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플랫폼’처럼 흔한 단어도 없지만, 원래 단어란 게 많이 쓰일수록 뜻은 더 모호해지는 느낌입니다 (사랑, 행복, 인간..?!) 개인적으로는 플랫폼에 대해 가장 명쾌한 정의를 내려줬다고 생각되는 책은 ‘플랫폼 레볼루션‘이었습니다. 여전히 플랫폼에 대해서는 거의 바이블로 남아 있는 책이 아닐까 싶어요.

이 책에서 ‘플랫폼’에 대한 설명한 내용에서 주목할 부분은 바로 양면 시장 입니다..

 

우버의 사례는 양면 시장과 관련이 있다. 즉 탑승객이 운전자를 끌어들이고, 운전자는 탑승객을 끌어들인다. 이와 유사한 관계는 다른 플랫폼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구글의 안드로이드 앱 개발자들은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고, 소비자들은 앱 개발자들을 끌어들인다.

– 플랫폼 레볼루션

 

우리가 흔히 에코 시스템이라고도 부르는 것이죠. 이 설명은 거대 기업들이 왜 플랫폼 기업 앞에 속수무책인가에 대한 대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부분을 좀 더 알고 싶은 분은 ‘디커플링‘이란 책을 권해 드립니다). 우버는 자동차가 없고, 페이스북은 콘텐츠를 생산하지 않으며, 에어비앤비는 호텔을 갖고 있지 않지만 그 재고 없다는 점이 오히려 강력한 경쟁력으로 작용하죠.

그렇다면 의문이 드는 부분은, 플랫폼은 스타트업이나 유통사의 전유물일까요? 플랫폼을 갖추고 있느냐가 향후 경쟁의 척도가 될 텐데.. 그럼 기존의 기업들도 모두 생선 설비와 재고를 정리하고, 차고(우리나라 집들은 보통 차고도 없는데)로 들어가 제2의 창업을 선언하고, 앱 개발에 뛰어들어야 하는 걸까요?

 

 


 

 

제조기업도 플랫폼이 될 수 있나?   

 

전 세계에서 가장 시장 가치가 높은 기업은 ‘애플’입니다. 그 ‘애플’은 제조 회사일까요? 아니면 플랫폼일까요? 둘 다라가 맞을 듯 하지만, 제가 보기엔 후자에 더 가까울 것 같아요. 물론 아래에서 보이듯 매출에선 ‘아이폰’이 압도적이죠. 하지만 앱스토어 없는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를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Apple의 매출 구조 (Source : Visual Capitalist)

 

 

애플은 아이팟 시절부터 제품 ‘플랫폼 결합시키는 전략으로 소비자와 강력한 유대를 만들어냈습니다. MP3 플레이어의 후발주자였던 아이팟은 거대 음반사들을 아이튠즈로 끌어들이면서 단숨에 게임의 판도를 바꿨고, 최초의 아이폰도 처음엔 순정 앱만 받을 수 있었지만 이후 서드파티* 개발자들에게 앱스토어를 개방하면서 기존의 피쳐폰 시장을 무너뜨렸습니다.

* 서드파티(Third Party) : 제조사와 소비자 이외 외부의 생산자.

 

삼성의 경우 애플과 스마트폰 시장에서 1위 경쟁을 하고 있지만, 주가나 브랜드 가치 면에선 5배 이상 차이가 납니다 (매출은 1.5배 차이). 결국 플랫폼, 그리고 그것을 통한 강력한 고객 락인(Lock-In)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다른 경우를 생각해 보죠. 몇 년 전 ‘나이키’가 ‘탈 아마존’을 선언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제조사가 감히(?) 플랫폼과 헤어지자고 선언한 거죠. 나이키가 이런 과감한 행보를 보일 수 있었던 건 강력한 팬덤으로 형성된 멤버십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운동하려는 의지의 상징이 된 나이키 Run Club (ⓒ앱스토어)

 

 

애플은 앞서 언급한 ‘양면시장’을 충실히 따랐지만, 나이키는 좀 다릅니다. 나이키 매장에서 다른 회사의 스포츠 용품이나 콘텐츠를 팔진 않잖아요? 나이키가 흡수한 것은 이런 ‘서드파티’가 아닌 소비자 커뮤니티입니다.

 

 


 

 

플랫폼은 브랜드 유니버스입니다.

 

일반적으로 ‘플랫폼’이라고 하면. 웹 또는 앱으로 만든 서비스를 떠올리기 쉽습니다. 한때 각 브랜드마다 다양한 앱을 개발해서 출시할 때도 있었죠. 하지만 그게 만만치 않은 일이란 걸 깨닫고 곧 시들해졌습니다. 플랫폼은 만드는 일도 어렵지만, 소비자들이 쓰게 만들긴 더더욱 어렵거든요. (평점 테러 먹지 않으면 다행)

 

 

❖ 트레바리의 경우

 

트레바리‘라는 독서 커뮤니티가 있습니다. 참여해본 분은 아시겠지만, 진지하게 책에 대한 토론(대략 3시간)을 할 수 있고, 서로 잘 모르는 사이지만 ‘번개’를 통해 다양한 활동들을 함께 할 수 있는 곳이죠.

처음엔 독서모임이 돈이 되냐는 말도 있었지만, 사람들이 굳이 돈을 내고 참여하는 이유는 평소에 하기 어려운 일들이 가능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혼자라면 읽지 않았을 책을 읽고, 평소라면 오글거려서 하지 못할 진지한 대화를 나눕니다. 서로 그렇게 하기로 약속을 한 거니까요..

그런 약속이 하나의 ‘세계관'(이 글에선 ‘유니버스’와 혼용해서 쓰겠습니다)을 만듭니다. 처음 보는 사람과 모여 앉아 3시간 이상 책에 대한 이야기할 수 있게 만드는 게 세계관입니다. 하지만 트레바리도 결국 웹이나 앱으로 만들어진 플랫폼 아니냐고 물으실 수 있지만, 이 모임의 첫 시작은 페이스북 커뮤니티에서였습니다. 서비스가 아니라 세계관이 먼저입니다. 기술보다 커뮤니티가 먼저고요.

 

 

❖ 브랜드 유니버스 구축이 먼저

 

결국 플랫폼의 성패 여부도 ‘브랜드 유니버스’가 존재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나이키는 ‘액티브한 사람들’이라는 영역을 선점했고, 트레바리는 ‘독서’를, 파타고니아는 ‘환경’을 선점한 거죠. 예전의 ‘브랜딩’과 뭐가 다르냐 할 수 있지만 브랜드 유니버스는 <브랜드-소비자>가 아닌, <소비자-소비자> 간의 교감 또는 교류를 통해 더욱 성장합니다. 브랜드가 만들어 놓은 세계관에 소바자가 와서 노는 겁니다.

앞서 애플과 나이키를 비교했습니다만, 잡스가 애플에 복귀한 뒤 애플의 새로운 캠페인을 소개하는 영상을 보면 나이키로부터 무엇을 배웠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애플의 브랜드 세계관은 아마 ‘Think Different’겠네요. 난 남들과 달라! 하는 분들이 애플을 씁니다.

그렇다고 브랜드 유니버스가 꼭 심오한 가치를 지닐 필요는 없습니다. 요즘 핫한 ‘곰표’나 ‘빙그레’ ‘시몬스’ ‘모나미’의 경우를 보세요. 중요한 것은 소비자가 그것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느냐와 얼마나 많이 확산되느냐입니다.

 

 


 

 

결국 플랫폼이란 건 ‘형식’일 뿐입니다. 요새 많은 분들이 얘기하는 메타버스니, NFT니 하는 것들도 다 ‘형식’이죠. 광고 회사에 있으면서 정말 많은 광고주들이 요즘 어느 플랫폼(유튜브? 인스타? 틱톡?)이 핫한지를 묻고, 또 새로운 곳으로 계속 이사(또는 확장?)를 다니는 걸 목격해 왔는데요. 그때는 말씀 못 드렸지만(저희도 먹고살아야죠..) 플랫폼의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내용이죠.

세계관이 먼저고, 플랫폼은 그다음이지, 반대인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당근마켓이나, 직방 같은 플랫폼도 이미 존재하는 세계관을 차용해서 성공한 케이스죠. ‘중고나라’나 ‘피터팬의 좋은 방 구하기’ 같은 곳이 먼저 있었으니까요. 에어비앤비 이전에 크레이그리스트가 있었던 것처럼..

결국 플랫폼 어떤 ‘세계관 ‘고객 가치 만나서 탄생하는 것이라 봐야 합니다. 우리 브랜드가 플랫폼이 되기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질문은, 우리가 고객을 모을 수 있는(또는 이미 모여 있는) 세계관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세계관 속에서 우리는 어떤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프로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