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IT 업종의 사람들이 커리어의 발전에 있어서 무엇을 기준으로 방향을 정하는가에 대한 이론이 있다. 바로 “킹 받음” 이론이다. 쉽게 말해보자면,

 

기획자는 개발자와 일하다가 킹 받아서 개발을 공부한다 (개발자님, 이게 왜 안돼? 되게 만들어)

개발자는 기획자와 일하다가 킹 받아서 기획을 공부한다 (이거를 왜 이렇게 해? 다시 해와)

 



데이터 분석가는?



데이터 분석가는 기획자와 개발자 둘 모두와 일하다가 킹 받아서 개발 & 기획 둘 모두 공부한다 (아니… 데이터를 줘! 분석의 방향을 줘! 왜 둘 다 없어!)

 



위의 말은 내 주변에서 보고들은, 그리고 직접 경험한 실화이다. 위의 세 가지 킹 받음 중에 마지막, 즉 왜 데이터 분석가가 일을 하다가 킹 받아서 기획과 개발을 공부하게 되는지 (혹은 해야만 하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일단, 왜 데이터 분석가가 왜 기획에 대해 공부하는지 알아보자



데이터 분석가가 되고 나서 처음 맞닥뜨리는 장벽은 “도대체 무엇을 분석해야 하는가?”이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바로 따라오는 것이 “왜 분석을 해도 의미 없는가?”이고, 그다음으로 오는 것이 “데이터 분석가는 무엇인가?”라는 자아성찰이다.

 


질문 1 : 도대체 무엇을 분석해야 하는가?

 

첫 번째 질문은 데이터 분석가가 서비스가 어떤 전략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이런 것들을 고려할 때 지금 무엇이 중요한가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생긴다. 만약에 데이터 분석가가 지금 서비스 개발에서 우선순위가 무엇이고, 그 우선순위가 어떤 전략을 반영하고, 그래서 지금 무엇에 관해 분석해야 최고의 의사결정 어시스트(의사결정이 아니다. 그런 권한은 우리에게 없다)를 할 수 있는지 이해한다면 위와 같은 질문은 금방 해결된다. 그런데 이 논리에 구멍이 하나 있다. 바로 누가 이런 기획 비스무리한 고맥락적 정보와 지식을 데이터 분석가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것인가?

일단 데이터 분석가는 일종의 전문직?으로 취급되지만 동시에 굉장히 애매한 포지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획자들 사이에 끼기도 어렵다. 베스트는 시니어 기획자가 서비스의 전략과 그에 따른 전반적 팀 및 테스크 구조를 이해시켜주고 공유해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있다면 축복받은 것이다.

그러면 시니어 데이터 분석가가 이런 고맥락적 정보를 지금 막 들어온 분석가에게 전달해줄까? 이럴 가능성이 굉장히 희박한데,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1) 실력 있는 시니어 데이터 분석가는 매우 매우 매우 매우 매우 매우 희소하다. (신입으로 오는 사람도 없고, 포지션도 없고, 남아있는 사람도 없고. 키야~). 

(2) 서비스 전략과 우선순위를 데이터 분석가 입맛에 맞게 연구하고 이해하려는 데이터 분석가가 없다. (나는 인공지능과 머신러닝을 하려고 왔다! 그래! 굉장한 포부구나!)



요약해보자면 데이터 분석가가 회사에 입사하면 첫째로 할 것도 서비스 이해고, 둘째로 할 것도 서비스 이해이다. 그런데 이를 공유해줄 사람도 없고, 그것을 해보려고 하는 분석가도 많이 없다. 이 얼마나 지독한 상황인가. 내가 이 답을 진정으로 몸으로 느끼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시행착오가 있었는가.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뭐 이런 이유들로 아무도 데이터 분석가에게 무엇을 분석해야 하는지 사고적 프레임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래서 분석가는 하다 하다 킹이 받아서 “이러느니 내가 기획 공부해서 무엇을 분석해야 할지 알아서 찾아보겠다”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기획을 공부하기 시작한다.

 

 


질문 2 : 왜 분석을 해도 의미 없는가



매우 매우 매우 높은 확률로 당신의 회사는 “데이터 드리븐 의사결정!”을 외치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 됐고, 빨리 기능 출시하자”인 상태일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첫 번째 질문인 “무엇을 분석할 것인가”를 해결해서 매우 대단하고, 가치 있고, 임팩트 있는 분석을 했더라도 그 분석 결과들이 한 귀로 들어가서 다른 귀로 나올 확률이 높다. 여기에 따라오는 알파 플러스가 기획자들이 데이터, 데이터하고 다니지만 실제로는 데이터를 남기는 데 쥐꼬리 만큼의 신경도 쓰지 않을(못할) 확률이 높다. 즉, 무엇을 분석해야 하는지 알아도 분석할 데이터가 없거나 분석을 해도 의미 없이 사라질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누가 액션을 취해야 하는가?

결국 문제를 정의하고, 솔루션을 실현시키고, 테스트하는 것은 기획자이다. 그리고 기획자(PO, PM 무엇이라 부르든 상관없이)는 이러한 일련의 단계를 현실화시키는 프로세스를 일임받는다. 즉, 위의 프로세스에서 데이터 드리븐 의사결정을 푸시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기획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개발을 할 때 데이터를 남기도록 결정하는 것도 기획자이고.

문제는 많은 회사들에서(네카라쿠배는 다를 수 있지만) 기획자들이 데이터에 관해 깊게 사고 해볼 기회가 많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것을 알려줄 사수들 또한 많이 없다. 그래서 데이터 분석가는 자신의 분석 결과물이 마치 소금이 물에 녹듯이 사라지는 것을 보며 킹 받아한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best case 기획 프로세스를 배워서 그냥 캐리 해야겠다. 내가 그냥 이끌고 가는 게 더 빠르겠어”. 그래서 세금공제 안 되는 기획 강의를 들으러 간다.

 

 

 



질문 3 : 데이터 분석가는 무엇인가?



물론, 위의 모든 방법들이 통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왜냐하면 어떤 회사의 프로세스를 (그것도 메이저한) 바꾼다는 것은 정말로 몇 년이 걸린다. 몇 년이 걸려서 성공이라도 한다면 다행이지만 이와 같은 시도 또한 임원진의 막강한 푸시가 있어야만 실행이 될 수 있다. 즉, 위의 질문들에 답하느라 시간을 쏟느니 스타트업에 들어가거나(처음부터 내가 만들기) 아니면 이미 프로세스가 잘 갖추어진 곳에 가는 것이 훨씬 더 쉽다. 왜 당신의 인생을 될성 부르지 않은 회사에 낭비하는가?

그래서 이런 과정들을 거치면 대부분의 데이터 분석가들은 다음과 같은 자아성찰 질문을 하게 된다.

 

“데이터 분석가는 도대체 뭐하는 사람인가?(내가 데이터 분석가인데도 모르겠다!)”. 



왜 내가 기획자도 아닌데 기획자에게 업무 프로세스에 대해 훈수를 두어야 하고 (굉장히 싫어한다), 왜 내가 서비스 전략이 무엇인지 찾아 나아가야 하고 (임원진들이 알려주지를 않는다. 없거나), 왜 내가 기획서 비스무리한 전략서를 제출해야 하는가? (의사 결정권도 없고, 들어주지도 않을 거면서!). 

참고로 이 질문은 나도 완벽히 해결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데이터 분석가는 데이터 사용의 과도기에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100% 정답도 아닌 듯하다.

재미있는 것이 위의 1~3번 질문들을 차례대로 해결해 나아가다 보면, “내가 기획해도 훨씬 더 잘하겠는데?”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오만한 생각이다. 어떻게 수많은 시간을 기획과 서비스 전략에 투자한 기획자보다 기획을 더 잘하고, 전략을 더 잘 짜겠는가. 문제는, 데이터를 잘 아는 기획자가 없다는 것이다. 나도 데이터 잘 아는 슈퍼 기획자 만나서 



업무 퍼포먼스도 높이고! 어! 

월급도 높이고! 어!

커리어도 기깔나게 쌓고 싶다!



결론적으로, 대부분의 데이터 분석가는 자신이 무엇을 분석해야 하는지, 왜 결과물이 안 나오는지, 그리고 자신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여정을 겪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획적으로 킹 받는 부분들이 생기고, 이는 데이터 분석가가 기획에 대해 겉핥기라도 배우려고 노력하게 되는 동기를 부여한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기획을 공부해야만 훌륭한 데이터 분석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여름비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