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시간에 허덕이던 나

 

 

하고 싶은 것이 많은 나에게 매일 8~9시간은 자야 하는 하는 체질은 고치고 싶은 대상 1순위였다. 잠이 많다는 것은 깨어있는 시간의 총량이 남들보다 적다는 것이다. 8~9시간을 자야 하니 최대한 야근을 안 하기 위해 일과 시간 안에 숨도 안 쉬고 전력질주하듯 일을 해야 했다. 회사 다니면서 밑미 리추얼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종종 인터뷰와 강의도 해야 하니 늘 시간이 부족한 채로 일 더미 아래 눌려 사는 기분이었다. 

1시간만 일찍 일어나면 하루를 여유롭게 시작할 수 있을 텐데, 해야 할 일을 마음 편히 하나씩 해낼 수 있을 텐데, SNS를 보면 다들 어렵지 않게 미라클 모닝을 하던데, 내 몸은 왜 8시간 이상 자야 제대로 기능을 하도록 만들어진 걸까. 아쉬웠다.

 

그 아쉬움으로 올해 1월 한 달 동안에는 6시에 일어나는 미라클 모닝 프로젝트를 시도했지만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결막염과 함께 강제 종료 당했다. 며칠 동안 눈앞이 뿌옇고 시야가 흐려지는 증세가 지속되자 덜컥 겁이 나서 반차를 내고 안과에 갔다.

“잠을 못 주무세요? 눈의 피로가 심하시네요. 잠을 충분히 자고, 눈을 쉬어주세요.” 의사 선생님의 진단에 허탈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미라클 모닝을 성공하기 위해 억지로 11시 전 잠들고 6시에 일어나며 어떻게든 7시간 수면은 채우고 있는 내가… 과로요? 수면 부족이요?

허무하게 막을 내린 미라클 모닝 프로젝트를 통해 내 몸에 대한 중요한 사실 두 가지를 깨달았다.

1. 하루 8시간 이상 자야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2. 너무 일찍 잠들면 오히려 깊은 잠에 못 든다. 11시~12시에 잠들 때 수면의 질이 높다.

 

[준 올빼미 8시간 수면]이 맞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난 후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잠을 못 줄인다면 깨어있는 시간이라도 잘 써봐야 할 것 아닌가. 회사에서 쓰던 구글 캘린더로 업무 일정과 일상 일정을 모두 관리하기로 했다.

 

 


 

 

구글 캘린더를 선택한 이유

 

 

회사에서는 동료들 모두 구글 캘린더를 미팅 일정 잡는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나는 미팅을 포함한 전체 업무 일정 관리를 구글 캘린더로 한다. 따로 [To do list]를 만들 수도 있지만 일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일을 할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고 소요/확보 시간을 시각화해서 보여주기에는 구글 캘린더가 효과적인 도구였다.

 

 

 

 

구글 캘린더 장점 1. 시각화

 

구글 캘린더에 할 일을 시간과 함께 적어두면 [해야 할 일] X [소요 시간]이라는 2가지 차원의 정보를 시각화할 수 있다. 업무를 하나 마칠 때마다 구글 캘린더를 보면서 남은 업무와 소요 시간을 확인한다.

8시간의 근무 시간 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업무량은 유한하다. 이렇게 [해야 할 일]을 [소요 시간]과 함께 시각화하면 무리한 계획을 잡지 않을 수 있고 업무가 몰리는 날이 언제인지 확인한 후 앞뒤로 업무 일정을 미리 조정해 둘 수 있다.

 

 

구글 캘린더 장점 2. 반복 설정

 

구글 캘린더의 두 번째 장점은 [반복 일정]을 설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회사 업무 중 반복 업무가 40% 정도 비중을 차지하는데, 이 업무들을 잊지 않고 수행하기 위해 반복 일정으로 설정해 두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리마인드를 위해 반복 설정을 해두었는데, 반복 일정을 [미리 고정 확보] 해두니 좋은 점이 더 있었다. 

매주 월요일 아침에 한 주의 고정 일정을 미리 확인한다. 아래처럼 아직 해야 할 일을 새롭게 적지 않아도 이미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To do list 작성을 자동화] 한 것이다. 고정 반복 설정된 일정을 보면서 [효율화/개선이 필요한 반복 업무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불필요한 업무는 없는지 체크한다. 

추가해야 할 업무는 남는 시간으로 배치한다. 추가 업무가 정말 중요한 일이라면 기존의 [고정 업무] 중에서 뺄 게 없는지 확인하고 팀 리더와 협의한다. 이 과정에서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늘 시간에 허덕이는 이유는 내 수면량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다. 누가 새롭게 일을 시키지 않아도 이미 고정으로 박힌 일정이 이렇게 많지 않은가!

 

 

 

 

구글 캘린더로 업무 일정을 관리하면서 깨달은 두 가지 사실

1. 시간이 없는 건 기분 탓도 내 탓도 아니다. 시간은 애초에 없었다. 왜?
2. 반복적으로 하는 일들이 기본적으로 40%의 시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각화하지 않으면 이걸 잊기 쉽다.

 

 


 

 

구글 캘린더로 일상 시간 관리하기

 

 

사실 위의 2가지 사실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2년 전 노션으로 [시계부] 템플릿을 만들어 시간 관리를 하다가 그만둔 적이 있었다. (그때 만든 시계부 브이로그) 몇 달 지속하면서 실제로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일들이 많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인지하는 경험을 했다.

문제는 노션은 시간 관리에 적합한 툴이 아니었다. [해야 할 일] X [소요 시간]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웠고, 무엇보다 할 일 블록을 매일 모두 새롭게 만들어야 했다. 그게 너무 번거로워서 멈추고 있다가 구글 캘린더로 업무 일정을 관리하는 것처럼 일상의 시간도 관리해 보자는 생각을 했다.

 

 

 

 

구글 캘린더를 활용하되 회사 업무 관리하는 것보다 확장된 방식으로 사용하고 싶었다. 내 일상을 채우는 여러 가지 활동을 유형 별로 나누어서, 나를 행복하게 하는 활동에 충분히 시간을 배분하는지 시각화하며 관리하고 싶었다.

유형을 총 9개로 정리하고 별개의 캘린더로 생성해서 각기 다른 컬러로 구분했다.

 

 

 

 

개인 구글 계정으로 생성한 캘린더들 (회사 계정과 분리)

아침/저녁 루틴
개인 작업
밑미 리추얼
부부 생활
외부 일정
운동
집안일
회사 업무
흘려보낸 시간

 

구글 캘린더로 일상 시간을 관리하는 5가지 목적

1.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짧고 유한하다는 것을 인정하자.
2. 나를 행복하게 하는 활동에 충분히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지 수시로 점검하자.
3. 반복적이어서 잊기 쉬운 활동을 놓치지 말자. (ex. 매주 일요일 식물 물 주기, 매월 1일 가계부 정리하기)
4. 다음 한 주, 내일 하루를 미리 시뮬레이션하자. 막연하게 “할 게 너무 많다”며 조급해하지 말자.
5. 외부 약속을 잡을 때 단순히 퇴근 후에는 다 된다고, 약속 없으면 다 된다고 생각하지 말자. 나에게는 나와의 고정 선약도 있다.

 

나는 퇴근하고 [나만의 시간을 오롯이 확보]하고 싶은 마음이 큰 사람이다. 퇴근 후 하루에 1~2시간 정도 책 읽고 글 쓰며 보내야 행복감을 느낀다. 문제는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는 거다. 아래 사진은 3주 후의 캘린더에 고정 등록된 일정들이다.

 

 

 

 

일단 회사 업무 일정이 거대한 기둥과 벽처럼 자리 잡고 있다. 남는 시간이 정말 없다는 게 느껴진다. 분명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럴 것이다. 주말 정도를 제외하면 정말이지 남는 시간이 없다! 그걸 마음으로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눈으로 확인을 하고 나니 비로소 인정하게 되었다.

너무 욕심내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회사 다니면서 밑미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나에게 매일 1~2시간 나만을 위한 시간은 무리였다. 그럼, 하고 싶은 활동, 나를 행복하게 하는 활동들은 포기해야 하는 걸까? 아니, 할 수 있다. 해야 하는 일처럼 [하고 싶은 일] 역시 공식적인 [고정 반복 일정]으로서의 지위를 부여해 주는 것이다.

우리는 [해야 할 일]의 중요도와 시급성을 [하고 싶은 일]에 비해 지나치게 높게 책정한다. 그래서 자꾸 [하고 싶은 일]이 뒤로 밀린다. 그런 패턴을 바꾸려면 [하고 싶은 일]의 중요도와 시급성 우선순위를 높이면 된다.

 

위 캘린더 이미지를 다시 보면 아침과 저녁 리추얼, 운동, 영어 공부, 밑미 리추얼 운영, 남편과의 주말 식사와 같은 [나를 위한 고정 반복 활동]들도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활동들은 아무리 바쁘고 해야 할 일이 많아도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은 내 일상의 하방 저지선과도 같다.

매주 토요일 청소기, 일요일 식물 물 주기, 매월 초 화장실 락스 청소와 같은 집안일도 고정 반복 일정으로 등록해 두었다. 이 활동들은 바쁘면 쉽게 미루게 되지만 자칫 방치하면 일상이 어수선해져서 마음까지 어수선해지기에 일상의 중심을 잡기 위해 미루지 않고 해야 하는 중요한 활동이다.

 

일상을 건강하고 균형 잡히게 가꾸려면 아래 3가지 유형의 활동에 시간을 골고루 배분해야 한다.

– 미룰 수 없이 당장 해야 하는 일
– 미룰 수 있지만 미루면 후회하는 일
– 자꾸 밀리는 하고 싶은 일

 

구글 캘린더에 기록된 일들을 [유형별 소요 시간]의 형태로 정리해 볼 수도 있다. 이걸 도와주는 [G Timer Report]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링크 여기) 이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아래의 표처럼 구글 캘린더에 기록된 모든 데이터를 구글 스프레드시트로 변환해서 볼 수 있다.

 

 

 

 

위 raw data를 피벗테이블로 가공하면 캘린더 유형 별로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볼 수도 있다.

 

 

구글 캘린더로 분석한 나의 [깨어 있는 시간 활동 유형별 비중]

 

 

이렇게 캘린더로 일정을 관리하면서 또 한 가지 좋은 점은 갑자기 시간이 생겼을 때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자꾸 밀리지만 하고 싶었던 일로 채우면 된다. 지난달에 소홀했던 활동에 시간을 배분할 수도 있다.

 

 


 

 

일기와 구글 캘린더를 함께 쓰면 좋은 점

 

 

자꾸 밀리지만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인지, 그것을 했을 때 내 삶이 얼마나 좋아지는지는 [일기]를 써야 제대로 알 수 있다.

 

인간의 뇌는 불완전하다. 인간은 기억을 망각하고 왜곡한다. 문제는 인간이 기억으로 미래를 상상한다는 것이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예측할 수 없다. 우리가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일부가 유실되고 일부만 남은 왜곡된 기억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경험하는 만큼 상상할 수 있고 상상하는 만큼 꿈꿀 수 있는 것이다.

과거에 무엇이 행복했는지 무엇이 불행했는지 잊는다면 내가 어떻게 미래를 가꾸어나가야 할지 올바르게 예측하기 어렵다. 그리고 우리는 대개 과거를 잊는다. 어제 점심으로 무엇을 먹었는지도 잊는 마당에 어제 1시간 더 자서 컨디션이 좋았던 것을, 동료 A와 오후에 커피를 마시며 고마운 칭찬을 듣고 사회적 효능감을 만끽했던 것을 어떻게 세세히 기억할 수 있을까. 기록하지 않으면 잊는다.

기록한다면 기억을 잃지 않고 보존할 수 있다. 기록으로 살아남은 기억은 미래를 온전하고 안전하고 보다 선명하게 예측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딱 그만큼 우리는 행복을 보장받을 수 있다.

 

일기는 하루의 기억이 유실되지 않게 보관하는 도구다. 나는 아침저녁으로 10분씩 일기를 쓰는데 여러 변화를 거쳐 지금은 아래의 템플릿으로 정착했다.

 

[아침]
수면 시간: 어제 잠든 시간 → 오늘 일어난 시간
어떤 하루를 보내고 싶어?
그런 하루를 보내면 어떤 기분일까?

[저녁] 
원하는 하루를 보냈어?
어떤 감사한 일이 있었어?

 

타인이 나에게 건넨 질문에 답하듯 기록한다.

“별로인 하루였어. 회사에서 동료 B에게 신경질을 낸 내가 너무 부끄러워.”
“너무 바빴지만 요가를 빼먹지 않고 했어. 1시간 요가하고 나니까 기분이 확 나아졌어. 지금은 충만한 기분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어.”

아침저녁으로 쓰는 일기는 [활동] → [감정/컨디션] 간의 상관관계를 알 수 있는 촘촘한 기록이다. 

[OOO를 하면 나는 OOO 한 컨디션/감정을 느끼는구나] 알 수 있다.

 

누군가는 그거야 일기를 쓰지 않고도 당연히 알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과연 그럴까? 일기를 써보면 안다. 우리가 얼마나 일상의 감사한 일, 행복한 일, 설레는 일을 금방 잊고 사는지. 우리가 얼마나 순간의 감정에 매몰되어 그 감정이 [나]라고 오해하는지.

매월 마지막 날 밤이 되면 한 달 동안의 일기를 쭉 훑으며 [월간 회고 기록]을 남긴다. 1년 넘게 월간 회고를 하면서 매번 깜짝 놀란다. 고작 1~2주 전의 감정 상태와 기억을 모조리 잊고 회고를 하는 그날 밤의 기분과 컨디션으로 [나]라는 사람을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어쩌다 한번 그러는 게 아니라 어김없이 매번 그런다.

 

정말 좋아하는 일이라면 기록하지 않고도 마음으로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맞다. 하지만 우리는 100% 좋아하는 일로 일상의 100%를 채우며 살아갈 수는 없다. 일상은 ‘나를 더 좋은 삶으로 데려가는’ 하나의 거대한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에는 변수가 너무나도 많다. 그리고 대부분의 변수가 나의 의지와 의도와는 상관없는 방향으로 나를 데려간다. 성공적으로 이끌어가려면 전략을 잘 세워야 한다.

일상의 40%는 하기 싫지만 해야만 내 일상이 유지되는 일로 채우고, 30%는 미룰 수 있지만 미루면 후회하는 일로, 15%는 가슴 떨리게 좋아하는 일로, 15%는 자꾸 밀리지만 하면 좋은 일로 채우며 위험을 분산하고 성공 확률을 높여야 한다. 시간 관리에도 포트폴리오를 잘 짜는 전략이 필요하다.

 

행복에 관한 많은 연구들을 보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은 가족이나 동료처럼 우리의 선택과 무관하게 맺어진 인연보다는 친구나 배우자처럼 우리가 [선택한] 사람이라고 한다.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는 일도 똑같아. 우리의 선택과 무관하게 해야 하는 일보다 우리가 [선택한] 일이 우리를 조금 더 행복하게 만든다.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지려면 내가 선택한 일의 비중을 조금씩 늘려나가면 된다. 그 과정을 이 구글 캘린더 시간 관리법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단단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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