려는 사람의 목적에 맞게 포장하는 거다.


사실 나는 커리어 조언이나 취업 컨설팅, 자기소개서 첨삭 같은 건 잘 안 한다. 커리어는 워낙 변수가 많고 복불복이라, 남의 인생에 책임지지도 못할 말을 하기 쉬워서다. 그걸로 돈까지 받는다면 더 조심스럽다. 그런데 이 질문은 좀 달랐다. 어느 회사에 가라, 뭘 해라 같은 정답 얘기가 아니라, 내 경험을 어떻게 바라보고 꺼내느냐에 대한 관점이자 기술에 가까운 얘기라서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평범해 보이는 경력에 엣지를 세우는 법에 대해 조언을 조금 얹어보려 한다.

 

 


 

 

다들 자기 일을 너무 싸게 판다


운영 업무를 하는 한 주니어분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회사가 서비스를 합치는 중이라, 따로 굴러가던 데이터를 새 기준에 맞춰 정리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본인은 이걸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결정은 위에서 다 하고 자기는 따라가는 지원 업무라서, 목소리 낼 틈도 없고 쌓이는 것도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다르게 생각했다. 기준을 어떻게 맞추느냐에 따라 숫자가 잡히는 방식도, 운영도, 나중엔 돈 계산까지 바뀐다. 회사가 커지면 언젠가 한 번은 꼭 겪어야 하는 일인데, 그걸 현장 한복판에서 해본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야놀자에 있을 때 1년 반 동안 인수한 회사 여덟 곳을 합치는 PMI를 했다. 합병과 일정은 경영진이 정했지만, 실제로 합치는 작업은 그 밑에서 이뤄졌다. 정산 구조, 월급날, 복지, 보상 체계, 인사 시스템까지 회사마다 다 달라서 하나 맞출 때마다 고민하고 결정해야 할 게 끝없이 나왔다. 판을 짠 건 내가 아니었지만, 그 과정을 직접 겪어본 게 지금까지도 꺼내 쓰는 자산이 됐다.


사실 대부분의 일은 지원으로 시작한다. 나도 평가보상을 처음 할 때는 데이터 정리하고 명부 만들고 시스템 세팅하는 지원 역할이었다. 그것조차 안 했으면 지금 이 일을 할 기회도 없었을 거다. 그리고 주도했다는 것의 무게는 생각보다 가볍다. 내가 주도할 수 있는 일은 대개 회사 입장에서 덜 중요한 일인 경우가 많다. 밸류 있는 프로젝트에 참여해봤다는 게 오히려 더 클 때가 많다.

 

 


 

 

내 일, 제값 찾아주기


한 발짝 떨어져서, 남의 일처럼 보기

그럼 내 일의 가치는 어떻게 찾을까. 나는 매일 하는 업무를 가끔 3인칭 관찰자처럼 봐보라고 권한다. 이 일을 안 해본 사람도 알 수 있는 건지, 내가 만지는 자료나 데이터가 아무나 볼 수 있는 건지, 내 결과물이 어디로 넘어가서 어디에 쓰이는지를 스스로 물어보는 거다. 하나라도 선뜻 답이 안 나오면 거기에 뭔가 있다.


유니콘 스타트업에서 데이터를 일정한 기준으로 분류하고 정리하는 일을 하던 분에게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본인은 그냥 반복적인 오퍼레이션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마침 회사가 그 작업을 AI로 옮기려던 참이었다. 분류를 어떤 관점으로 하느냐에 따라 뒤에 붙는 게 다 달라지니까, 그 기준이 정해지고 바뀌는 과정을 옆에서 본 건 작은 경험이 아니었다. 오히려 AI가 들어올수록 그 기준을 아는 사람이 더 귀해진다.


AI한테 일을 시킨다고 생각하면 더 와닿는다. 이 일을 안 해본 사람은 그냥 알아서 분류해달라고 할 거다. 그러면 꼭 어딘가 엉뚱한 칸에 들어간다. 해본 사람은 이런 항목은 헷갈리기 쉽고, 이 기준을 바꾸면 뒤에 붙은 데이터가 이렇게 꼬이니 여기를 조심하라고 짚어줄 수 있다. 잘못 들어간 걸 한꺼번에 고칠지 다 지우고 새로 할지, 그 결정 하나가 몰고 오는 여파를 아는 것. 그 차이가 경험의 값이다.


한 발짝 떨어지면 내 일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보인다. 내가 만든 파일은 누군가의 보고서가 되고, 그 보고서는 누군가의 의사결정이 된다. 매일 보는 화면 안에서는 그냥 셀 몇 개 채우는 일인데, 조금 멀리서 보면 회사가 돌아가는 중간 어딘가를 내가 받치고 있는 거다. 그게 어디인지 말할 수 있으면 이미 반은 쓴 셈이다.

 

내 일의 값, 다시 매겨보기

찾았으면 값도 제대로 매겨야 한다. 앞에서 얘기한 그 주니어분의 일도 그렇다. 시키는 대로 엑셀 정리를 했다고 쓰면 그냥 엑셀 작업이다. 서비스를 합치면서 운영과 정산에 생기는 문제를 보고, 정책에 맞춰 데이터를 정리했다고 쓰면 같은 엑셀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거짓말을 보태는 게 아니라 원래 있던 의미를 꺼내는 거다.


값을 매길 때 내가 자주 던지는 질문이 몇 개 있다. 우선 이 일이 돈이나 리스크와 어떻게 이어지는지다. 앞서 말한 PMI만 해도, 월급날 하나 잘못 옮기면 직원들 카드값이며 대출 이자 날짜가 다 꼬이고 회사엔 신뢰 문제가 된다. 이렇게 사고 안 낸 것 자체가 성과인 일이 생각보다 많은데, 다들 이건 성과로 안 친다.


다음은 이 일이 다른 회사에서도 흔히 해볼 수 있는 일인지다. 매년 돌아오는 일이라면 흔하다. 회사가 커지는 어느 시점에 딱 한 번 오는 일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서비스 통합, 시스템 이관, 제도 첫 세팅 같은 건 다들 언젠가 겪어야 하는데 막상 해본 사람은 드물다.


규모도 숫자로 말해보면 좋다. 데이터를 정리했다고 쓰는 것과, 시스템 세 곳에 흩어진 2만 건의 데이터를 반년 동안 하나의 기준으로 옮겼다고 쓰는 건 무게가 다르다. 같은 일인데 읽는 사람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이 달라진다.


마지막은 내 판단이 들어간 지점이다. 대부분 시키는 대로 했어도, 그 안에서 이건 이렇게 처리하는 게 맞겠다고 고른 순간은 분명 있었을 거다. 데이터 분석을 한다면 특정 기간은 편향이 있어서 뺐다거나 일부는 보정했다는 식의 결정이 그렇다. 그런 판단과 왜 그렇게 했는지가 결국 나를 다른 사람과 구분해준다. 이렇게 뜯어보면 내가 했던 일이 생각보다 단단하다는 걸 알게 된다. 업무는 그대로인데 해석이 바뀌는 거다.

 

내 매력은 남이 더 잘 알 때가 있다

문제는 내 일에 너무 푹 빠져 있으면 이게 잘 안 보인다는 거다. 매일 하는 일이라 당연해 보이고, 남들도 다 하는 줄 안다. 이게 좋은 경험인지, 다른 데선 해볼 수 없는 경험인지 판단이 안 선다. 주니어일수록 더 그렇다. 비교해볼 경험 자체가 아직 적으니까.


소개팅을 앞두고 내 매력이 뭘까 고민하는 거랑 비슷하다. 나는 패션 센스가 내 무기라고 생각하는데, 정작 남들 눈엔 그게 별로일 수 있다. 반대로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유머 감각을 다들 좋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럴 땐 친한 친구한테 물어보는 게 제일 빠르다. 결국 상대가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걸로 어필해야 다음이 있다. 내가 보여주고 싶은 나와 상대가 원하는 나는 꽤 자주 다르다.


커리어도 똑같이 시장의 눈으로 봐야 한다. 헤드헌터들이 후보자를 어떻게 소개하는지 떠올려보면 감이 온다. 물류 담당자라면 다루는 물동량이 얼마인지, 어떤 시스템을 쓰는지, 배송 권역이 국내인지 글로벌인지, 직접 배송인지 3PL을 쓰는지 같은 게 그 사람의 매력도를 결정한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는 이런 관점 없이 매일 하던 물류 일을 했다고만 생각한다. 내 일이 시장에서 어떤 기준으로 평가되는지 모르니, 정작 팔아야 할 걸 안 꺼낸다.


그러니 주변을 적극적으로 써먹으면 좋다. 같은 직무의 선배, 다른 회사에 있는 친구, 커피챗에서 만난 사람한테 내 일을 설명해보고 반응을 보는 거다. 상대가 그건 어디서 해봤냐고 되묻는 순간이 있다면, 거기가 내가 놓치고 있던 포인트다. 요즘은 AI한테 내 경력을 던져놓고 이 사람을 뽑는다면 어떤 키워드가 떠오르냐고 물어보는 분도 있던데, 그것도 꽤 괜찮은 방법이다. 다만 한 군데 의견만 믿기보다 여러 곳에 물어보는 게 좋다.

 

 


 

 

잘 찾았으면, 이제 잘 팔 차례


쪼개 보면, 한 줄이 아니다

포장할 때 많이들 하는 실수가 내가 한 일을 한 줄로 퉁치는 거다. 예를 들어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로 옷을 떼다 판 경험이 있다고 해보자. 대부분은 쇼핑몰 운영해봤다고 쓰고 끝낸다.


그런데 옷 장사 하나에도 생각보다 많은 게 들어 있다. 어떤 기준으로 옷을 골랐는지, 재고는 어떻게 봤는지, 거래처는 어떻게 찾아서 어떻게 네고했는지, 가격은 어떻게 정했고 마케팅은 어떻게 했는지. 반품이나 불만 고객은 어떻게 대응했는지까지. 이걸 잘게 쪼개 놓으면 경험 하나가 서랍 여러 칸이 된다.


쪼개는 방법이 어렵진 않다. 그 일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시간 순서대로 다시 떠올려보면 된다. 뭘 정해야 했는지, 누구랑 부딪혔는지, 어디서 막혔고 어떻게 넘어갔는지. 적다 보면 그땐 그냥 하던 일인데 꽤 고민했던 장면들이 하나씩 튀어나온다.


마케팅 직무에 지원한다면 어떤 상품이 왜 팔렸는지, 가격과 노출을 어떻게 바꿔봤는지를 꺼내면 된다. HR 직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쇼핑몰을 운영했다는 한 줄 대신, 거래처 여러 곳과 단가와 납기를 직접 조율했고 반품 문제로 얼굴 붉힌 고객을 응대하면서 원칙과 예외의 선을 정해봤다고 쓰는 거다. 운영 직무라면 재고와 주문 흐름을 어떻게 관리했는지가 핵심이 될 거다. 같은 옷 장사인데 꺼내는 칸이 다르다. 지원하는 쪽에 맞는 조각을 골라서 엮는 것, 그게 스토리고 서사다.

 

 

다 담으려는 욕심만 내려놓으면 된다. 해본 걸 전부 늘어놓으면 성실해 보일 것 같지만, 읽는 사람 입장에선 오히려 아무것도 기억에 안 남는다.

 

 

골라 담기는 상대부터 보고

그래서 순서는 반대로 가는 게 좋다. 내 경험을 다 늘어놓고 맞는 회사를 찾는 게 아니라, 지원하는 회사의 그 직무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뭘까부터 고민하는 거다. 채용 공고를 보고, 그 회사가 지금 어떤 단계인지, 이 포지션을 왜 뽑는지 짐작해본다. 그리고 내 서랍에서 거기에 맞는 조각을 꺼내온다. 결국 고객 맞춤이다. 이게 되면 서로 연관 없어 보이는 일들을 해왔어도 충분히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 수 있다.


같은 직무라도 회사가 하는 사업에 따라 중요한 게 달라진다. HR만 해도 그렇다. 연구 인력이 많은 회사라면 한 명 한 명이 귀하니까 평가나 리텐션을 얼마나 섬세하게 다뤄봤는지가 궁금하다. 반대로 사람이 많이 들고 나는 업종이라면 채용을 얼마나 빠르게 굴려봤는지가 먼저다.


물론 정답은 없다. 여러 가지를 해본 사람이 좋은지 한 우물 판 사람이 좋은지는 솔직히 케바케다. 그 직무가 어떤 성격인지, 기존 사업을 굴리는 회사인지 신사업을 계속 벌이는 회사인지, 대표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에 따라 다 달라진다. 그래서 이력서 하나로 모든 회사를 두드리기보다, 상대에 맞게 꺼내는 조각을 바꾸는 게 낫다.


상대를 본다는 건 요즘 채용하는 쪽이 뭘 보는지 안다는 뜻이기도 하다. 솔직히 자기소개서는 이제 안 써도 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자랐고 지원 동기가 뭔지는 별로 궁금하지 않아서, 거의 안 본다. 그 시간에 경력 한 줄을 더 다듬는 게 낫다. 인턴도 어디서 했느냐보다 거기서 뭘 했느냐가 중요해졌다. 포트폴리오도 그럴듯해 보이는 가상의 페이지보다, 좀 구려도 실제로 올려서 팔아본 상세페이지가 더 눈에 들어온다. 데이터 하는 분이라면 공공 데이터로 예쁘게 분석해본 것보다, 회사에서 어떤 의사결정에 데이터를 썼는지가 더 궁금하다.

 

 


 

 

거창한 경험보다, 오늘 하는 일에 의미 두기


커피챗을 마칠 때쯤 주니어분들이 조금 안심하는 얼굴이 되는 순간이 있다. 내가 한 것만 써도 된다는 얘기를 할 때다. 없는 걸 지어낼 필요도, 남의 화려한 경력과 비교할 필요도 없다. 엣지는 경험의 크기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그 경험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꺼내느냐에서 나온다.


돌아보면 순서는 단순하다. 내 일을 한 발짝 떨어져서 다시 보고, 값을 매기고, 남의 눈으로 한번 확인한 다음, 상대가 원하는 걸 골라 담는 것. 화려한 타이틀 하나보다 내 일을 제대로 설명하는 문장 하나가 훨씬 힘이 세다. 물론 한 번에 잘 되진 않는다. 나도 아직 이력서를 다시 열어보면 고치고 싶은 문장이 보인다.


대신 한 가지는 부탁하고 싶다. 지금 하는 일을 관행적으로만 흘려보내지 말았으면 한다. 시키는 일이라도 이게 왜 필요한지, 이걸 바꾸면 뒤에서 뭐가 달라지는지 한 번씩 생각하면서 하면, 그게 나중에 꺼내 쓸 서사가 된다. 거창한 기록일 필요도 없다. 퇴근길에 오늘 한 일과 그때 고민한 걸 한 줄씩만 적어둬도 충분하다. 쓸 게 없다고 느껴지는 지금도, 사실은 쓸 거리가 매일 쌓이고 있는 중이다. 아직 꺼내지 않았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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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콘텐츠는 이드님의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