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가 만들어내는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씨앗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은 금융 자본, 지식 자본, 스타트업 자문 기관, 법률/회계 자문 기관 등 기반이 되는 생태계 속에서 태어난다. 스타트업은 생태계 자체라기보다는 생태계가 키워낸 열매나 상품으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금융 자본: 스타트업의 금융 자본은 벤처 캐피털 (VC)과 Pre-IPO 기업들을 사들이는 구글, 페이스북과 같은 대기업, IPO 마켓의 기관 투자자들이 제공한다.

지식 자문: 실리콘밸리 근처에 위치한 스탠퍼드, UC 버클리, 그 외 미국 전역의 우수한 대학들과 프로덕트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꿈을 따라 전 세계에서 몰려온 인재들이 실리콘밸리의 지식 자본을 제공한다.

스타트업 자문: 스타트업의 성장을 돕고 조언을 해 주는 Y Combinator 등의 accelerator는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학원과도 같다. 에어비앤비 등 최근에 성공을 거둔 수많은 회사들이 Y Combinator를 통해 스타트업으로 자신의 스토리를 이루어가는 방법을 배웠다.

법률/회계 자문: 그리고 스타트업 성장 과정에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법률, 회계 자문 업체 등이 있다.

이러한 탄탄한 기반 생태계의 지원 속에서 누구든 아이디어와 스토리가 있으면 창업에 뛰어들 수 있다.

기(起): 스토리의 탄생 

당신의 스타트업은 어떤 스토리를 이루어가는 회사입니까?

실리콘밸리에서 스타트업들에게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훌륭한 스토리는 스타트업의 시작이자 끝이다.

모든 스타트업 창업자가 처음부터 분명한 비전과 스토리를 가지고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애자일 프로세스를 통해 성장하는 Lean 스타트업의 초기 스토리는 자주 바뀐다. 많은 스타트업들의 꿈인 기업 공개(IPO, Initial Public Offering, 또는 주식 상장)의 준비를 시작하는 순간까지 기업의 정확한 스토리를 정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스타트업의 중요 전환점마다 무의식 중에 내렸던 많은 결정들이 이후에 만들어진 스토리 라인에 따라 이루어진 것처럼 포장될 수도 있다.

에어비앤비의 “Belong Anywhere”라는 미션도 그 한 예이다. 창업자들이 처음부터 미션을 설정해 놓고 그 미션을 이루기 위해서 에어비앤비라는 회사를 창업한 것은 아니다. 집값이 너무 비싸서 방을 내놓다 보니 사업 아이템이 되었고 그에 맞는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스토리는 그 회사의 존재 목적과 아이덴티티가 되었다.

스토리가 중요한 것은 기업이 지향하는 방향을 통해 미래를 예상할 수 있는 틀이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은 자신이 만들어낸 스토리를 완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결정은 사실상 이 스타트업의 스토리의 전개와 결말이 얼마만큼 마음에 드는가에 달려있다.

일정 규모 이상의 자본금으로 만들어낸 아이템으로 회사를 시작하던 기존 사업들과 달리 테크/서비스 스타트업은 아주 낮은 진입 장벽을 가지고 있다. 클라우드 서비스와 소셜 미디어 광고 등을 활용하면 아주 저렴하게 사업을 시작할 수 있으며 크라우드 펀딩, 블록체인 ICO(Initial Coin Offering)등으로 자본금을 모으는 것도 쉬워졌다. 그 모든 초기 단계에서 사람들과 자본금을 끌어 모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스토리의 역할이다.

창업을 위한 최소 자본이 워낙 적어진 시대이다 보니, ‘창업자의 능력과 의지’가 ‘자본이 충분한가’보다 더 중요하게 평가받는 시대가 되었다.

승(承): 펀딩으로 날개를 달기 

스타트업이 매력적인 스토리를 가지고 있고 이에 부합하는 전개를 보이고 있다면, 실리콘밸리의 수많은 벤처 캐피털(VC, Venture Capital)의 러브콜을 받게 된다. 그러나 VC들은 한꺼번에 투자하기보다는 스타트업의 성장 속도에 맞춰 단계적으로 자본을 투입한다. 단계별 자본 투자는 뒤로 갈수록 기업 가치가 올라가서 더 비싼 가격에 스타트업의 주식을 사게 된다는 단점이 있지만, 스타트업 실패에 대한 위험 분산이 가능하다. 또한 단계별 기업의 가치가 올라가면서 더 많은 외부 투자자들의 관심과 투자를 끌어 올 수 있다.

앤젤 투자 또는 창업가 투자 

스타트업의 최초 자본 투자 단계로 주로 창업가와 그 지인들을 중심으로 자본 투자가 이루어진다. 통상 $1M 미만의 소액 투자가 주를 이루며, 기업 규모도 5~10명 안팎의 소수 그룹이다. 자본금은 1~2년 정도 운영자금에 해당할 정도이며 이 단계의 창업가들은 거의 연봉을 받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Series A funding 

본격적인 외부 자본 투자 단계로 1~3개 벤처 캐피털들의 Joint 투자가 이루어진다. 통상 $5M ~ $10M 정도의 투자가 우선주(Preferred stock) 형태로 이루어지며, 스타트업의 본격적인 기업 활동이 시작된다. 벤처 캐피털이 이사회에 참석하여 기업 활동을 감시하고, 법률 및 회계 등 기본적인 기업 자문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스타트업에 대한 홍보와 창업가들의 네트워킹 활동도 본격적으로 강화된다.

Series B to Series C funding 

스타트업의 비즈니스 모델 검증이 사실상 완료되어 본격적인 확장과 이에 따른 자본 투입이 필요해진다. 기존 벤처 캐피털 외에 더 많은 벤처 캐피털 투자자들이 참여한다.

Series D funding
흔히 pre-IPO 단계의 마지막 funding으로 $40M ~ $100M 정도 투자되며, VC funding은 사실상 마무리 단계이다. 이후 단계의 funding은 IPO 혹은 기관 투자자들의 private placement로 이루어진다.

전(轉): 기업 공개 준비 

모든 스타트업이 다 기업 공개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업 공개로 스타트업에서 벗어나 공개 기업이 되기로 결정을 한 회사는 다음과 같은 절차를 밟는다.

CFO 선정

CFO는 IPO를 진행하는 총감독이다. 실리콘밸리에서 많은 IPO를 성공시킨 경험이 있는 CFO를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Pre-IPO 회사들에서 새로운 베테랑 CFO를 영입했다는 뉴스는 본격적인 기업 공개 준비에 착수했다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지도 한다.

투자은행 선정

CFO가 들어와서 하는 여러 가지 사전 준비 작업 중 유가증권 신고서를 작성하고 Roadshow를 진행할 투자은행을 선정하는 일도 중요하다. 회사에 대한 기관 투자가들의 선호도를 조사하고, 이에 따른 적정한 기업 공개 가격 산정 등도 모두 투자은행이 맡게 된다. 기업 공개를 위한 Buyer를 모집하는 역할이다.

Pre-IPO round 

기업 공개 직전에 적정 운영 자본을 보유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Pre-IPO round를 진행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이를 통해 한번 더 펀딩을 받아 회사의 가치를 높인다.

유가증권신고서 (S-1) 준비

유가증권신고서는 엄격한 유가증권 상장법에 따라 작성되어야 한다.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흔히 Big 4라고 불리는 대형 회계법인을 외부감사인으로 선정하여 상장사 감사 기준으로 통상 2년 치 재무제표 감사를 완료해야 한다. 또한 상장 직후부터 요구되는 많은 외부 공시 요건을 맞추기 위한 내부 프로세스 정비가 선행되어야 한다. 단기간에 성장한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은 적정한 내부 관리 프로세스가 부족하여 이 곳에서 생각보다 많은 노력과 시간을 낭비하게 되기도 한다. 유가증권신고서는 회사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으며, 분야별로 회사, 법무법인, 회계법인, 회계 컨설팅 회사 등에서 나누어 작성한다.

증권거래 위원회 (SEC)와 상장을 위한 절차 논의 개시

유가증권신고서를 제출하기 이전부터도 증권거래 위원회와 긴밀하게 회사의 상장 계획과 중요 회계처리 방침에 대한 사전 조율 (pre clearance)을 거친다. 이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유가증권신고서 작성 작업에 들어간다.

Organizational meeting

기업 공개를 위한 대부분의 사전 작업이 완료된 시점에 열리는 기업 공개를 위한 최종 승인 회의이다. 이 회의를 기점으로 통상 6개월 이내에 기업 공개를 완료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로드쇼 (Roadshow) 

유가증권신고서에 대한 두세 차례의 SEC 리뷰가 끝나고 최종 승인 이루어지면, 회사는 기업 공모 가격을 확정하고 투자은행과 함께 Roadshow에 나서게 된다. 전 세계의 기관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Roadshow는 회사의 임원진이 일주일 정도 직접 presentation을 위해 전 세계를 돌게 된다. Roadshow가 끝나면 투자은행에서 받은 기관 투자자들의 회사 주식 구매 주문을 바탕으로 각 기관들에게 주식을 배분하게 된다. 일반 소액 투자자가 IPO 주식을 직접 구입할 수 있는 경우는 드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장 

4자 이하의 Ticker Symbol이 발행되고(Twitter TWTR, Google GOOG, Facebook FB 등), 기존 주주의 주식들과 공모를 통해 발행한 신주들이 NYSE나 NASDAQ에 등록되어 거래되기 시작하는 것으로 상장이 절차가 마무리된다. 신규 상장한 회사의 기존 주주들의 주식은 6개월 간의 Lock-up 기간 동안 공개 시장에서 거래될 수 없으며, 이 기간이 완료된 후에는 등록된 증권 거래 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다.

결(結): 기업공개(IPO),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실제 창업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훗날 자신의 기업을 공개(IPO)할 예정인가 물었을 때, 대다수가 부정적인 대답을 했다고 한다. 왜 많은 창업가들이 Billionaire 가 될 수도 있는 유일한 기회인 기업 공개를 마다하는 것일까?

사실 스타트업의 종착지가 반드시 기업 공개에 한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창업가들이 대규모 상장사를 경영하는 것보다, 작은 스타트업들을 연속적으로 창업하고 exit 하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소규모 스타트업의 다이내믹한 환경에 익숙한 창업가들이나 종업원들은 정형화된 프로세스를 따라야 하는 상장사들의 안정적 환경을 싫어하기도 한다. 또한 하나의 스타트업이 창업에서 IPO가 아닌 Exit까지 걸리는 시간이 실제 2~3년에 불과한 경우도 많아져, 창업에서 투자한 자본을 회수하는 시간도 짧아졌다.

창업가와 대주주들인 VC의 입장에서 기업 공개는 뚜렷한 목표라기보다는 장단점이 확실한 가장 중요한 의사 결정 옵션 중 하나이다.

IPO의 장점: 스타트업의 비즈니스 모델 혹은 스토리에 대한 시장의 평가가 호의적일 때, 자본 조달을 안정적으로 쉽게 할 수 있으며, 기업 가치 상승에 따라 기존 주주들이 높은 상장 차액을 누릴 수 있다. 구글, 페이스북의 신화는 오직 기업 공개를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상장 주식을 활용한 주식 보상 제도로 인재들을 쉽게 영입할 수 있다.

IPO의 단점: 스타트업의 비즈니스 모델 혹은 스토리에 대한 시장의 평가가 비호의적일 때, 추가 자본 조달이 쉽지 않고, 특히 기업 공개 가격보다 시장 가격이 떨어지는 경우도 흔하다. 상장 유지를 위한 법률 자문, 외부감사, 내부 시스템 유지 등 부대 비용이 매우 크다. 경영진들의 성과 평가가 외부 투자자들의 기준에 맞춰지게 되어, 단기 재무 성과가 장기 비전 실현보다 중시될 수 있다.

그렇다면 IPO가 아닌 다른 길은 무엇이 있을까? 실리콘밸리에서도 성공적인 스타트업들의 대다수가 기업 공개보다는 대기업에 매각되거나, 다른 중소규모 상장사와 합병을 선택한다. 이때 창업가들은 스타트업을 떠나 새로운 창업을 하거나 혹은 합병된 대기업의 일부 조직으로 안정적 환경에서 연구 투자 활동을 지속하기도 한다. 특히 기술 중심 스타트업들은 자신이 특화시킨 하나의 기술로 마켓을 창조하는 것보다 기존 구글이나 페이스북의 플랫폼을 이용한 시너지 효과를 노리고 회사를 매각하기도 한다.

근례로 2013년과 2014년 IPO 준비하던 많은 Ad tech 스타트업들이 최종적으로 AOL과 같은 광고 플랫폼 대기업에 인수되기를 선택했다. 2014년 구글이 $500M에 매수한 인공지능 기업 Deepmind도, 기업공개보다는 구글과의 협력을 선택한 경우다. 이후 Deepmind가 구글의 big data와 안정된 funding의 바탕으로 AlphaGO를 만들어낸 것은 이제 잘 알려진 스토리이다. 실제 필자가 경험한 다수의 IPO 프로젝트들 중 6개월 이상 준비했던 유가증권신고서 (S-1)의 최종 승인을 앞두고, 다른 기업에 인수되기로 최종 결정한 pre-IPO 기업들이 상당수였다.

반면, 최근 몇 년간 IPO 시장에 가장 활발히 진출한 신약 개발 중심의 바이오테크 기업들은 매각보다는 기업 공개를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신약 개발의 특성상 이미 발견된 신약 후보 물질에 대한 본격적인 임상 실험을 위한 자본 조달을 기업 공개를 통해 추진한다. 기존 제약 대기업들은 기업에 대한 자본 투자보다 기술협력 계약(Collaboration agreements)을 통해 신약 후보가 임상 실험을 통과할 때마다 마일스톤 페이먼트 (Milestone payments)를 지불하고 신약 허가 시 로열티를 지불하는 상용화 라이선싱 취득을 보장받는 것을 선호한다. 신약 개발을 위한 임상 실험 비용이 통상 $200M 이상이며, 임상 첫 단계에서 최종 신약 허가율이 10%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신약 개발 사업은 전형적인 고위험 고수익 (High risk high return) 프로젝트로서, 기업 공개를 통해 위험을 분산하는 것이 필수적인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도전에는 잃을 것이 많은 기존의 대기업들이 할 수 없는 일들이 정말 많다. 스타트업과 대기업들은 역할도 다르고 속도도 다르다.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들은 변화를 만들어나가는 힘이지만 그들이 겪는 과정은 무모한 도전의 연속이다. 탄탄한 생태계를 기반으로 한 스타트업의 성장 시스템을 갖춘 실리콘밸리는 늘 변화를 이끌면서 사람들이 가진 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하여 전 세계의 사람들이 사랑할만한 스토리를 가진 회사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글: Sarah. IPO 재무회계 컨설턴트. 실리콘밸리식 스타트업 자본 구조와 주식 보상 제도 관심이 많음.

그림: Chili. 디자이너. 생각을 그림으로 요약하는데 관심이 많음.