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전문 리서치 스타트업 ‘피넥터’ 팀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술에 대한 인식은 항상 변화한다. 모든 신기술이 마찬가지지만, Hype cycle은 항상 존재한다. Hype이 높을수록 현재의 가능성보다 미래의 잠재적 혁신에 더 집중하기 때문에 현실성과는 멀어지고, Hype이 낮으면 기술의 가능성 자체를 과소평가하기 때문에 적용이 어려워진다.

이러한 시장 타이밍의 불확실성은 모든 산업에서 나타난다. 꼭 선도자(first mover)라고 해서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늦게 뛰어들었다고 해서 실패하는 것도 아니다. 타이밍(시장의 니즈)과 기술력, 문제 해결 능력이 얼마나 잘 맞아떨어졌느냐에 따라 성공 여부가 나뉜다. 일례로 클라우드 컴퓨팅이 있다.

클라우드 기술이 모든 산업에 적용될 것만 같은 Hype의 최정점이었던 때가 있었다. 이를 당시 “Cloudwashing”이란 단어로 표현했는데, 즉 Cloud를 아무 데나 가져다 붙여 세탁(washing)해버린단 뜻이다. 기술에 대한 기대치는 오르는데, 이를 해소할 시장의 니즈와 기술력이 없었고, 몇 년 뒤 아마존이 AWS를 통해 클라우드 시장을 잡게 된다.

블록체인 산업도 이와 같은 현상을 보인다. R3의 마켓 리서치 디렉터인 Tim Swanson은 “Chainwashing”이란 용어를 사용해 현 상황을 비판했는데, 블록체인이 금융, 무역, 공공, 예술, 모든 영역에서 파괴적 혁신을 할 것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미래의 유토피아를 기준으로 기술의 개념을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한 발짝 뒤로 물러서 이 기술이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는지 명확하게 제시하고, 현실성을 감안한 일관된 인식이 있어야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다.

분산원장기술 자체로는 파괴적 기술(disruptive technology)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애초부터 새롭게 등장한 혁신(breakthrough)은 없었다. 비트코인만 봐도 알 수 있다. 비트코인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이미 30년도 넘은 기술들이다.

 

– PKI (1976)
– Merkle Tree (1979)
– Eliptic Curve Cryptography (1986)
– SHA (1994)
– PoW (1997)

 

단순히 기술의 정교한 조합이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낸 것뿐이다. 우버(Uber)가 스마트폰과 택시의 조합인 것처럼, 스냅챗(Snapchat)이 메시지 + 프라이버시 + 카메라의 조합인 것처럼 말이다. 즉, 기술 자체가 파괴적 혁신을 지닌다기보다 존재해왔던 기술의 정교한 조합을 통해 새롭게 구현된 그 “개념”이 파괴적 혁신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범용(commoditization)이 이루어져야 그 혁신을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

더 복잡해지는 건 새롭게 도입된 “개념” 조차도 진화하면서 다양한 사례를 만들기 때문에, 점점 더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분산원장기술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비트코인 : 서로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 간의 온라인상에서 P2P로 가치를 전달하게 하는 디지털화폐
이더리움 : 전 세계에 분포된 컴퓨터가 인간의 운영 없이 스스로 구동할 수 있게 하는 애플리케이션 플랫폼
– 코다 : 기관 간 거래되는 금융계약의 진화에 대한 공유 컨트롤(shared control over evolution of data)

위 세 개의 개념은 충돌되는 개념도 아니고, 그저 다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탄생됐다. 이렇게 기술에 대한 접근 인식이 바뀌어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블록체인/분산원장은 OO기술이다”라는 잘못된 주장을 하게 된다. 블록체인/분산원장은 특정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이거나 부수적인 요소일 뿐이지 “OO기술이다”라고 정의 내릴 수 없다.

그럼 코다(Corda)와 같은 분산원장이 가져온 새로운 개념은 무엇일까? 왜 기존의 시스템이나 분산 DB가 아닌 분산원장을 사용해야 할까?

 

앞서 언급했듯이, 분산원장이 가져온 과거에 없던 “새로운” 개념은 데이터의 진화에 대해 공유된 컨트롤(Shared control over evolution of data)이다. 여기서 자칫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 “데이터의 공유(Shared data)”와 데이터 컨트롤의 공유(Shared control of data)”인데, “데이터의 공유”는 분산원장 없이 기존 API를 통해 충분히 구현할 수 있다.

“데이터 컨트롤의 공유”는 데이터를 읽고(read), 입력하고(write), 처리하는(process) 과정을 다수의 독립된 기관들이 상호 간 공동으로 진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완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기관들이 단일의 공유된 데이터(=Shared facts)에 대한 합의(consensus)를 이루고 유지하는 것이다. 분산원장의 등장 이전에는 이러한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또 분산원장에서 데이터의 컨트롤은 권력(power)이 아닌 법칙(rule) 기반이다. 분산원장 이전에는 모든 데이터가 한 관리자에 의해 컨트롤되었고 (분산 DB라 하여도), 이 관리자가 데이터를 입력/변조/삭제가 가능했다. 가치를 지니는 금융자산의 경우 독립된 기관끼리 자산을 주고받을 경우 이를 임의로 변조하거나 삭제하면 안 되기 때문에 그 권력(power)을 제3의 기관이 대신 가진다.

분산원장은 지정된 법칙에 의해 거래의 유효성(validity), 단일성(uniqueness)과 거래상대방과의 관계 및 거래 대응(react) 등이 정해지게 된다. 물론 참여자는 이러한 법칙을 무시하고 유효하지 않은 정보를 보낼 수 있지만, 합의 자체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거래가 성사되지 않는다.

종합하면 분산원장의 새로운 가치는

 
 
법칙 기반의 단일 데이터의 진화에 대한 공동관리
Rule-based shared control over evolution of shared facts

 

라고 볼 수 있다.

블록체인/분산원장에 대한 Hype이 꺼지고 있는 상황이다. 오히려 좋은 징조다. 시장의 기대치와 별개로 본질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 기회를 잡는 금융의 아마존, 구글이 탄생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