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보는 화장품업의 비밀

 

얼마 전 에스티로더가 인수한 (주)해브앤비의 기업가치가 크게 화제가 되었습니다.

해브앤비는 닥터자르트라는 브랜드를 소유한 기업인데요. 글로벌 대기업인 에스티로더는 이 회사를 2015년에 33.3%를, 2019년에 나머지 지분 모두를 인수하였습니다. 

 

 

뭐? 중소기업인 줄 알았던 해브앤비의 가치가 2조 원이라고?


근데 창업주가 40대 초반이라고?

 

 

이렇게 회사의 가치와 창업자의 이력 등이 화제가 되었는데요. 기업가치로써 2조 원이 얼마나 큰돈인지… 체감해보자면 상장기업의 시가총액과 비교하는 것이 최고입니다.

 

2020년 1월 9일 시가총액 순위

 

우리에게 친숙한 현대백화점과 하이트진로가 시가총액 2조 원 수준인데요. 주로 올리브영 한켠에 자리한 화장품 브랜드 하나가 현대백화점 전체와 비슷하다는 사실이 참 재미있습니다.

해당 매각 건에 대해 워낙 많은 기사가 쏟아진 데다가, 저는 화장품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기술적인 이야기는 자제하고 재무적인 관점에서 이 회사가 어떻게 이렇게 성장했고 높은 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었는지 한번 살펴봤습니다.

 

 

 

 

 

# 화장품업의 특징

(부제 : 화장품이 최고)

 

저는 오랫동안 소비재 기업을 회계감사를 해왔는데요. 사람들이 가끔 어떤 회사가 좋은 회사냐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저는 ‘LG생활건강’을 보시라!라고 말씀드리는데요. LG생활건강이라는 회사는 크게 보면 생활용품, 음료수, 화장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영업이익률을 보면 주로 생활용품 < 음료수 < 화장품 순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수십 년간 치약과 샴푸 등을 만들어 안정성은 최고인 생활용품보다 ‘장사하면 물장사지!’ 최고의 브랜드 가치를 가진 코카콜라의 한국 총판보다, 숨37, 오휘, 빌리프, 이자녹스 등 다양한 브랜드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화장품 사업부가 수익률 측면에서는 가장 우월하기 때문입니다.

 

LG생활건강 사업부별 손익

이걸 보며 소비재 기업에서 잘 브랜딩 된 화장품을 이길 수 있는 회사는 없다라고 말씀드리곤 합니다.

 

특히 국내에서는 화장품업이 최고인데요 그 이유를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초기 투자 부담이 크지 않음

 

해브앤비의 이진욱 대표는 2004년에 자본금 5천만 원으로 회사를 설립했고, 같은 해 12월에 ‘닥터자르트’라는 이름으로 BB크림을 출시했는데요.

 

2018년말 누적 투자금도 2억원에 불과합니다. (그중 33%는 에스티로더에게 매각)

 

개인 커피숍 하나를 차려도 1억 원 이상 투자가 필요한데 이렇게 적은 투자비용으로 자신의 브랜드를 가질 수 있는 이유는, 국내 화장품 업계에는 수준급 OEM, OD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및 제조업자개발생산) 업체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화장품 OEM 생산의 빅2

 

세계적 수준의 기술력과 생산력을 갖춘 외주생산 업체의 존재는 국내에서 화장품 회사를 설립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우리도 에스티로더 갈색병 만들고 싶어요. ‘초록병’으로 해볼까요?’


‘입생로랑 스타일의 틴트 생산 가능할까요?’

 

이런 수준의 주문이 가능하기 때문에 아이디어 하나만 있어도 화장품 회사를 차릴 수 있습니다.

 

 


2. 이익률이 높음

 

해브앤비 4개년도 손익

 

위의 표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해브앤비는 최근 4년 동안 아름다운 성장률과 이익률을 기록합니다.

일반적인 화장품의 경우 제품의 판매 가격 대비 원가가 20~30% 정도 차지하는데요. (물론 세일을 많이 하는 저가 브랜드의 경우 원가율은 더 높아집니다)

화장품은 주로 백화점, 올리브영, 면세점 등에서 유통되기 때문에 유통 수수료가 3~40% 정도를 차지합니다.

그래서 1만 원짜리 제품을 팔면 대략 4,000원 정도 남는데요. 공장이 없기 때문에 그 외에 들어가는 고정비가 별로 없습니다. (감가상각비, 인건비 등이 절약됩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빼도 대략 20% 수준의 영업이익률이 나옵니다. 제조업인데 이익률이 20%이상이다?
고(高)마진의 대명사 애플의 영업이익률이 25%내외이니, 아주 매력적인 숫자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3. 재고자산 위험이 크지 않음

 

소비재 산업의 특성 때문에 화장품업과 패션업은 닮은 점이 많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원가율 (2~30%) 유통 수수료율(3~40%)이 거의 비슷합니다. 실제로 2010년대 초중반 노스페이스, K2, 블랙야크 등의 영업이익률을 보면 20~25%를 달성하며 떼 돈 번다(?)라는 느낌이 들 정도였어요.

하지만 두 업종의 가장 큰 차이가 있습니다. 바로 재고자산의 위험인데요.

패션업의 경우 시즌 단위로 1년에 두 번 생산하고, 주로 해외에서 생산하며, 엄청 많은 품목이 존재하며, 매년 바뀝니다. 만약에 올해 롱패딩의 유행을 예상하고 비슷한 제품 10만 장을 베트남에서 생산했는데, 실제로 올해 유행이 바뀌었거나 날씨가 너무 따뜻해 버리면 그 10만장은 창고에 쌓여서 수년간 회사의 손익을 갉아먹습니다.

 

화장품은 어떤가요?


시즌과 상관없이 수시로 생산이 가능하고, 국내에서 생산하며, 주로 몇 가지 스테디셀러 위주로 생산이 됩니다. 닥터자르트하면 BB크림, 세라마이딘크림, 시카크림 이런거요. 유행 없이 계속 팔립니다.

그래서 재고자산으로 인해 회사가 어려워질 위험이 크지 않습니다. 물량을 수시로 조절할 수도 있고, 만들어 놓으면 어차피 계속 팔립니다. 즉, 재고가 쌓여서 회사에 독이 될 가능성이 크지 않습니다.

 

 

 

 

#2. 화장품 사업의 어려움

 

위 내용까지 읽어보니 나도 화장품 사업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하지만 세상에서 좋기만 한 것은 없습니다. 화장품 사업도 어려움이 있는데요,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경쟁이 엄청 심함

 

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통계자료

위의 표에서 업체수를 집중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화장품 제조 판매 업체수가 2014년 2,735개에서 6,487개로 증가합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들이 위의 내용들을 이제 다 아는 거예요.  (설립 투자금도 크지 않고, 성공하면 크게 돈 벌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화장품 사업이 Blood 색에 가까운 레드오션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심한 경쟁이 있는 상황에서 소비자의 눈에 띄기는 쉽지 않습니다.

온라인으로 팔던지 오프라인으로 팔던지… 소비자의 눈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좋은 위치에 상품을 진열해야 하는데요. 좋은 위치에 상품을 진열하기 위해서는 훨씬 많은 비용을 유통 업체에 제공해야 합니다. 초기 기업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지요.

 

 

2. 초기 투자비가 생각보다 적지 않음

해브앤비의 이진욱 대표는 5천만 원으로 회사를 설립하고 곧바로 BB크림을 출시하여 성공했다고 하는데요. 이제는 그러기가 쉽지 않습니다. 생각보다 투자비가 더 많이 들기 때문인데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습니다.

 

1) 광고비

닥터자르트가 BB크림을 출시할 당시, BB크림은 의약품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수요는 많았죠. 그것이 화장품의 영역으로 내려오니 시장은 열광했습니다. 커다란 마케팅이 필요 없었습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워낙 많은 화장품 회사가 존재 하다보니, 세상에 새로운 것을 내기도 어렵고 혹시 조금 새로운 것이 나왔다 하더라도 그것을 알리는데 많은 비용이 필요합니다. SNS, 대중매체뿐만 아니라 각종 유통 업체에도 돈을 뿌려야 그래도 고객이 눈길이라도 줄 수 있는 위치에 제품이 진열됩니다.


2) 기술 개발을 위한 투자

자체적인 기술 개발도 필요합니다. 국내 OEM 업체의 기술이 뛰어난데 자체적인 기술투자가 많이 필요한가요?라고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기존 업체의 상품들과 차별화 포인트가 없으면 고객들의 눈을 잡아 끌 수가 없습니다.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누가 제 이름으로 에스티로더와 똑같은 성분의 갈색병을 반값으로 판매한다고 하더라도 고객이 쳐다보기나 할까요?

그렇기 때문에 기존 제품과 다른 성분, 다른 이미지, 다른 디자인의 상품을 내놓기 위해서는 상당 기간 기술 개발이 필요하며 이는 초기 투자비용을 크게 만드는 원인이 됩니다.

 

3. 생각보다 재고 위험이 있음.

위에서 화장품 회사는 재고 위험이 별로 없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사실 신생업체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픈마켓에서 스킨케어 카테고리 검색 화면

 

오픈마켓에서 스킨케어 제품을 검색해서 들어가 보면 업체마다 수십 가지의 제품을 한 페이지에 나열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킬러 제품이 없다 보니 몇 가지 제품만 만들어 팔아서는 매출이 안 나옵니다. 그래서 (OEM업체들 때문에 생산은 매우 쉽다 보니) 제품의 구색을 맞추는데 신경 씁니다. 처음 들어보는 브랜드인데 들어가 보면 모든 종류의 화장품이 다 있어요.

문제는 화장품에도 유통기한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보통 1년~3년 정도인데요. 그래서 아래와 같은 프로세스를 통해 신규 화장품 브랜드들이 사그라듭니다.

 

① 기본 매출 확보를 위해 다양한 제품의 구색을 갖춘다.

② 일부 제품의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는다.

③ 버리는 건 아까우니 1+1 등의 이벤트를 진행한다.

④ 사람들이 제값에 제품을 사지 않는다.

⑤ 브랜드 가치가 점차 떨어진다.

 

 

 


#3. 사업이 잘 되려면?

 

위와 같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화장품 사업에 도전하는 분들은 아직도 많습니다. 성공하게 되면 어마어마한 보상이 따르기 때문인데요. 어차피 사업이 위험하다는 것은 모든 사업이 마찬가지이고, 화장품은 그래도 많은 장점이 있기 때문에 해볼 만한 사업이기는 합니다. 만일 아래와 같은 자신이 있다면 화장품 사업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1. 좋은 품질의 킬러 타이틀 확보

‘ㅇㅇ브랜드는 AA 크림이 최고야’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킬러 타이틀이 확보되면 수년간 안정적인 매출을 보장하고, 이익률까지 높아지는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2. 좋은 이미지와 타깃 마케팅 성공

 

닥터자르트의 이미지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의약품 같다. 심플하지만 세련미가 있다.’ 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으시나요?

실제로 해브앤비는 이런 부분에 집중하여 상품개발 및 브랜딩 작업을 하였고, 메이크업 예능 방송인 ‘겟 잇 뷰티’의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도 하는 등 여러 방면에서 마케팅에 성공하게 됩니다.

 


3. 지속적인 성과로 브랜드 이미지 강화

제닉이라는 기업을 아시나요? 잘 모르시더라도 ‘하유미 팩’이라는 제품은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2007년 출시된 하유미팩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제닉이라는 기업을 코스닥 상장기업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하지만 주가 추이는 아래와 같은데요.

 

 

문제는 사람들이 하유미 팩은 기억하는데 ‘셀더마’라는 브랜드는 잘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마스크팩 이외의 기초화장품 군으로 상품을 다변화하는 데에 실패합니다.

즉 대박을 치긴 했는데 원히트 원더가 되어 위와 같은 모양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성장하기 위해서 지속적인 히트작을 낼 수 있는 개발 및 홍보팀 등의 구성이 중요하다는 뜻이겠지요.

 

 


#. 결론

 

화장품 사업은 업사이드가 상당히 높은 좋은 사업입니다. 진입장벽도 높지 않고, 성공했을 때 보상이 매우 큰 업종이지요.

 

 

제2의 해브앤비가 또 나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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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나온다고 봅니다.

 

좋은 품질과 이미지만 있다면 매대에서 싹 쓸어갈 수 있는 중국인들이 존재하고,  이미 아시아권에서 대한민국에 대한 기술적, 문화적 이미지는 상당히 높은 수준에 올라와 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인정된 11개의 유니콘(가치 1조 원 이상의 스타트업) 중 2개가 화장품 업체인데요.(L&P코스메틱, 지피 클럽) 앞으로 어떤 화장품 회사가 이러한 대박 스토리를 만들어갈지 기대가 됩니다.

 

 

 

 

해당 글은 파인드어스 이재용 교육본부장과 모비인사이드의 파트너쉽으로 제공되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