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명절은 12시간 아빠 차를 타고 기나긴 여정을 떠나는 고된 순간들이었다. 베이비붐세대는 고향에서 나고 자라, 서울로 서울로 향했고 열심히 돈 벌어 명절에 부모님 뵈러 귀성하는 것이 연중행사가 되었다. 덕분에 명절만 되면 온갖 자녀들이 부모님 뵈러 가겠다고 경부고속도로를 가득 채우는 것이 기본이었다. 자식들이 녹초가 되어 고향에 내려오니 부모 마음은 오죽했을까. 그래서 역귀성이 시작 되었다. 

역귀성은 노림수였다. 모두가 한반도 아래를 향할 때 상경하는 시간차 공격 같은 것이었다. 어느새부턴가 뉴스에서는 “기차역은 자식들을 보기 위해 양손에 한가득 선물을 짊어진 노인들로 붐볐습니다.”와 같은 멘트가 나오기 시작했다. 자식을 보기 위해 바리바리 싸 들고 가는 부모들의 마음은 정겹고, 애틋했다. 그런데, 어느새 부턴가 IT의 역습이 시작되었다. 스마트폰이 생겼고, 열차 예매는 인터넷이라는 놈이 등장해서 기회를 차단하기 시작했다. 

 

차표한장 손에 들고 기차 타기도 어렵다

 

명절 기차를 탄다는 것은 아이돌 콘서트 예매에 버금가는 대국민 클릭 전쟁이 되었고, 자연스레 노인들은 이 전쟁의 초입부터 탈락했다. 탈락한 노인들에게 기회는 단 하나뿐이었다. 예매 오픈 일 새벽부터 매표소에서 남은 티켓을 기다리는 것. 역시나 이것도 젊은 중장년층에게나 허락되는 체력과의 싸움이었다. 별 수없이 노인들은 일찌감치 경쟁에서 밀려나 입석 티켓 한 장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노인의 눈으로는 출발역 하나 고르기도 벅차다

 

왜? 인터넷도 생겼고, 스마트폰도 생겨서 더 편리해졌는데 왜 노인만 힘들어진 걸까? 21세기 최고의 발명인 스마트폰이 노인들에게는 허들이 되어버렸다. 스마트폰을 사는 것부터, 통신요금제는 물론이고, 까톡하나 깔기도 버거운데 하물며 기차 애플리케이션 코레일 앱을 깔고 회원가입 후 티켓 예매라니… 시도해볼 새도 없이 탈락해버렸다. 중장년층들에게 티켓 예매 과정은 본인들 세대가 경험했던 아날로그적 접근으로는 도저히 가까이할 수 없는 그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키오스크는 또 얼마나 큰 장벽인가

 

고작 기차 예매 하나 때문에 노인을 위한 나라, 아니 IT가 없다고? 아니! 패스트푸드점의 절반 이상이 이미 키오스크로 대체되고 오직 키오스크만으로 접수를 하고 있다. 또, 은행의 지점은 줄고 있는 지점마저도 ATM으로 대체되고 있다. 문제는 노인들에게 적응할 시간도 없이 키오스크는 빠르게 확산되었고, 시골에서는 은행 지점들이 통폐합하며 간단한 식사, 송금마저도 노인들을 더욱 가열차게 내몰아버렸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이런 질문이 나올때가 되었다. “아니 우리할머니는 잘하시는데? 왜 자식들한테 배울 생각을 안 해?” 

 

IT 교육은 정보기술에 대한 친숙함을 높인다

 

자식들이 가르쳐주는 IT는 그때뿐이다. 또, 자녀가 없거나 가르쳐줄 수 있는 여유가 없는 노인들도 많다. 물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물고기를 잡는 법을 알려주라고 하지 않았는가. 까똑하는거 하나 알려드리고, 은행 로그인하는 거 하나 알려드려도, PC 스마트폰의 시대를 살지 않은 노인들에게 IT는 그저 멀게만 느껴지는 장애물들이다. 그래서 IT 교육 인프라가 필요하다. 노인들이 IT 환경을 이해할 수 있는 꾸준한 반복 교육은 물론이고, 이런 IT 환경 메커니즘과 더불어 실제 키오스크나 스마트폰 앱의 접근성도 개선되어야 하는 것이다. 은행 앱의 돋보기 버전, 스마트폰의 간단 모드와 같이 노인 고객의 사용자 경험이 서비스에 도달하기까지 부드럽게 이뤄질 수 있도록 접근성 개선에 더 노력해야 한다. 

 

 

왜 돈 들여 노인의 IT 교육을 장려하고, 서비스의 접근성을 개선하냐고?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기 때문에? 뭐 그 정도 윤리적인 접근은 당연한 거지만, 이미 시작되고 있는 세대 간 갈등 때문이다. 명절만 되면 결혼하라고 재촉하는 고모, 삼촌이 밉겠지만 그들의 세대는 그게 당연했던 것이기에 우리 세대에게 강요 아닌 강요를 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우리는? 키오스크 앞에 서있는 노인들의 느리고 미숙한 조작을 보며, ATM 앞에서 내게 매번 물어보는 노인의 물음에 대답하며 내 마음속의 짜증을 낸 적은 한두 번씩 있지않나? 우리에게 당연하고 쉬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다양한 IT 서비스들을 노인에게 이해하라고 잘하라고 강요하는 것도 역시 강요 아닌 강요다. 인구의 3할 이상인 노인을 이렇게 IT 문맹으로 방치한다면 결국 이들의 생활 부담은 고스란히 우리 세대에게 가중될 것이다.  

 

 

글쓰는 워커비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