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트러프러너십(entrepreneurship): 기업의 본질인 이윤 추구와 사회적 책임의 수행을 위해 기업가가 마땅히 갖추어야 할 자세나 정신. – 네이버 지식백과 

앙트러프러너십은 ‘기업가정신’을 의미하는 프랑스어+영어다. 내 지식이 부족해서 그런지 이 단어를 듣고 곧바로 떠오른 키워드가 있었다. ‘보그체’.

보그체: 패션산업계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문체, 혹은 그에 대한 디스 목적의 패러디나 단어 선택 등으로 이루어진 문체를 말한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될 이야기에 영어나 프랑스어, 때로는 이탈리아어를 멋으로 집어넣고 수동형 문장으로 바꾼, 허세를 부추기는 무의미한 만연체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보그체만의 특징이다. 패션잡지 보그가 이 문체의 사용을 주도해 온 덕에 보그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일부 극단적인 사람들은 이를 보그병신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기도 한다. – 나무위키 

나무위키의 설명에 따르면 패션산업계에서 이러한 문체를 사용하는 목적에는 ‘자신들이 멋지고 지적으로 보인다는 스노비즘(고상한 체하는 속물 근성), 즉 허세력을 충족시키기 위해서’에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스타트업이란 키워드가 등장한 뒤 ‘로켓’ ‘수평적문화’ ‘스톡옵션’ 같은 단어로 포장되고 있다. 이는 미디어부터 각종 채용 공고에 빠지지 않는 표현이다. 10~15여년 전 벤처붐 때와는 또 다르게 혁신의 이미지로 자리잡은 것이다. 스타트업을 한다고 하면 시대를 선도하는 느낌이랄까.

당신이 탄 것은 로켓인가?
당신이 탄 것은 로켓인가?

물론, 앙트러프러너십이 갖는 의미 자체가 문제라는 건 아니다. 미국만 봐도 entrepreneurship이란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다만, 미국에서 이 단어를 듣고 누구나 ‘기업가정신’을 떠올린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기업가정신이란 직접적인 의미가 있음에도 앙트러프러너십이란 표현을 남용한다. 만약 중국이 세계 최대 스타트업 생태계와 선진 문화를 갖고 있는 나라였다면 치예쟈징션(企业家精神)이라고 표현했을지도 모른다.

“단어 하나 가지고 되게 쩨쩨하게 구네”

맞다. 이런 지적도 가능하다. 앙트러프러너십 같은 표현 몇가지를 놓고 스타트업계 전체를 판단하는 것은 다소 무모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글을 쓰는 이유가 있다. 겉과 속이 다른 행태가 국내 스타트업계 이곳저곳에서 드러나고 있는데, 그와는 별도로 이를 아름답게 포장하는 기조가 만연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누구나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스타트업에 입사하고 얼마 안돼 퇴사한 지인이 해준 말이 하나 있다.

“대기업의 딱딱한 분위기가 싫어서 스타트업으로 이직했는데, 여기도 매한가지인 거 같아요.”

그는 대기업의 상명하복식 문화, 단순반복 업무가 싫어서 고연봉을 포기하고 스타트업계로 왔다. 연봉은 절반으로 줄었지만 기대감이 있었던 건, 스타트업은 자유로운, 수평적 문화를 지향한다는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웬 걸? 그곳도 상명하복식 구조였으며, 개인의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는 문화는 없었다.

모든 스타트업이 그렇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겉과 속이 다른 스타트업이 상당히 많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직장인 익명 소셜미디어(SNS) 블라인드의 스타트업 라운지만 봐도 알 수 있다.

모 스타트업의 현재에 대한 블라인드 이용자들의 평가. 출처: 블라인드
모 스타트업의 현재에 대한 블라인드 이용자들의 평가. 출처: 블라인드

익명 플랫폼이기에 과장된 표현이 담길 가능성이 있으나 화려해보이는, 자유로워보이는 스타트업의 실상은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어느 곳을 가든 잡무는 있다. 스타트업의 경우엔 개인이 마케팅부터 홍보, 경영지원까지 수많은 업무를 담당하는 경우도 많다. 겉은 계속해서 포장되지만, 그럴수록 기업 내부의 괴리감은 더욱 커져만 가는 것이다.

스타트업 이미지 포장 관련, 예전 ‘창업꾼 아닌 창업가가 필요하다’는 글을 통해 아래와 같은 내용을 작성한 적이 있다.

“소위 ‘핫’한 아이템에 돈이 잘 모입니다. 하지만 당장 고객에게서 돈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우선은 투자를 받곤 하죠. 투자사마다 투자의 기준이 다르겠지만, 핫한 콘텐츠를 갖고 있다면 눈에 띄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 O2O 스타트업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결국 단기적인 상황만을 본다면 주위의 이목을 집중할만한 콘텐츠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유행을 타는 서비스를 주제로 삼고 투자를 받은 뒤, 그 이후를 생각하지 못해 먼지처럼 사라지는 경우가 종종 벌어지곤 하죠.”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스타트업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닐까. 앙트러프러너십 같은 표현으로 지적인 우월함, 혹은 스타트업의 특별함을 강조하기보다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사회의 불합리한 구조를 바꾸는 ‘기업가 정신’이 필요하다. 그게 진정한 ‘앙트러프러너십’이 아닐까. 하나 더. 비즈니스모델이 필요한 건 동네 치킨집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스타트업도 피해갈 수 없다.

현학적인 단어 포장은 그만하는 게 어떨까. 이미 거품은 꺼져가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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