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초창기, 도움받을 곳은 수도 없이 많다

 

정부 지원자금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하더라도 그 자금만으로 계속 버틸 수는 없다. 스타트업의 여정은 매 순간순간 돈과의 사투이자, 숫자와의 씨름이다. 실제로 2018년 벤처기업 정밀실태조사를 보면 스타트업 창업자들의 경영 애로사항 1위가 ‘자금 확보와 운용’으로, 무려 74.6%로 나타났다. 또한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스타트업 성공에 가장 필요한 요소로 ‘자금’이 거의 항상 1위를 차지한다. 그만큼 돈을 확보하는 것은 기업의 생사가 걸려 있는 문제이자, 스타트업의 흥망 또한 자금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창업 초기 단계에서부터 어엿한 매출과 수익을 올릴 수 있다면야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런 스타트업이 몇이나 되겠는가. 실제 창업에서 3년까지의 기간에 잠재력 있는 많은 스타트업들이 자금난으로 어려움에 처하고, 좌절하고, 끝내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일명 데스밸리를 넘지 못한 기업들이 쏟아지게 된다. 결국 생존을 위한 해답은 투자 유치. 사업이 시장에 안착하기까지 최소한 먹고 마실 수 있는 생존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투자 유치라는 큰 산을 넘어야만 한다.

하지만 투자 유치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남의 돈을 가져다 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시기별로 투자 전략을 짜서, 돈이 투입되어야 할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투자는 결코 하루아침에 받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한 수 앞을 미리 보고 필요한 자금을 추정하고 이에 맞춘 추가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원칙이다. 내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를 추진하기 위해 개발비(개발자 급여, 외부 개발비)와 운영 자금을 명확히 예상하고 시기별로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스타트업의 일반적인 유형별 투자 유치 과정은 아래와 같다.

 

① 엔젤투자, 크라우드펀딩

② 액셀러레이팅(공공/민간기업 보육 프로그램)

③ VC(시리즈 A B C) – 마이크로 VC – VC(벤처캐피털) – CVC(기업 출자하여 투자 업무를 관장) – 자산운용사(금융권, 증권사, 캐피털 등)

④ IPO, M&A

 

 즉, 창업 초기 단계에 엔젤투자 등을 통해 시드(seed)머니를 확보한 후, 다양한 액셀러레이터들로부터 멘토링 및 (지분) 투자를 유치하고, 이후 VC(벤처캐피털)들로 부터 본격적인 투자를 유치하여 마침내 IPO 단계에 이르는 과정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통상 창업하고 5~6번의 투자 단계가 그레이드별로 이어지게 된다.

 필자의 경우, 앞서 언급한 대로 정부지원 과제 선정으로 첫 스타트를 한 후 이를 토대로 엔젤투자를 유치했고, 이후 다양한 민간기업 보육 프로그램 즉, 액셀러레이팅을 통해 자금과 멘토링 지원을 받았으며, 다시 이를 발판으로 VC들로부터 시리즈 A까지의 투자 유치단계를 거치고, 이제 시리즈 B단계에 돌입했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다양한 민간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통해 투자의 사다리를 타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점이다. 특히 민간 액셀러레이팅 제도는 투자자를 좀 더 쉽고 편하게 자주 만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기 때문에 스타트업이라면 반드시 백분 활용해야 한다.

 창업 초기 제1기 서울 창조혁신센터(10개 팀)에 선발되어 사무공간과 교육, 멘토링 지원 등을 받아 첫발을 내디딘 이후, 지금까지 거쳐 온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이 6개가 넘는다. 서울 창조혁신센터 입주 기간이 끝날 무렵, 우리는 SK텔레콤이 운영하는 당시 최고의 민간 보육 프로그램인 ‘SK브라보 리스타트’라는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에 약 35대 1이라는 높은 경쟁을 뚫고 3기로 선발이 됐다. 보유기술 향상 지원비 1억 원과 사무 공간 등을 받음으로써, 고정 비용을 최소화하고 기술 개발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전문가들의 멘토링을 통해 부족했던 창업 역량을 키울 수 있었던 건 돈으로 살 수 없는 자산이었다.

 SK브라보 리스타트에서 1년 기간을 만료한 후인 2015년에는 삼성동 구글 캠퍼스에 6개월 동안 입주하게 되었고, 또 한 번의 스케일업과 사업을 글로벌화하는 데에 큰 도움을 받게 됐다. 구글 캠퍼스는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고자 하는 스타트업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사무 공간 제공과,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확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특히 입주 기간이 끝난 지금도 구글 캠퍼스 출신업체로서 다양한 사업 지원을 받고 있으니 그 인연이 정말 소중하다.

 필자는 이후 창업 3년 차이던 2016년에는, 과기정통부 산하조직인 본투글로벌이 운영하는 스타트업 캠퍼스(판교 소재) 입주사와 멤버사로 선발되었다. 사무 공간을 무상으로 지원받아 고정 비용을 아낄 수 있었던 건 물론, 사업화 지원자금과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멘토링을 통해 우리 기술의 경쟁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기회를 가질 수가 있었다. 50여 개 기업이 입주해 있는 본투글로벌 스타트업 캠퍼스는 특히 해외 진출에 필요한 법률, 특허, 마케팅, 투자유치 등에 대해 원스톱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이와 더불어 우리는 은행권의 다양한 스타트업 보육 프로그램에도 쉼 없이 지원했고 그중 몇 가지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지속적인 성장을 일굴 수 있었다. 특히 2018년에 신한 퓨처스랩 4기에 선발된 것은 필자에겐 ‘결정적인 순간’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당시 신한금융그룹 조용병 회장은 따듯하고 행복한 금융을 표방하고, 그 일환 중 하나의 핵심 사업으로 국내 스타트업 육성에 발 벗고 나섰다. 조용병 회장이 가끔 스타트업 대표들과 함께 자리하면서 늘 대기업(금융그룹)이 사회에 무엇을 기여하고 지원할 것인가를 진심으로 고민하는 모습에 감동을 한 바가 있다.

 

 

 필자는 신성장 기술을 가진 여러 분야의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신한 퓨처스랩을 통해 시리즈 A투자 유치라는 엄청난 기회를 잡을 수 있었기 때문에 고마움이 더 크다. 신한 퓨처스랩 출신기업이라는 인연을 바탕으로, 멀고도 어렵게만 느껴졌던 VC투자의 큰 산을 넘을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신한은행과의 협업을 통해 우리의 시선추적기술을 적용한 ATM 기기를 개발, 사업 모델을 확장할 수 있었으니 그 가치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알다시피, 스타트업이 투자 유치를 위해 맨땅에 헤딩하는 건 정말 힘들다. 이런 민간 보육 프로그램에 들어가야 VC투자 유치가 상대적으로 쉬워진다. 필자의 사례 외에도, 실제 상당수 스타트업이 대기업이나 은행권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통해 해당 계열사로부터 투자 유치에 성공하거나 사업 제휴를 하는 경우가 많다. 민간 보육 프로그램이야말로 VC 투자 유치를 위한 사다리가 되고, 사업 확장을 위한 지렛대가 되는 셈이다.

또 알아 둬야 할 점은 은행권 민간 보육 프로그램은 여러 곳에 중복해서 지원해도 되고, 한 곳에서 선발되었다 해도 또 다른 곳에도 지원, 선발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필자의 경우 2019년에는 국내 대표 창업 육성 플랫폼으로 자리 잡은 기업은행의 ‘IBK창공’ 프로그램에 지원하여 선발됨으로써, 다양한 컨설팅은 물론 사무 공간 등을 지원받아 왔다. 사실 기업은행 창공 선발 대면심사 때에 심사위원들의 질문이 딱 한 가지였다. “비주얼캠프는 많이 알려진 스타트업이고, 이미 어느 정도 스타트업으로 자리를 잡은 회사인데, 왜 지원하셨는가?” 우리의 답은 간결했다. “여전히 당사는 홀로서기보다는, 보육 프로그램 지원을 통한 체계적인 스케일업을 하고 싶습니다.”고 강조하였다. 그런 목표와 지원 입장을 충분히 공감해 준 것이 선정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결국 초기 스타트업들이 생존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도 단계별로 스케일업이 되어야 한다. 그 외에도 현대자동차 액셀러레이팅인 제로원에 선정되어 전략적 투자와 더불어 자동차와의 협업도 현재 진행 중이다. 그 외에도 CJ그룹 ‘오벤처스’ 프로그램을 통해서 유상 POC(Proof Of Concept)를 개발하여 사업화로 이어 가고 있고, 온라인 전문 교육 대표기업 교원(딥체인저 스타트업 프라이즈)과의 인연도 우리에게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이처럼 기업마다 새로운 혁신과 사업 아이디어를 수많은 스타트업 중에서 진주를 찾아내고 협업의 기회를 발굴하려는 노력이 대단하다.

이제는 스타트업의 사업 아이디어와 기술이 인정을 받게 되면, 성장을 위한 문호는 늘 열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회사가 가지고 있는 기술과 사업 방향에 따라 우리가 도전하고 지원해야 할 기회들이 수없이 많다. 작은 스타트업들이 열악한 마케팅 능력과 판로를 개척하는 데 큰 도움과 기회의 창을 열 수가 있다. 사업의 시기별로 정부 과제를 끊임없이 매칭하고 도전해야 하듯이, 수많은 민간 보육 프로그램 중에 내게 적합한 프로그램들을 골라서 계속 사다리를 타고 연결해야만, 회사의 안정적인 성장과 더불어 VC 투자로도 이어질 확률이 높아진다는 점을 잊지 말기 바란다.

 

박재승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