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비건) 상품이 걸어야 하는 길

 

한 때 미국의 유명 슈퍼마켓 체인 ‘트레이더 조’에서 냉동 비건 김밥이 크게 인기를 끌었다. 미국의 비건 시장에 한 획을 그은 비건 김밥은 한국의 매체에서도 여러 번 다뤄졌으니 뉴스를 새로운 상품을 눈 여겨 보시던 분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으리라 생각된다. 미국에 이웃한 캐나다에도 ‘비건 김밥’이 등장했다.

 

물론 캐나다, 특히 ON주의 토론토는 한인이 많은 곳이라, 과장을 조금 보태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일반 김밥’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인에게 익숙한 ‘야채(기본)김밥’이 아니라, 패키지에 정확하게 ‘비건’이라고 표기되는 ‘비건 김밥’이다.

 

 

 

 

캐나다 리테일을 들여다보면 ‘대체 식품’의 종류가 많다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수많은 인종, 국가,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만큼 취향도, 신념도, 알레르기도 다양하기 때문.

 

그 중에서도 채식주의(채식, 대체육류, 대체우유 등의 소비자를 포괄) 소비자는 2022년 기준 300만명에 달한다. ** 이 300만명에는 페스카테리안(pescatarian; 육류 대신 물고기까지 섭취하는 엄격하지 않은 채식주의자)는 포함되지 않았으므로 유연한 채식주의를 실천하는 소비자까지 포함하면 실제 비건 시장은 더 클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니 캐나다와 지리적으로 가까우며, 비슷한 소비문화를 지닌 미국에서 비건 김밥의 인기가 이미 한번 보장된 이상, 미국과 비견될만한 잠재 소비자를 가진 캐나다에서 등장한 ‘비건 김밥’은 확실히 시장가치가 있어 보인다.

 

‘비건’이란 음식에만 한정되지 않고, 비건 화장품, 제품 등 동물원료를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소비 생활을 망라하여 통칭한다. 자연스럽게 채식주의를 실천하고 있는 소비자는 동물 복지, 환경 보호 등 공공의 가치, 이슈와 함께 고려되는 경향이 있다. 단순한 식성이나 알레르기를 가졌다고 생각되기 보다는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소비자로 인식되는 것이다.

 

실제로 채식주의를 실천하고 있거나 비건 제품을 구매하는 ㅡ 넓은 의미의 친환경 제(식)품 소비자들에게는 친환경이 제품 구매에 중요 키워드가 된다. 즉, 친환경 제품들은 이런 소비자들에게 그 자체로 어필대상이 되는 것이다. ‘야채 김밥’이 아닌 ‘비건 김밥’으로 명명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사업자의 입장에서 보면, 친환경 상품을 팔기까지 ‘일반’ 상품 대비 더 많은 노력(특히 생산 비용 등의 측면)이 들어가게 된다. 그러다 보니 친환경 사업뿐 아니라 사회적 기업 등 ‘이타적인 목표를 가진’ 기업들은, 상품 자체의 기능대신 그 상품이 사회나 환경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어필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작은 친환경(사회적) 기업이 할 수 있는 가장 잘못된 판단이다. 비건 제품이고, 실제로 그 제품이 비건이라서 사회, 혹은 지구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이타성이 제품의 본질처럼 보여서는 안된다.

 

 


 

 

미국의 비건 김밥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그 물결의 시작은 ‘환경을 생각하는 비건’소비자였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김밥이 음식의 기본 조건을 채우지 못했다면, 즉 맛이 없었다면 그 유행을 이뤄낼 수 있었을까?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소비자란 개인적인 이득(이기)을 취하지 않는 소비자라는 뜻이 아니다.

 

어떤 소비자도 제품을 선택할 때 오로지 신념에 기반하여, 자신의 취향이나 입맛 등 이기적 선택을 배제하고, 사회나 환경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제품을 구매하지는 않는다. 소비자는 순교자가 아니니까.

 

비건 시장의 모든 카테고리가 독점 시장이었다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비건이 되기 위해서는 샐러드도 없이 단 한 회사의 대체육만 먹어야 하고, 그 회사가 당신의 것이라면 소비자들은 제품의 본질과 상관없이 제품을 구입했을 것이다. 오로지 ‘비건’이기 때문에. 아니, 그 세상에서는 아무도 비건이 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미 비거니즘은 니치시장이 아니다.

 

포지셔닝 측면에서 더 이상 ‘비건이니까 환경을 위한 제품을 만들면 팔리겠지”라는 생각은 썩은 동앗줄이라는 뜻이다. 이제는 비건 브랜드도 브랜딩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브랜딩의 시작은 ‘비건’이어서가 아닌 상품의 본질이 가져오는 이득(benefit)이어야 한다.

 

테슬라(Tesla)는 대표적인 전기자동차를 판매하는 브랜드다. 미래산업이라는 기준에서 실제로 테슬라는 전기자동차의 발전에 많은 기대를 받고 있다. 그리고 전기자동차의 상용화는 실제로 지구의 환경오염을 예방해줄 것이다. 그러나 테슬라는 ‘사회적 가치를 가진 기업’, 혹은 ‘친환경 자동차 브랜드’로 불리지 않는다.

 

테슬라의 전기 자동차를 가지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테슬라’를 원하는가, 혹은 ‘전기 자동차’를 원하는가? 테슬라의 CEO인 엘론 머스크(Elon Musk)는 이슈 메이커이고, 테슬라라는 브랜드로 대체되며, 소비자들은 두꺼운 팬층을 이루고 있다. 사람들은 그의 ‘성공한 이미지’를 타고 싶어한다.

 

소비자들은 희생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다. 소비자는 회사(와 자신의 신념)에 기부를 하고싶은 것이 아니라 제품을 구매하고 싶은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소비자는 이미 너무 많은 브랜드에 끌려 다니고 있다. 그 수많은 경쟁을 뚫고 소비자의 머릿속에 단 하나만의 정보를 포지셔닝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는데, ‘비건’이라는 정보는 내 상품을 소비자에게 설득할 때 쓰일 만큼 가장 가치 있는, 다시 말해 가장 눈에 띄는 정보인가? 절대 명제는 하나다. 사람을 결국 ‘나를 위한’ 선택을 한다는 것.

 


*채식주의에는 다양한 분류가 있으며, 비건은 그 중 가장 엄격한 단계의 채식주의자를 일컫는다. 다만 이 글에서 비건은 식품(혹은 채식주의자) 외에도 비건 상품들을 포함하므로 보다 쉬운 이해를 위하여 이하 분류에 상관없이 채식 식단을 선호하는 소비자를 비건으로 통칭하였다.)

** 출처 : https://www.statista.com/topics/3262/vegan-vegetarian-diets-in-canada/#topicOverview

***이런 비건 시장의 상승세는 비단 북미에서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비건 시장도 계속해서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추세다. 2022년 기준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한국 채식 인구도 200만 명까지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콘텐츠는 마케터Z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