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파괴의 시대가 왔다

 

 

2020년 말에 ‘2021 대한민국 마케팅 트렌드는?’이라는 글을 게시했는데 벌써 1년이 지났다. 원래 한두 편으로 생각했던 글이었지만 시리즈로 연재하게 되면서 나름 트렌드를 돌아볼 계기가 됐다.

간단히 요약해 보면, 향후(2021년) 핵심 트렌드는 ‘재미’에 있을 것이고, 이를 마케팅에 적용하고 확산하는 나름의 방법도 정리했었다. 사실 트렌드라는 것이 매년 팍팍 바뀐다는 것에 회의적인 입장이라 당분간, 적어도 몇 년은 이런 트렌드 기조가 유지되지 않을까 생각했기에 ‘2022, 대한민국 마케팅 트렌드는?’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글을 쓸 줄은 몰랐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2022년의 트렌드는 또 다른 면에서 전환점을 맞이했다. 크게 두 가지의 특징이 보이는데, 하나는 일시적 유행이 아닌 불가역적 변화의 시작이 될 것 같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이걸 마케팅에 활용하기 난감하다는 점이다.

 

나의 트렌드를 당신이 모르는 것이 요즘의 트렌드다.

최근 트렌드를 가장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일정 기간 유지되는 다수의 동조”라고 정의할 수 있는 트렌드가 최근 근본적인 양상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 동조자의 범위가 크게 줄어들고 그 유지 기간도 짧아졌다.

– 트렌드 코리아 2022

 

트렌드가 없는 게, 또는 파악하기 힘든 게 트렌드라니.. 그렇다면 과연 어디에 마케팅의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는 걸까? 해가 갈수록 환경은 팍팍해지고, 점차 치열해지는 마케팅 세상이지만.. 내년은 좀 나아지려나 하는 기대는 또 여지없이 무너진다. 여튼, 코로나로 인해 더욱 가속화될 ‘트렌드의 트렌드‘를 살펴보자..

 

 

 

 


 

 

대중(大衆)’ 사라졌다

 

트렌드가 뭘까? 네이버 국어사전에는 ‘사상이나 행동 또는 어떤 현상에서 나타나는 일정한 방향’이라고 나와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마케터가 트렌드에 관심을 갖고 보는 이유는 ‘대중’의 관심을 빨리 캐치해 활용하기 위해서다. 내년엔 사람들이 어디에 관심을 가지고 돈을 쓸까를 알아야 돈의 길목에 자리 잡을 수 있으니깐..

하지만 디지털, 그리고 코로나가 만나 ‘대중 사이의 관계’를 바꿔 버렸다. 아니, 좀 더 정확히는 이미 진행되던 변화를 좀 더 빠르게 만들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지만.. 코로나로 인해 가족, 직장 동료, 학교 친구 등의 전통적 관계가 스마트폰 중심의 디지털 네트워크로 급속히 변화했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우린 언제든 어디서든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다. 같이 영화를 보거나, 진지하게 독서 모임을 하거나, 시간 때우기 수다를 떨거나, 혼자 식당 가기 뻘쭘할 때 우린 함께 할 사람을 구할 수 있다. 집에 못을 박거나, 청소를 해야 하거나, 벌레를 잡아야 할 때 역시 가족이나 친구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다.

여행 중 게스트 하우스에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 더 속 깊은 얘기를 하듯, 이제 고전적 네트워크는 부담이 될 뿐이다. 이젠 오히려 코로나가 끝나고 출근하라고 할까 봐, 가족 모임이나 회식을 하자고 할까 봐 두렵다.

 

 

 

 

이런관계의 파괴 중요할까? 이제 우리의 관계는 붉은 실 같은 것으로 묶여 있지 않다. ‘해시태그’를 중심으로 5G 망으로 연결될 뿐이다. 관계의 가벼움은 곧 행동의 자유를 준다. 나는 그날 그날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따라 새로운 관계를 만든다. 이제 취미가 뭐예요? 라는 질문은 촌스럽다. 재능으로 본다면 다빈치나 정약용 급의 취미와 취향을 갖고 있고, 그에 따라 만나는 사람도 달라진다.

이를 좀 더 마케팅적인 용어로 바꿔 말하자면 핵심 타깃의 선호(preference)가 수시로 바뀌고 있으며, 그 때문에 유사 타깃의 확보나 그 네트워크를 통한 확산도 쉽지 않다는 것을 방증한다. 더 큰 문제는 앞서 말했듯, 이러한 변화는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영구적으로 지속될 전환점을 막 돌아선 참이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최근 ‘결혼’이나 ‘출산’이 급격히 줄어드는 것도 이런 트렌드와 연결되지 않을까? 전통적 관계의 형성은 하고 싶은 게 너무나도 많아진, 날마다 변신을 해야 하는 나에게 후순위로 밀리게 된다. 그럼 왜 한국이 유독 이런 성향이 심한가? 전통적인 관계 내에 아직 많이 남아 있는 유교적 성향은 이러한 특성과의 척력(斥力)이 클 수 밖에 없다.

 

 

어느 곳으로 가오리오? 곳이나 일러주오!

 

자, 그럼 마케터는 어떻게 해야 하나? 전쟁에 비유하면 기존의 양상이 ‘전격전’이라면, 이제는 ‘게릴라전’이다. 정확한 타깃의 위치를 토대로 총공세를 하는 방식이 아닌, 타깃이 언제 어디서 왜 이합집산을 할 것인지 항상 촉각을 세우고 있어야 한다. 상투적 표현이지만, 때 되면 물고기를 잡아주던 ‘족장’(김병만?)은 더 이상 없으며, 우리 스스로 어군 탐지를 하고, 직접 물고기 잡는 법을 익히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을 트렌드 리터러시(Trend Literacy)라 칭할까 한다. 즉, 트렌드를 읽어내는 능력이다. 변화된 전쟁의 양상에 맞춰 우리의 대응 방침도 바꿔야 한다. 다행인 것은, 대응 방식의 대폭적인 수정까지는 필요 없을 것 같다는 점이다.

다음 편에서 좀 더 자세한 내용으로 들어가 보자.

 

 

Ryan Choi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