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진님이 블로그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번 더 소개합니다.

개인 블로그에 중국의 온라인/인터넷 비즈니스에 대한 이야기와 생각을 담고 있어서 그런지 중국 온라인 사업과 관련해서 문의하거나 직접 만나러 오는 사람들이 있다. 가끔은 스타트업에 투자하려는 VC에서 인터뷰 요청을 하기도하고, VC로부터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스타트업의 사업계획서를 봐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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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블로그를 통해 중국 시장과 비즈니스 이야기를 공유하게 된 이유가 ‘중국 유학을 선택한 후배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하는 선배로서의 의무감’과 동시에 ‘언론사에서 무분별하게 뿌려대는 차이나 드림의 환상을 깨고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입장과 목적의 변화에 따라 내용도 달라지기도 하는데, 때로는 투자자의 입장에서 말하기도 하고, 투자를 유치해야 하는 입장에서도 말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잣대로 판단한 주관적인 내용이지만 후배들이 중국에서 비즈니스 하는데 도움 되는 글을 쓰려하고, 찾아오면 언제든 만나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전부 알려주고 있다. 오늘은 그 동안 요청온 스타트업의 사업계획서를 보면서 느낀 생각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우선, 벤처 캐피탈(이하 VC)들은 왜 스타트업에 투자 할까?’

VC중에는 순수하게 투자만 하는 전문 투자기업도 있지만, 중견/대기업이 전문 투자회사를 별도로 만든 경우도 많다. 전문 투자기업이건, 중견/대기업이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목적은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분류할 수 있다.

①자사의 밸류체인 연관성

②소규모 투자 후 인수를 통한 신사업 기회 모색

③ 엑싯(Exit, 자금회수) 목적의 투자

개인적으로 나눈 분류이지만, 이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세지는 첫 번째, ‘기업마다 투자 목적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 ‘그들의 갈증 포인트가 다르고, 스타트업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갈증을 해소하는데 포커싱 되어야 한다’는 거다. 비록 내가 중국 인터넷 사업과 관련된 분야에 관심이 많다는 걸 알고 대부분의 문의는 온라인 관련 사업이기는 하다. 이들 스타트업들을 만나 사업계획서를 보면서 느낀 점들은 다음과 같다.

1. 기술만 고집하는 자위형(自慰型) 사업계획서

하드웨어 업체나 IoT관련 스타트업 중에는 개발자 출신 사업자들이 많다. 개발자 출신은 기술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포장하는 능력이 상당히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어쩌면 업무의 특성상 Input과 Output이 정확히 맞아 떨어져야 하기 때문에 상상의 날개를 펼치는데 한계가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업자들을 볼 만날 때면 ‘대신 PR 해줄 수 있는 말솜씨 좋은 사람이랑 일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런 사업자 부류는 상당수가 해당 기술에 대한 테크니컬한(Technical) 장점만 말할 뿐, 어떻게 활용하고 어디에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여 듣는 이로 하여금 공감대 형성이 어렵고, 아이디어의 시장 접근성이 매우 제한적인 경우가 많다.

만약 투자유치의 대상이 ‘①번 분류, 자사의 밸류체인 연관성’에 해당된다면 사업자의 기술이나 시스템의 가치평가를 투자자들이 하므로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그 외의 경우에 해당한다면 투자자를 설득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2. 구체적인 프로세스가 없이 추상적이고 개념만 있는 사업계획서

글쓴이가 만나본 사업자들 중 상당수가 여기에 속하는 부류였다. 그들의 사업 아이템 또한 매우 흡사하다. 그들이 하겠다는 사업의 기본 모델은 PC, 모바일web, APP 등과 같은 인터넷 플랫폼이나 회원을 기반으로 한 멤버십 사업이 많았다.

이들은 사업경험이 없어 구체성이 부족할까? 그렇지도 않다. 대부분은 이미 한국에서 관련 사업을 해봤던 사람들이라 IT나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편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중국의 시장환경에 대한 이해부족’이다.

이미 중국 시장을 이해하고 있는 사업자라면 글쓴이에게 문의할 일도 없었겠지만, “플랫폼 런칭을 계획 중이면 홍보비용에 대한 고민도 해보셨을 것 같은데, 플랫폼을 중국에서 어떻게 홍보할 계획이신가요?”, “멤버십을 구현하려면 매장 POS와 연동되거나, 또는 적립/사용 등에 대한 승인데이터를 보내줘야 할텐데, 어떻게 구현되나요?” 등과 같은 매우 기본적인 질문에서부터 막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웹사이트 및 APP 홍보채널과 비용에 대한 구체적 고민은 전혀 되어 있지 않고, 플랫폼의 특징이나 런칭후에 자연스럽게 사업이 활성화 될 것이라는 추상적인 사업계획서가 많다. 특히 8억명 MAU(월 액티브 유저)를 보유한 위챗을 기반으로 한 사업 아이템도 상당히 많다. 그러나 위챗 시스템에 대한 연동구조는 전혀 없고 공식계정 버튼에 링크를 걸어두고는 위챗 시스템이라고 포장하여 설명하는 것이 전부이다.

업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투자자라면 언론에서 떠들고 있는 중국에 대한 트렌드 키워드만 나열해서 그럴싸하게 포장할 수도 있겠지만, 행여 글쓴이 와 같이 얄팍한 지식을 가져 캐물어야하는 투자자를 만나면 어떻게 되겠는가?

3. 수익모델을 명시하지 않은 방향성이 없는 사업계획서

“아이디어도 좋고, 기술 및 방법도 매우 좋네요. 그래서 최종 목적지는 무엇인가요?” 아마 글쓴이를 만나본 사람들이라면 “사업의 최종 목적지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들어봤을 것이다.

사업계획서를 보면 괜찮은 아이디어와 방법을 가져 플랫폼에 사람을 끌어 모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런 방법론적인 내용은 잘 들어가 있는데, 결과적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 목적지가 없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중국에서 왕홍 마케팅이 뜨고 있다 → 플랫폼에 왕홍을 모아두기 위해서 왕홍끼리 서바이벌하는 콘텐츠를 넣는다 → 그렇게 선정된 왕홍을 우리 MCN회사에 모아둔다’

그렇다면 이 사업의 최종 목적지는 ‘왕홍을 플랫폼에 모아두는 것인가? 그렇다면 플랫폼은 무슨 역할을 하는 것인가? 이 사업은 플랫폼 사업인가? 아니면 MCN사업인가? 수익모델은 플랫폼 광고인가? 왕홍을 활용한 브랜디드 광고사업인가? MCN 매니지먼트 사업인가?’ 사업계획서를 읽으면서 수 만가지 생각이 교차된다. ‘사업자가 이 정도 설명하면 내가 알아서 추측했어야 하는 건가?’
수익 모델이 반드시 하나 일 필요는 없다. 수익모델이 여러 개라면 우선순위를 두면서 언급하면 된다. 이런 수익모델의 예시도 없이 갑자기 2~3년 내에 수백~수천 억대 매출을 일으킨다는 내용의 그래프가 나오면 사업계획서의 첫 장으로 다시 돌아가 다시 읽어보게 된다. ‘혹시 앞에 써놨는데 내가 못 봤나?’하고 의아해서 말이다.

4. 한국의 서비스를 중국에 그대로 런칭 시키겠다는 사업계획서

아직도 중국이 낙후된 후진국이라고 생각하여, 한국의 서비스를 그대로 중국에 오픈하면 될 거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런 마인드로 사업계획서를 만드는 사람들을 보면 오히려 존경스럽기도 하다. 인터넷 뉴스만 보더라도 중국의 인터넷 사업이 얼마나 발달해 있으며, 온라인 유통도 상당히 체계적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텐데.. 일단은 막무가내로 ‘한국의 서비스를 중국에다 오픈 하겠다’식이다.

이런 부류를 두 명 정도 만나봤다. 그런데 다른 부류의 사람들보다 이들은 나름 가장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고 설득력도 가장 강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투자유치에서 제일 중요한 건 ‘서비스가 중국 시장에 맞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한국에서 인지도 있는 서비스를 언급해야 한국의 투자자들이 알아들을 수 있고, 중국에서 해당 서비스를 한다고 하면 포장이 잘되서 들어가기 쉽다는 것이다. 어차피 투자를 받고 나서 사업을 구체화 하면 되기 때문에, 일단은 사업계획서가 그럴싸하게 보일 수 있도록 조미료 좀 쳐달라고 부탁하곤한다. 오히려 이렇게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마음이 편하다. 함께 고민해서 그럴싸한 뻥을 사업계획서에 추가하여 포장하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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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앞서 언급했던 투자자의 유형 중 ‘③엑싯(Exit, 자금회수) 목적의 투자’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일까 한다. 벤처 캐피탈의 중국어는 风险投资이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위험한 투자’, 투자의 출발점이 리스크라는 것이다. 글쓴이의 스타일대로 표현하면 카지노에서 잭팟을 터트리기 위해 동전을 집어넣는 도박 중독자의 투자 심리라고 본다.

VC입장에서는 고귀한 잠재적 가치에 대한 투자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글쓴이가 볼 때는 ‘빠른 시일 안에 IPO를 하거나 매각을 통해 최대한의 이익을 뽑아내겠다는 도박의 개념’이기 때문에 결국 벤처 캐피탈과 도박중독자의 투자심리는 비슷하다.

스타트업의 사업계획서는 어떤 슬롯머신이 그나마 잭팟 터질 확률이 높은지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업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투자자라면, 인터넷에서 떠도는 키워드를 최대한 활용해라. 왜 투자해야 되는지를 이해시키는 것보다 일단 어디서 많이 본 단어들을 나열 시키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투자심리는 일단 움직일 수 있다.

2015년 중국의 해외직구 열기와 위챗의 발달로 인한 웨이상이 이슈화 되면서 한국의 한 스타트업은 HOT 키워드들을 조합하여 그럴싸해 보이는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여러 곳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했고, 결과적으로 작전은 성공했다. 심지어 대기업과 금융권도 그 회사에 투자했으니 말이다. 그 스타트업의 중국 사업성 및 투자가치 검토에 대한 문의를 받은 것만 거짓말 조금 더 보태서 20건이 넘는다. 한마디로 그 회사는 사업계획서 자체가 중국에서는 구현할 수 없는 사업 구조였다. 하지만 그 회사는 언론에서 떠들었던 중국 관련 키워드로 포장한 사업계획서를 가지고 여러 곳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다.

투자유치의 대상이 누구인지 명확히 하고, 사업계획서를 만들어라. ‘장님은 코리끼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