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제약 없이 북미 모든 장소에 책을 파는 온라인 서점을 떠올린 베조스는 아마존을 창업하게 되었다. 마음에 쏙 드는 아마존이라는 이름을 짓기까지, 아니 그전에 온라인 서점의 사업적 당위성을 증명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을 했을까?

도서 시장을 분석하고, 투자가 필요한 부분들을 점검하며, 적어도 1년치의 재무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사업을 어떻게 확장해 나갈지 작은 목표들을 세웠을 것이다. 당장 입점이 가능한 출판사들을 찾았을 것이고 계약서 작성 등 행정적인 부분을 고민했을 것이다. 쇼핑몰을 구축하기 위해 필요한 인력을 수소문해서 인건비를 지불하고 쇼핑몰을 구축했을 것이다.

단순히 생각해보면 위 과정에서 서비스 기획자 역할은 쇼핑몰 구축을 위한 기획 정도밖에 없다. 사업을 시작하며, 해야 할 일을 굉장히 압축해서 정리했을 뿐인데도 서비스 기획자가 하는 역할이라곤 마지막의 달랑 한 줄에 불과하니 굉장히 처량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서비스 기획자가 달랑 한 줄짜리의 역할을 한다면, 그 서비스는 안 만드니만 못한 서비스가 되고 만다. 외주 개발의 난제이기도 하다. 사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이다. 비즈니스를 이해하고 서비스 기획을 해야 한다고, 누구나 쉽게 이야기하지만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일개 서비스 기획자가 어떻게 비즈니스를 이해해야 할 수 있을까? 당연한 방법은 사업 기획을 해보는 것이다. 다 할 필요는 없다. 그 시작은 시장조사 정도면 된다. 단, 순수한 “자원”의 흐름만으로 시장을 이해해보려 노력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전자상거래 시장에 대한 규모를 조사한다면 전체 시장규모를 조사하고, 형태별(플랫폼, 버티컬 등) 규모를 다시 분류하고, 카테고리(유관 카테고리 중심)별 사업규모를 다시 분류해 나간다. 여기에 시계열을 추가해본다. 작년엔 얼마였고, 올해는 얼마며 연간 몇 퍼센트 성장했는지를 기억하는 것이다.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서비스가 속한 시장은 연간 20조 규모고 5년간 CAGR 10% 이상이구나 다른 카테고리나 사업 방식에 비해 성장세가 더디구나”처럼 구체적인 숫자를 각인시켜야 한다.

사업 기획자들은 여기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자원”을 가져올 수 있을지 추정하고 목표치를 잡는다. 그러기 위해 더 깊고, 넓게 시장을 조사한다. 탑플레이어의 재무제표를 뜯어보고, HR, 유통, 운영, 관리 등에 필요한 자금 흐름과 사업 부분별 매출을 다시 뜯고, 우리 회사에 대입했을 때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 파악하고, 언제쯤 BEP를 넘길 수 있을지 객관적으로 분석한다. 시장조사를 통한 “자원”의 흐름과 분배로 사업의 모든 것을 그려야 하는 것이 사업 기획의 영역이라면, 서비스 기획자들은 시장조사에서 어떤 해답을 얻을 수 있을까?

 

 

 

 

첫 번째 해답은 구체적인 그림이다. 앞서 말했듯 “자원”의 흐름을 통해 사업의 당위성을 증명하는 것은 사업 기획자의 역할이다. 서비스 기획자는 시장조사 과정에서 사업이 완성된 모습을 상상해야 한다. 시장조사는 연역적 추론의 시작이다. 시장에 대해 이해하는 과정은 서비스 기획자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배경지식이 된다. 말하자면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 재료를 구비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자원의 흐름을 읽게 된다면, 사업이 완성되어가는 형태를 포켓몬이 진화하는 것처럼 단계별로 상상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자원의 흐름 단계부터는 완벽하게 사업 기획자의 영역이기에 관심을 갖고,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모든 비즈니스는 연속된 다면체의 나열이다. 전자상거래 서비스를 예를 들자면, 고객이 접근해야 하는 서비스가 있고, 관리자들을 위한 어드민 화면이 있고, 공급사를 위한 파트너 화면 같은 것들이 필요하다. 상품개발을 위한 협업 프로세스와 영업을 위한 프로세스도 비슷한 듯 상이하다. 상품을 매입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과 인적자원을 관리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이 다르고 처리하는 방식도 다르다. 이를 하나의 다면체로 본다면, 그 옆에는 사업기획자가 각 파트별 “자원”의 흐름을 새겨둔 또 다른 다면체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앞으로 이들이 성장해나가야 할 모습이 단계별로 그려지게 된다.

서비스 기획자는 앞서 말한 첫 번째 다면체를 그려낼 능력이 있다. 자원이 새겨진 사업기획자의 다면체를 이해하고 있다면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 첫 번째 다면체를 그려내는 것은 비현실적인 행위다. 적어도 2개의 다면체를 알고 있다면 연속된 또 다른 다면체는 좀 더 쉽게 그려볼 수 있다. 비즈니스의 큰 그림이 서비스 기획자의 영역에 들어오게 되는 순간이다.

 

 

 

 

두 번째, 우리의 비즈니스의 새로운 면모를 볼 수 있게 된다. 이 부분에서는 새롭게 그려진 다면체를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고 싶다.

베조스는 처음에는 단순히 온라인 서점을 만들 생각이었을 것이다. 왜 그랬을까? 오프라인 서점 시장은 굉장히 안정된 시장이다. 규모가 거대한 만큼 성장률이 매우 낮다. 금융 전문가인 베조스의 눈에는 이것이 매우 큰 기회로 보였을 것이다. 오프라인 서점 시장의 몸집은 매우 커서 온라인으로 옮겨오기는 쉽지 않겠지만, 성공만 한다면 거대한 또 하나의 시장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베조스가 창업을 하던 시기의 온라인 커머스는 경쟁자가 적은 원시 시장 단계였기에 황금빛 미래를 전망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베조스는 언제부터 도서 외의 카테고리를 취급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언제부터 거대한 서버 호스팅 회사를 만드려고 했을까? 도서 외의 카테고리는 창업할 때부터 염두하였을 것이다. 자원을 설계할 수 있는 사업기획 역량을 가진 베조스는 오프라인 서점들이 출판사 말고도 다양한 문구, 생활용품을 취급한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고 출판사와 그 외 상품군 유통사들의 “자원”흐름 간 시너지를 분석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당시의 서비스 기획자가 베조스의 비즈니스를 이해했다면 애초에 서적의 카테고리를 시작으로 추가 상품군의 카테고리까지 확장할 수 있는 서비스 기획을 했을 것이다.

아마도 베조스는 비즈니스를 운영하며 서비스 기획의 다면체를 이해하고, 새로운 다면체를 상상했을 것이다. “우리의 비즈니스는 언제쯤 한계에 도달할까?” 경쟁이 심화되며 플랫폼 특성상 독점을 해야 마진이 날 수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을 것이다. 상상 이상으로 서버 유지보수에 소요되는 자원이 크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나아가서는 방문자가 많을수록 서버 유지보수 효율이 좋아지지만, 리스크가 그 이상으로 커진 다는 것 결론에 도달했으리라. 이때쯤 베조스는 호스팅 사업을 고민하지 않았을까?

새로운 다면체가 생겨나는 순간이다. 사업 기획자의 영역일 수도, 서비스 기획자의 영역일 수 있지만 이들 다면체는 무한히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다면체를 생성해낸다. 그렇다면 그 다면체의 시작은 뭐다?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며 다시 그 시작은 “시장 조사”다. 서비스 기획자는 반드시 이 흐름을 쫓아가야 한다. 그 모습은 선두 지휘하기보단 후위로써 사업을 굳건하게 뒷받침하는 형태가 된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사업 기획자의 안목과 서비스 기획자의 안목은 다르다. 사업 기획자의 분석은 “자원”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해답”을 구하는 식을 풀어쓰는 형태가 된다. 여기에 서비스가 성장하는 단계별 모습은 그려지지 않는다. 이는 서비스 기획자의 영역이다. 사업 기획자가 그린 공식에 괄호를 쳐서 순서를 배분하는 것이다.

거창하게 길어진 글이지만 결론은 딱 한 줄이다. 서비스 기획을 제대로 하려면 집요하게 비즈니스부터 이해해야 한다는 것.

 

 

beyes 님의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