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계별로 나의 수준에 맞는 도전이 필요하다.   

 

 

정부 과제 선정과 엔젤투자까지 유치했으면 돈 걱정은 일단 접어 두고, 사업 진행에만 100% 올인하는 게 맞을까? 나는 많은 초기 스타트업의 실수가 여기서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당장 먹을 쌀이 곳간에 쌓여 있다고 해도 결코 안심해서는 안 되는 게 스타트업이다. 곳간에 쌓인 쌀은 언젠가 바닥을 보이게 된다. 투자가 이루어지면 자연스레 식솔이 늘어난다. 직원들이 증가하면서 고정비와 운영비도 함께 증가하다 보니 통장 잔고가 생각보다 빨리 줄게 된다. 의외로 추가적인 자금 투입 시기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다. 방심하고 있다가 쌀이 다 떨어져 갈 때가 되어서야 허둥지둥 쌀을 구하러 다니다 보면 일은 일대로 진행이 안 되고, 결국 굶는 상황까지 벌어질 수 있게 된다. 

기업의 생존을 위한 자금 확보 노력은, 사업을 진행하면서도 항상 촉수를 예민하게 세워 두고 병행해야 하는 것이다. 이미 투자 받은 총금액의 반 정도가 사라지는 무렵부터 후속 자금을 유치하는 준비를 해야 한다. 쌀독에 쌀이 반 정도 남았을 무렵 쌀을 구해 두어야 마음이 안정되듯이.

 

 

 

 

 우리는 지원금을 토대로 기술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에 매진하는 동시에, 다음 단계의 지원금을 유치할 수 있는 정부 과제를 쉼 없이 찾아 나갔다. 그때 우리에게 포착된 것이 바로 중소벤처기업부의 ‘투자 멘토링 연계 과제’였다. 그 당시 투자 멘토링 연계 과제는 엔젤투자나 벤처투자를 5,000만 원 이상 유치한 업체들만 이 지원할 수 있는 과제였다. 엔젤투자업체나 VC로부터 투자를 받은 업체들의 수는 한정적이기 때문에, 다른 일반 과제(투자와 상관없이 모두 지원이 가능한 과제)보다는 경쟁률이 낮아 선정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그 결과 우리는 투자 멘토링 연계 과제 자유 공모에 선정되어 2억 2,000만 원을 지원받을 수 있었고, 이는 모든 스타트업이 설립 1~2년 차에 겪게 되는 자금 절벽을 피해 갈 수 있었던 귀한 원동력이 됐다. 산술적으로 보면 엔젤투자 5,000만 원에 정부 과제 2억 2,000만 원을 추가로 받게 되었으니 총 2억 7,000만 원이라는 자금 집행이 가능해진 것이었다.

 


 

필자가 경험한 창업 초기의 자금 확보와 투자 유치 과정을 다시 한번 정리해 보자.    

 

법인을 내기 전, 정부 과제 정보부터 파악 -> 정부 과제 선정으로 3억 3,000만 원 지원금 확보 -> 초기 자금 리스크 해제 -> (정부 과제 선정 업체라는 신뢰를 바탕으로) 엔젤투자 5,000만 원 유치 -> (기술 완성도를 높이는 동시에) 엔젤 투자 유치 자격으로 투자 연계형 과제 2억 2,000만 원 수주   

 

즉 창업을 하기 전 치밀한 준비로 정부 과제에 선정되어 자금 지원을 받고 이에 대한 신뢰를 토대로 엔젤투자가 이뤄졌고, 이것이 다시 엔젤투자나 벤처투자를 받은 업체들만이 제한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투자 연계형 과제에 지원하게 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어쩌면 투자 연계형 과제는 일반 과제보다는 투자를 받은 기업들 대상이라는 한정된 조건이라서 그만큼 경쟁률도 타 과제 대비 낮다는 매력이 있었다. 이와 더불어, 사무실 무상 제공과 전문 멘토링 등을 지원받을 수 있는 정부제도와 민간 보육 프로그램에도 병행 지원, 선발되었던 것도 이후 성장의 큰 디딤돌이 되었다(스타트업 성장의 발판이 되는 민간 보육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이후 챕터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겠다).

 

 

 

 

 결국 투자도 스케일업이 핵심이다. 한 번 win케이스가 나오면 계속해서 다음 과제를 연결하고 연결해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투자 유치의 사다리를 타기 시작하면, 자금의 허덕임 없이 기술력을 높이면서 계속 성장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 회사는 핵심 기술을 통해 6건의 정부 과제를 수주했다. 이제 창업 5년 차이니, 매년 1건씩 크고 작은 과제를 따온 셈이다. 이렇게 투자가 스케일업 되려면 첫 단추를 잘 끼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스타트업을 준비하고 있는 중년의 예비 창업자라면 부디 첫 단추만큼은 정부 과제로 꿰길 바란다. 조금 힘들더라도 법인 설립에 앞서, 치밀한 정보 확인과 준비를 통해 자금 부담의 리스크를 해제하는 것이야말로 성장을 일굴 수 있는 기반임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지난 연말 모 액셀러레이팅 업체가 주관한 조기 창업자 및 예비 창업자 대상 투자유치 강의 행사에 필자가 ‘선배 창업자가 들려주는 투자 노하우’라는 주제로 강의 요청을 받았었다. 그날 30명 남짓 창업자들이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나의 투자 유치 경험에 귀 기울이며 메모하고 집중하였다. 내가 그날 그들에게 강조한 이야기는 간결했다. “여러분은 내가 했던 것처럼 초기 자금 확보를 위한 고민을 하시라. 당장 엔젤투자자나 VC를 만나기보다는 정부 과제지원제도를 공부하시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효율적이다”라고 수차례 강조를 하였다.  

 매년 초 정부 부처별로 짜인 예산에 따라 창업 관련 정부 과제 설명회(1월 중순)와 공지가 이어진다. 정부 부처나 기업 입장에서는 한 해 계획을 입안하는 중요한 단계이기도 하다. 창업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박재승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