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래 전의 일이다. 창업을 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로, 브랜드는 뭘로 정할까, 그리고 마케팅을 할까를 내내 고민하다 우연히 지하철역 앞 두 친구의 대화를 듣게 됐는데, 한 친구가 툭 던진 한마디가 갑자기 귀에 꽂혔다.

 

오늘 TGI 갈까?

 

혹시 모르시는 분들도 있을까 약간 부연을 하자면, TGI는 한때 핫했던 패밀리 레스토랑 브랜드다 (물론 지금도 있긴 하지만..) 정확한 명칭은 ‘TGI Fridays’지만 보통 TGI라 불렸다.

 

 

 

 

어찌 보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일상 대화인데, 당시 나에게 꽤 충격이었다. 오늘 뭐할까라는 질문에 ‘TGI’라는 브랜드로 대답을 할 수 있다니… 오늘은 시저 샐러드를 먹고 싶다거나, 뉴욕 스트립이 땡긴다는 얘기가 아니다. 지하철역과 가깝다거나 넓은 주차장이 있는가에 대한 내용도 아니다. 그 친구들의 머릿속에는 TGI라는 브랜드가 상징하는 어떤 공통된 경험이 있었던 거다.  

과연 나는 저 친구들의 마음속에 그렇게 자리 잡는 브랜드를 만들 수 있을까? 브랜드 네이밍 공부를 하며, 브랜드 아키텍처 같은 걸 공부하고 있던 나는, 저 한마디에 그간 너무 기능적인 부분에만 집착하고 있지 않았나 의문에 빠졌다..

 

 


 

 

소비자가 공감하는 스토리를 찾아서

 

TGI는 특수한 경우일 수도 있다. 일단 오프라인 상의 공간이 있다. 위의 대화를 나눴던 두 친구는 이미 TGI나 다른 패밀리 레스토랑을 가본 적이 있었을 거다. 만약 직접 가보지 않았더라도 다른 친구에게 들었거나, TV 프로그램 등에서 소개되는 걸 봤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 최신 케이스에서 찾아보자. 아마도 ‘당근이세요?‘가 맞지 않을까? 현재 대한민국에서 중고거래는 하나의 거대한 문화다. 이젠 쿨거래, 굿거래, 무배 같은 용어들이 보편화되고, ‘일의 기쁨과 슬픔‘ (장류진) 같은 소설은 판교의 중고거래 스타트업을 배경으로 그려진다. 아파트 현관에서 무언가 들고 서성이는 분을 만난다면 대체로 당근으로 봐도 무방하다. 

 

 

서로 편하게 알아볼 수 있는 당근마켓 장바구니 (출처. 당근마켓)

 

 

소비자들은 이제 거래를 위해 만나는 자리에서 누구인지 묻지 않는다. 당근이세요? 한마디나 그것도 귀찮다면 편의점 택배로 보내 주거나, 당근마켓 장바구니를 들고 가면 끝이다. 딱히 서로 대화를 나눌 필요도 없다. 그들은 이미 같은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이므로.. 

당근마켓처럼 전 국민들이 애용하는 서비스들 상당수는 이미 네이버 카페 등에서 많은 회원을 보유하고 있었다. ‘당근’ 전에 ‘중고나라’가, ‘직방’이나 ‘다방’ 이전에 ‘피터팬의 좋은방 구하기’가 있었으며, ‘오늘의 집’ 이전에 ‘레몬테라스’가 있었다. 서비스 이전에 트렌드와 문화가 있었다는 이다. 

‘TGI’나 ‘당근’ 같은 매직 키워드를 만들고 싶다면, 마케터는 이젠 프라임 타임에 TV 광고를 할 게 아니라 소비자들의 트렌드를 읽고 그들의 대화(이젠 지하철 역 앞이 아닌,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안에서 이야기한다) 속에 우리 브랜드(또는 제품) 이야기가 끼어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제 마케터는 작가들이 소재를 찾아 타인의 일상을 훔쳐(?) 보듯, 소비자들이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이제 마케터 해 먹기도 너무 어려워졌다고 속상해 하지 말자~! 다행스러운 일은 요즘 소비자들은 내가 누구인지, 어떤 브랜드를 소비하는지 널리 알리고 싶어 한다. 아주 공개적으로…

 

 

내가 쓰는 모든 제품은 ‘나’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출처. 카카오 메이커스)

 

 


 

 

듣고 싶은 이야기 vs. 하고 싶은 이야기

 

하지만 여전히 우린 소비자이기에 앞서 마케터다. 더 큰 문제는 회사에는 마케터가 아닌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점이다. 그들은 소비자 이야기를 듣기보다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우리가 함께 만든 제품이 뭐가 새로워졌는지를… (소비자는 아무 관심이 없지만..)

이런 제조사의 함정에서 벗어날 방법은 무엇일까? 성공한 스토리의 조건은 무엇일까?

 

 

✔︎ 1. 스토리가 스스로 확산하는가? (aka. 어그로) 

 

2020년에 론칭한 ‘KCC 창호‘의 ‘무한광고 유니버스에 갇힌 성동일’이라는 광고를 떠올려 보자. 이 광고는 현재 조회수가 거의 천만뷰에 육박하고 대부분의 댓글이 극찬이다. 유튜브 프리미엄을 쓰지만 일부러 이 광고를 찾아봤다는 의견도 많다.

 

 

 

 

소비자가 스스로 광고를 찾아본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추천까지 할 정도의 관심을 끌어냈다는 점에서 훌륭한 스토리다. 제품에 대한 설명충으로 빠지지 않고, 소비자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과거의 성공한 광고들)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도 뛰어나다. 

결과적으로 상도 많이 받았고 KCC 창호의 인지도, 호감도를 끌어올렸다는 점에선 분명 성공적이다. 이런 광고를 만든 마케터나 대행사 입장에서도 뿌듯할 것이다. 

예전에 썼던 글에선 아래와 같이 표현한 적이 있다.

 

 

어그로만 끌어서는 성공할 수 없지만, 관심 못 끈 마케팅은 죄악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언젠가 꼭 KCC 창호를 써야지! 라거나 우리 집 창호가 KCC라며 인스타에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지는 잘 모르겠다.(궁금하다면 직접 #KCC창호를 검색해보자.) 

다만 오해하진 말자. 절대 이 광고가 실패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콘텐츠의 재미로 관심을 끌었다는 점에서 비슷한 콘셉트인 그랑사가의 ‘연극의 왕’ 같은 경우 게임 사전 등록 500만 돌파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결국 콘텐츠 제작 시에 제품이나 브랜드의 특징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 2. 브랜드 경험을 유도할 수 있는가? (#사는 재미) 

 

결국 판매로 이어질 수 있느냐의 문제인데, 이는 그냥 관심을 끄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요소다. 이를 위해서는 소비자가 ‘듣고 싶은 이야기 보다 ,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아야 한다. 

소비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 스토리가 트렌드를 자극해 제품의 구매와 경험을 유도한다. ‘짜파구리’는 ‘기생충’이나 ‘아빠 어디가’를 보지 않았어도 소비자들이 직접 먹어보고 또 자신의 SNS에 인증해서 올리고 싶어 했다. (농심이 의도한 마케팅은 아니었지만)

또 다른 예로, LG전자에서 나온 ‘스탠바이미’를 보자. 이 제품이 화질이나 화면 크기 같은 기존에 중시하던 기능 때문에 성공했을까? 이 제품이 대박이라고 소문난 이유는 광고 때문이었을까? (LG전자의 마케팅팀의 광고 전략에 대해서는 여기서 언급하진 않겠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면, 소비자는 ‘짜파구리’나 ‘스탠바이미’를 나의 SNS에 중계하기 위해서 구매한다. 한마디로 ‘사는(buying)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소비자에게 ‘사는 재미’를 주려면 제품에 어떤 코드가 담겨 있어야 한다. 아마도, 내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나의 모습이 아닐까? 

 

스타벅스를 엄청 좋아하진 않아도 굿즈는 득템한 사람이다. 밀맥주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곰표맥주는 먹어본 사람이며, 기부는 하지 않지만 지구 환경을 생각해서 줍깅에 참여한다. 치킨값 1~2천 원 인상에 분노하지만 돈쭐에 참여하기 위해 먹지도 않을 치킨 몇만 원어치쯤 살 수 있는 사람이다.  

 

 

스타벅스 굿즈. 사진. 스타벅스

 

 

지금 우리의 제품은, 그리고 우리의 스토리는 고객에게 어떤 재미를 주고 있을까? 나 또는 우리 회사는 여전히 ‘좋은 제품 신드롬'(제품만 좋으면 팔린다는 믿음)에 빠져 있진 않을까? 

 

 


 

 

브랜드 용어에서, 브랜드 아이덴티티브랜드 이미지가 구분된다. 전자는 기업이 가지고 있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의미하고, 후자는 그 브랜드에 대해 갖고 있는 소비자들의 인식이다. 둘은 비슷할 수도 있지만, 큰 차이가 날 수도 있다. 전통적인 광고 커뮤니케이션은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중심으로 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소비자의 생각에 기반한 스토리를 만들지 않는다면 먹히지 않는다. 

누군가는 파타고니아 같은 경우를 예를 들며 의문을 제시할 수 있다. 환경에 대한 자신들의 신념을 고집한 것처럼 보이지만.. 마침 소비자들이 환경을 중요시하게 된 흐름과 결합된 것으로 봐야 한다. 파타고니아가 그런 소비자들 심리를 읽고 이용한 것이 아닐지라도.. 

기술과의 결합으로 예전부터 있던 보편적인 심리가 새삼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이 줄 서 있는 식당에 몰리는 심리는, 이 페이지를 보고 있는 사람에 대한 카운팅으로 적용해 히트를 했다. 곧 마감이라고 하면 급하게 사 놓고 왠지 득템한 것 같은 심리 역시 프로모션 페이지에 카운트다운을 넣으면서 판매를 극대화했다. 

오늘의 마케터는, 소비자의 어떤 심리에 기대 말을 걸어야 할까? 

 

P.S. 다음 글에선 스토리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 지에 대해 좀 더 알아보려 한다. 

 

 

Ryan Choi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