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짐 지고 고조할머니 뵈러 옥상으로 따라 나와라

 
 

기획자는 유저에 대해 이해하고,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 방법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또 검증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알겠다. 그렇기에 더욱더 당신도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나에게 질문을 하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데이터 분석이라는 어디선가 들어본 힙에 차오를 것 같은 단어를 들어보고서 (예의 바르게 말하면 데이터 분석 R&R은 모르지만 회사에 그 포지션이 있다는 것을 아는 상태에서) 데이터 분석가에게 찾아간다.

머리 한편에는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호한 서비스적 문제가 가득 들어있고, 이것을 명쾌하게 해결할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고객 분석을 해보자니 유저 리서치를 할 시간과 에너지는 없고, 또 안 하자니 고객에 대해 너무 모르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해야 할지 오리무중이다.

이때 우리 회사에 데이터를 가장 신박하게 잘 분석한다는 사람이 떠오른다. 바로 데이터 분석가이다! 그 사람이라면 서비스의 이런저런(?) 데이터를 조합해서 서비스에 대한 인사이트를 나에게 줄 수 있지 않을까? 마치 프로이트가 사람의 심리를 낱낱이 밝히듯이 나에게 고객의 심리와 행동에 대한 어떤 지혜와 답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제발 이런 생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지 말아 달라. 서비스를 가장 오래 본 사람도 기획자이고, 가장 깊이 고민해본 사람도 기획자이고, 고객을 잘 아는 사람도 기획자인데 그냥 “인사이트를 찾아주세요!”라고 말하면 도대체 우리가 무슨 인사이트를 줄 수 있겠는가?

물론, 이렇게 말하면 “아. 그래요?”라고 말하면서 마음 한편에 그래서 데이터 분석가는 월급만 받아먹고 뭐 하는 사람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들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고객과 서비스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기획자이다. 데이터 분석가는 서비스에 대한 상세한 히스토리, 맥락, 미래 전략 그리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들에 대해 잘 모른다. 그래서 기획자가 설명해줘야 그제야 기획자와 고객이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이해가 데이터 분석가에게 전달되어야만 그때부터 분석가는 어떤 데이터를 통해 무엇을 봐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의해 나아갈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쉽다. 사장님이 기획자에게 “서비스를 성공시켜!”라고 말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당신은 어떤 고객을 위해, 어떤 문제를 풀고자, 어떤 전략으로 성공시키는지 정의도 안 해주면서 들입다 시키기만 한다고 욕을 바가지로 할 것이다. 데이터 분석가 또한 마찬가지이다. “어떤 고객에게, 어떤 문제가 있고, 그렇기에 어떤 것을 해보자고 하는데, 무엇을 찾아봐야 하는가”가 기획자와의 논의를 통해 정의되지 않으면 일을 진행할 수가 없다. 더 정확히는 무언가 그래프와 대시보드와 분석 결과를 당신에게 전달하겠지만 그 결과물이 당신의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따라서 나의 다년간 경험에 근거하여 데이터 분석가가 가장 킹 받는 질문은 다음으로 축약할 수 있다.

 

 

고객에 대한 인사이트를 발굴해주세요

 

 

아니, 인사이트라니. 도대체 무슨 인사이트를 말하는 것인가. 하나의 서비스 내에 고객군은 하나가 아니라 복수이다. 각 고객군이 서비스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도 다양하다. 서비스가 제공하고자 하는 가치 또한 여러 개일 수 있다. 그리고 서비스가 성공을 위해 달려가고자 하는 전략 또한 시시때때로 바뀔 수 있다. 그런데 도대체 이러한 무수한 상황과 거기서 파생되는 무수한 질문들 중에 무엇에 대한 인사이트를 달라는 것인가? 아니, 이렇게 대충 주어진 질문에 대해서 최선을 다해 자료를 준비해 간다고 하더라도 (보통 전략기획서 형태이다.) 결정권자는 내가 아니다. 또, 해당 보고서가 현재 서비스의 방향과 일치한다는 보장도 없기에 (보통 회사의 장기적 전략이 실무자들에게 공유되지 않을 때도 많다) 시간만 낭비하게 된다. 그리고 나의 열정도!  내 열정은희귀한 소모성 제품이다! 희토류라고!

다년간의 경험에 다시 근거하여 두 번째로 킹 받는 질문은 아래와 같다.

 

 

이 데이터 왜 없어요?

 

 

왜 없기는! 기획 시점에서 해당 데이터를 남길 생각을 안 하고 그냥 개발하고 끝냈으니까 없지!

내가 아는 정석적인 기획 이터레이션은 아래와 같다.

 

문제발굴 -> 가설 수립 -> 개발 -> 가설 검증

 

가설 수립 단계에서 해당 개발 기능이 전체 서비스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예상하고, 이를 검증할 때 어떤 데이터들이 장기적으로 필요할지 생각을 해봐야 가설을 검증할 것이 아닌가? 대충 PV, UV, 매출만 보면서 “아, 이 기능 잘 돌아가네”라고 말하고 기획 이터레이션을 끝냈다면 나중에 데이터 분석가에게 오지를 말라. 나중에 이런 케이스들이 쌓이고 쌓여서 유저의 서비스에 대한 경험이 개판이 되고 난 후 막상 데이터를 보려고 하면 볼 수가 없다.

 그때 가서 고객에 대해 분석해 달라고 나에게 오면 도대체 나보고 무엇을 어떻게 해결하라는 것인가. 아니, 적어도 데이터가 쌓여는 있어야 무언가 해볼 것 아닌가. 물론, 속으로 “데이터 분석가가 데이터 남기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기획 과정을 끌고 가는 사람이 기획자인데, 거기에다 한두 명이 아닌데, 내가 그 모든 기획들이 언제 어떻게 얼마큼 실행되고 있는지 어떻게 알고 있다는 말인가. 프로세스를…. 기획 단계에서 데이터 분석가를 껴주거나 아니면 질문이라도 해 보는 프로세스를 만들어줘!

 

 

 

 

 

 

마지막으로 킹 받는 질문은 아래와 같다.

 

 

대시보드 만들어주세요

 

 

이거는 거의 인사이트를 물어보는 질문과 같다. 아니, 서비스의 목표가 무엇이고, 그래서 보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서비스의 전략이 무엇인지 알려주지도 않은 상태에서 도대체 어떤 대시보드를 만들라는 것인가. “내가 서비스를 어떻게 이해하는가”라는 프레임이 완성된 상태여야만 이해하기도 쉽고 의미 있는 대시보드를 만들 수 있다. 훌륭한 문제 정의를 뛰어넘어, 훌륭한 서비스 이해 프레임 및 원칙을 기획자가 가지고 있고, 또 그것을 데이터 분석가에게 공유해야만 훌륭한 대시보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 기획자가 없어서 “훌륭한 서비스 이해 프레임 및 원칙”을 내가 바닥부터 쌓았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나도 도움을 받고 싶다! 업무만 주지 말고 사수를 달라! “제로부터 시작하는 이세계 생활(기획 생활)”도 아니고, 아니 도대체 내가 왜 하도 답답해서 기획 강의를 돈 주고 배우고 있는 것인가. 세금 공제도 얼마 안 되는 강의 사이트들에서! 내 월급!

 

 

 

 

 

 

결론은 데이터 분석가 킹 받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아래의 것들을 명심하자

 

 

1. 질문하기 전에 고객과 서비스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기

2. 질문은 뾰족하고 명확하게

3. 질문 줄 때 맥락도 공유

4. 분석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데이터가 없는 것이다

5. 인사이트라는 단어 금지

6. 그냥 대시보드 만들어주세요 라는 말 금지 (차라지 이런이런 것을 모니터링하고 싶다고 말해라)

7. 데이터 분석가는 기획자가 아니다

 

 

여름비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