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4학년 때였나? 누구나 그러듯 나 역시 직업과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그 시절, 친구를 따라 간 회기역 사거리 사주 카페에서 취업운을 보게 되었다. (친구는 아마 사주를 봤던 걸로 기억한다.) 이제는 오래되어 어떤 내용들을 얘기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한 가지 확실히 기억나는 말이 있다.

무, 도르마무 역마살이 있는 것 같다.

“자네는 역마살이 있어. 돌아다니는 게 팔자에 좋아”

“예?! (그럴 리가요!)”

그 한마디가 확실히 기억에 남는 건,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차만 타면 멀미를 하던 어린 시절을 지나, 여행의 고단함을 느꼈던 몇 번의 여행을 통해 역마살은 내 팔자에 없을 것이란 생각을 했고 회기에서 지내며 다시는 그 사주카페에 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 역마살이 뒤늦게 찾아왔는지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고 이를 십분 활용하며 살고 있다.

입.도.하겠습니다

앞선 대표님, 휴가 다녀오겠습니다 글에서도 밝힌 것처럼 보통 직장인은 상상할 수 없는 휴가 방안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중 Plan C였던 ‘제주다움’에 지원했는데 착! 하고 붙어버렸다. 그래서 8월 한 달간, 사무실을 비우고 제주도에서 일하게 되었다. 내 책상이 사라지지 않을지 걱정이지만 회사를 다니며, 어떻게 제주도에서 한달살이를 할지 계획을 세워야 한다.

한달살이, 본격적으로 준비해볼까?

1. 비행기 티켓

여행의 시작은 역시 비행기 티켓, 유럽여행쯤 되면 비행기 티켓을 끊는 것만으로도 일과 삶의 의욕이 쭉쭉 올라가고 스트레스받는 회사 생활도 견뎌낼 수 있는 힘이 된다. 하지만 제주도 행 비행기 티켓은 그 정도는 아니다. 그래서 편도로 끊었다. 이 정도 패기는 부려야지. 회사 특성상 반드시 사무실에서 일해야 하는 것은 아니기에, 돌아가는 일정은 생각하지 않고 티켓을 끊었다.

2. 숙소

체류지원 사업으로 가는 것이기에 딱히 숙소에 대한 선택권이 없었다. 애초에 기대를 안 하고 있기도 했고, 좀 불편하더라도 마냥 휴가 가는 것은 아니니 참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누가 그랬던가. 지원사업 소개 영상에서 얼핏 보이던 도미토리 형식의 게스트하우스가 프로그램 안내 메일에서 호텔로 변해서 돌아왔다. OMG… 덕분에 숙소 고민은 1도 없이 한 달 살이를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3. 생활용품 및 옷가지

한 달이라는 시간은 꽤 길다. 그래서 준비해야 할 것을 생각하면 끝이 없다. 사실 대학교 시절, 교내 프로그램으로 한 달 정도 미국에 체류했었던 경험이 있다. 그때 얻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짐을 준비하기로 했다. 그 노하우는 바로 짐을 안 가져가는 것. 미국에 장기간 떠나면서도 캐리어의 절반 정도만 챙겨졌던 나인데. 제주도에 뭘 그리 챙겨갈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제주도쯤 되면 굳이 서울에서 한 살림 챙겨갈 필요 없이 꼭 필요한 것만 챙기고 소모품은 가서 살 수 있다. 떠날 때 짐이 무거운 것은 그저 속세에 대한 미련일 뿐이라는… 어느 스님의 말씀을 실천할 생각이다.

4. 노트북

가서도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노트북은 필수다. 특히 태블릿이 되는 노트북. 페이지콜을 시연할 일이 생겼을 때, 100% 서비스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태블릿이기에 회사에서 제공해 준 업무용 태블릿 지원 노트북을 챙겨 갈 생각이다.

5. 카메라

기왕이면 아름다운 제주로 떠나는데 아이폰으로만 사진을 찍으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전 해본 적 없던 DSLR을 들고 제주도로 떠나볼 생각이다. 손재주는 없지만 찍다 보면 늘겠지…

6. 운전 3종 세트 (면허&연수&렌트)

제주도 생활에서 차가 없으면 상당히 불편하다. 지난봄, 홀로 떠난 제주 여행에서 느낀 점이다. 버스가 4~50분 간격으로 있는 것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속속들이 숨어있는 제주의 숨은 플레이스들을 가기 어렵다는 점과 제주 바다를 100% 즐길 수 없다는 것이 크나 큰 단점이다. 하지만 수능 끝나고 할 일 없을 때 면허를 딴 후, 어언 10년… 운전을 해본 경험이 많지 않기에 별도의 운전 연수가 필요한 상황이다. ‘허’의 탈을 쓰고 도로 위의 여포가 되고 싶지 않기에 반드시 연수를 받고 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7. PAPER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응?)에 독서시간은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한 두 권의 책을 읽기에 한 달이라는 시간은 너무 길고, 많은 책을 챙겨가는 것은 너무 짐스럽다. 그래서 오랜 시간 먼지 속에 묻혀있던 리디북스 PAPER를 꺼냈다. 친구의 추천으로 샀지만 막상 책장을 손으로 넘기는 그 느낌이 좋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아 묻혀있었던 PAPER를 사용할 생각이다. 때마침 리디북스에서 리디 셀렉트라는 베스트셀러 구독 상품을 출시했고, 첫 2달간은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해, 베스트셀러를 무료로 독파하고 올 수 있게 되었다.

8. 제품소개서

제주도로 떠나는 주요 목적은 페이지콜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제주도는 지리적 특성상, 외부 미팅을 나가기 껄끄럽다. 그래서 원격으로도 상호 간에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페이지콜이 필요한 기업이 많이 있다. 그들에게 명확하게 서비스를 설명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품소개서를 준비하고 있다.

9. 굿즈

그리고 플링크를 알리기 위한 굿즈를 준비 중이다. 현재 제작한 굿즈는 노트와 펜, 그리고 핸드폰 거치대. 추가로 여름에 어울리는 스티커 정도 알음알음 챙겨가 만나 뵙는 분들께 나눠드리고자 한다.

10. To Do list

새로운 공간을 경험한다는 것은 새로운 일을 낳기 마련이다. 현재 서울에서 하고 있는 일을 그대로 제주도에서 하는 것은 무리가 없지만, 제주에서 새롭게 만나게 될 일은 어떤 난관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To-Do List를 작성 중에 있다. 어떤 일을 할 것이고, 어떤 일을 새로이 할 것으로 예상되며, 예상치 못한 어떤 일이 생길지 미리 준비해야 알찬 한 달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11. 가볍지만 무거운 마음

그렇다. 떠나는 마음은 가볍지만 무겁다. 100% 오프라인 커뮤니케이션을 배제한 원격근무는 회사 내에서 최초로 시도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 예측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특히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오해가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가장 큰 걱정이다. 분명 얼굴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지식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닌 감정을 공유하는 관계에서는 분명 플러스보다는 마이너스 요인이 더 많다. 오히려 프리랜서로서 제주에서 일을 했다면, 이런 걱정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래도 이 부분은 직접 부딪쳐보고 경험할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넓고 갈 곳은 많다

하지만 우리는 체념한다. 휴가가 없어서 못 간다고, 일해야 한다고. 근데 나중에 숨을 거두는 순간이 다가온다고 생각해보면 그때 떠나지 못했던 순간들이 아쉽지 않을까? 떠나는 것, 자유로운 것이 인생의 모든 순간에 정답은 아니겠지만 하지 못해 후회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아니, 낫다. 그러니 한 달이지만 잘 다녀올 생각이고 내가 아닌 누군가도 나처럼 떠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최길효님의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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